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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서 자기장이 사라진다면?

비둘기떼 길 잃고 전력시스템 마비
도시하늘을 날아다니던 수천마리의 비둘기떼가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벽이나 창문, 또는 차창에 부딪친 후 피투성이가 돼 떨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심장박동기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아 이내 죽고 만다. 차량의 전자장치가 모두 먹통이 된 탓에 시내 한복판에서는 차량들의 충돌이 잇따르고, 강한 자외선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녹아내리고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이 벼락을 맞아 무너진다.

최근 개봉된 영화 ‘코어’의 한장면이다. 무엇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런 아비규환이 됐을까. 영화에서는 지구의 자기장이 사라진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벌어진 끔찍한 상황이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혹시 현재 영화 속의 가상현실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둘기나 바다가재와 같은 동물은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먼 거리를 이동한다. 만일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SF영화는 흥미를 자아내기 위한 과장과 비약으로 인해 곳곳에 과학적 오류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여전히 그렇게 엉터리는 아닌 과학이 숨어있다. 영화 코어에서알 수 있듯이 우리가 평소에 존재조차 느낄 수 없는 자기장은 지구에 사는 인간의 생활에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바다가재도 자기감각 지녀
지구 자기장은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초등학교 때 막대자석 주위에 존재하는 자기장을 살펴보기 위해 종이와 철가루를 갖고 하던 실험을 기억하는가. 막대자석 위에 종이를 놓고 다시 종이 위에 철가루를 뿌리면 막대자석이 만들어낸 자기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지구 자기장은 이 모습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지구 바깥 수천km까지 펼쳐져 있다.

나침반의 자침으로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지구 자기장. 영화 코어에서처럼 자기장이 사라진다고 비둘기떼가 방향을 잃고 아무데나 부딪쳐 죽게 될까. 영화 속의 비둘기 떼죽음은 다소 과장돼 있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귀소본능이 강한 비둘기는 자기감각을 갖고 있다. 1979년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둘기의 경우 머리뼈와 뇌의 경막 사이에 자석과 같은 물질이 존재해 지구 자기장을 따라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증명하듯이 비둘기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몸에 자석을 붙였을 때 원래의 목적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지구 자기장은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물이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예를 들어 철새가 자기력선의 방향인 남북 방향으로 많이 이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울러 2001년 11월 영국의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지빠귀 나이팅게일이라는 철새도 생체에 갖고 있는 ‘자기장 지도’ 덕분에 북유럽의 스웨덴에서 출발, 1천5백km에 달하는 사하라사막을 건너 아프리카 중남부까지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2003년 1월 초에는 카리브해에 사는 바다가재가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수십km를 이동해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네이처’에 실렸다. 또한 꿀벌의 경우에도 지구 자기장에 반응해 자기장의 변화가 있을 때 그들이 날아가는 비행 양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따라서 자기장이 없어진다면 수많은 생명체의 생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핵의 자전 멈춘다는 설정의 허와 실
지구 자기장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지구 자기장의 분포를 막대자석의 자기장으로 근사해보면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지구 중심에 막대자석과 같은 물질이 있어서 자기장을 만드는 것일까. 이 가설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지구 내부의 높은 온도가 문제다. 만약 지구 중심에 자석이 있다면 지구 내부의 높은 온도를 견뎌야 하는데, 높은 온도에서 물질은 자성을 가질 수 없다. 둘째 단순한 막대자석을 가정했을 때 예상되는 자기장이 실제 자기장과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지구 자기장은 매우 복잡하다.


