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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시대 심리를 알아야 한다


일상의 한부분이 된 인터넷. 현대인은 인터넷을 통해 울고, 웃고, 떠든다. 도대체 인터넷이 뭐길래 우리 마음을 이토록 휘어잡는 것일까. 인터넷 기업은 네티즌의 심리를 사로잡으려고 맹렬히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이 해부한 디지털마인드를 열어봤다.




20대 여성 직장인 김씨는 요즘 자신의 블로그 사이트에 들어오는 접속자수를 보는 재미에 하루를 보낸다. 우연히 자기 게시판에 올려놓은 김치 담금법이 인터넷을 통해 급격히 퍼진 것. 불과 며칠만에 접속자수가 1만명을 뛰어넘었다. 뜻하지 않은 성황에 처음엔 당황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흐믓하다. 한번도 만난적 없는 방문자의 글인데도 그녀는 밤새가며 일일이 답글을 단다.

김씨의 친구 윤씨도 요즘 인터넷에 푹빠져 있다. 그녀는 바쁜 일상에 쫓겨 만나기 힘든 친구들 대신 인터넷 카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윤씨 역시 한번도 만난적 없는 친구들이지만 그녀만의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

인터넷 사용인구 3천만 시대.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지 불과 10년 남짓한 시간이 그려내는 신풍속도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에서 시작된 이런 기현상은 ‘외계어’ ‘폐인’ ‘싸이질’ 등 수많은 신조어를 흩뿌리며 여전히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게임 중독, 섹스 중독, 사이버 테러, 왕따 등 현실의 사회문제로 비화된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들은 병리적인 문제로 치부돼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 인터넷을 둘러싼 심리현상에 대한 분석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흔히 ‘중독’ ‘정체성’ ‘외계어’ ‘폐인’이란 용어는 부정적인 뜻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
아무래도 중독은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사이버 심리현상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만도 1백80만명의 중독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나친 몰입에서 생긴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 테러나 공격, 왕따 문제, 국어 오용 논란으로 비화된 ‘외계어’의 등장도 인터넷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심리문제로 치부된다.

과연 인터넷은 이처럼 인간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쳤을까.
지난 7월 개최된 한국실험심리학회 하계학술총회에서는 이에 대한 몇가지 의미있는 주제들이 발표됐다. ‘사이버 세계의 인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학회에서 발표자들은 사이버 공간에 대해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해온 그 동안의 분석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두뇌와 감성이 확대된 하나의 생태 공간으로 봐야한다는 것.
성균관대 심리학과 이정모 교수는 “사이버 공간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인지 한계를 뛰어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확장해주는 공간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사이버 게임의 재미를 주제로 발표한 고려대 오경기 교수도 “게임도 이제 하나의 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나 교육 등 인간 심리에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다”며 “게임 심리에 대한 병리적 해석에 앞서 체계적인 연구방법론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날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중앙대 이재호 교수도 같은 주장을 편다. 이 교수는 “외계어 문제를 국어 파괴로만 몰고 가서는 안된다”며 “사이버 세계의 독특한 성질을 반영하는 언어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 교수의 이론은 게임 중독과 외계어 문제에 대해 부정성만을 강조했던 지금까지의 분석과는 사뭇 다른 주장이다.
심리학자들이 이처럼 사이버 세계에 대한 발언의 강도를 높이는 이유는 뭘까.
이정모 교수는 “더이상 인간의 지적인 진화 속도가 인터넷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보의 양과 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여러가지 새로운 심리현상들이 나타났다. 인터넷 공간을 둘러싼 수많은 심리 현상도 바로 이런 괴리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과 자연만을 연구해온 전통심리학만으로는 이런 새로운 심리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결국 컴퓨터를 탄생시켰던 인지심리학이 풀리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심리에 대한 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세계를 움직이는 공간
특히 최근 들어 심리학자들 사이엔 사이버 세계에서의 심리 현상을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늘고 있다.

