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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주름살은 햇빛의 작품


휴가철을 맞아 8월의 해변을 찾은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몸을 누인다. 대부분 선크림을 듬뿍 발랐겠지만, 이를 잊어버리거나 귀찮아하는 대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피부가 금새 빨갛게 달아오를 뿐 아니라 심하면 피부가 벗겨지고 물집까지 생겨 고생한다. 상처가 낫고 나서도 피부는 기미와 같은 잡티와 함께 짙은 구릿빛을 띠는데 다시 하얘지려면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 기미는 평생 남기도 한다. 하지만 태양에 감히 맞선 피부가 받는 벌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주름은 나이에서 온다?
사람들은 주름이 나이에서 온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주름을 무덤으로부터 나와 우리를 천천히 무덤으로 끌어당기는 나이의 발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피부과학자들은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피부과학자들은 얼굴에 나타나는 노화현상의 70%가 빛이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햇빛이 이토록 피부를 늙게 한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고? 그렇다면 주변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나 목, 손처럼 밖으로 노출된 피부와, 겨드랑이와 같은 속살을 비교해보자.

노출된 부위는 쭈글쭈글한데다 검버섯이나 기미 같은 잡티가 많다. 반면 속살은 나이든 사람의 피부라고 하기엔 너무 곱다.



피부가 쳐지긴 했어도 노출된 부위보다 주름과 잡티가 확연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햇빛에 피부가 타는 것에만 조바심을 내는데, 햇빛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피부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햇빛은 피부에 나타나는 노화현상들, 즉 주름, 얼룩덜룩한 잡티, 그리고 피부 처짐 등을 일으켜 얼굴을 추하게 만든다. 또 햇빛은 피부를 두껍게도 한다. 해발 3천6백m인 볼리비아 라파스에 사는 아이마라 인디언은 피부가 가죽 같다고 한다. 워낙 고도가 높아 햇빛의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80세에 20대 얼굴을
이처럼 햇빛으로 피부가 늙어가는 현상을 ‘광노화’라고 한다. 최근 피부과학의 흐름이 바뀌면서 광노화에 대한 연구가 늘어가고 있다.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교실의 정진호 교수는 “피부연구는 그동안 여드름과 같은 ‘질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젊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한다. 햇볕을 쬐고도 늙지 않게 하거나 햇빛으로 늙었던 피부를 다시 젊게 하는, 광노화 극복이 피부과학 연구의 주된 테마로 등장한 것이다. 정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곱던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검버섯이 피는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면서 “나의 연구목표는 사람들이 80세에 20-30대의 얼굴로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목이나 팔과 겨드랑이 같은 속살을 비교해보자. 햇빛에 노출된 피부가 훨씬 늙었다

정 교수의 목표 달성을 위한 도전은 5년 전부터 시작됐다.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교실이 지난 5년간 태평양 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한국인의 광노화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한 것. 이 연구는 태평양에서 10억원을 투자해 이뤄졌다. 태평양 기술연구원 피부과학연구소 장이섭 소장은 “외국회사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인의 피부를 연구해보자는 취지에서 공동연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피부연구는 피부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 기초적인 물음에 대해 세계적으로 진행된 연구는 서양인의 피부에 국한돼 있었다. 동양인은 피부색이 다른 것처럼 피부특성도 다를 터인데 말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조사를 통해 동양인의 피부특성이 어떤지 알아내고 이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동양인의 광노화 메커니즘을 밝혀내며 노화 억제 물질의 탐색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부는 어떻게 늙어갈까? 한국인의 피부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 의대는 50세 이상의 노인 3백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연구팀은 먼저 자원자들에게 하루 중 햇빛에 얼마동안 노출되는지, 담배는 피우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설문에서 흡연이 포함된 까닭은 자외선과 더불어 흡연이 피부노화의 주요 환경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주름이 생길 가능성이 2-3배나 높다고 한다.




한국인 굵은 주름 많고 잡티 심해
이와 함께 연구팀은 자원자의 피부질환과 피부색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런 다음 각 자원자들의 정면과 측면 사진을 찍었다. 이 조사를 통해 연구팀은 한국인은 서양인과는 다른 광노화 양상을 나타내는 것을 밝혀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주름살과 잡티에서 드러났다. 서양인은 주름이 뺨을 중심으로 비교적 골고루 분포해 있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마와 입에 주로 집중돼 있다. 또한 서양인은 잔주름이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마와 입 주변으로 굵은 주름이 심하다. 연구팀은 기미와 검버섯 같은 피부잡티 역시 서양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이 훨씬 심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기자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백인에게 주근깨 같은 잡티가 더 많지 않은가.


받은 피부는 타는 것만이 아니라 그 속의 탄력물질에 상당한 영향을 남긴다. 이로 인해 주름, 탄력 감소, 피부 처짐 등의 노화현상이 일어난다.