멈춘 지구의 핵을 다시 회전시키기 위해 지구 내부로 들어가는 영화 코어의 장면. 외핵이 자전하면서 지구 자기장이 생성된다는 다이나모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지구 자기장을 설명하기 위해 제기된 가설이 바로 다이나모 이론이다. 다이나모는 말 그대로 발전기다. 발전기처럼 자기장 속에서 도체가 움직이면 전류가 발생한다. 흥미롭게도 발생한 전류에 의해 다시 자기장이 생긴다. 지구에서 발전기 역할을 하는 부분은 바로 외핵이다. 지구의 외핵은 전도성이 큰 철과 니켈로 이뤄진 유체이기 때문에 핵 내부의 위아래 온도와 밀도 차이에 의한 대류운동 등으로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유체 운동으로 외핵 물질이 이동하면 원래 있던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유도전류가 형성되고, 이 전류가 다시 자기장을 만든다.

이를 통해 지구의 회전축을 따라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내용이 다이나모 이론이다. 결국 다이나모 이론을 간단히 말하면 전도성이 크고 유체 상태인 외핵이 자전하면서 지구 자기장이 생성된다는 내용이다. 영화 코어에서 지구의 핵(코어)이 자전을 멈추면서 자기장이 사라지고 갑작스런 재난이 닥친다는 설정은 다이나모 이론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지구 자기장을 다이나모 이론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구 자기장이 오랜 기간 계속 유지돼 왔다는 것이다. 만일 다이나모 이론에서처럼 자기장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지구에 한번 생겼던 자기장은 2만년 후면 확산돼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지구 핵의 자전이 멈춘다면 자기장은 어떻게 될까.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긴 하겠지만, 영화에서처럼 짧은 시간 안에 드라마틱하게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생성된 자기장이 소멸할 때까지는 최소한 수천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 지키는 또다른 방패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는 무엇일까. 아마도 생명체에 꼭 필요한 원소와 수증기가 포함된 공기, 물, 태양복사, 적정한 온도 등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지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권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아마겟돈’에 나온 커다란 소행성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수억t씩 지구로 떨어지는 우주먼지를 태워 버리고, 생명체의 성장과 진화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자외선을 흡수해주는 오존층을 포함하며, 생명체의 광합성과 호흡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나온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 표면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지구 자기력선을 따라 극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상층대기와 충돌할 때 오로라가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구성요소가 있다. 바로 지구 자기장이다. 지구 자기장은 우주 밖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로부터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보호해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 극지방 근처에 아름다운 장관을 선사하는 오로라다. 오로라는 지구 표면으로 들어오지 못한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 자기력선을 따라 극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상층대기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빛이기 때문이다.

영화 코어에서처럼 자기장이 없어진다면, 지구의 생명체나 시설은 태양으로부터 나온 고에너지 입자에 노출될 것이다. 만일 이런 고에너지 입자가 인체에 닿아 체세포에 들어가면 염색체 이상이나 나아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인체에 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기기는 에너지가 강한 입자의 피폭을 받아 작동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다. 물론 영화 ‘프리퀀시’에서처럼 오로라가 빛나던 날 태양에서 나온 고에너지 입자에 무선통신장비가 영향을 받아 과거와 현재의 주파수가 맞는 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자기장이 이런 고에너지 입자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패는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자기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지구에 들어온 고에너지 입자는 어느 정도 대기권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고에너지 입자 피폭받는 우주환경
지구의 자기장만 없어도 닥치게 될 재앙을 생각해보는 것은 곧 우주공간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실마리가 된다.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태양활동과 지구 자기장, 그리고 상층대기 사이의 상호작용을 ‘우주날씨’(우주천기, space weather)라고 한다. 즉 우주날씨란 우주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인 날씨가 때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고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앗아가듯이 우주날씨도 때로는 아주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


태양풍과 지구 자기장의 상상도. 지구 자기장의 모양은 태양풍이 지구 자기력선을 밀어냈기 때문에 비대칭이다.

