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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스 동물 바이러스 돌연변이가 원인


연일 신문방송을 가득 채우던 이라크 전쟁 보도가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쟁터 반대편에서 폭탄보다 무서운 질병이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떤 병인지 몰라 그냥 괴질로 불리다가 곧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을 뜻하는 사스(SARS)란 이름을 얻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이래 4월 22일까지 전세계 27개 국가에서 3천9백47명의 사스 환자가 발생했으며 사망자는 2백29명에 달했다. 21세기 최초의 전지구적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는 사스. 과연 무엇이 사스를 불러왔을까.




사스의 주범 코로나바이러스
WHO는 3월 12일 전세계에 사스 경계령을 선포하고 소속 과학자들을 동원해 사스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를 시작했다. 마침내 WHO는 4월 16일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가 사스의 발병 원인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에게서 가벼운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로 바이러스 표면에 해무리(corona)처럼 돌기들이 나와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보통 감기의 3분의 1이 이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난다. WHO는 이 바이러스를 ‘사스바이러스’로 공식 명명하면서 베트남 하노이에 사스환자가 발생했음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WHO 소속 과학자인 카를로 우르바니 박사에게 이 발견을 헌정했다. WHO 사스 연구그룹은 애당초 사스바이러스를 ‘우르바니 사스 연관 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였다. 우르바니 박사는 3월 29일 태국 방콕에서 사망했다.


홍콩대 과학자들이 사스 환자의 조직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처음 찾아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서도 발견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를 기준으로 개, 고양이, 돼지가 속하는 1군, 소와 쥐가 속하는 2군, 조류의 3군으로 나뉜다. 사람에게는 감기 정도로 그치지만 동물에게 번지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매우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1군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돼지 유행성 설사병의 경우 국내에서 2001년 45건이 발생해 4천8백11마리가 폐사했고 지난해에는 48건(1만3천9백24마리 폐사), 올들어 2월까지 38건(1만2천2백57마리 폐사)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스의 발병 이래 WHO는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와 함께 전세계 10개국 13개 연구소의 과학자들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스의 정체를 밝히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클라우스 스퇴흐르 박사는 매일 인터넷을 통해 사스 연구그룹에 속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회의를 주재했다. 사스의 주범이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주장도 연구그룹에 속한 홍콩대 과학자들에 의해 3월 21일 처음 제기됐고 곧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정보가 제공됐다. 곧이어 CDC의 줄리 거버딩 소장도 사스환자의 조직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검출했으며 이 바이러스가 회복기 환자의 혈청에서는 항체 때문에 느리게 자란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어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연구팀이 사스환자에서 검출한 코로나바이러스를 원숭이에게 감염시켜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연구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돼지 매개로 유전자재조합 가능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면서 악성바이러스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에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류나 돼지를 숙주로 하는 독감바이러스와 원숭이에서 유래한 에이즈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가 큰 피해를 입힌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 가운데 2천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독감을 비롯해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 1977년 러시아독감, 1997년 홍콩의 조류독감은 큰 피해를 냈다. 과학자들은 이들 악성독감이 조류에서 유행하는 독감바이러스가 사람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에게 유전자를 전달함으로써 유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1918년의 스페인독감은 조류의 독감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돼 일어났으며, 이렇게 생성된 인간 독감바이러스에 다른 조류 독감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계속 유입되면서 1957년의 아시아독감, 1968년의 홍콩독감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WHO 산하 사스 연구그룹이 4월 16일 제네바에 모여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를 유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스 연구그룹은 10개국 13개 연구소로 구성됐다

이러한 유전자재조합에서 돼지가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62쪽 그림 2).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조류 독감바이러스가 1979년 돼지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인간 독감바이러스도 1968년 돼지에게 전이됐다. 돼지가 새로운 숙주가 되면서 두 종류의 독감바이러스가 돼지 개체군 내에서 유전자재조합을 거치게 됐으며, 그 결과 1985년에서 1989년 사이에 인간과 조류의 독감바이러스 유전자가 결합된 새로운 독감바이러스가 돼지에서 나타났다.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이제까지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어쨌거나 독감바이러스가 조류와 인간, 돼지를 넘나들면서 확대재생산됐다는 사실은 명백해보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현재 인간의 독감바이러스만 추적하고 있는 WHO의 전염병 관리방침을 동물 바이러스 감시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이즈바이러스 역시 아프리카 야생 원숭이를 숙주로 하던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2001년 12월에서 2002년 3월까지 가봉에서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바이러스도 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과학자들은 원숭이나 고릴라와 같은 영장류를 사냥하면서 감염된 사체를 다루거나 또는 그 고기를 먹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 하나 교체해 숙주 바꿀 수 있어
사스가 동물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는 실험실에서 간단한 조작을 통해 바이러스의 숙주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근 네델란드 유트레히트대 페터 로티에 박사는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하나를 바꿔치기해 쥐에게 감염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고 ‘바이러스학 저널’에 발표했다. 로티에 박사는 쥐에게서 발견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 하나를 고양이 바이러스에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이 유전자는 숙주세포를 인지하는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티에 박사 연구팀은 같은 방법으로 2000년에는 쥐의 코로나바이러스를 유전자 조작해 고양이에게 감염시키는 데도 성공한 바 있다.

