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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에서 부는 IT혁명


‘부엌’은 생기발랄한 공간이다. 토닥토닥 도마를 때리는 식칼질 소리며 쉬익쉬익 거친 숨을 내뿜는 밥솥 소리, 주부의 분주한 손놀림, 그리고 코끝을 끝없이 자극하는 냄새입자들. 부엌은 전통적으로 밥을 짓는 공간이었지만 최근엔 음식 조리만이 아닌 가족 간에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집의 중심은 부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부엌이 일상의 중심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뒤 부엌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디지털 혁명의 진앙지 부엌
세계 최대의 백색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의 마케팅 책임자인 존 커쇼는 “21세기 부엌이 새로운 ‘보이지 않는 손’ 정보통신기술(IT)혁명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만의 대화 장소에서 인간과 조리도구가 대화하는 소통방식에 일대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직접 맛을 보지 않고도 간을 맞출 수 있는 전자센서 숟가락이나 요리 재료를 넣으면 알아서 조리방법을 찾는 전자레인지가 바로 그런 사례다.

커쇼는 “이같은 기술적인 진보가 앞으로 조리 방법뿐 아니라 쇼핑 방식이나 여가 생활, 업무 방법 등 일상생활 전반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부엌이 다음 세대 기술 혁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집안의 다른 수많은 공간을 놔두고 왜 하필 부엌일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미디어랩 연구팀은 “지난 100년간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소외된 곳이 부엌이며 아직까지 위험하고 복잡스런 생활공간으로 남아있다”면서 “그런 낙후한 주방을 가장 기능적이고 편안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TV냐 냉장고냐.’ 홈네트워크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가 최근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LG전자가 처음 선보인 인터넷 냉장고. 집안 관리는 물론 육아에서 쇼핑까지 모든 기능이 냉장고 한대에 들어있다.

실제로 MIT 연구팀과 인식을 함께 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살톤, 필립스 등 여러 대학연구소와 기업들도 1990년대 초부터 미래 부엌 연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도 부엌을 단순한 조리공간이 아닌 인간과 기계가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래 부엌 연구는 ‘스마트 물질’과 ‘전자태그’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똑똑한 소재’로 알려진 스마트 물질은 주변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첨단소재. 음식물 종류나 크기에 따라 크기가 신축적으로 바뀌는 전자레인지나 내부에 항박테리아 효소를 내뿜는 냉장고,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 앞 표면이 변하는 오븐 등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 벽지나 주방용품 외장 소재로 사용하면 원하는 색상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

유리나 금속성 소재가 아닌 실리콘 고무로 주방 구조를 만드는 연구도 한창이다. 인간의 육체와 비슷한 부드러운 싱크대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비접촉식무선인식장치(RFID)로도 불리는 전자태그는 무선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작은 컴퓨터칩을 뜻한다. 제품 표면이나 아예 소재 안에 들어가는 이 장치는 인간과 물체, 물체 간 의사소통에 반드시 필요한 매개체다. 또한 물체의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는 센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장중인 음식의 종류와 수량을 보여주고 음식물이 떨어지면 혼자서 척척 주문하는 지능형 냉장고는 바로 전자태그 인식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미디어랩 마이클 홀리 교수는 “현재 컴퓨터는 일상 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궁극적으로 부엌안의 모든 조리기구와 전자제품들은 서로 상태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보채는 머그컵, 달래는 커피메이커
MIT 미디어랩 산하 개인정보구조그룹 연구팀은 첨단 부엌 연구를 선도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이 연구팀은 부엌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일명 ‘꿀벌통’(Hive)으로 불리는 프로젝트는 이미 실용화 단계까지 와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격이 아직 높고 사용자들이 이 새로운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는 문제만이 남았다.

미디어랩 연구팀이 개발 중인 미래형 주방은 3단계를 거쳐 발전하고 있다. 주변 물체와 정보 교환없이 자기 정보만을 제공하는 초기 모델은 이미 개발이 끝난 상태다.

뒤이어 본격적인 통신기능을 갖춘 첫 모델인 PC디너, 후에 마이크로쉐프로 명명된 전자레인지가 개발됐다. 바코드 스캐너가 달린 이 전자레인지는 음식물 종류나 무게에 따라 조리시간을 알아서 맞추거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조리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얼마뒤 좀더 발전한 형태로 등장한 것이 ‘미스터 자바’로 불리는 커피메이커다. 컵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취향에 맞춰 커피를 내려먹을 수 있다. 또한 빈 커피 잔으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미스터 자바 커피잔에는 커피잔 주인과 그의 취향, 현재 잔 상태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는 메모리가 전자태그와 함께 달려있다. 전자태그는 컵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간을 기억해뒀다가 커피가 식어버리면 그 사실을 커피메이커와 주인에게 말한다.






