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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혈 경락의 신비, 해부학으로 푼다


경혈(經穴)과 경락(經絡).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침이나 뜸을 놓는 자리가 경혈, 그 자극을 온몸의 장기에 전달하는 통로가 경락이다. 하지만 그 작용의 원리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연구팀이 다소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이들의 실체를 해부학적으로 밝히고 있어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소광섭 교수의 한의학물리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 교수는 곧바로 “이게 경혈과 경락으로 추측되는 조직입니다”라며 현미경 사진을 보여준다. 흰쥐의 붉은 생체조직을 배경으로 하얀색의 조그만 봉오리 모양과 가느다란 관이 선명하게 보인다. 봉오리 너비는 0.5∼1mm, 관의 지름은 머리카락 절반 두께인 5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6m)다. 이들이 경혈과 경락의 실체라니? 어떤 근거로 이런 ‘대단한’ 추측이 가능할까.




그동안 경혈과 경락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다. 서양과학은 침을 놓았을 때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관찰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굳이 ‘해부학적’ 해석을 달자면 침이 신경을 자극해 이러저러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식이었다.

“경혈과 경락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논문을 최초로 발표한 사람은 김봉한이라는 북한 학자입니다.

그러나 연구 방법을 밝히지 않아 여러 나라에서 많은 학자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어요. 우리 연구팀은 그의 논문을 참고해 경혈과 경락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미국의 해부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해부학기록’ 5월호에 지난 2년간의 연구내용을 발표했다. 소 교수를 비롯해 약리학 수의학 광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 12명의 합작품이었다.

논문의 핵심은 기존에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조직이 존재한다는 점. ‘봉한학설’에 따르면 온몸 곳곳에 경혈(봉한소체)과 경락(봉한관)이 그물망을 이루며 연결돼 있다.

연구팀은 흰쥐의 혈관 내부를 우선적인 타깃으로 삼았다. 기존의 해부학에 따르면 혈관 내부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그리고 투명한 액체인 혈장이 전부다.

연구팀은 흰쥐 세포(조직의 기본단위)의 핵을 ‘형광시약(acridine orange)’으로 염색한 후 자체 제작한 ‘형광실체현미경’을 사용해 혈관 내부를 들여다봤다. 혈관 안에서 핵을 가진 세포는 적혈구와 백혈구뿐이다. 이들의 핵 모양은 둥그스름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둥근 핵 외에도 근육이나 피부 안쪽 세포에서나 발견되는 ‘막대모양’의 핵이 관찰된 것. 전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소 교수는 “김봉한의 논문에 그림으로 그려진 봉한관과 모습이 매우 유사했다”고 말했다.





최근 연구팀은 흰쥐의 간 표면에서도 유사한 조직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봉한관뿐 아니라 봉한소체로 추정되는 봉오리도 확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성능이 향상된 외국산 현미경을 새로 들여오고 좀 더 간편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염색기법을 개발한 덕이다.

이 연구내용은 9월 벨기에에서 열리는 국제침구수의학회(IVAS)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대 수의대 윤여성 교수는 “일반적으로 생물체의 순환계는 혈관계와 림프관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연구팀이 발견한 조직은 제3의 순환계로 보여진다”며 “쥐에 존재한다면 사람에게도 유사한 조직이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연구팀의 실험이 첫 시도인 만큼 이 조직의 존재가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 좀 더 검토돼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소 교수는 “새로운 조직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체가 봉한관 또는 봉한소체라고 확정짓는 데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간뿐 아니라 모든 장기와 피부에서도 이런 조직이 발견돼야 ‘경락 후보’로서의 기본자격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점은 과연 이 조직이 어떤 생리적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연구팀의 이병천 박사(약리학)는 “봉오리 안에 핵 모양의 알갱이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며 “봉한학설에서는 이를 살아있는 알이라 해서 ‘산알’이라 부르고 그 역할은 상처 부위의 손상된 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이 ‘산알’의 유전자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 파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소 교수는 “산알을 현대용어로 표현하면 몸의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줄기세포로 볼 수 있다”며 “좀 더 연구가 진행된다면 생물학 서양의학 한의학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한은 누구▼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제대(서울대 전신) 의학부를 졸업한 후 6·25전쟁이 터지자 월북했다. 북한에서 평양의대 생리학 강좌장, 경락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1961년부터 5년간 경혈과 경락의 실체에 관한 논문 5편을 발표해 중국을 비롯한 당시 공산권 나라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경혈과 경락의 해부학적 모습을 세밀히 밝히고, 그 작동이 미세입자인 ‘산알’에 의해 주도된다는 ‘봉한학설’을 정립한 것.

전북대 과학학과 김근배 교수는 “김봉한의 논문은 당시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돼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됐다”며 “1966년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봉한학설이 북한에서 갑자기 파탄을 맞은 후 학문적 명맥이 거의 끊겨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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