이에 대해 태평양 기술연구원의 이병곤 박사는 “백인의 잡티는 주근깨로, 선천적인 영향이 크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많이 사라진다. 그런데 얼굴이 희다보니 주근깨가 더욱 두드러져서 심한 것처럼 보인다. 기미나 검버섯처럼 광노화에 의한 잡티는 오히려 적다”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팀은 한국인 사이에 남녀간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름의 경우 여성이 폐경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남성이 심하지만, 폐경기 이후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이상이나 많다. 오래 같이 산 부부를 보면 부인이 남편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연구는 실제로도 여성이 더 빨리 늙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색소침착의 경우에는 종류가 달랐다. 나이 든 여성은 기미, 주근깨, 점이 많고 남성은 전 현대그룹 회장인 정주영씨처럼 검버섯이 심하다. 또한 여성의 검버섯은 평평한 반면 남성은 오톨도톨한 형태가 많았다.

연구팀은 자원자들의 얼굴 사진으로 노화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판정기준을 만들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광노화 판정기준이 개발돼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 연구팀은 우리나라 사람에 맞는 광노화 판정기준을 만든 것이다. 광노화 판정기준은 각각 주름살과 색소침착에 대해 만들어졌다. 물론 남녀를 구분했다. 사진으로 자원자가 얼마나 늙었는지를 객관화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피부를 보아온 피부과 의사나 화장품 전문 임상기관 종사자들이 참여했다.





주름살 판정기준은 0-6까지 7단계로 나눠졌다. 대략 한 단계가 나이에 따라 10년 정도씩 차이가 난다. 0단계가 20대면 7단계는 80대 정도다. 하지만 사람마다 햇빛을 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는 같아도 판정기준에서는 심하면 1-2단계나 차이가 난다. 피부나이가 10-20년 정도 차이 나는 셈이다. 색소침착의 광노화 판정기준은 0-4까지 5단계로 만들어졌다. 판정기준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피부나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또한 피부과학자들은 임상실험에서 새로운 피부노화 치료제나 예방제의 효과를 검증하는데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서울대 의대와 태평양의 연구팀은 피부노화를 억제하는 물질을 탐색하는 후속 연구에서 이 판정기준을 활용해오고 있다.




녹차성분이 피부노화 억제
연구팀은 피부노화 억제 신물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광노화가 어떻게 피부를 늙게 하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빛을 쬐면 피부 속에 콜라겐이나 엘라스틴과 같은 피부탄력물질이 비정상적으로 불균일하게 많이 쌓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피부는 탄력이 줄어들고 굵은 주름이 생기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탄력섬유가 줄어들어 잔주름이 발생하고 피부가 늘어지는 자연적인 노화와는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햇빛이 어떻게 피부성분물질에 변화를 일으킬까? 연구팀은 자외선이 피부세포에서 이뤄지는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즉 나이가 들면 피부의 항산화시스템이 망가져 피부노화가 일어나며 자외선에 노출될 경우 이런 증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산화는 동물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반응 중에 필연적으로 유해산소가 발생하는데, 유해산소의 양이 너무 많으면 우리 몸의 항산화시스템이 이를 제대로 처리해주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몸의 항산화시스템이 손상돼 노화나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팀은 피부노화에서도 이같은 항산화시스템의 붕괴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외선이 피부노화를 촉진시킨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이를 방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연구팀은 새로운 피부노화 억제 물질의 탐색 과정에서 녹차나 녹차의 주성분인 EGCG가 항산화시스템의 붕괴를 방지해 피부노화의 진행은 물론 이미 노화된 피부상태를 다시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세계피부연구학회에 보고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피부과학분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학계와 산업계가 협력한 사례가 됐다. 이번 산학협력에 대해 태평양 소비자미용연구소의 김종일 박사는 “불모지와 같은 우리나라 피부과학 연구에 기초를 쌓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지난 5월로 1단계 산학협동을 마무리한 두 공동연구팀은 앞으로 5년 동안 2단계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대 의대 정진호 교수는 “사람들은 ‘노화’하면 뇌를 먼저 생각해 뇌로만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정 교수에 따르면 피부는 우리 몸에 넓게 분포해 있고 겉에 있어 노화연구의 좋은 연구대상이다. 그래서 피부노화만 정복되면 다른 노화도 정복된다는 것이다.

피부과학자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피부는 햇볕에 의해 손상되고 그 손상을 피부는 잊지 않는다. 한번 타본 사람은 더 잘 타는 법.” 젊은 피부라고 해서 햇빛에 노출돼도 괜찮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피부에는 젊은 시절의 심한 피부 손상이 눈에 보이지 않게 평생동안 남기 때문이다. 피부는 이번 여름의 일도 분명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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