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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디바! 용서와 화해의 상징, 만델라를 보내며.. 목록

조회 : 3441 | 2014-01-14

‘타타’, ‘마디바’를 외치며 노란색 국화부터 들꽃에 보라색 수국까지 손에 꽃을 든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자택 앞에 도착해 그 꽃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이내 꽃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12월 7일 오후, 이곳뿐만 아니라 요하네스버그 만델라 광장의 만델라 동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의 유니온 빌딩(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해 집무를 본 곳) 등 만델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는 그를 추모하는 꽃과 촛불이 수북하게 쌓여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노래와 춤이 이어졌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행복할 때처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슬픔일 당했을 때에도 춤을 춘다고 합니다. 만델라를 추모하면서 춤을 추는 이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도 만델라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자신들이 흘리는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고 했답니다. 또 그들은 만델라를 추모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승리의 삶을 축하’하려고 왔다고 했다고 하네요.

오바마 만델라

만델라의 추도식에서 추모사를 낭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오바마. / 이미지 출처 : 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Chuck Kennedy-CC-BY-3.0(www.whitehouse.gov)


지난 12월 10일 하루 종일 내리는 폭우 속에서 열린 만델라의 추도식에는 100여 개국 정상 또는 정상급 인사가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의 조문 외교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인사들 중에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20여 분간의 추도사를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는데,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인 그는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첫 흑인 대통령과의 공통점이 있는데다 자신의 멘토가 만델라라고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도 추도사를 했답니다.
만델라의 유해는 유리관에 안치돼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프리토리아의 대통령 집무실인 유니온 빌딩 앞에서 일반에 공개됐고, 15일에는 만델라의 고향인 쿠누에서 국장이 열렸답니다.

 

만델라

2008년 건강한 만델라의 모습. / 이미지 출처 : by South Africa The Good News / www.sagoodnews.co.za-CC-BY-2.0(Wikipedia.org)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인공호흡장치를 뗀 채 스스로 호흡하다 지난 5일 오후 8시 50분쯤 요하네스버그 하우튼의 자택에서 임종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더 이상의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셈인데요, 만델라 본인의 뜻이었는지 가족들의 결정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병원에 입원한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와 가족들은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생명이 인공호흡 장치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고령의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2003년 통과된 남아공 국민보건법에서는 환자의 동의 없이 연명치료를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따끈따끈 과학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타타’, ‘마디바’라는 호칭을 받는 넬슨 만델라의 삶을 돌아볼까 합니다. 또 그가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에게 생각하게 만든 ‘연명치료’에 대한 것도 이야기해 봅시다.

 

*타타 : taata, 동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말.
*마디바 : Madiba, 남아프리카 코사족이 ‘존경하는 어른’을 일컬어 부르는 말로, 만델라의 존칭 겸 애칭으로 쓰임.

 

 

* 알아보기
- 넬슨 만델라, 그는 누구인가?
- 만델라가 남긴 유산들
  [연보를 통해 만델라의 삶 더 살펴보기]
- 우리가 몰랐던 ‘만델라의 10가지 진실’
- 만델라의 연명치료 논란과 함께 생각해 볼 우리나라의 연명치료 문제


* 생각 키우기
여러분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과연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부작용을 방지할 보완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같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 넬슨 만델라, 그는 누구인가?
Nelson Rolihlahla Mandela(18 July 1918 – 5 December 2013).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고,  ‘용서와 화해’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었고, 인권을 위해 싸우는 투사였고, 정치범이었고, 최근인 2008년까지 미국의 테러 감시리스트에 이름이 남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평범한 마을 추장의 아들에서부터 인권 운동가, 투사, 정치범, 테러리스트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과 용서와 화해의 정치인으로 추앙받기까지. ‘검은 거인’이라고도 불렸던 그가 95세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의 인생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굴곡이 있었습니다.

만델라 

만델라 사인

1937년의 젊은 만델라(위) 그리고 만델라의 자필 사인.(아래) / 이미지 출처 : 퍼블릭 도메인(Wikipedia.org)

 

 


- 만델라가 남긴 유산들
만델라는 전 세계인들에게 수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만델라가 내세운 투쟁 그리고 용서와 화합의 정책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렇듯 그를 멘토로 삼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정도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수많은 인생 이야기를 모두 풀어볼 수는 없으니 그가 남긴 발언과 메시지 등을 통해 간략하게라도 그가 누구인지, 그가 남긴 유산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1964년 리보니아 재판]
1964년 리보니아 재판, 만델라의 이름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킨 사건입니다. 반역죄로 기쇠된 만델라가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재판의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투쟁노선과 인종평등 사상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밝히면 한 발언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진실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프리카 동포들의 투쟁입니다.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 조화롭게 사는 자유민주사회의 이상을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목적이자 이상입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바칠 이상이기도 합니다.”

