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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화도 진화다

퇴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이 들기 쉽습니다. 실제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면 “퇴화하다”는 ‘진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다’로 뜻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퇴화는 정말 이렇게 부정적인 것일까요?

 

멍게는 거북손과 사람 중 누구와 더 가까울까?

멍게

척삭을 지닌 멍게

 

 

멍게는 실물로 한번쯤은 보셨지요? 멍게는 언뜻 보면 거북손과 비슷한 갑각류일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요, 보기와는 다르게 척삭동물입니다. 척삭동물은 일반적으로 발생 초기에 척삭을 지니고 있다가 척추로 바뀌는 동물을 칭하며, 크게 보아 척추동물에 속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멍게와 거북손은 동물 분류에서 다음과 같이 전혀 다르게 분류됩니다.

 

게 : 척삭동물 > 해초(강)
거북손 : 절지동물 > 갑각류

 

그럼, 좀 더 척삭동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물을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로 나누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동물계(animal kingdom)에는 총 38개의 문(phylum)이 있는데 척추동물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척삭동물문이라 하지요. 이들 문에 속하는 동물들은 모두 엄마 뱃속에서 발생하는 과정에서 척삭이라는 척추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일부는 척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척추가 생기고 그 안의 척수가 자리 잡는 척추동물이 됩니다. 또 다른 일부는 일생동안 척삭을 가지고 척추는 생기지 않는 척삭동물입니다. 척추동물로는 아래턱이 없는 무악어류, 뼈가 연골인 연골어류, 육기어강과 조기어강의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가 해당합니다.

 

어찌 되었건 멍게도 척삭동물이니 동물계 전체로 놓고 보면 척추를 가진 동물과 가장 가까운 사이죠. 그래서인지 어린 유생일 때에는 물고기 어린 모양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렇게 바다를 흘러 다니다가 알맞은 곳이 나오면 자리를 잡고 눌러앉게 됩니다. 움직임이 없고 겉은 딱딱한 껍데기로 쌓이죠. 이제 멍게의 남은 삶에는 바닷물을 걸러 플랑크톤을 먹고 번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눈도 뇌도 필요가 없지요. 오히려 그걸 분해해서 살림살이에 보탭니다. 즉 스스로 눈과 뇌를 소화해 버리고 마는 것이죠.

 

거북손

거북손 by Daiju Azuma CC BY-SA 2.5 (Wikimedia)

 

 

그래서 멍게는 겉으로 보기에 거북손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퇴화라 하고 진화의 반대 개념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개체가 자기에게 필요 없는 기관을 없애거나 줄이는 퇴화는 그 자체로 진화입니다. 멍게의 조상 중에서는 부착 생활 중에도 눈이나 뇌를 유지하는 개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착 생활을 하는 데 눈이 뭔 필요가 있겠습니까? 눈과 뇌를 유지하는 에너지만큼 번식에 쓸 에너지가 부족해집니다. 따라서 이런 조상 멍게들은 눈과 뇌를 버린 조상에 비해 번식률이 낮아졌지요.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자 눈을 가진 조상 멍게는 그렇지 않은 멍게에 비해 종내 비율이 상당히 줄어들고 맙니다. 종내 비율이 줄어들다 보면 짝짓기를 하기도 쉽지 않게 되고, 그러면 짝짓기의 비율이 다시 줄어듭니다. 그래서 점점 줄어들다 멸종해버린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도도하게 걷던 도도새와 천적이 없는 삶

 

마찬가지의 일이 태평양의 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새들입니다. 어떤 연유로 외따로 떨어진 태평양의 섬에 살게 된 새들…. 태풍에 등 떠밀려 왔을 수도 있고, 먹이를 찾아 대양을 떠다니다 모처럼 괜찮은 휴식처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며 살았겠지요. 그런데, 섬에도 의외로 먹잇감이 많습니다. 벌레도 있고, 작은 쥐도 있고, 맛난 과일도 있습니다. 굳이 힘들게 바다까지 날아가서 물고기를 잡을 필요가 없었지요. 물론 그래도 남아 있는 본능과 식성으로 굳이 물고기를 잡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자연은 냉정합니다. 물고기를 잡으면서 자기 체력을 소진하는 대신 쉬운 먹이를 먹고 남는 힘으로 번식에 힘쓰는 얍삽한 녀석들이 더 많은 알을 낳고 번성합니다. 물론 섬이 작으면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섬엔 먹이가 제한되어 있으니 새들이 조금만 많아져도 먹이가 거덜나고, 다시 물고기를 잡아먹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섬이 뉴질랜드 정도로 규모가 있으면 해안가 주변으로는 여전히 물고기를 잡아먹는 녀석들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내륙 지역에서는 육지의 먹이를 구하는 새들이 득세합니다.