우주날씨는 태양의 변화가 주된 요인이다. 태양에서 코로나 물질 방출이나 플레어와 같은 폭발 현상이 나타나면 수십-수백억t의 물질이 초속 4백-1천km의 속도로 분출되고 며칠 후 수많은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에 도착한다. 이에 따라 지구 자기장이 단기간에 변화하는데, 자기장의 변화가 극심한 경우 유도전류가 발생해 지상의 통신시설과 전력시스템에 피해를 일으킨다. 실제로 1989년 3월 13일 5백만 주민이 사는 캐나다의 퀘벡 지방에서는 변압기가 타버리는 등 전력시스템이 마비돼 9시간 동안 정전됐고 2주 동안 통신두절 현상이 기록됐다. 만약 갑자기 지구 자기장이 사라진다면 전지구적으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에서 오는 고에너지 입자는 우주공간에 있는 우주인이나 위성, 또는 위성 탑재물에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화성 탐사를 그렸던 SF영화 ‘레드 플래닛’을 보면, 태양 플레어에서 나온 고에너지 입자가 탐사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그럴듯한 장면이 나온다. 실제 지구 궤도에서도 1989년 3월 많은 수의 인공위성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탑재체가 고장났음이 보고됐다. 또한 같은해 8월 지구 자기권을 탐사하던 위성 GOES 5·6·7이 고장나고 지상의 위성통신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국방위성과 민간위성의 경우 고장이나 작동 불능 상태를 기밀로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피해 위성의 수는 집계된 수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지금은 자기북극과 남극이 역전중?
태양에서 쉴새 없이 날아오는 고에너지 대전입자의 흐름, 즉 태양풍은 지구 주변의 자기력선 형태도 변화시킨다. 현재 지구 자기장의 모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 방향과 그 반대 방향이 서로 다른 비대칭이다. 원래 대칭이던 지구 자기력선을 태양풍이 밀어냈기 때문이다. 또 태양풍이나 코로나 물질 방출은 지구 자기장을 변화시켜 지자기북극(자북)의 위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즉 자북이 한 위치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자북의 표준점에 대해 불규칙한 타원 모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만약 나침반을 갖고 자북에 간다면, 하루 동안에도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며 움직이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자북과 자남이 뒤바뀌는 지자기 역전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컴퓨터 배경화면. 지자기 역전은 평균 25만년에 한번씩 일어났는데, 75만년 전을 끝으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이하게도 지자기의 북극과 남극이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현재 자북은 캐나다 북쪽의 엘리프 링스 섬에 있지만, 지자기의 남극(자남)은 자북의 정확한 반대편이 아닌 태즈메이니아 정남쪽 3천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기장 극지점의 위치를 관측해 왔는데, 이 극지점이 계속 변화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1831년 발견한 자북에 비해 오늘날의 자북은 북서쪽으로 약 1천km 떨어져 있다. 자북이 1년에 약 15km씩 이동한 셈이다. 이는 태양풍에 의한 단기간의 변화보다 지구 내부에 원인이 있는 장기간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 이후 자북의 이동자료를 살펴보면 이동속도가 1년에 약 40km 정도로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비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가속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50년 후에 자북은 캐나다에서 시베리아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자기장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일까.





몇몇 과학자들은 지구 자기장과 관련된 일련의 관측 결과가 지자기의 북극과 남극이 바뀌는 현상인 ‘지자기 역전’의 조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자기가 역전된다는 것은 극성의 세기가 점차로 줄어 반대 극성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영국 지질조사팀의 데이비드 케리지 박사는 지구 자기장의 세기가 1백년에 5% 정도 감소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자기장 세기의 이런 감소는 곧 지자기 역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라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의 이야기가 미래에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것일까.

고지자기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 25만년에 한번씩 지자기의 역전이 일어났다. 그러나 75만년 전에 지자기 역전이 일어난 이후 현재까지 지구의 자기장은 역전 현상을 겪지 않았다. 즉 이미 겪었어야 할 지자기 역전의 조짐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자기 역전은 수천년에 걸쳐 일어났고, 아직까지는 과거의 지자기 역전이 지구상의 생명체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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