공교롭게도 이 연구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곳은 다름 아닌 크라프트(Kraft)와 맥스웰하우스(Maxwell House), 피앤지(P&G) 등 주요 식품업체들.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살피는데 미스터 자바만큼 안성맞춤인 도구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부엌 지능화의 핵심은 부엌 선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원래 부엌 선반은 주부들이 음식을 만드는 주공간으로 쓰여왔다. 그만큼 손길이 많이 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종종 곤혹스러운 경우를 겪는다. 불과 몇분전까지 썼던 식칼이나 국자를 잃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조리용품에서 후추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겉은 멀쩡한 소금통안에 소금이 없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언제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MIT 미디어랩 연구팀은 주부들의 이런 고민을 잘 간파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부엌선반에 지능형 컴퓨터와 센서를 넣어 맞춤형 조리환경을 만들자는 일명 선반지능화(Counter Intelligence) 프로젝트다. 현재 약 20여개의 하위 프로젝트가 연구팀별로 진행되고 있다.

선반지능화 시스템은 조리순서는 물론 적정 양념량까지 조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음식재료의 포장지와 그릇, 양념통에까지 바코드나 비접촉식전자태그(RFID)를 붙인다. 아직까지 재료를 인식하는 수준인 바코드와 전자저울, 키보드가 사용되는 정도지만 좀더 지능화된 전자태그를 인식하는 선반이 도입되면 양념통 속의 양념 함량이나 반죽이 잘 됐는지도 손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재미있는 과제가 요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스푼이다. 각종 미각 센서가 붙은 스푼은 양념들을 섞고 맛을 보거나 색깔을 볼 때 모든 요리법을 알려준다. 오븐 미트(oven mitts)라는 온도 센서는 “몇 분 안에 반드시 음식을 체크하라”는 메시지를 띄우기도 한다.

담긴 요리의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머그컵도 눈에 띄는 제품 가운데 하나다. 온도 조절 장치에 쓰이는 바이메탈이나 온도에 따라 변색되는 잉크, LCD를 재료로 사용한다. 이 머그컵은 설탕이 잘 섞이지 않았을 때 자동적으로 초음파를 이용해 저어주기도 한다. 박테리아나 염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 소리로 경고하는 나이프 역시 눈길을 끄는 있는 연구거리 중 하나다.

전자레인지에 카메라가 달려 찌개가 넘치는 일을 막아준다. 그릇이 더러워지면 그릇에 붙은 전자태그가 더러워진 정도를 알려준다. 자동세척기는 그 정보를 읽어 들여 세척에 들어간다. 똑똑한 휴지통은 제품 상태를 읽어들여 재활용품을 구분해내거나 비울 시기를 알려준다.

이밖에 재활용 플라스틱 웨이퍼를 사용해 부엌의 크기를 1/3수준으로 줄이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변형 몰드’라는 기술을 활용해 음식을 먹을 때, 접시를 보고 컵이라 말하면 접시가 부풀어 컵으로 바뀐다. 원한다면 다시 접시로도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 부엌 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은 과연 무엇이 될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냉장고를 제일 순위로 보고 있다.





MIT 미디어랩 선반지능화 연구팀은 지난 1990년대부터 똑똑한 냉장고인 ‘쿨I/O’를 개발중이다. 이 냉장고에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역할 외에도 부엌 안에 있는 모든 주방기구를 구별하는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유통기간이 지났는지 음식물이 충분한지를 냉장고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알려준다. 여기에 부족한 음식물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할 수 있는 기능까지 덧붙여지면 부엌이 명실상부하게 홈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미 지난 1997년 바코드를 이용한 초기 모델 냉장고를 선보였다. 이 연구팀은 불과 몇 바이트만을 저장할 수 있는 바코드를 전자태그로 대체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다.

일본도 이와 비슷한 냉장고를 개발했다. 유비쿼터스 연구조합인 TRON은 2003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연례전시회에서 포도주병의 위치와 남은 포도주의 양을 읽을 수 있는 와인냉장고를 선보인 바 있다.

국내 가전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개발한 인터넷 냉장고 역시 ‘똑똑한 냉장고’가 미래 가정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들어 미래 부엌을 차지할 제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살톤사는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와 커피메이커, 제빵기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이들 제품 외에도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오븐과 밥솥 등을 현재 개발 중이다.

궁극적으로 개인 기호에 맞는 조리 방식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 조리중 손쉽게 웹사이트 검색을 하거나 요리법을 참조해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기술도 추가로 개발 중이다.
아리스톤사는 음식 재료에 따른 조리법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디지털 오븐을 개발했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비교적 앞서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00년 1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에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차세대 디지털 주방가전 제품을 출품했다. ‘텔레쉐프’로 이름붙인 이 전자레인지는 LCD로 인터넷을 검색해 원하는 조리정보와 최신 식품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검색기능 만을 가진 기존 인터넷 전자레인지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은 조리정보를 이용, 스스로 요리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최근 들어 린나이코리아 등 국내 주방전문 업체들도 홈네트워크 업체들과 공동으로 주방기기를 서로 연동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래 부엌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은 그렇게 높지 않다. 삼성과 LG, KT 등 대기업들은 첨단 통신기능이 들어가는 디지털 홈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긴 하지만 미래형 주방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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