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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을 조작하는 자연의 나노기술 광결정


중남미의 열대림. 대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밀림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나비 가운데 색깔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는 몰포나비가 살고 있다. ‘몰포’(Morpho)는 그리스어로 ‘반사된다’는 뜻이다. 몰포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어두운 숲속에서 파란색 조각이 반짝거린다.

충북대 농생물학과 조수원 교수는 “나비의 날개짓은 이동수단인 동시에 짝을 유혹하는 고도의 동작”이라며 “이때 날개의 색채가 화려하고 선명할수록 짝짓기의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색채의 마술사인 샤갈이나 마티스도 흉내 못낼 이 빛깔의 비밀은 무엇일까.




몰포나비 날개의 아름다운 파란색은 색소가 아니라 날개표면의 독특한 형태인 광구조 때문이다. 실제 나비의 색은 광구조가 없는 몸통에서 보듯이 거무튀튀하다.
색소 없이도 화려한 색 만들어
“몰포 나비의 날개에는 파란색소가 전혀 없어요. 다만 날개의 표면구조가 독특해 파란색 파장의 빛만을 반사함으로써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인하대 물리학과 황보창권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나비의 색은 독특한 표면구조가 붙어있지 않은 몸통이나 날개 가장자리에서 보듯이 거무튀튀하다. 이처럼 색소가 없이 색깔이 발생하는 경우를 ‘구조색’(structual color)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표면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날개표면의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마치 기와를 얹은 것처럼 규칙적인 배열이 나타난다. 여기에 빛이 비추면 특정 파장의 빛만 반사되고 나머지는 통과한다.

이런 기하학적 형태를 광구조(photonic structure)라고 부른다. 광구조는 특정한 파장의 빛만을 반사시키고 나머지는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몰포나비의 광구조는 파란빛만을 반사시키게 설계된 셈이다.





몰포나비 외에도 자연계에는 광구조를 갖고 있는 생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짝이는 녹색 겉날개가 아름다운 비단벌레같은 딱정벌레류나 유리새 같은 몇몇 새의 깃털에서도 발견된다. 열대림에는 푸른색 잎이 난 양치류 식물을 볼 수 있는데 이 색도 잎의 광구조 때문이다. 광물에서도 이런 구조를 볼 수 있다. 무지개빛으로 현란한 보석 오팔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작은 구슬이 일렬로 배치돼 있는 광구조임을 알 수 있다. 오팔의 경우 이런 규칙적인 배치가 3차원으로 펼쳐져 있는데, 이 형태가 마치 결정과 비슷해 광결정(photonic crystal)이라고 부른다.

3차원의 광구조, 즉 광결정은 생물체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리데스’라는 나비의 날개표면이 바로 광결정 구조를 보이고 있었는데, 이 구조가 있는 부분은 녹색으로 보인다. 영국 엑세터대 물리학과 페테 불쿠식 교수는 “광결정은 단순히 박막층이 겹쳐진 광구조보다 빛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양치류 식물인 셀라기넬라는 잎의 표면이 다층구조로 돼 있어 푸른색을 띤다.

지난 2001년에는 해양생물에서 광결정 섬유가 처음으로 발견돼 주목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해안에도 살고있는 고슴도치 갯지렁이가 그 주인공. 원시 갯지렁이류에 속하는 이 동물은 등쪽이 고슴도치처럼 가시로 덮여있다. 그런데 이 가시가 매우 아름다운 무지개빛을 내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앤드류 파커 교수팀은 이 가시가 정교한 광결정 구조를 띄고 있을 뿐 아니라 섬유의 형태로 배열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물의 광구조 연구가인 파커 교수는 “이 무지개색의 생물학적 기능은 아직 모르지만, 아마도 서로를 알아보거나 짝짓기하는데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생명체들은 언제부터 이처럼 화려한 광구조를 지니게 됐을까. 파커 교수는 약 5억년 전 있었던 캄브리아 대폭발에 광구조가 관여돼있다고 설명한다. 캄브리아기에 갑작스럽게 생물종이 폭발적으로 출현해 이름붙인 ‘캄브리아 대폭발’은 바다속에 살던 생물체가 육지로 올라오던 시기와 일치한다.







