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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 지능, 침팬지와 막상막하


고대 그리스의 작가 이솝은 동물을 등장시켜 세상을 풍자한 우화를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까마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두편을 보자.

영리한 까마귀 : 목마른 까마귀가 유리병에 들어있는 물을 발견했다. 그런데 병주둥이가 길쭉하고 물이 반밖에 차지 않아 마실 수 없었다. 똑똑한 까마귀는 자갈을 물고 와 떨어뜨려 수위를 높여 물을 마셨다. 어려움에 처해도 까마귀처럼 기지를 발휘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

까마귀와 여우 : 고깃점을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본 여우는 까마귀의 외모를 칭찬한다. 목소리까지 좋다면 새의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까마귀는 우쭐해 입을 열다가 고깃점을 떨어뜨린다. 여우는 고깃점을 냉큼 받아 물고 줄달음친다. 감언이설에 현혹되면 신세를 망칠 수 있다는 교훈.



앞의 우화에서는 까마귀가 현명한 사람을 상징하는데 반해 뒤의 이야기에서는 허영에 찬 사람에 비유되고 있다. 까마귀에 대한 일관된 관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솝은 뛰어난 우화작가일지는 몰라도 동물행동학자로는 자격미달인가보다. 그렇다면 실제 까마귀의 모습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2004년 12월 10일자 ‘사이언스’에는 까마귀과 조류의 지능에 관한 최근 수년간의 연구결과를 요약한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여우는 까마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뿐더러 까마귀의 지능은 침팬지 같은 영장류에 필적한다고. 까마귀는 얼마나 영리한 새일까.



갈고리 만들어 먹이 꺼내
인간은 도구를 제작하고 능숙하게 사용해 만물의 영장이 됐듯이 도구 사용은 지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꺾어 붙어있는 이파리를 훑어 낸 뒤 흰개미집 구멍에 집어넣는다. 잠시 기다렸다가 꺼낸 나뭇가지에는 흰개미가 달라붙어 있다. 도구를 쓴 덕분에 흰개미의 공격을 받아가며 흙파는 수고를 던 셈이다.

까마귀의 일종인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도구사용에 있어 침팬지와 막상막하다. 이 녀석들은 자연상태에서 나뭇가지를 이용해 나무줄기의 구멍 속에 들어있는 애벌레를 꺼내 먹는다. 손에 해당하는 날개를 쓰는 것은 아니고 대신 부리로 나뭇가지를 집는다.
그런데 뉴칼레도니아 까마귀가 마땅한 도구가 없을 때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알렉스 카셀닉 교수팀은 투명한 실린더 속에 고깃점을 담은 작은 바구니를 놓아두었다. 실린더 높이 때문에 까마귀 부리는 바구니손잡이에 닿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주변에 곧은 철사와 굽은 철사를 놓아두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까마귀는 굽은 철사로 바구니를 꺼냈다.

어치의 일종인 스크럽제이는 먹이를 숨겨둔 장소는 물론이고 시간과 종류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굽은 철사를 없앤 뒤 까마귀의 행동을 관찰했다. 처음에 녀석은 곧은 철사로 바구니를 꺼내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했다. 잠시 뒤 까마귀는 철사 한쪽 끝을 발로 고정시키더니 반대쪽을 부리로 물고 비틀어 구부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갈고리로 바구니를 끌어올린 녀석은 고깃점을 맛있게 먹었다. 카셀릭 교수는 “까마귀는 갈고리를 사용해봤을 뿐 휘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다”며 “사전 경험없이 의도적으로 물체를 변형시키는 행동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코치를 받지 않으면 침팬지조차 파이프를 펴서 구멍 속의 사과를 꺼내먹는 과제에 번번이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까마귀과 새들은 기억력도 보통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다람쥐처럼 먹이를 숨겨뒀다가 배가 고플 때 찾아 먹는 습성이 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나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 그런데 먹이 은닉과 관련돼 보여주는 행동이 놀랍다. 먹이의 은닉 장소를 기억할뿐더러 은닉한 시간과 먹이 종류까지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애벌레다. 그런데 애벌레는 쉽게 부패하므로 숨겨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 먹지 않으면 아깝게 버리게 된다. 반면 땅콩 같은 먹이는 오랫동안 둬도 상관이 없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실험심리학과 니콜라 클레이튼 교수팀은 땅콩과 애벌레의 은닉실험을 통해 까마귀과에 속하는 어치의 일종인 스크럽 제이(scrub jay)의 탁월한 기억력을 밝혀냈다.

