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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지문으로 거짓말 탐지할 수 있나


재판은 한편의 드라마다. 피고와 고소인이 있고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양심은 끊임없이 동요한다. 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고 진실은 은폐되기 십상이다.

클라시커 시리즈 ‘재판’의 저자 마리 자겐슈나이더는 ‘과연 정의가 이기게 될까’란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는 역사가 수많은 재판과 판결, 희생양을 낳으며 진보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에서 진실은 쉽게 묻혀버리곤 한다. 진실을 가려내기란 여전히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양심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현대과학이 있다. 그 주인공은 폴리그래프, 일명 거짓말 탐지기다.

하지만 첨단 과학수사장비로 불리는 이 장비는 탄생 이후 줄곧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과연 범인을 1백% 가려낼 수 있을까’란 회의적인 시각 때문이었다. 법원도 그 결과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거짓말 탐지기를 불신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대검찰청이 지난 9월 도입한 뇌파분석장치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새 장치는 과연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의 저울이 될 수 있을까.




몸은 거짓말 안해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남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다. 어쩌다 진술을 강요받으면 말과 글로 돌려 표현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그러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이 탄로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긴장과 두려움으로 자율신경계에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김현택 교수는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에 부지불식간 자율신경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 현상은 금방 눈에 띈다. 평소보다 맥박은 빨라지고 침샘은 마르며 얼굴색이 붉어진다. 근육 경련으로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식은땀이 흐르면서 피부 전기저항에도 변화가 생긴다. 거짓말을 한다는 몸의 신호다. 이런 생리 현상의 변화는 탐지기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하지만 몸에 바로 센서를 붙인다고 해서 거짓말 여부가 바로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와 엄격한 조건이 따라야 한다.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한결같다. 연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휴대용 거짓말탐지기.

일단 검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긴장 정점검사’라는 단계가 있다. 검사 목적은 거짓말을 하면 진실이 탄로날 것을 두렵게 만드는 것. 이 과정을 거치면 거짓말한 사람은 최대한 초조한 상태에서, 진실한 사람은 가장 편안한 심리상태에서 검사에 들어가게 된다. 검사자마다 각기 담력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한다. 일부러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해 그 반응을 측정한 뒤 실제 거짓말할 때 반응과 비교한다. 아무리 ‘간 큰’ 범인도 거짓말할 때면 작게나마 몸에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거쳐 실시된 거짓말 검사는 높은 적발율을 보인다. 현재 국내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는 약 95%. 1980-1998년 수사과정에서 거짓말 탐지기로 조사받은 3천34명의 사례를 재판결과와 비교한 결과, 판결이 조사결과를 뒤집은 사례는 단 1건 뿐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허언탐지실이 검사한 1백3명의 97%도 검사 결과에 수긍한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의 증거효력 인정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현행 기술에 결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진범을 결백하다고 잘못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상존한다는데 있다. 이와 관련해 1991년 미국의 심리학자 삭스는 거짓말 탐지기가 실수할 확률이 11.5 -18.3%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법원 판례에서도 거짓말 탐지 결과가 뒤집힌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3년 1월 1일 오전 5시경 가락동에서 승객 염모씨를 태우고 교차로를 지나던 박모씨의 택시가 우측에서 진입한 김씨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택시운전자 박씨는 중상을, 승객과 김모씨는 각각 전치 2-4주의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서 운전자 박씨와 김씨는 서로 파란불에 진입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한 검사 결과 운전자 박씨는 ‘거짓’반응이, 김씨는 ‘진실’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진술을 자꾸 번복하는 김씨보다 일관된 진술을 한 박씨에게 손을 들어줬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거짓’반응이 나온 당사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판결 한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외에 신호를 위반한 증거가 없고 거짓말 검사 결과가 증거능력이 된다 해도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증거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거짓말 탐지기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례는 더 있다. 단속 중인 교통경찰과 신호위반자를 검사했을 때가 그런 경우다. 신호를 위반했다고 믿는 경찰관과 자신은 신호에 맞춰 운행했다고 철썩같이 믿는 운전자를 검사하면 둘다 ‘진실’반응이 나온다. 피검사자가 진실로 믿는 것을 그대로 말하면 탐지기도 ‘진실’로 믿는다는 것.




2000년 10월 역삼동 사거리에서 신호위반을 이유로 범칙금을 통고받은 이모씨는 국가를 상대로 낸 무효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우리 몸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검사 환경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짓말 탐지기의 한계가 있다.

국과수 최효택 실장은 “피검사자는 심리적신체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검사받아야 하며, 검사 자체도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거짓말 탐지기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각자 무엇을 진실로 믿고 있느냐로 참과 거짓을 구분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고려대 김현택 교수도 “거짓말 탐지기는 사실에 위배되는지가 아니라 양심에 반하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라며 “그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라는 말보다 정서 탐지기라고 하는게 맞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거짓말 검사가 소용없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일단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수면이 부족해 정상상태가 아닌 경우가 그렇다. 신체적 정신적인 압박이 커지기 때문이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실시된 검사나 초조할 이유가 없는 선의의 거짓말, 심리적 부담이 적은 경미한 사안일 경우 측정이 불가능하다.




