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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왕자 로봇 물고기 - 참치, 황새치, 넙치 완벽 모방에 도전한다


‘띠, 띠, 띠.’ 2020년 8월의 평화로운 어느 오후 남해 제2 이어도해양과학기지 관제실에 요란스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은 레이더에 뭔가 포착됐다는 신호다. 전방 473m, 수심 1450m 지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감지됐다. ‘지금부터 작전명 튜나, 작전명 튜나를 수행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과학기지 해저의 수족관 문이 열리고 참치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헤엄쳐 나간다. 이 참치가 바로 오늘 임무를 수행할 로봇 요원이다.



참치, 창꼬치부터 바닷가재까지
위 상황은 가상으로 꾸민 것이다. 하지만 100% 허구는 아니다. 로봇 물고기가 바다를 누비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해양공학자들의 가장 큰 꿈 중 하나다.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세계 최초로 로봇 물고기‘찰리’(Charlie)를 선보이기도 했다. 찰리는 약 1.2m 길이에 3000개 정도의 부품으로 이뤄졌으며 2마력짜리 모터 6개로 움직인다. 찰리는 물고기 중에서도 참치의 모양과 움직임을 모방했는데, 이는 물고기 중 추진효율이 가장 좋은 것이 참치이기 때문이다. MIT는 ‘로봇 참치 II’와 창꼬치를 모방한 ‘로보파이크’(roboPike)도 개발했다.

이처럼 생물체의 기능을 모방해 공학적으로 응용하려는 분야가 생체모방공학 혹은 생물모방공학이라 불리는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다. 인공효소나 인공생체막을 개발하는 생체모방화학, 사람 손을 꼭 닮은 로봇 손을 만드는 바이오일렉트로닉스(bioelectronics), 인공심장 등 인공장기를 연구하는 바이오닉스(bionics) 혹은 바이오미케닉스 (biomechanics)는 모두 생체모방공학의 분야다. 로봇 물고기는 생체모방공학 중 해양생물체와 관련된 분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결과물인 셈이다. 그간 미국을 중심으로 로봇 물고기 연구는 활발히 진행돼 왔다. 2001년 MIT 드레이퍼연구소(Draper Laboratory)는 ‘드레이퍼 참치’(Draper tuna)를 공개했다. 드레이퍼 참치는 초속 약 1.3m로 헤엄을 치며 수심, 속도, 위치 등을 파악하는 센서를 갖추고 3시간 동안 작동할 수 있는 동력을 달았다. 특히 드레이퍼 참치는 물 밖으로 나온 뒤 물 속에서 얻은 정보를 이더넷(ethernet)으로 내보낼 수 있다.

1999년 일본 미쓰비시가 수족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개발한 로봇 물고기.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실러캔스를 4억년전 모습과 똑같이 재현했다. 제작 기간만 4년, 비용은 100만달러가 들었다.

바닷가재 로봇도 있다. 바닷가재 로봇은 로봇 물고기에 비해 기술적으로 비교적 쉬운 편이다. 헤엄을 칠 필요가 없어 기계적인 모방이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스이스턴대가 만든 바닷가재 로봇은 다리 8개에 형상기억소재로 만들어진 힘줄이 들어 있어 진짜 바닷가재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또 수중 음파탐지기를 달고 스스로 연안이나 강을 탐사할 수 있다. 대당 제작비도 300달러밖에 들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연구 목적의 로봇 물고기를 개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아쿠아로이드(Aquaroid)라는 장난감 회사에서는 상업용으로 로봇 물고기, 로봇 거북, 로봇 해파리와 같은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값이 매우 비싸 일반인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2000년 도쿄 장난감쇼에 등장한 장난감 로봇 물고기. 일본 기업 다카라(Takara)는 이 외에도 등에 태양전지를 단 새우와 게를 선보였다. 가격은 1만엔 선.

그렇다면 물고기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현재 해저 탐사에 사용되는 무인 잠수정은 연결선이 있는 원격조종 잠수정(ROV)과 연결선이 없는 자율형 잠수정(AUV)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유인 잠수정 수준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인 잠수정(UUV)이 연구되고 있다.

AUV를 발전시켜 UUV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AUV는 프로펠러로 추진되고 이 때 동력원은 배터리인데, 심한 경우 AUV 전체 부피의 70%까지 배터리가 차지한다. 더욱이 이런 추진 장치는 효율이 낮고 빨리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현재 장비로는 AUV가 장시간 작동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개는 미리 정해진 항로를 따라 몇 시간 계측하고 이를 내부 기록장치에 기억한 다음 수면 위로 떠오른다.


황새치의 속도와 복어의 지느러미

반면 160만년 동안 진화한 물고기는 추진력이나 조종력이 물속에서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몸의 구조를 갖고 있다. 상어나 물개, 돌고래가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내며 먹이를 따라간다든지 순식간에 상하좌우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TV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현재 인간이 만드는 어떤 기계도 물속에서 이와 같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한다. 1.5m도 되지 않는 황새치가 시속 100km로 헤엄치는 것과 같은 높은 효율을 가진 추진장치는 인간이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복어처럼 느리게 헤엄치는 물고기는 아주 작은 지느러미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효과적으로 제어한다. 복어가 선회하거나 물 속에 정지해 있는 위치제어 능력은 AUV나 ROV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따라서 로봇 물고기는 바로 UUV의 미래 모델로 여겨진다.

실제로 1994년 MIT가 진짜 참치 지느러미와 유체역학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설계한 로봇 참치로 실험한 결과 프로펠러보다 지느러미가 훨씬 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느러미는 프로펠러의 날보다 더 넓은 면적의 물을 밀어내기 때문에 그만큼 더 큰 추진력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프로펠러의 에너지 효율은 70%인데 비해 로봇 참치의 지느러미는 87%나 됐다.