먹이를 은닉한 뒤 네시간 후에 은닉처에 두자 이 녀석은 더 좋아하는 먹이인 애벌레를 묻은 지점을 파헤쳐 먹이를 꺼내 먹었다. 그러나 은닉한 뒤 5일이 지난 뒤에는 땅콩을 꺼내 먹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애벌레는 이미 먹지 못할 정도로 부패했을 것이므로 공연히 땅을 파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클레이튼 교수는 “이 정도의 기억력은 사람에게만 있다고 여겨져 왔다”며 “스크럽 제이가 먹이를 다시 찾을 때 그 종류는 물론 부패 정도까지 고려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까마귀과 새는 눈치가 9단
태주는 반에서 넘버3다. 그런데 전학 온 학생 조필이 넘버2인 재철과 붙어 그를 눌렀다. 태주는 조필과 싸워야할까 아니면 새로운 넘버2로 모시고 자신은 넘버4 자리를 받아들여야 할까.
이변이 없는 한 태주는 조필을 순순히 넘버2로 인정할 것이다. 자신보다 센 재철을 누른 조필을 이길 확률이 희박하고 괜히 몸만 다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구성원 사이의 상호관계를 보고 간접적으로 상호관계를 판단하는 능력을 ‘이행적 추론’(transitive reasoning)이라고 부른다.

미국 네브라스카대 조류인지센터 앨런 본드 박사팀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행적 추론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처럼 눈치 빠른 동물은 어치의 일종인 피뇬 제이(pinyon jay). 북아메리카에 사는 이 녀석은 최대 500마리까지 무리를 지어 사는데 각 구성원의 서열이 매겨져 있다. 만일 이들이 일일이 맞붙어 서열을 정한다면 100마리로 된 무리일 경우도 한 마리당 99회, 총 4950회의 결전이 펼쳐져야 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시간 낭비는 물론 늘 부상에 시달릴 것이다. 물론 이런 소모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피뇬 제이는 이행적 추론을 통해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는걸까.
연구자들은 서로 알지 못하는 피뇬 제이를 두 그룹으로 나눠 서열을 정하게 했다. 그 뒤 1그룹의 넘버3에게 2그룹의 넘버1과 넘버2의 관계를 보여줬다. 이들이 먹이를 두고 보이는 행동을 관찰하면 그 서열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들 사이에 땅콩을 놓아두면 넘버2는 우물쭈물 눈치를 보지만 넘버1은 당당히 집어먹는다.

까마귀과에 속하는 새들.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갈가마귀, 뉴칼레도니아 까마귀, 잭도(Jackdaw), 당까마귀, 어치, 잣까마귀.

다음에 1그룹의 넘버2와 2그룹의 넘버2를 함께 뒀다. 처음 만난 녀석들은 한동안 탐색전을 벌이다 2그룹의 넘버2가 땅콩을 먹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1그룹의 넘버3는 2그룹의 넘버2와 함께 하게 되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태주가 조필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다.
연구자들은 “큰 무리를 이루는 동물일수록 구성원을 알아보고 상호관계를 추론하는 인지능력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피뇬 제이를 통해 복잡한 사회가 인지능력의 진화에 결정적 계기가 됨을 보였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까마귀과 새의 행동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저술가이자 과학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이 바로 그곳. 최 교수팀이 연구하고 있는 까마귀과 새는 바로 까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고 여기지만 사실 까치는 까마귀 패밀리의 일원이다.

연구실 까치팀의 이상임씨(박사과정)는 “지금까지는 주로 번식과 관련된 까치의 생태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며 “조만간 까치의 지능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까치를 관찰하다보면 그 뛰어난 지능에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이상임씨는 “까치는 집을 지을 때 나뭇가지를 신중하게 고른다”며 “일단 물고 가다가도 모양이 더 좋은 나뭇가지를 발견하면 바꿔치기 한다”고 말했다. 나뭇가지를 대충 끼워 넣어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도 탁월하다. 최근 정전 사고나 과수원 피해 등으로 까치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면서 까치사냥이 종종 벌어진다. 특히 한전에서는 직업포수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효성이 갈수록 떨어진다. 이상임씨는 “멀리서 한전 차량이 다가오는 것만 봐도 자기를 잡으러오는 줄 알고 줄행랑을 친다고 들었다”며 “이렇게 똑똑한 까치를 죽인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고 덧붙였다. 무작정 잡아 죽이기보다는 인간과 까치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상임씨를 비롯해 까치팀은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얼마 전 네 살짜리 수컷 까복이가 갑자기 죽었기 때문. 까복이는 애완견 못지않은 눈치9단에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한 ‘영재’까치였다. 이상임씨는 “우리가 ‘깍깍’거리며 까치를 흉내내자 까복이가 역으로 우리 소리를 흉내내 ‘악악’거렸다”며 “사람이 다가가거나 멀리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악악’하는 소리를 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연구자들이 이 소리를 녹음해 분석한 결과, 사람 귀에는 어설프게 들리지만 음성구조학적으로는 사람 소리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까복이를 보내며 연구자들은 까치의 지능을 연구해 우리민족의 친구였던 까치의 ‘위상’을 회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 까마귀와 침팬지의 지능적인 행동 |
까마귀과 새와 영장류는 복잡한 인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행동을 한다.
이들은 먹이를 구하는데 도구를 이용하고 끈을 발로 당겨 매달린 먹이를 먹고
놀이의 의미도 이해한다. 또 은닉한 먹이의 종류를 기억하고
동료간에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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