 

도도새

옥스퍼드대학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도도새의 골격과 모델 by BazzaDaRambler @Wikimedia (CC BY 2.0)

 

 

그런데 이런 섬에는 새를 잡아먹을 포식자가 없습니다. 보통 새를 잡아먹는 포식자는 포유류 식육목에 속하는 고양잇과나 갯과 동물들이 대부분이고 그 외 뱀이나 다른 덩치 큰 새 정도이죠. 그러나 포유류나 뱀은 태평양 한가운데의 외딴섬으로 올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매나 독수리 부엉이 같은 새들도 그렇게 멀리 날진 못합니다. 자연히 섬에는 새를 먹이로 삼을만한 녀석이 없습니다. 그러니 도망칠 필요도 없죠. 도망치지 않다 보니 날개가 별 필요가 없습니다. 몸에 비해 날개가 작아지고 그 부근의 근육이 줄어들어 날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들 도도나 키위 같은 새들을 날지 ‘못하는’ 새들이라 묘사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날지 ‘않는’ 새들입니다. 난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한 일이죠. 날 때 새들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같은 무게의 포유동물이 뛸 때 소비하는 에너지의 몇 배나 듭니다. 또 새의 근육 중 가장 많은 부분이 날개와 그를 받치는 몸통 부분에 있습니다. 이를 유지하던 새의 조상은 날개 대신 다리 근육을 강화한 새의 조상과의 경쟁에서 패배합니다. 점점 날지 않도록 진화된 새들의 번식률이 높아지죠. 결국, 섬에는 날지 ‘않는’ 새들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동굴의 삶 – 눈을 버리다

 

도롱뇽

텍사스 동굴 도롱뇽. 눈이 있던 자리가 모두 살갗으로 덮여버렸다. 피부 또한 별도의 보호색을 가지지 않고 투명에 가깝게 변했다. 이런 형태 적응을 troglomorphism 이라 한다. (Public Domain@Wikipedia)

 

 

동굴에는 또 다른 퇴화가 있습니다.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덩치 큰 동물들은 없습니다. 생태계가 워낙 빈약하여 이들을 먹여 살릴만한 먹잇감이 없는 것이죠. 일단 빛이 없으니 광합성 하는 생물들이 없고, 그러다 보니 먹이가 귀합니다. 그러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면 지네며 놀래기, 물이 있으면 수생곤충이나 여타 벌레들이 꽤나 여러 종류 삽니다. 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이면 생태계는 더욱 풍성해지지요. 박쥐의 배설물이 먹이가 드문 동굴에 일종의 성찬이 되는 셈….

 

동굴에 사는 대부분의 동물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눈이 없고 둘째는 피부가 투명하다는 점이죠. 눈은 에너지를 많이 먹는 감각기관입니다. 우리 몸에서 단위 질량 당 에너지 소비로는 뇌 다음으로 많은 곳이죠.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 이런 고비용 기관을 달고 다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눈은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다른 먹이를 사냥하거나, 천적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꼭 필요한 기관이죠.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생존에 유리하고, 당연히 번식에도 유리합니다. 그러나 동굴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먹는 쪽이든 먹히는 쪽이든 온통 깜깜하니 당최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다고 바로 눈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동굴에 사는 동안 이들에게서도 다양한 변이가 생깁니다. 그중 어떤 변이는 눈이 나빠지는 것이고 또 다르게 눈이 조금 더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눈이 더 좋아지면 유리할 것 같지만 더 좋은 눈은 에너지도 더 많이 듭니다.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신의 생존율과 번식률이 적당히 맞물리는 지점에서 눈은 타협합니다. 어찌 되었건 눈이 나빠지는 변이는 원래 불리한 것이지만 동굴이라면 다릅니다. 이들은 눈이 좋은 녀석들과 동등한 관계가 됩니다. 아니 조금 유리해지죠. 나쁜 눈은 에너지를 덜 소비하여, 그만큼 유리해지는 겁니다. 뭐, 유리한 정도가 눈곱만큼이라도 유리한 것은 유리한 것!

 

수십 세대가 지나면 이런 녀석의 후손들이 다른 녀석들보다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변이를 일으킵니다. 일부는 더 좋아지고 일부는 더 나빠지죠. 동굴에서는 이때도 눈이 나쁜 쪽이 유리합니다. 이렇게 몇백, 몇천 세대를 지나면서 그 기능이 떨어지는 만큼 눈은 감각기관으로서의 모습도 덜 갖추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서 동굴 동물들은 눈이 사라집니다. 물론 해부학적으로 보면 눈과 연결된 신경이라든가 수정체의 모양 등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는 하죠. 이를 흔적기관이라고 합니다. 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동물들은 천적을 피하고 먹잇감이 알아차리기 힘들도록 자기가 주로 서식하는 곳과 비슷한 색깔과 모양의 표피를 가집니다. 그러나 동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죠. 표피에 들이는 정성을 먹이를 찾고 번식을 하는 데 쓰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리하여 점점 피부에서도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들은 점차 하지 않게 되고 결국 투명한 피부가 대세가 됩니다.

 

이렇게 외딴섬, 동굴과 같이 주어진 특수한 환경에 맞추기 위하여 자신의 기관을 퇴화시킨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퇴화는 또 다른 진화입니다.

 

 

 

 

 

[이미지 참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ollicipes_mitella.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Oxford_Dodo_display.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exas_blind_salamand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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