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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봄이 온 걸 어떻게 알까? 목록

조회 : 1832 | 2014-04-09

올 해도 어김없이 따뜻한 봄이 왔다. 감수성이 그리 풍부하진 않지만 해마다 이때쯤이면 왠지 꽃이 아름다워 보인다. 차도에 한가득 핀 노란 개나리도, 산책로에 팝콘처럼 핀 벚꽃도 왠지 ‘나, 살아있었어’라는 나무의 외침 같다. 어쩜 봄만 되면 일제히 꽃이 필까? 분명 봄과 가을은 기온이 비슷한데, 유독 봄이 온 걸 어떻게 알아내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 기온과 낮의 길이를 감지하는 개화 메커니즘

봄과 가을에 피는 꽃은 분명 다르다. 개나리, 벚꽃나무,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 같은 과실수는 봄에 꽃을 피운다. 코스모스, 국화, 분꽃은 가을에 핀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고,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 꽃을 피우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식물 연구자들에게 개화 메커니즘은 오래 전부터 큰 관심거리였다.


 


▲ 만개한 벚꽃. 사진 출처: 동아일보
식물의 개화시기가 기온과 낮의 길이(광주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일찍이 알려졌다.다양한 광주기 조건에서 개화 시기를 관찰한 결과, 낮이 길 때(일조시간 12~14시간 이상일 때) 꽃이 피는 장일식물, 짧을 때 피는 단일식물, 광주기와 관계없는 중일식물로 구분됐다. 낮이 길어지는 봄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가 장일 식물, 낮이 짧아지는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나 국화가 단일 식물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기온에 따른 개화 시기의 변화도 밝혀졌다. 오랜 계절적 기온 변화에 따라 계절별 개화 식물이 구분되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온차가 있어야만 개화하는 식물도 있다.봄꽃은 오랜 기간의 저온 환경을 겪어야 제대로 개화하고, 커피나무는 기온이 급속하게 떨어져야한다. 또한 온도에 따라 꽃잎의 안쪽과 바깥쪽의 생장 속도가 조절되기도 한다. 온도가 높으면 안쪽 꽃잎이 더 빨리 생장해 꽃이 피고, 낮으면 바깥쪽 꽃잎이 더 빨리 생장해 꽃이 진다.

식물의 개화 시기가 광주기와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 분명해진 후, 개화 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작동 기작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1900년대 초반 식물 생리학자들은 한 실험을 통해 개화를 유도하는 특정 호르몬이 있다고 판단했다. 실험 대상인 단일 식물의 꽃이 피지 못하도록 일조 시간이 긴 환경에 두고, 꽃이 핀 식물의 일부를 접붙이기 했다. 그러자 단일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 식물 전체에 꽃이 폈다.

이는 접붙이기 한 개화 식물의 일부에 이미 개화를 유도하는 호르몬이 존재했고, 접붙이기 후 이 물질이 식물 전체에 퍼져 개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했다.학자들은 이 호르몬에 ‘플로리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의 실체와 작용 기작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오랜 시간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 꽃을 피우는 물질, FT단백질

개화 유도 물질의 실마리는 1990년대 말부터 빠르게 풀리기 시작했다. 1995년 독일과 일본의 연구자가 FT(Flowering Locus T)유전자를 발견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그들은 FT유전자가 FT단백질을 만들어 내고, 이 단백질의 일부가 개화 호르몬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FT유전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증명해 내는 데에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2003년 FT유전자가 관다발에서 발현된다는 것이 입증됐다. 이들은 점차 기존의 다른 호르몬들과 달리 분자량이 월등히 큰 단백질 분자들도 호르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획기적인 생각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2005년부터 발상의 전환이 연구 결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연구자가 발표한 FT유전자의 발현과 작용에 관한 연구 결과는, 비록 조작된 실험이었지만 FT유전자, FT단백질, 플로리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됐다. 이후 2007년 FT단백질이 플로리겐임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다. FT단백질은 다른 어떤 호르몬보다 분자량이 큰 획기적인 호르몬이었다.

FT단백질을 포함한 개화 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작용 기작은 2005년부터 규명되기 시작했다. 먼저, 식물의 잎에서 낮의 길이를 감지해 FT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생장점으로 이동해 개화를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008년에는 식물이 생체 리듬을 24시간 주기로 맞춰 광합성 시간이나 개화의 시기를 결정하는 유전자 피오나1(FIONA-1)이 발견됐다.

싱가포르국립대 유하오 교수팀은 식물의 잎에서 만들어진 FT단백질이 FTIP1이라는 이동단백질을 만나 생장점으로 전달돼야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아내 ‘미국공공과학도서관학회 ’생물학회지(PloS Biology)’ 2012년 4월 17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또 2013년 개화 시기를 조절하기 위해 GI(Gigantia, 자이겐티아) 단백질이 낮에는 골고루 퍼지고, 밤에는 핵체에 밀집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같은 해 대기의 온도 변화를 인지하는 FLM(Flowering Locus M)유전자가 발견됐다. 기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낮아지면 이 유전자가 대기의 온도 변화를 감지하는 SVP(Short Vegetative Phase)단백질과 결합해, 개화 촉진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개화를 늦춘다는 것이다.

겨울 내내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던 나무들이 사실 꾸준히 주변을 살피고 수많은 물질들을 만들며 개화를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면 새삼 생명 활동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개화에 관여하는 분자 수준의 축적된 연구 결과들은 개화 시기를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나 장기적인 기후 변화로 인해 적절한 개화 시기를 놓칠 경우 뒤따르는 작물 생산 피해를 줄이는 데에 효과적인 기술이 될 것이다.

▲봄꽃 지도. 출처: 한국관광공사



올해도 기상청에서는 봄꽃 개화 시기를 발표했지만, 발표보다 열흘 이상 빨리 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고온 현상으로 봄과 가을이 짧아져 봄꽃 개화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설레는 마음에 야외로 소풍가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생긴다면 한국관광공사에서 공개한 봄꽃 지도를 참고할 만하겠다.

집과 먼 곳에서 화려하게 핀 꽃을 볼 때나 동네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을 만날 때도 개화 메커니즘, FT단백질에 대해 생각하며 감상한다면 즐거움과 유익함은 배가될 것이다.

글 : 이영미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과학향기

# 이 글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일하 교수님의 네이버캐스트 기사 “꽃이 피게 하는 호르몬, 플로리겐” 외 다수의 뉴스 기사를 참고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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