5천만년 전 딱정벌레 화석에도 존재
이때 연안이나 뭍으로 올라온 생물체의 생존과 진화에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빛을 잘 다루는 구조를 가진 생물체들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실제로 5억1천5백만년 전의 화석에서 빛의 회절을 유발하는 회절격자 구조가 발견되기도 했다.

파커 교수는 2003년 7월자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5천만년 전인 시신세의 이판암에서 발견된 딱정벌레의 화석이 광구조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메셀에서 발굴된 이 암석에 박혀있는 딱정벌레 겉날개 화석은 5천만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려한 파란색을 띄고 있다. 전자현미경을 보면 다섯겹의 박막구조가 뚜렷이 드러난다.



파리데스나비의 날개 가운데 녹색부분은 광결정으로 인한 색이다.

이 박막구조는 파란색빛을 최대 63%까지 반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커 교수는 “이 화석의 겉날개의 구성성분은 현재의 딱정벌레의 것과 비슷하다”며 “이는 광구조가 오랜 세월동안 보존돼 왔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광결정, 광회로 개발의 열쇠
그런데 ‘자연의 기발한 발명품’으로만 여겨졌던 광구조, 특히 광결정이 최근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재다능하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빛을 길들이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빛은 1초에 30만km, 즉 지구를 일곱바퀴반이나 도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따라서 광통신처럼 먼 곳에 정보를 전달할 때는 제격이지만 반도체칩처럼 손톱만한 크기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회로망에서 돌아다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빛보다 느리지만 말을 잘 듣는 전자가 여전히 반도체의 주역인 이유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자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적도를 높이려고 칩의 크기를 줄이다보니 덩치 큰 전자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 몸을 부딪쳐 정보전달에 실수를 연발하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이용희 교수는 “빛은 전자에 비해 정보처리의 양과 속도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다”며 “만일 빛의 발생과 전달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광집적회로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현재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광컴퓨터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바로 광결정이 이 일을 실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적인 광결정은 특정 파장의 빛을 1백% 반사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광결정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그 빛을 발생시키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가둘 수 있다. 이 공간에 여러 갈래의 길을 내면 빛이 그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광집적회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미국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엘리 야블로노비치는 1991년 세계 최초로 광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2년에는 과학자들이 광결정에 통로를 만들어 빛이 꺾이며 이동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광결정 연구가 한창이다. 이용희 교수팀은 광결정에서 작동하는 레이저를 만들어 동작시키는데 성공했다. 광결정 내부에 공간을 만든 뒤 1백% 반사되는 특정 파장의 빛을 넣어주면 사방벽에 부딪쳐 끊임없이 반사하면서 같은 파장의 빛을 계속 생성한다. 이렇게 얻어진 빛을 결정의 한쪽으로 유도해 내보내면 레이저가 된다. 한편 벌집같은 구조의 관의 가운데로 빛이 고스란히 이동하는 광결정 섬유 연구도 한창이다.

해양동물인 고슴도치 갯지렁이 가시의 무지개빛도 광결정 때문이다.

이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최근 ‘미국응용물리학회지’의 표지 논문에 두차례 선정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양승만 교수는 광결정을 좀더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생명체들이 정확히 어떻게 광결정을 만드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정교한 순서로 결정구조가 형성되는 자기조립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양 교수팀은 지름이 머리카락 두께의 5백분의 1정도인 나노구슬이 자기조립 과정을 거쳐 광결정을 이루게 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이 구슬들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조절해 스스로 결정을 만들게 조작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12월 ‘미국재료학회지’에 주목할 논문으로 소개돼 관심을 끌었다.

양 교수는 “광결정이 실용화되려면 제조에 큰비용이 들지 않아야 한다”며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광결정을 만들게 아니라 이런 갖는 생물체를 대량을 키워 광결정을 얻어내면 되지 않을까.





