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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도 바람길 필요하다


건물과 도로가 빼곡이 들어선 서울 사람들은 이번 여름에도 다른 지역 사람보다 더위를 더 먹어야 했다. 실제로 지난 8월 1일부터 16일까지 서울은 9번의 열대야를 치른 반면 서울보다 위도가 약간 낮은 수원은 4번의 열대야가 있었다. 좀더 시골로 가면 열대야는 거의 없다.
1천만명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자동차가 3백만대 가까이 움직이는 대도시, 서울에서는 어쩌면 이같은 열섬 현상이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서울 사람들은 푹푹 찌는 여름밤을 나야하는 것일까?

최근 서울시는 고층건물로 꽉 들어찬 도심에 숨통을 열어줌으로써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2007년까지 바람길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지도가 완성되면 서울은 바람길을 고려한 도시계획이 세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서울의 여름나기도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또한 서울에서의 주거지 선택에 대한 인식과 부동산 가치 기준도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바람길이 가져다줄 서울의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바람도 길이 있다?
바람도 길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다. 바람이 걸릴 게 없는 하늘에서 특정한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사실 아니다. 그렇다면 바람길이란 대체 무엇일까.
바람은 상공의 기압 변화로 발생하는 공기의 움직임이다. 바람을 과학적으로 표시하려면 두 성분이 필요하다. 바로 어느 방향이냐는 것(풍향)과 얼마나 세냐는 것(풍속)이 그것이다. 바람길은 시시각각 변하는 풍향과 풍속에 대해 1개월, 1계절 또는 1년과 같은 장기간 동안의 변화를 평균해서 얻어진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연평균 풍속은 1초에 2.3m이며 최다 풍향은 서풍이다. 서울의 보편적인 바람길은 서풍계열인 셈이다.

서울의 바림길은 우후죽순 들어선 빌딩으로 곳곳이 막혀있다. 아파트나 업무용 빌딩과 같이 무질서하게 배치된 고층건물들에 의해 풍향이 바뀌거나 풍속이 느려진다. 여름 한낮에 아스팔트로 데워진 열기가 밤까지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되는 것이다. 대기가 정체됨으로써 바람이 대기오염물질을 확산시키지 못해 서울의 대기오염이 쉽게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바람길을 활용한 도시계획의 성공사례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시를 꼽는다. 슈투트가르트는 북동쪽을 제외하고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그래서 평균 풍속이 초당 0.8-3.1m로 다른 지역에 비해 바람흐름이 느리다. 이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독일에서 번창하던 공업도시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공장 굴뚝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으로 시민의 건강이 위협받자 대기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대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슈투트가르트시는 종전이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면서 바람길을 도시계획에 반영해오고 있다. 특히 도시 외곽 산지에서 발생해 도심으로 불어오는 찬공기 흐름을 자연스럽게 도심 반대방향으로 불어갈 수 있게 바람길을 열어놓고 있다. 청정지역으로부터 막힘없이 불어오는 찬공기는 과밀 개발지역인 도심을 시원하게 할 뿐 아니라 대기환경이 악화된 지역의 공기를 청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서울은 분지형 대도시
서울의 지형은 슈투트가르트처럼 전형적인 분지형이다.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우면산, 불암산 등의 크고 작은 26개의 산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을 뿐 아니라 서울 북쪽 외곽을 이루는 북한산과 남쪽 외곽을 이루는 관악산 사이에 많은 구릉과 산악이 산재해 있으며 토지의 기복이 심하다. 서울은 이같은 자연조건의 특성상 대기오염물질의 확산이 쉽지 않아 국지적으로 정체된다.

게다가 서울은 건물과 도로의 점유율이 47%나 차지하는 고밀도 대도시다. 고밀도의 도심에서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 발생량이 적정 환경용량을 초과하고 있다. 서울은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이럴 때 바람이라도 제대로 불어준다면 공기는 훨씬 맑아질 수 있다.
서울의 고밀도 개발이 바람길을 얼마나 막고 있을까. 필자는 지난 2000년 서울의 급속한 개발을 상징할 수 있는 한강 양쪽 지역, 여의도 및 상계동 지역에 대한 바람길 조사에 나섰다. 당시 지상 30m에서 부는 바람과 사람이 숨을 쉬는 높이에 해당하는 1.5m에서의 바람을 각각 측정했다.