 

[1990년 2월 11일 27년간의 복역 뒤 석방]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복역한 뒤 백인정권과의 권력분점 협상을 통해 석방되기에 이릅니다. 웨스턴케이프 주의 빅토르 페르스테르 교도소 앞에 모인 취재진들에게 27년이라는 긴 복역 끝에 71세의 노인이 되어 나타난 만델라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평화와 화해, 인종평등을 위해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995년 초록색 럭비 유니폼을 입은 대통령]
1994년 대통령이 된 만델라. 종 화합을 선언한 만델라였지만 그동안 백인들로부터 탄압을 받아온 흑인 대통령이었기에 백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준 것은 199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럭비월드컵 때였습니다. ‘스프링복스’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뉴질랜드를 꺾었는데, 이날 경기장에 있던 6만 3000여 명의 관중은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럭비는 이때까지 백인들의 스포츠였고, 초록색 유니폼은 흑인들에게는 증오의 상징이었는데 이날 만델라는 그 초록 유니폼을 입고 나와 백인 선수인 프랑수아 페이나르에게 우승컵을 건넵니다. 피에나르는 “우리는 오늘 6만 3000명이 아닌 4200만 명의 응원 속에서 경기했다”고 말했고, 만델라는 그를 끌어안으며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스프링복스의 새 구호가 ‘하나의 팀, 하나의 조국’이었는데, 구호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지요.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
대통령 당선 뒤에 과거사 문제를 말할 때 만델라는 잊지는 않지만 용서하겠다는 원칙을 내걸었다고 해요. 남아공의 미래를 위해 백인들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관료체계와 자본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흑인들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백인 세력을 끌어안았지요.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한 남자 여기에 잠들다]
넬슨 만델라가 63년간 남긴 연설문과 편지, 인터뷰 자료 등을 집대성해 출간된 『넬슨 만델라 어록』에서 만델라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노력을 했다고 믿고, 그래서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한 남자 여기 잠들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뿐이다.”

이외에도 만델라가 용서와 화해를 위해 행한 수많은 업적과 어록들이 있습니다. 만델라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고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보를 통해 만델라의 삶 더 살펴보기]
연보 바로가기 (PDF 파일 연결)

 

만델라 감옥

 만델라가 27년간 복역했던 로벤섬에 있는 감옥의 작은 방. 이 작은 방에서 27년을 보내면서도 만델라는 증오와 복수가 아닌 화해와 용서를 외치고, 실천했어요. / 이미지 출처 : by Witstinkhout-CC-SA-3.0(Wikipedia.org)

 

 


- 우리가 몰랐던 ‘만델라의 10가지 진실’
지난 12월 7일(현지시간) CNN은 넬슨 만델라를 추모하며 우리가 잘 몰랐던 만델라의 10가지 진실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그 내용을 좀 자세히 풀어 살펴볼까 합니다.

 

1. 만델라의 어릴 적 이름은 롤리랄라(Rolihlahla)였다.
호사족 언어로 롤리랄라는 ‘말썽꾼, 장난꾸러기’라는 뜻이라고 해요. CNN은 만델라는 장난꾸러기라는 뜻의 롤리랄라에 알맞은 생을 살았다며, 평범한 족장의 아들에서 변호사에서, 투사, 대통령에 이르는 굴곡진 삶을 대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만델라는 영국식 이름인 넬슨과 아버지가 지어준 아프리카 이름인 롤리랄라(‘롤리흘라흘라’로 읽기도 함)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만델라는 미국 영화 ‘말콤X'의 마지막 장면 교사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1992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말콤X’에서 인권운동가 말콤X에 대해 설명하는 학교 선생님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답니다.


3. 아프리카 최초의 딱따구리 화석의 학술명은 ‘만델라’이다.
 독일의 과학자들은 지난해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94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화석으로 발견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에 존재했던 딱따구리종에 그의 이름을 따 ‘아우스트랄로피쿠스 넬슨만델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미 거미, 핵입자, 구조견, 꽃, 경주마 등에도 만델라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4. 만델라의 임종을 지킨 세 번째 부인인 그라사 마셸은 이웃나라 모잠비크의 사모라 마셸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다.
1986년 10월 19일 잠비아에서 국제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도중 사모라 마셸 모잠비크 대통령과 정부의 내각 의원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해 대통령을 포함한 34명이 사망하고, 10명 만이 살아남은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모잠비크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가 이 사고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졌으나 그 증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고 원인은 운항 승무원이 강하 진입 장비를 순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국제 민간 항공기구에서 승인된 최종 보고서였습니다.
그라사 마셸은 순차적으로 두 나라의 영부인으로, 두 남편 그것도 전현직 대통령을 차례로 떠나보낸 한 여자로 흔치 않은 인생 이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5.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변장술의 달인이었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을 반대하는 저항 운동을 할 때 ‘변장의 귀재’로 불리며 경창의 추적을 따돌렸다고 해요.