양 교수는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광결정은 빛의 60-70% 정도만을 반사하는 불완전한 형태”라며 “빛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결함이 없는 광결정을 만들고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이 영감을 줄지언정 실제 적용은 어렵다는 얘기다.

생명체가 오래 전에 만들어 놓은 자연의 발명품 광구조가 과학자들의 손끝에서 화려하게 변신할 날도 머지 않았다.






몰포나비 날개 파란색의 비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 즉 가시광선은 파장이 4백-7백nm(나노미터, 1nm= 10-9nm) 사이로 보라색에서 빨간색까지 무지개색 순서로 펼쳐져 있다. 이들 파장의 빛이 합쳐졌을 때 우리 눈은 색이 없는 밝은 빛, 즉 백색광으로 느낀다.

자연계에서 보이는 색의 대부분은 색소 때문이다. 싱그러운 초록색 잎의 경우 엽록소를 갖고 있다. 엽록소는 파란빛과 빨간빛을 흡수하고 중간의 초록빛을 반사한다. 우리 눈에 풀잎이 녹색으로 보이는 이유다. 이때 흡수된 빛에너지는 엽록소 분자의 전자가 바닥 상태에서 들뜬 상태로 올라가는데 쓰인다.


5천만년 전 딱정벌레 화석의 파란색이 여전히 선명하다. 날개표면의 광구조가 색을 낸다.

그러나 색을 내는데 항상 색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빛은 입자성과 함께 파동의 성질도 갖고 있다. 따라서 파동의 특징인 간섭현상을 보인다. 간섭이란 파동의 위상이 같을 때는 진폭이 더 강화되고(보강간섭) 위상이 반대일 때는 소멸되는(상쇄간섭) 현상이다. 백색광이 어떤 매질을 만나 간섭을 일으키면 특정 파장 영역은 간섭보강이 일어나고 다른 파장은 간섭소멸이 일어나 색이 나타나게 된다.

몰포나비 날개표면의 기와 같은 구조는 큐티클과 비슷한 투명한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 공기를 통과하던 빛이 다른 매질, 즉 날개 표면의 구조에 닿으면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통과한다. 이때 통과한 빛은 그 다음 기와를 만나 또 일부는 반사되고 나머지는 지나간다.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이때 각 단계에서 반사되는 빛이 같은 위상이면 보강간섭이 일어나고 어긋나면 상쇄간섭이 발생한다. 몰포나비 날개표면의 기와 두께는 64nm, 그 사이의 공간은 1백27nm로 날개의 정면에서 빛이 들어왔을 때 파장이 4백50nm, 즉 파란빛이 보강간섭이 일어난다. 빨간빛은 반사될 경우 상쇄간섭이 되므로 반사되지 않고 표면구조를 지나쳐 통과한다.





색소로 인한 색과 구조색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색소색은 빛과 색소분자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므로 형태와 상관이 없다. 즉 색소를 함유한 물질이 가루이건 덩어리이건 빛이 닿는 표면의 색소 분자가 색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색은 구조에 따라 색이 바뀌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만일 몰포나비의 큐티클 층의 간격을 넓히거나 좁히면 빛의 경로가 바뀌어 간섭보강, 즉 반사되는 빛의 파장도 바뀐다. 또 날개 표면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에 따라서도 반사되는 색이 바뀐다. 나비의 색이 보는 각도에 따라 같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색이 나타나는 두가지 방식|
색소분자는 가시광선의 일부를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해 색을 낸다. 잎이 녹색인 이유는 엽록소가 녹색빛을 반사하고 나머지 영역의 빛은 흡수하기 때문이다.

몰포나비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기와를 쌓아올린 것 같은 구조다. 각 층에서 반사될 때 파장인 파란빛은 보강간섭을 일으켜 반사되고 나머지는 반사될 때 상쇄간섭을 일으켜 소멸되므로 실제로는 반사되지 않고 층을 투과한다. 나비의 날개가 파랗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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