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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목록

조회 : 5775 | 2012-07-24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철학자로 잘 알려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2012년은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지 꼭 2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네스코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삶과 업적을 높이 사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했답니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에 걸 맞는 전 세계의 역사적 사건과 명사의 기념일 중에서 선별해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10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2013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과 ‘2012 정약용 탄생 250주년’이 ‘2012~2013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된 것이랍니다. 특히 ‘정약용 탄생 250주년’이 선정된 이유는 정약용의 업적이 백성들의 빈곤퇴치, 지속발전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것이 유네스코의 이념과 일치한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라네요.
제36차 총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 ‘이태리 작곡가 베르디 탄생 200주년’ 등 전 세계에서 98개의 행사를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했답니다. 동의보감과 정약용 탄생이 이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과 동등하게,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님을 인정받은 것이지요.
다산 정약용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5일부터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는데요, 국내 학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대만, 네덜란드,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 십여 명의 외국 학자들이 참여해 다산의 학문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했답니다.
이 자리에서 네덜란드 레이덴대의 바우더베인 발라번 교수는 다산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비교할 수 있다며 극찬을 했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의 도널드 베커 교수는 다산 정약용이 한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다산 정약용의 저서들이 많이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어요. 또 자신은 전 세계가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알게 하고, 19세기 한국의 성인에게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많은 이들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답니다.

 

 

* 알아보기
-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조선의 철학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3대 저서는?]
      [다산 정약용이 과학자라고?]


- 다산 정약용을 찾아 떠나기
      [다산 정약용의 생가, 남양주시 여유당]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의 혼이 담긴 축조물, 수원 화성]

 

* 생각 키우기
정약용은 배우는 것을 활용해 대단한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정약용의 배움을 떠올리며, 진정한 배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조선의 철학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약용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 시인, 철학자, 과학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개혁 방향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한국 최대의 실학자라 평가받는 그의 사상을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국강병이란 부자 부(富), 나라 국(國), 강할 강(强), 군사 병(兵)이란 한자 그대로 나라의 살림(경제력)을 넉넉하게 하고, 군사력을 강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정조의 최측근으로 탄탄대로 같은 관료생활을 하는 듯 했지만, 또한 정약용하면 오랜 귀양살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오랜 귀양생활이 그에게 최고의 실학자가 될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했지요. 귀양살이 동안 방대한 저작물을 쏟아냈으니까요.

 

 

[다산 정약용의 3대 저서는?]

 

저서

정약용의 대표 저서인 목민심서(왼쪽), 경세유표(가운데), 흠흠신서(오른쪽)의 표지. / 이미지 출처 : Seonjong Park-by-sa-3.0(flickr)


다산 정약용은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경세유표, 논어고금주, 대학공의, 마과회통, 매씨상서평, 맹자요의, 목민심서, 상례사전, 상례외편, 상서고훈, 상서지원록, 아방강역고, 아언각비, 악서고존, 여유당전서, 역학서언, 의령, 주역사전, 중용자잠, 춘추고징, 흠흠신서……. 그 제목을 나열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인데요, 정약용이 남긴 저서는 500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600권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음).
그 중 다산 정약용의 3대 저서를 꼽으라면,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정약용이 자신이 회갑을 맞아 직접 쓴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일표(一表)와 이서(二書)는 천하와 국가를 위함이라고 했다네요. 여기서 일표와 이서가 바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랍니다.
『경세유표』는 48권으로 되어 있는데, 관제, 군현제도, 부역 등 국가경영을 위한 제도를 다룬 내용으로 미완성된 책이랍니다.
『목민심서』는 48권으로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할 지침(마음가짐과 태도 등에 대한 내용)을 밝히면서 관리의 폭정을 비판한 책으로 부정행위를 적발해 목민관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이랍니다.
『흠흠신서』 30권은 사람의 목숨에 관한 옥사를 다스리는 책으로 원한의 소지를 없애도록 한 책이랍니다. 곡산부사로 재직할 때 자신이 실제로 수사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서술한 판결과 형벌 및 옥살이에 대한 주의와 규범을 정리한 책으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가벼이 처리하지 않도록 유의할 점들을 적었답니다.