6. 만델라가 가장 좋아한 스포츠는 피를 튀기는 ‘권투’였다.


7. 가장 좋아한 음식은 동물의 위와 창자 요리였다.


8.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로펌을 개설했다.


9. 만델라는 90세이던 2008년까지 미국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남아 있었다.

과거 저항 운동 당시의 폭력적인 투쟁 방식 때문에 미국의 테러 감시리스트에 그 이름이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10. 영국의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중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구절을 즐겨 외우며 영감을 얻었다.

만델라는 수감 시절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터스(Invictus, ‘정복되지 않는’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 큰 감명을 받아 평생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 만델라의 연명치료 논란과 함께 생각해 볼 우리나라의 연명치료 문제
만델라의 연명치료 논란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같은 문제, 연명치료가 인간의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지난 11월 28일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 초안’을 내놓았습니다. 이 초안에 의하면 연명의료 중단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하는 임종기 환자’입니다. 단, 환가의 명시적 의사표시, 의사표시 추정, 대리 결정에 따라 임종을 앞둔 환자의 특수연명치료(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를 중단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법안은 여전히 분쟁을 낳고 있습니다. 종교계에서는 생명을 경시하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또 임종기의 기준과 이에 해당하는 환자를 어떻게 법으로 정할지도 문제고요.
실제로 2009년 연명의료,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 문제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할머니 사건이 있습니다.
2008년 2월 18일 폐암 여부를 확인하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가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한 요청을 병원측이 거부하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과 2심을 거쳐 2009년 5월 21일 법원은 존엄사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병원 측에서도 존엄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고, 비슷한 사례라 빈발할 것이 예측되기 법원에서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법원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환자와 가족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한 첫 결정이었습니다. 2009년 6월 23일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으나 할머니는 스스로 호흡하며 생존했고, 201일 만인 1월 10일 사망했습니다.
1997년에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불리는 일이 있었는데, 58세의 남자가 구급차에 실려 왔고 의료진은 긴급하게 수술을 했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고 환자의 의식도 회복되지 않아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았습니다. 다음 날 오후 환자 부인이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하자 의료진은 만류를 했어요. 부인이 막무가내로 퇴원을 요구하자 담당 전문의는 담당 전공의에게 현재 환자의 상황을 보호자에게 주지시킨 후 귀가서약서에 서명을 받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보호자 서명 후 환자를 퇴원시켰는데,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환자의 부인을 살인 혐의로 구속, 담당 의사 3명을 살인죄의 공범으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은 부인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으로 인정하고, 관련의사 2명에 대해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을 인정했으며 1명은 무죄판결을 했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치료를 계속 했더라면 환자가 살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두 사건을 비교하면, 경제적 이유로 존엄사를 택하거나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인해 존엄사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치료를 해도 살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만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도 조건이 있는데 환자 본인의 의사가 추정되어야 하고, 정말 생존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의 ‘연명의료복지법 초안’만이 얼마 전 나왔을 뿐 이에 관한 사회적 논의 및 법률 제정은 이제 초기 단계입니다. 입법이 된다 하더라도 회생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재판을 통해 판가름 나야 할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생각 키우기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과연 환자를 위한 길인가 생각해 봅시다.
지난 11월 2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명의료 결정법’ 초안은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불필요한 집착적 의료행위를 포기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치료와 영양 및 수분 공급, 통증 조절 등의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중단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 초안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제10조) 기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고 명시되어 있어, 이 ‘특별한 사유’ 가 인정되면 기본 의료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법안은 또한 ‘환자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회생가능성이 없는 임종기에 이르렀을 경우 환자의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이 모두 합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환자 등이 회생가능성이 있음에도 이 법안을 악용해 부당하게 죽음을 맞을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연명치료 중단이 환자의 명확한 의사 표시가 있었거나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 외에 가족이나 대리인, 대리인이 없다면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 경우 이 법안을 악용할 수 없도록 입법화 과정에서 부작용을 방지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과연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부작용을 방지할 보완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같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또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 고통스러운 삶을 구차하게 연명하기 보다는 사람은 죽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과 생명 경시 풍조가 생겨날 수 있고, 오남용 등의 범죄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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