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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캐던 청년, 원자핵의 시대를 열다.


뉴질랜드 시골에서 감자를 캐던 소년은 자라나 현대 물리학의 서곡을 울렸습니다. 원자 모형을 새롭게 만들어 후배 과학자들이 원자핵의 세계에 접근할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닐스 보어와 엔리코 페르미가 핵물리학을 발전시켰고, 인류는 핵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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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10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러더퍼드 by Reserve Bank of New Zealand CC-BY-SA-3.0(Wikimedia commons)


바로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1871~1937년)의 이야기입니다. 1895년 그는 런던 국제박람회 장학생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감자 농사를 짓던 러더퍼드는 장학생으로 선정된 소식을 듣고 “이것이 내가 캐는 마지막 감자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농사를 짓는 일보다 공부하는 일이 훨씬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X선은 ‘전하를 띤 입자’다
러더퍼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다니면서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무선통신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큰 스승을 만났습니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캐번디시연구소 소장이던 조지프 좀 톰슨 교수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러더퍼드는 그와 함께 전자기파 검출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러더퍼드는 3.2km 이상 되는 거리에서 전자기파를 탐지하는 연구로 케임브리지 물리학회에서 강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어 그의 논문은 왕립학회에서 발간하는 연보에도 실립니다. 같은 해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자 러더퍼드는 톰슨과 함께 기체 방전현상을 연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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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가 제시한 원자 모형 by Unknown CC-BY-SA-3.0(Wikimedia commons)

연구 결과 X선으로 기체는 전기가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렇게 얻어진 전도성 기체를 유리 양모나 전기가 흐를 수 있는 물질로 지나가게 하면 사라진다는 사실로부터 X선이 입자로 이뤄져 있음을 밝혔습니다. 그 뒤 1898년 러더퍼드는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톰슨 교수의 추천으로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물리학 연구소장으로 부임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연구환경을 갖춘 캐번디시연구소를 떠나는 일은 아쉬웠지만 안정된 직장 덕분에 3년이나 떨어져 있어야 했던 약혼녀 메리 뉴턴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비웃음을 뒤집고 방사선 붕괴설을 확립하다
맥길대학교로 직장을 옮긴 러더퍼드는 영국인 화학자 프레드릭 소디와 함께 방사능 원소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1902년 초 두 사람은 토륨의 방사성 활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회복되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토륨이 방사선을 내면서 더욱 강한 방사성을 지닌 토륨X로 변환된다는 과감한 가설을 내세웠습니다. 즉, 원소가 방사선을 방출하면서 다른 원소로 변환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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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러더퍼드의 모습 by Unknown CC-BY-4.0(Wikimedia commons)

그리고 방사선 원소들은 일정한 양의 절반이 붕괴되는데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러더퍼드는 그 기간을 ‘반감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 반감기로 지구의 나이가 영국의 물리학자 켈빙 경이 제안한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모든 원소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단위로 다른 원소로 바뀌지 않는다는 ‘돌턴의 원자론’에 익숙해 있던 당대 화학자들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러더퍼드와 소디의 발견은 중세의 연금술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학계에서 모두 비웃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연구를 하는 다른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물질변환이 아니라 주로 방사성 원소가 방출하는 에너지에 대한 측정에 집중했습니다. 그들도 일부는 방사성 원소가 변환된다는 것이 확인되고, 이에 따라 생성되는 많은 방사성 물질이 연구되면서 많은 과학자들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고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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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는 질소를 산소로 바꿔 원자를 변환한 첫 번째 과학자가 되었다.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당시에는 원소를 구분하는 것이 원자량의 차이에 의해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혼란은 1913년 방사성 원소와 그의 주기율 법칙과의 관계를 연구하던 소디가 핵의 전하량은 같지만, 원자량이 서로 다른 소위 '동위 원소'라는 개념을 제기하고, 뒤이어 모즐리가 X선 분광학을 바탕으로 원자번호를 원자량이 아닌 핵의 전하량으로 재정의하면서 점차로 해소되었습니다

알파 입자 산란 실험에서 밝혀진 ‘원자핵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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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의 알파 입자 산란 실험 by Diego Grez CC-BY-SA-3.0(Wikimedia commons)

1907년 러더퍼드는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교수로 돌아와 알파 입자 산란을 주제로 실험에 착수합니다. 2년 뒤 그는 1,000분의 1cm보다 얇은 금박지에 알파 입자를 쏘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이 실험에서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금박지를 투과했지만 일부는 고체에 부딪힌 것처럼 방향이 바뀌어 산란됐고, 극소수는 강하게 튕겨져 나왔습니다. 

튕겨져 나온 알파 입자의 비율은 약 8,000개 중 하나꼴이었습니다. 훗날 러더퍼드는 “휴지를 향해 대포를 발사했는데 대포알이 튕겨져 나온 것 같은 결과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러더퍼드는 알파 입자 산란 실험을 통해 전자가 원자 안에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는 기존의 원자 모형이 틀렸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양전하를 가진 물질로 이뤄진 젤리 같은 구조에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골고루 박혀있는 톰슨의 원자모형이 정설로 믿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더퍼드의 실험은 원자 속에는 알파 입자와 비슷하게 무거운 작은 원자핵이 있어 부딪힐 때는 튕겨 나온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따라서 톰슨의 원자모형은 틀렸고 원자는 무거운 원자핵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처럼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또 원자핵의 크기가 원자의 10만분의 1이라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완성된 전자기학에 따르면 전기를 띤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하면 반드시 전자기파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원자의 외곽을 도는 전자도 전자기파를 방출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전자는 에너지를 모두 방출하고 원자핵으로 떨어져 버려 소멸해야 했습니다. 원자가 소멸한다면 사람과 자연의 모든 물질은 사라져야 했습니다. 러더퍼드의 원자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하아젠베르크, 슈뢰딩거 등이 새로운 이론인 ‘양자론’을 개발합니다. 양자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어서 덩어리로 방출됩니다. 그런데 정상궤도를 도는 전자가 첫 단계에서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런 덩어리보다 훨씬 작습니다. 결국 전자기파의 방출이 정상궤도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전자가 원자핵으로 떨어져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얘깁니다. 

이처럼 핵물리학의 시대를 개척했던 그는 1937년 탈장에 의한 합병증으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보어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과학회의에서 연설 도중 이 소식을 듣고 그의 죽음을 눈물로 전했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시신은 영국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안의 아이작 뉴턴 옆에 묻혔습니다. 

◇참고문헌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2004, 손영운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266~273p.
http://www.kps.or.kr/141017
http://www.etnews.com/20100902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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