 

 

[다산 정약용이 과학자라고?]
정조의 명으로 다리가 없던 한강에 배다리를 놓는 작업에 참여했었습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상여가 건널 때 이용하기 위해 한강에 배다리를 만들게 한 것이지요. 상여를 배에 싣고 넓은 한강을 건너는 것도 불안했을 뿐더러, 음력 시월이라 강이 얼어붙어 배가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랍니다. 이 배다리는 처음에 큰 배 77척을 나란히 놓고 대나무와 칡 끈으로 연결시킨 후 그 위에 모래와 흙을 깔고 잔디를 덮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상여가 지나고, 정조도 이 배다리를 이용해 수원까지 왕래하였다지요. 정조는 배다리 제도를 계속 수정해 나중에는 36척으로 배를 줄여 경비와 인력도 크게 절감했다고 하네요.

또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고 있던 다산 정약용에게 정조는 중국에서 들여와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던 <기기도설>이란 서양의 역학 기술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를 참고해 화성 성곽을 설계하라고 명한 것인데요, 이를 참고해 화성 성곽의 설계를 구상했고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중가(起重架), 즉 거중기를 설계해 내기도 했습니다. 또 화성을 축조할 때는 유형거(遊衡車)라 불린 수레와 녹로(轆轤) 또는 활차(滑車)라 불리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인 도르래를 고안해 내기도 했답니다.

 

거중기

수원화성박물관 앞에 전시된 거중기. / 이미지 출처 : 잉여빵-by-sa-3.0(flickr)

실무형 관리였던 다산 정약용은 정조의 명을 받아 이처럼 풍부한 과학지식으로 비용을 최소화하고, 국민들의 노역 또한 최대한 줄였답니다. 이 기중가(거중기)의 사용으로 4만 냥의 비용을 절약했다고 하지요. 또 1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화성 축조 공사가 단 2년 반 만에 (정확하게는 34개월이 걸렸으나 중간에 6개월 쉬었던 것을 생각하면 만 28개월이 걸림) 끝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30세에 불과했던 젊은 정약용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획기적인 계획에 따라 화성 건설을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랍니다.
또 정약용은 많은 저서를 남긴 이답게 화성을 지으면서도 그 기록을 자세하게 남겼는데요, 성의 형태는 물론 성을 쌓는 방법과 재료까지 자세히 기록했어요. 성을 쌓을 때 사용한 돌의 크기나 그 돌을 깎는 방법, 벽돌 만드는 방법, 가마로 굽는 방법까지 화성을 짓는 과정을 그 누가 보아도 알아보기 쉽게 글과 그림으로 설명한 『화성성역의궤』를 남겼는데요, 화성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성의 보수와 관리에도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답니다.
이 외에도 화성에는 정약용이 과학 원리를 잘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 더 숨어있는데요, 화성 성벽과 담(여장) 사이에 검은색 벽돌을 끼어 두었는데 생김새가 눈썹 같아 눈썹돌, 미석(楣石)이라고도 불렸던 이 돌은 물질이 상태가 변할 때 부피가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성벽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채 얼면 부피가 팽창에 성벽에 균열이 생기거나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미석을 끼워두면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스며들지 않고 미석을 타고 땅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라고 하네요.
또 수원 화성의 성벽이 구불구불한 것도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는데요, 성벽을 구불구불하게 해 아치를 만들면 더욱 견고할뿐더러, 성벽의 허리가 잘록하게 쌓아 돌과 돌 사이가 더 견고하게 맞물려 적병이 성벽을 쉽게 타고 오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라고 해요.

 

 

- 다산 정약용을 찾아 떠나기
[다산 정약용의 생가, 남양주시 여유당]