심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사이버 공간과 현실 세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사이버 공간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현실세계와 달리 방문자수나 집단문화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나 독특한 게시판 문화,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과정은 그런 점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행위 역시 사용이라는 측면보다 또다른 세계로의 탐험이란 측면이 강조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현실의 정체성 외에 또다른 정체성을 가지려는 성향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정체성은 사이버 공간에서 존재할 뿐 아니라 인간의 두뇌 안에도 존재한다. 결국 사이버 공간은 모니터 저편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합해져 만든 공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인지능력은 사이버 공간과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이정모 교수는 “사람의 정신능력은 인터넷의 진화를 촉발시킨 것과 동시에 인터넷에 의해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이버 공간의 심리연구에 대한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대목이다.


사이버 공간은 인간 심리에 악영향만을 미칠까. 심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최근 인터넷의 순기능을 증명한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사이버 심리학은 은연중 우리 생활 주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응용분야가 가상현실을 이용한 심리치료.
지난 2000년 영국 러버그대 피터 하워스 박사 연구팀이 2백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멀미치료는 그 중 대표적인 사례다. 현란한 3차원 화면에 규칙적으로 노출되면 더 이상 멀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습관화의 원리를 심리치료에 이용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2년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최영희 교수가 40여년간 고소공포증에 시달려온 서모씨를 가상현실을 이용해 치료한 전례가 있다. 건물 3층 높이에도 불안감을 느꼈던 서씨는 치료 후 남산 서울타워와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온라인을 통한 심리치료 서비스도 그 중 하나다. 불면이나 히스테리외에도 다양한 심리상태에 따라 음악을 골라 듣는 음악치료 서비스에서부터 색채나 인물화, 풍경화를 제공하는 미술심리치료 서비스도 등장했다.





영화 분야에서도 사이버 심리학은 맹활약 한다.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가 영화의 주류로 떠오르게 된 것도 인지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의 ‘계산시각이론’ 덕분이다. 눈을 자극하는 감각 재료들을 디지털 이미지로 재구성해 실제 지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요즘 나온 대다수의 공상과학영화에서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은 이런 마의 이론을 충실히 따른다.
물론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웹디자인 쪽이다. 포탈사이트 화면에 펼쳐지는 광고배너나 그래픽, 뉴스와 검색기, 로그인창의 위치는 모두 심리학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광고와 네티즌들의 심리는 서로 쫓고쫓기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 인기있는 소프트웨어의 창이나 메뉴 디자인 역시 사용자의 심리를 고려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사 워드 프로그램의 성공비결도 모두 심리 연구의 산물인 셈이다.




“가상공간은 심리학 실험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더이상 인터넷의 규모와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동안 인간이 느껴보지 못한 심리현상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한국실험심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경북대 곽호완 교수의 설명이다. 폭발적인 정보량을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시대에 맞는 심리연구 방법이 나와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7월에 열린 한국실험심리학회 하계학술총회에서는 이 문제가 깊이 있게 논의됐다. 사이버 공간의 심리만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 물론 그동안 사이버 심리와 관련해 몇권의 책과 연구 사례가 발표되기는 했다.
“지금까지 사이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심리현상들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쳐져 왔습니다. 지나치게 정신병리적으로만 해석돼왔으니까요. 좀더 실험에 근거한 과학적인 연구방법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실험심리학회는 교수회원 1백명을 포함해 3백명 남짓한 회원수를 보유한 학회다. 한국심리학회의 한 분과로 출발해 1989년 첫 학회지를 창간하며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지난 2002년 생물생리심리학회와 통합되면서 현재의 실험심리학회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실험심리학은 인간의 두뇌 활동과 관련된 감각이나 지각, 학습, 언어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실험심리학이 사이버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컴퓨터의 모델이 됐던 인간 두뇌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사이버 심리를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는 20여명 정도. 기업체를 포함해도 1백명 안팎이다.
“이 분야에 앞선 나라에 비하면 작은 숫자입니다. 사이버 심리 연구는 학문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산업, 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극적인 육성이 필요합니다.”
연구자가 없다보니 관련 연구소나 기업도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연구소래 봐야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와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정도다. 연구도 아직까지 시작단계다. 이런 까닭에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인력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곽 교수는 “사이버 심리는 웹디자인, 인터넷 설문조사 등 다방면에 적용되고 있다”면서 “인터넷 기술의 발전은 심리학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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