홍콩에서는 아모이가든이라는 아파트에서 3백명이 넘는 사스환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환자들은 다른 곳에서 발병한 사스환자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스는 일반적으로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비해 아모이가든의 환자들은 심한 설사와 같이 장에 감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다른 환자에게 잘 듣던 약들이 소용이 없는 등 증세가 더 심각했다.





사람에게 기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와 같이 주로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동물 코로나바이러스에는 호흡기뿐 아니라 간, 대장 등에도 감염되는 종류가 있다. 돼지에게 치명적인 유행성 설사병 코로나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심해 다른 기관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한 예로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한 소의 코로나바이러스는 보통 장에 감염되는데, 약간의 유전자 변형을 거치면서 심각한 호흡기 이상을 초래했다. 1980년대에는 돼지의 코로나바이러스가 갑자기 돌연변이를 거쳐 호흡기에 감염되기도 했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네덜란드 연구팀이 한 것처럼 바이러스 표면의 외피 단백질이 변하면서 일어난다. 스페인 국립생명공학센터의 루이 엔후아네스 박사팀은 돼지에게 가벼운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 유전자를 바꿈으로써 대장에 감염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 이런 사실들에서 사스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거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다른 실험 증거는 바이러스칩을 통해 얻어졌다. 미 CDC는 사스환자의 조직 샘플을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조 드리시 박사에게 보냈다. 드리시 박사는 유리기판 위에 1천종의 바이러스 유전자 조각을 심은 바이러스칩을 개발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될 때 이 칩과 반응시키면 유전자가 비슷한 곳에서는 결합반응이 일어나는데, 결합 여부는 함께 부착돼 있는 형광물질이 빛을 냄으로써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CDC가 보내온 조직 샘플을 이 바이러스칩과 반응시킨 결과 조류의 기관지염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소의 코로나바이러스와 결합반응이 일어났다. 드리시 박사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 사이에 유전자재조합이 일어나 새로운 사스바이러스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게놈 분석이 정체규명 시발점
WHO는 사스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했다고 공식발표하면서도, 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온 것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정확한 경로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좀더 정확한 감염경로는 게놈분석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최근 여러 연구팀에 의해 사스바이러스의 게놈 염기서열이 해독돼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사스바이러스에 대한 게놈 분석은 독일 열대의학연구소가 처음으로 실시했다. 연구팀은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유전자 증폭이 가능한 특정 유전자 부위에 대한 염기서열 해독을 실시했다.

미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연구원이 사스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하고 있다

해독 결과는 독일 생명공학기업인 아르투스사에 제공돼 사스 감염키트를 개발하는데 활용됐다. 이 키트는 사스 의심환자에서 검출한 바이러스 유전자를 증폭시켜 사스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사스바이러스의 전체 게놈 해독작업도 이뤄졌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암연구소의 마르코 마라 박사 연구팀은 4월 12일, 미 CDC 연구팀은 14일 사스바이러스의 전체 게놈 염기서열을 해독했다. 두 연구팀은 각각 서로 다른 곳에서 사스에 감염된 환자로부터 분리한 코로나바이러스를 분석했지만 두 바이러스의 염기 차이는 15개에 불과했다. 이는 사스가 동일한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됐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게놈은 일반적으로 2만9천에서 3만1천개 정도의 염기로 구성돼 있다. CDC 연구팀이 분석한 사스바이러스의 게놈은 모두 2만9천27개의 염기로 구성돼 있었다. 게놈 분석 결과 사스바이러스는 쥐의 간염바이러스와 칠면조의 기관지염 바이러스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서 일부 유전자를 분석해 만든 유전자 계통연구와 일치하는 것이다.






게놈 분석은 환자에서 검출한 바이러스를 세포 배양용 원숭이 콩팥세포에 넣어 수를 늘린 후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앞으로는 환자의 조직세포에서 키운 바이러스를 직접 분석함으로써 바이러스의 감염경로와 돌연변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스의 피해는 한동안 중국 광둥성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광둥성 광저우에서 사스환자를 치료하던 중국인 의사가 홍콩의 한 호텔에 머물면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돼갔다. 2차 감염자들 가운데 일부가 항공편을 이용해 다른 나라로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홍콩을 넘어 싱가포르, 베트남에서 멀리 미국, 캐나다, 유럽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까지 번져갔다.

국내에서는 4월 23일까지 7명이 사스환자로 의심돼 입원 조사를 받았으며 그 가운데 5명은 중세가 사라져 퇴원했다. 인천공학의 검역관 한명을 제외하곤 모두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사스에 대한 공포가 일기 시작했다. 그 전에 국립보건원은 PCR 검사에서 양성을 보인 환자에 대해서 사스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스환자가 아니라는 발표를 했다. WHO도 PCR 검사법이 사스환자 여부를 확증하는데 사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사스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단 한가지 검사에서 양성을 보였다면 예방 차원에서도 방역당국의 보호 하에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늘의 힘이든, 방역당국의 노력이든 사스가 한반도를 비켜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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