다산 정약용의 생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당시에는 광주군 초부방 마현리였는데 지금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75의 1번지랍니다.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유배에서 풀려나 노년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생가인 여유당을 끼고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뒷동산에 다산의 무덤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 주변에는 다산기념관과 다산문화관이 있어 다산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고, 해마다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니 미리 홈페이지에 들러 일정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여유당이 있는 마재마을 바로 위쪽이 두물머리(양수리), 바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 서울로 흘러드는 한강이 되는 곳이랍니다. 다산 정약용의 삶과 업적에 대해 살펴본 후, 두물머리(양수리)에 들러 사진을 찍거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멋진 경관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남양주시에서 운영하는 다산 정약용 홈페이지에서 여유당 자세히 살펴보기] http://dasan.nyj.go.kr
[다산 정양용 선생의 업적 동영상 보기]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이 10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집필을 한 곳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다산초당, 동암, 서암, 천일각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다산초당을 방문한다면 다산 4경이라 불리는 정석바위,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 정도는 살펴보고 와야겠지요?
정석바위는 다산초당 뒤편의 바위로 정석(丁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고, 약천은 다산초당 건물 뒤에 있는 샘으로 정약용이 직접 파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조는 초당 앞에 있는 널따란 바위로 정약용은 이 돌을 부뚜막 삼아 불을 지펴 차를 끓여 마셨다고 해요. 연지석가산은 초당 옆에 있는 연못과 연못 가운데 있는 아주 작은 섬을 말하는데, 이 또한 정약용이 탐진강가에서 돌을 주워 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대나무로 홈통을 만들어 만덕산에서 흐르는 물이 이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만들어 놓았답니다.

 

[강진군청 홈페이지의 다산 정약용 유적지를 소개하는 이미지와 동영상 보기]

http://www.gangjin.go.kr/tour/locality/dasan/01/?siteid=GANGJIN.TOUR&menuid=MENU0202010000&setupid=GANGJIN.TOUR0202010000]

 

 

[다산 정약용의 혼이 담긴 축조물, 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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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내부에서 본 장안문 야경(아래 왼쪽), 수원 화성 성벽의 일부분(아래 오른쪽). / 이미지 출처 : 위-bifyu-by-sa-2.0(flickr), 왼쪽-퍼블릭 도메인(위키백과), 오른쪽-nagyman-by-sa-2.0(flickr)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의 배봉산에서 수원의 화산(화성군 태안읍)으로 옮기면서 만든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적인 문화재랍니다.
1794년 축성 공사를 시작해 2년 반 만인 179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 수원화성의 축조에는 단 28개월이 소요되었는데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첨단 기술로 쌓았기 때문이랍니다.
수원 화성에는 먼저 거론했던 것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과학적 원리를 적용해 만든 성인데요, 크기가 다른 화강암과 벽돌(벽돌을 쌓고 내부에는 흙을 채워 단단하게 함)을 이용해 문을 만들어 대포의 포격에도 견딜 수 있게 한 것 등 수원 화성을 방문할 일이 있으면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는지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요, 앞서 말했듯 이 의궤에는 각 시설물들의 설계도와 성을 쌓는데 이용된 석재, 벽돌의 수 그리고 공사에 동원된 인부 수와 일한 날짜, 급료까지도 상세히 적혀있다고 하니 다산 정약용의 치밀함을 볼 수 있는 기록물이랍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수원 화성, 돌아보면서 주요 시설물의 위치와 명칭 그리고 그 과학적 원리들을 따져보면 좋겠네요.

 

[수원 화성을 소개하는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수원 화성과 관련 행사 소개 살펴 보기]
http://hs.suwon.ne.kr/

 

 

* 책으로 더 찾아보기
-정약용(시대의 어둠을 밝힌 개혁 사상가 - 아이세움 역사인물 21) : 안길정 글| 김자흔 그림
- 수원 화성과 정약용(다큐 동화로 만나는 한국 근현대사 1) : 이정범 글 | 이용규 그림
- 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 이형준 지음
- 유네스코가 선정한 한국의 세계유산 : 이경덕 지음
- 정약용 목민심서 : 손영운, 곽은우 지음
- 목민심서(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다-파란 클래식 013) : 정약용 원작 | 이성률 글 | 한재홍 그림

- 청소년을 위한 다산 정약용 산문집 : 허경진 지음

 

 

* 생각 키우기
정약용은 배우는 것을 활용해 대단한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정약용의 배움을 떠올리며, 진정한 배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정약용은 그저 배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배움을 활용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려고 했어요. 실제로 거중기, 녹로 등을 고안해 10년으로 예상했던 수원 화성의 공사 기간을 2년 반으로 줄이는 한편 많은 비용을 절감했고, 백성들의 노역도 줄일 수 있었지요. 또 당시 조선엔 전염병이 돌아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를 보고 마진(홍역)을 연구해 홍역 치료에 관한 의학 서적인 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책을 쓰기에 이르렀답니다. 이 외에도 정약용은 자신이 배운 것을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고안해 내는데 이용했지요.
정약용의 배움을 떠올리면서 진정한 배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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