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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곡수거(曲水渠) 물길의 신비 목록

조회 : 10131 | 2007-05-02


경북 경주시 탑정동에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 사적 제1호인 통일신라시대의 포석정이 있어요. 이 포석정에 있는 물이 흐르는 도랑인 곡수거는 현대 과학으로 풀기 어려운 신라 장인들의 유체과학에 대한 지식이 배어있는 결과물이라고 해요. 그러면 포석정 곡수거의 물길에는 어떤 신비로움이 있을까요?



포석정



포석정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포석정에는 물이 흐르는 도랑인 ‘곡수거(曲水渠)’가 있어요. 그 모양이 전복(鮑)의 껍질처럼 생겨서 포석정(鮑石亭)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데요. 이 곡수거는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헌강왕(875∼885년)이 포석정에 들러 여럿이 술잔을 나누며, 흥겹게 춤추고 즐겼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요.

포석정의 곡수거는 가장 긴 세로축이 10.3m, 가로축이 약 5m, 깊이는 50cm정도 되는 도랑이 있는데 모두 63개의 돌로 조립되어 있어요. 이 곡수거에 포석정 옆 경주 남산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을 끌어들였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지금은 포석정 건물은 없어지고 전복모양의 곡수거 구조만이 남아 있는데 땅바닥의 솟아오름과 꺼짐 등으로 형태가 많이 변형되어 있어요.



포석정 곡수거




포석정은 맑은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적으로 흐르게 만들고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놀이인 유상곡수를 하던 장소였다고 해요.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왕과 신하들은 곡수거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놓고 잔이 자기 자리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석 잔의 벌주를 마셨대요. 옛날에는 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 짓는 일이 정치와 외교를 위한 필수적 덕목이었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기도 했어요. 또한, 포석정은 신라 사람들의 슬픈 자취가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죠.



신라는 9세기에 접어들면서 왕권 쟁탈 싸움과 귀족들의 사치와 타락된 생활로 굶주린 백성들이 도적떼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때는 신라의 북쪽 땅은 고려의 왕건이 차지하고 서쪽 땅은 후백제 견훤이 차지하여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경애왕 927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고려의 왕건에게 도움을 청해 놓고 이곳 포석정에서 술잔치를 베풀다가 견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었어요. 그 후 신라는 10년도 못되어 고려에 항복하고 말았어요. 이렇게 천년동안 찬란했던 신라시대는 이곳 포석정에서 그 막을 내리게 되었어요.


그러나 근래에 와서 포석정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과 주장들이 나오고 있어요. 경애왕의 방탕한 생활의 상징으로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포석정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포석정은 국력이 쇠진해진 신라의 마지막 운명을 부처님과 선조들에게 제사를 모시며, 왕과 신하들이 최후를 보낸 제사 터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경애왕이 후백제의 견훤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당시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적의 공격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왕이 적을 방어하기에 좋은 장소도 아닌 추운 들판에서, 그것도 연회를 베풀어 술을 마시면서 신라의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포석정이 있는 경주 남산은 130여 곳의 절터, 400여개의 불상과 탑들이 들어서있는 ‘신라의 성지’예요. 그래서 남산에는 신라시대 유적이 특히 많이 남아있고 포석정 자체도 바로 이 성지인 남산에 있어요.



경주 남산


이처럼 신라의 혼이 담겨 있는 많은 유적지에 둘러싸여 있는 포석정은 사당과 절, 경주 남산 제단 등 호국제사와 국가 안위를 기원하기 위한 중요시설이 들어있던 성지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어요. 또한, 그 시절에는 팔관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팔관회는 토속신앙과 불교의식이 결합된 것으로 호국제사의 성격을 띠고 있었어요. 이 호국제사는 고려 때까지 이어졌는데 해마다 12월에 개최됐어요. 경애왕이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던 때도 12월이었죠. 따라서 경애왕이 포석정에 놀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호국제사를 행하러 간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어요. 물론 호국제사가 끝난 다음 왕은 포석정에서 제사에 쓴 음식을 신하들과 어울려 조금씩 나눠서 먹었을 거예요. 이 행동이 어쩌면 제3자에게는 술을 먹고 노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겠죠.





포석정 곡수거의 놀라운 유체과학


포석정 곡수거의 물길은 술잔이 벽에 부딪치지 않고 돌아 흐르는 놀라운 과학 기술이 숨어 있어요. 또한 흐르는 물에 술을 즐겼던 유적으로는 동양 유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죠. 현재 남아있는 포석정 곡수거는 돌로 거북을 만들어 놓고 계곡에서 물을 끌어들여 그 거북의 입으로 물이 흘러나와 곡수거를 따라서 흘러가게 하였는데 그 거북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요.



포석정을 설계한 조상들은 이미 천 년 전에 물과 같은 액체가 흐르는 이치에 대한 학문인 유체 과학에 대한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길의 깊이와 폭을 조정함으로써 물의 양과 물이 흐르는 빠르기를 조절하여 물길을 따라 흐르는 잔이 특정지점에서 맴돌이 현상으로 멈춰 서게 하였어요. 그러면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쉽게 잔을 집어 마실 수가 있었죠. 신라시대 조상들이 이와 같은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과학적 고증을 통해 확인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어요.

이처럼 술잔이 특정지점에서 맴돌 수 있었던 것은 유체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에요. 이와 함께 술잔이 흘러갈 때 술잔이 뒤집어지지 않고 술잔의 흐름이 다양한 점 등은 조상들이 유체의 이동에 관해 높은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죠. 또한, 포석정 곡수거는 전반적인 형태가 고리모양을 갖춤으로써 정자 아래서도 물놀이가 가능하도록 한 조상들의 과학성과 실용성이 돋보이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과학 문화유산이랍니다.



곡수의 구조




현대에 와서 포석정 곡수거의 반 정도 크기의 실물을 만든 후 술잔을 띄워 보았더니 술잔이 물을 따라 제대로 흐르지 않고 술잔이 벽과 충돌하여 쉽게 엎질러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포석정 곡수거는 현대과학으로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첨단 과학이 숨 쉬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정말이지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위대했던 것 같아요. 그러한 조상들의 훌륭한 지혜를 친구들이 이어받아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길 바랄게요. ^_^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교사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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