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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급수의 세상에서 사는 법

기술결정론을 조심하라
‘김산술’이라는 사람이 ‘이기하’라는 사람에게서 1억원을 빌렸다. 이기하는 김산술에게 다음과 같이 돈을 갚는 방법을 제안했다. “내일은 1원을 갚고, 모레는 그 두 배인 2원을 갚고, 그 다음날은 그 두 배인 4원을 갚아라. 이런 방법으로 30일 동안만 갚으면 된다.” 돈을 빌린 김산술은 이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김산술이 갚아야 할 돈은 얼마일까?




내기 이기는 방법은 2배
갑자기 웬 수학 문제냐고 의아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선 답은 1+2+22+… +229=230-1=1073741823으로 갚아야 할 돈은 10억원이 넘는다. 이처럼 기하급수는 인간의 보편적 예측과 관념을 뛰어 넘는다. 반도체 칩의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바로 이런 기하급수의 법칙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언제나 내기에서 이기는 방법을 아는가? 방법이 있다. 이길 확률이 몇%이든지 내기에서 이기는 방법은 계속 내기 금액을 2배로 거는 것이다. 처음에 1만원을 걸어서 지면 그 다음엔 2만원을 건다. 그래도 지면 4만원을 건다. 이렇게 계속 내기 금액을 2배로 걸면 언젠가 한번 이기는 순간에 총 1만원을 따게 돼있다. 간단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기하급수로 늘어가는 내기 금액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1원을 걸었다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30번을 계속 내기하려면 적어도 10억원 이상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내기에서 이기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을 실현하기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판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하급수는 물리적, 공간적으로 제한돼 있는 인간과 자연에 한계를 정해준다.

무어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메모리의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도 기하급수의 법칙이다. 개인용 컴퓨터(PC)에 들어가는 하드디스크 용량이나 인터넷 트래픽은 황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30년 동안 이미 1년에 2배씩 확장돼왔다. 그간 PC의 크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황의 법칙은 같은 용량을 담는 디지털 기기의 크기가 계속 절반씩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는 뜻이다.

메모리의 집적도가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나 황의 법칙은 모두 기하급수의 법칙이다.

이렇게 디지털 기기의 물리적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작아질 때 그 궁극적인 모습이 바로 나노기술에 의한 사회 변화다. 먼지보다 작은 로봇이나 모터의 등장이라는 나노혁명은 황의 법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그 전망을 찾을 수 있다.



나노혁명은 황의 법칙에서
한편 인터넷 트래픽이 1년에 2배씩 확장돼왔다는 것은 그 안을 흐르는 디지털한 것들의 양이 매년 2배씩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바로 디지털혁명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매년 2배씩 커지고 있는 디지털 공간으로 변환되는 동시에 디지털한 것들이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이미 음악이 디지털화됐고, 백과사전이 디지털화됐다. 매장의 판매원과 상점이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로 디지털화됐고, 선생님과 교수의 강의는 디지털화돼 제공되고 있다.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많은 것들이 메신저와 카페, 채팅 소프트웨어로 디지털화됐다.
그런데 이런 디지털의 기하급수적 확장은 단지 기술적인 발전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동인이 기술적 동인과 같이 고려돼야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른바 ‘디카’ 문화는 디지털카메라의 저렴한 보급이라는 기술적, 경제적 동인이 영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잠재적인 사회문화적 동인과 결합됐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졌다.


1999년 영국 런던에 문을 연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카페의 내부. 모든 정보는 디지털화돼 네트워크를 타고 돌아다닌다.

인터넷 트래픽도 매년 2배씩 안정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평균적으로 매년 2배의 성장이 있었던 것일 뿐, 실제로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4년 동안 100배가 성장했다. 평균 16배 정도 성장했어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월드와이드웹(WWW)의 보급과 인터넷의 급격한 상용화라는 사회문화와 경제적 동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술 결정론 조심해야
앞으로 황의 법칙은 어떤 유토피아로 데려다 줄 것인가? 황의 법칙보다 더 본질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은 열역학 제3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성이나 무질서도가 늘어난다는 열역학 제3법칙은 황의 법칙으로 발생하는 사회의 변화가 언제나 ‘향상’일 수만은 없음을 말해준다.

더불어 황의 법칙은 단순히 정량적인 것에 관한 법칙이 아니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변증법의 법칙을 생각한다면 황의 법칙에서 말하는 양적 변화가 어느 시점에서는 사회의 질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그 시점과 질적 변화의 분야가 어딘지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사회의 변화라는 것이 언제나 과학기술적 동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황의 법칙을 절대적으로 따라 이를 기반으로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면 흔히 저지르기 쉬운 기술 결정론적 시각을 드러내기 쉽다.

디지털 발전을 이끄는 법칙들을 기반으로 사회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결정론적 시각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20~30년 후에는 지금의 대학교 캠퍼스가 유럽의 성당과 같이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 교육이 강화돼 기존의 오프라인 캠퍼스는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초창기인 12세기부터 21세기인 현재까지 대학은 계속해서 개혁과 변화를 요구받아왔다. 따라서 대학의 미래를 단순히 교육의 디지털화라는 추세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15~20년 후에는 현재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의 용량을 개인의 노트북 컴퓨터에 서 사용할 수 있다. 황의 법칙에 따르면 요즘 휴대전화의 용량이 일반 PC 용량의 100분의 1정도이므로 7~8년 후에는 휴대전화가 PC의 기능을 대신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무어의 법칙이나 황의 법칙은 그 성장의 속도는 다르지만 우리 주변의 디지털 기기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유용한 법칙이다.

다만 그러한 디지털 환경에서 어떤 킬러앱이 나타날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의 욕구, 기술의 발전과 편이성, 경제적 효율성, 사회 문화 제도적 선택이 상호 작용하면서 킬러앱이 나타날것이며, 그 킬러앱을 구상해내고 실현하는 사람이 향후 디지털 시대를 이끌게 될 것이다.

이경전 교수는 KAIST 경영과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동대학에서 경영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전자상거래연구센터 책임연구원과 고려대 경영대학 조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경희대에 재직 중이다. 경영과 기술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 교수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인공지능 응용 및 지식 시스템 등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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