전문 조사관이 아니거나 수사 상황이 너무 많이 노출됐을 경우도 신뢰하기 힘들다. 이같은 상황에서 실시된 검사는 자칫 멀쩡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거나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국내 법원도 이런 점을 들어 아직까지 단 한차례도 검사 결과를 단독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도 인권과 신뢰성 논란으로 거짓말 탐지기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연방재판소는 거짓말 검사를 유죄와 무죄의 증거로 사용하기에 아직 믿을 수 없다며 탐지기 사용을 금지한 1954년 판결이 유효하다고 다시 판결했다.



뇌지문 탐지기도 만능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등장한 것이 뇌파로 범죄경험 여부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거짓말이나 범행이 뇌의 활동이 가져온 결과라는데서 착안된 기계다. 폴리그래프가 정서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뇌지문 검사는 인지 반응에 주목한다. 이번에 검찰이 도입한 장비도 익숙한 자극에 반응하는 p300파를 측정한다.

p300은 자신에게 친숙한 자극에 대응하는 사건관련뇌파(ERP, Event Related Pote ntials)다. 여기서 p는 양의 값을, 300은 자극을 받은 뒤 3백ms(밀리초, 1ms=10-3초) 뒤에 발생한다는 의미다. 즉 p300은 자극을 받고 3백ms 뒤 발생하는 양의 전위값을 갖는 뇌파인 셈이다.
오래전부터 p300은 구별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서울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p300은 주의력과 구별 능력, 결정 능력과 관련된 뇌파로 오래 전부터 정신분열증이나 치매, 건망증 진단과 치료에 활용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1893년 제작된 로테셔 폴리그래프. 용의자의 혈압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가렸다.

p300을 거짓말 탐지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1991년 미국의 로렌스 파웰 박사는 p300을 측정해 거짓말이나 범행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익숙한 자극(목표자극)에 노출됐을 때 자신도 모르게 뇌파가 발생한다는 원리를 거짓말 탐지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관은 그저 사건과 관련 없는 사진(표준자극)과 범행 도구를 찍은 사진(목표자극)을 번갈아 보여 주고 뇌파반응만 살펴보면 된다. 범행을 저지른 범인의 뇌엔 범행 당시 기록을 담은 기억, 일명 뇌지식이 남아 뇌파로 드러난다.

김현택 교수는 “p300은 인간 의지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왜곡소지가 있는 기존 검사방식보다 이점이 많다”고 말한다. 범인이 아무리 집중해도 자신의 p300을 통제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검사관의 주관적 해석이나 검사 조건 때문에 생기는 영향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는 있다. 권준수 교수는 “검사 당시 생리 중이거나 주위 온도가 평균치를 밑돌 때, 검사자의 두개골 두께에 따라 얼마든지 검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현택 교수도 “사건과 상관없는 화려한 사진이나 자극에 반응해 p300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서는 ‘죄지식’(Guilty Knowledge) 외에 p300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대검 과학수사부 김종률 검사는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가 이런 자극에 반응해서 뇌에서 p300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뇌에 남은 범죄기억을 찾아내는 이 검사방법 역시 거짓말 여부를 완벽히 가려내지 못한다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추가적인 연구과 보완을 통해 오류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 교수는 “기존 거짓말 탐지기와 뇌파검사기를 상호보완적으로 병행해 운영한다면 오판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과수 최효택 실장도 “실험을 위한 거짓말 검사와 실제 적용은 다르다”면서도 “수많은 검사를 통해 체계적인 검사방법이 완성되면 신뢰성 높은 거짓말 탐지 장비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짓말 메커니즘 과연 밝혀질까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거짓말 탐지 기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중 거짓말에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가 가장 앞서 있다. 최근 미 샌터바버라 캘리포니아대 존 투비 박사는 사람 뇌 속에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알아채는 특정 부위가 있다고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투비 박사팀은 뇌 변연계에 손상을 입은 환자와 정상인을 비교연구한 결과 사람에게 사회적 속임수를 가려내는 신경회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예 거짓말 할 때 나오는 뇌파에 대한 연구도 주목받고 있다. 미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레이존슨 주니어 존스 박사팀은 거짓말 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반응하는지 대해 2001년부터 연구해왔다. 브라질 도르병원 호르헤 몰 박사 연구팀도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이용해 도덕적 판단을 할 때 뇌의 반응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체온이나 얼굴 표정, 시선의 변화로 거짓말 여부를 탐지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 미네소타의대 연구팀은 열촬영장비를 이용해 거짓말을 할 때 눈 주위 얼굴에 체온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네이처’ 2002년 1월호에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거짓말탐지실에 설치된 스톨린사의 거짓말 탐지기. 최대 8개의 생체신호를 읽어들일 수 있다.

불안한 심리는 눈에서도 읽을 수 있다. 국립과학연구소는 조만간 눈동자 움직임(EOG)의 변화로 거짓말 여부를 가리는 검사장치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효택 실장은 “인체는 심리 변화에 따라 몸 상태도 함께 바뀌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어떤 종류의 탐지기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거짓말 탐지 기술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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