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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건축물의 비밀! 목록

조회 : 1888 | 2013-08-21

한낮의 관공서에서는 땀을 뻘뻘 흘려대는 와중에도 에어컨만은 가동시키지 않고 버틴다.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시원스러운 전경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전력난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 주 초에는 어두운 실내에서도 불까지 끄고 지낼 정도였다.

 



전력 수급 비상에 무더위까지 겹친 여름날, 가장 고달픈 곳은 뜻밖에도 초현대식으로 지은 첨단 건물들이었다. 햇볕은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열리는 시늉 정도만 하는 창문을 지닌 건물 내부는 말 그대로 찜질방이 돼 버렸다. 언젠가부터 공공건물을 중심으로 유리로 뒤덮인 건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주거용 건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리를 대폭 활용한 건축방식이 유행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유리 건축은 그 자체로 현대적인 세련미를 물씬 내고 풍요와 개방성을 상징한다. 1851년, 런던에서 수정궁이 선보였을 때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던 까닭도 유리로 뒤덮인 건물이 그때까지의 어떤 건물과도 다른 세련미를 보이면서도 기술력과 물질적 풍요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수정궁은 철골 구조라는 신기술과 유리라는 새로운 벽면 재료를 활용해 미래의 건축을 한 발 앞서 제시하고 후대의 건축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현대식 유리 건축은 중요한 결점을 안고 있다. 널찍하고 시원스러운 공간을 제공하고 태양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집중됐을 때 이를 적절히 해소할만한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난방에는 우수한 효율을 보이지만 냉방에는 오히려 낮은 효율을 보인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실내가 바깥보다 더 덥다면 그저 창문만 활짝 열면 그만일 것을 유리벽이 창문을 대체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가면서 냉각시스템을 구동해야 한다.

 



고전 건축이나 자연물은 현대 건축이 놓친 바로 이 부분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고전 건축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적은 에너지로도 충분한 냉방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결은 바로 물과 바람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저택에서 중원(Atrium, 안마당)은 태양열을 받아들이는 역할만 했던 것이 아니다. 아트리움에는 보통 ‘임플루비움(Impluvium)’이라는 사각형 빗물받이 겸 연못을 만들어두는데, 비열이 큰 물이 중원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침실을 말 그대로 자는 용도로만 활용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햇볕이 들어오면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아트리움에서 보냈다. 또 다른 개방공간인 페리스타일(Peristyle)도 마찬가지였다. 기둥과 처마로 둘러싸인 공간인 페리스타일에는 정원이나 채마밭을 두곤 했는데, 식물들이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그림1] 알람브라 궁전의 아세키아 타피오티
분수에서 시작된 물은 수로를 따라 방으로 흘러 들어간다. 물이 있는 중정은 무더운 지중해의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Andrew Dunn


온도조절에 중정(中庭)을 활용하는 방식은 남부 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스페인의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이다.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람브라 궁전은 가운데의 커다란 정원을 방들이 사각형으로 요새처럼 둘러싼 구조다. 중정에는 큰 연못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사방으로 수로가 뻗어 나와 방 안쪽까지 물이 흘러든다. 중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의 물,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한편으로 효과적인 냉각장치 역할을 한다. 건물의 한가운데에 연못 정원을 두는 건축양식은 이슬람 세계에 오랜 시간 동안 장려돼 이른바 ‘지중해식 중정’으로 정착했다.

 



한여름, 전형적인 지중해식 중정은 길거리보다 온도가 섭씨 9도나 낮다. 중정의 시원한 공기를 이용하면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비야 대학에서는 지중해식 중정의 시원한 공기를 능동적으로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는 냉각기법을 개발해 말라가 호텔에 적용함으로써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반으로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자연 냉각의 또 다른 키워드인 바람 역시 여러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전통 한옥이 바람을 이용한 냉각방식의 전형적인 사례다. 한옥은 앞뒤로 트인 대청을 사이에 두고 텅 빈 마당을 집 앞에, 식물을 심은 후원을 집 뒤에 둔다. 햇볕을 받으면 맨땅인 마당이 빨리 뜨거워져서 상승기류가 발생하고 식물이 심긴 후원으로부터 시원한 공기가 마당 쪽으로 흘러든다. 이 공기가 대청을 지나면서 집 전체를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통째로 들어 올려 아예 벽이 없는 형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 들문을 설치해 냉각 효과를 극대화했다.

 



한옥이 수평적인 공기의 흐름을 이용했다면 이슬람 사원은 수직적인 공기 흐름을 활용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인 시난(Mimar Sinan)은 그의 대표작인 술레이마니에 사원에 수직적인 환기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온도 조절과 환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시난은 양초와 램프에서 생긴 그을음이 사원의 내벽을 더럽히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고심했다. 공간의 성격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기가 탁해진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시난은 출입구 위의 작은 공간으로 내부의 후덥지근하고 지저분한 공기를 빼내고 바닥에 둔 관으로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공기 흐름을 이용한 냉각의 진수는 인간이 아닌 흰개미에게서 볼 수 있다. 흰개미의 집에는 엄청나게 많은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개미탑 표면의 수많은 구멍을 통해 바깥과 연결된다. 흰개미는 곰팡이와 버섯을 키우는 부분과 주요 생활공간을 집의 아래쪽에 두는데, 여기서 나오는 열이 집 내부의 공기를 위로 밀어 올려서 개미탑의 위쪽 구멍을 통해 덥고 탁한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아래쪽 구멍을 통해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된다.

 



흰개미는 개미탑의 구멍들을 열고 닫으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집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흰개미의 환기 시스템은 이들의 주 서식지인 아프리카 초원에서 빛을 발한다. 외부의 기온은 한낮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리고 밤낮의 일교차가 심한데, 흰개미집의 내부는 항상 섭씨 29~30도 정도로 유지될 만큼 효율적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earce)는 자국 수도인 하라레에 에어컨이 없는 쇼핑센터를 설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의 에어컨 시설이 없는 쇼핑센터라니, 황당한 요구였다. 처음에는 막막해보였지만 피어스는 흰개미의 환기시스템을 모방해 최초의 대규모 자연냉방 건물인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를 건설했다. 구조는 간단했다. 건물의 가장 아래층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꼭대기에 더운 공기를 빼내는 수직 굴뚝을 여러 개 설치한 후, 두 개의 건물 사이에 저용량 선풍기를 설치했을 뿐이다.



[그림2] 흰개미의 환기시스템을 모방해 만든 최초의 대규모 자연냉방 건물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건물 옥상에 줄지어 선 굴뚝으로 건물 내부의 더운 공기가 빠져나온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David Brazier


단순한 구조였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건물 내에서 더워진 공기가 꼭대기의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고 아래쪽에서는 신선한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돼 에어컨 없이도 실내온도가 섭씨 24도 정도로 유지됐다. 전력이 소모되는 곳이라고는 공기 순환을 거드는 선풍기뿐이었다. 이 간단한 시스템 덕분에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동일한 규모의 건물의 10%에 불과한 전력만을 사용한다.

사람의 목숨은 물이 없다면 사흘, 공기가 없다면 15분을 넘기지 못하지만 주변에 늘 있기 때문에 그 역할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곤 한다. 하루 중 반은 없어서인지 태양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 부당한 대우다.

 



아무래도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요즘의 친환경 건축은 태양을 어떻게든 실내로 끌어들이는 데 골몰해왔다. 그러는 동안 공기와 물은 더 이상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친환경 건축을 실현하려면 첨단기술 도입만 생각하기 이전에 전기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던 건축을 들여다봐야 한다. 굳이 온고지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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