조사결과, 한강 양쪽 지역의 경우 지상 30m 높이에서의 바람은 자연풍과 유사했다. 도시개발로 인한 바람의 장애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지상 1.5m에서의 바람은 갈 길을 잃어버렸다. 도시개발의 전형적인 바람 장애현상인 무풍에 가까운 약한 바람과 불규칙한 풍향이 발생했다. 서울에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기 위해서는 통풍이 양호한 도시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한강 양쪽으로 들어선 고층건물은 바람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상계동 지역에서도 한강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인해 바람이 차단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처럼 서울은 바람흐름을 고려하지 못한 도시개발로 바람환경이 악화된 대표적인 도시로 꼽힌다. 더군다나 최근 우후죽순처럼 유행하고 있는 초고층 빌딩 건축으로 인해 풍속은 더욱 약화되고 풍향은 왜곡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람길을 고려한 서울의 도시계획은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의 심의과정에서 고층건물 신축사업에 의한 바람길 영향을 평가하는 정도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왕십리 뉴타운 개발사업과 같은 대규모 도시계획에서 바람길이 도입되고 있다. 왕십리 뉴타운은 서울의 강북지역을 세로로 서울의 서풍 계열이 강하게 부는 곳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서풍을 방해하지 않도록 뉴타운 건설에서는 아파트의 층수, 간격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서울시 바람길 지도가 완성이 되면 자연지형뿐 아니라 건물의 배치와 지역의 개발현황을 고려한 환경친화적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될 전망이다. 또한 바람길 조성으로 대기오염 확산으로 대기오염에 의한 시민건강 피해를 예방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서울의 도시계획은 과거에 비해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길을 고려할 경우 도시계획은 어떻게 달라질까. 바람길을 고려한 도시계획의 기본은 신선한 찬공기가 도시내부로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다.
찬공기는 산지의 숲과 계곡, 넓은 규모의 논과 밭에서 발생한다. 만약 이런 곳에서 발생한 찬공기가 골짜기와 산, 언덕을 따라 도시를 향한다면 도시는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여 쾌적한 환경을 갖게 된다.





그러나 찬공기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만약 찬공기가 대기오염물질과 혼합돼 주거지역으로 이동한다면 그 지역의 대기오염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지역개발 계획을 추진할 경우 찬공기 흐름을 파악해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찬공기의 적절한 활용은 도시개발 수준을 결정하고 쾌적한 생활공간을 조성하는데 기본전제가 되고 있다.

신선한 찬공기가 도시로 유입되는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주거지 인근에 산재하고 있는 5ha 이상의 숲이 있는 구릉지는 적극 보호해야 한다. 도심으로 불어오는 찬공기를 보호하고, 주거지역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찬공기의 흐름은 좁아지는 골짜기, 제방, 방음벽, 계곡에 비스듬히 있는 나무, 큰 건축물 또는 틈새 공간을 가로막는 건축물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특히 주거지역으로 불어오는 찬공기가 단절되면 대기 중 열교환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열 발생량이 많은 주거지역에서는 냉방을 위해 에너지를 적정 이상으로 소비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토지이용 기본계획에는 신선한 공기가 도시로 유입되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을 파악하고, 찬공기 발생과 흐름을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야 한다.




그렇다면 찬공기의 발생을 촉진하고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개발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대규모 개발 및 고밀 주거지역의 개발을 지양해야 한다. 특히 교외주변의 개발은 바람길을 차단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신규건축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은 분지형 도시이기 때문에 경사지에 대한 개발방법과 규모가 현재와는 달라져야 한다. 경사지는 도시에서 바람이 부는 주요 통로이므로 가급적이면 경사지 개발은 제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이 불가피한 경우 경사지역 개발은 건축구획에 고층고밀 개발을 지양하고 저밀도 수준으로 이뤄져야 하며, 개별 건축물이 큰 간격을 가지면서 위치하도록 한다.
특히 경사지에서 가로질러 길게 늘어서 있는 건축물은 근본적으로 경사지의 바람흐름을 근본적으로 방해한다. 따라서 경사지에 세로방향으로 건축물을 배치해야 한다. 또한 바람이 경사지를 가로질러 흐른다면 통풍을 위해 가능한 경사지역을 비워둬야 한다. 평평한 경사지가 있을 경우 찬공기 생성을 위해 공원과 같은 큰 녹지지역으로 조성하고, 양호한 통풍을 위해 공지를 남겨두고 개발해야 한다. 나무와 같은 자연적인 방해물의 높이도 바람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




바람길 하류는 오염물질 모여
한편 바람길을 고려한 도시계획이 이뤄지면 주거지나 상업지는 가능한 대규모 단지나 고층화보다 주변지역의 여건이나 바람 흐름을 고려한 토지이용계획이 수립된다. 이때 건축물의 배치, 층수, 건물의 간격이 적절하게 조정된다.
바람길을 고려해볼 때 한마디로 어디가 딱 좋은 곳이라고 추천하긴 어렵다. 대신 좋지 않은 주거지를 얘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바람길의 하류 지역일 경우 그다지 양호한 주거지역이라고 하긴 어렵다. 대기오염물질이 이동해오기 때문이다. 또한 바람흐름이 정체되는 지역도 그렇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토지가 부족한 도시에서는 주거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에 비록 바람의 하류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주거지 선택에서 무조건 배제하기란 쉽지 않다.
서울의 경우 서풍계열 바람이 우세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바람은 한강과 중랑천을 따라 의정부 방향으로 주로 흐른다. 의정부가 서울 바람길의 하류인 셈이다. 서풍 바람은 간혹 북동쪽 주변 산지에서 불어오는 찬공기와 만나 난류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바람흐름을 약화시켜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북동쪽에서 대기오염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주거지 선택에 있어 공공시설 접근도, 학군, 프라이버시 보호, 전망, 소음, 대기오염 등 많은 선택요인이 있다. 하지만 쾌적한 주거생활공간을 원한다면 바람의 순환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운수 박사는 서울 하늘을 맑고 푸르게 만들기 위해 대기환경 전문가의 길을 택했다. 그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석사(1984), 미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대기환경분야로 박사학위(1995)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환경연구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녹색교통 이사, 녹색연합 정책위원 등 민간환경단체의 활동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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