MIT 드래이퍼연구소가 2001년 공개한 ‘드래이퍼 참치’. 노란 지느러미가 인상적이다. 몸길이 약 2.5m, 무게는 112kg 가량.

로봇 물고기를 개발하는 데는 군사적인 이유도 있다. 로봇 물고기가 실용화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군사적인 목적으로는 일부 단편적인 기능만 가진 로봇 물고기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바닷가재 로봇이 좋은 예다. 바닷가재 로봇은 해안의 수중 기뢰를 찾는다든지 해저 바닥을 탐사하는데 효과적이다.

최근 개발되는 수중 기뢰는 연안의 수심이 낮은 해저 바닥에 일부분 묻히도록 설계된다. 이 때문에 음파탐지기로 탐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잠수부가 직접 찾거나 돌고래 등을 훈련시켜 탐지하기도 하는데 이 방법들은 위험성이 높고 신속한 작전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바닷가재 로봇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바닷가재 로봇은 로봇 물고기에 비해 비교적 제작이 쉽고 작동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며 바닥을 탐사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넙치처럼 몸이 납작한 로봇 물고기도 있다. 이런 모양의 로봇 물고기는 물속에서 해류나 조류의 흐름을 따라 미끄러지듯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닥에 납작하게 머물 수도 있어 어선의 고기잡이 그물 등을 피해 장시간 물속에 머물 수 있다. 이는 군사적인 용도에서 보면 상당히 매력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되는 로봇 물고기 연구는 상당수 군사적인 목적이다.


유체 연구 병행해야

로봇 물고기를 실제 물고기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물고기의 몸체, 지느러미, 꼬리 등의 운동을 단독 및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찰리 이후 겨우 10년 정도 연구가 진행된 현재 단계에서 기계적으로 더욱 진화한 로봇 물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물고기의 유동을 이해해야 한다. 물고기의 움직임은 주위 유체의 움직임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유동을 이해하는 것은 물고기의 몸체, 지느러미, 꼬리 등의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다. 물고기의 움직임과 관련된 힘의 변화도 이해해야 한다. 연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꼬리나 지느러미가 어떤 운동의 조합인지, 어떤 운동이 최적의 효율을 보이는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동시에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직선 및 선회운동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기법과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도 필수적이다.

진짜 해파리일까? 사실은 해파리를 꼭 빼닮은 로봇 해파리. 자세히 보면 투명한 몸통 사이로 기계 장치가 선명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물고기 꼬리를 포함한 뒷부분의 움직임이추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이 움직임이 물고기 앞부분의 운동과 연결되면 순간적으로 급속히 추진된다거나 지느러미가 선회에 큰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지느러미의 움직임만 하더라도 단순한 좌우운동이 아니라 마치 노를 젓는 것처럼 복잡한 형태다. 이런 움직임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 단계적인 실험과 수치계산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학적인 적용이 쉬운 단계는 아니다.

실제 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엄쳐 다니기 위해서 주위 환경을 판단할 수 있는 탐지기능과 지능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제어시스템을 설계, 적용하는 것도 대단히 큰 연구 분야다.
물고기의 재질과 형상을 모방하고 이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재료분야의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적인 크기와 모양이 실제 물고기와 비슷하고 움직임도 유사한 경우에는 수중 소나를 이용하더라도 실제 물고기와 로봇 물고기를 구별하기가 아주 힘들어진다. 따라서 탐지를 피해 적의 해안에 쉽게 접근해 정보를 수집하고 시설이나 기뢰 등을 탐지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간단한 전투나 자폭 등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연구는 군사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MIT 드래이퍼연구소가 2001년 공개한 ‘드래이퍼 참치’. 노란 지느러미가 인상적이다. 몸길이 약 2.5m, 무게는 112kg 가량.
로봇 물고기는 진화 중
몇 년 전 미국에서는 ‘씨퀘스트’(SeaQuest)라는 TV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다. 씨퀘스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타트렉’(StarTrek)과 유사한 SF 드라마인데, 특이하게도 바다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무엇보다도 씨퀘스트에는 스타트렉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와 비견될 만큼 대단히 큰 잠수함이 등장하는데, 이 잠수함이 바로 로봇 물고기다. 잠수함 뒷면 추진기는 물개 꼬리와 같은 모양으로 돼 있고, 전체 모습은 바다사자와 닮았다. 드라마 속에서 이 잠수함은 엄청난 속도로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닌다.

현재 연구되는 로봇 물고기를 보면 이런 잠수함이 공상과학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개발될 로봇 물고기는 스스로 환경에 적응해 진화할 것이다. 물속 흐름의 변화에 따라 로봇 물고기의 거동과 추진방법이 달라지도록 설계될 것이며 이를 위해 지능적인 제어장치가 설치될 것이다.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미래 기술 전시회 ‘넥스트페스트’에 출품된 ‘생물전자학적 돌고래’(bionic dolphin). 돌고래 모습을 한 유인잠수함의 일종이다. 수면에서는 시속 60km, 해저에서는 시속 30km 정도로 달릴 수 있다.

몇 십 년 뒤에는 160만년을 진화한 진짜 물고기보다 똑똑한 로봇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쳐 다닐지도 모른다. 로봇 물고기들이 그룹을 이뤄 임무를 띠고 바다를 탐사할 수도 있다. 앞으로 바다는 로봇 물고기의 거대한 ‘수족관’이 될 것이다. 로봇 물고기를 타고 심해 관광을 즐기며 미국과 한국을 여행하게 될 푸른 미래를 상상해 본다.


김용환 교수는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해양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선급협회 연구원, MIT 연구교원을 거쳐 2004년부터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선박 및 해양구조물의 운동해석과 군사기술 연구가 주된 관심 분야다.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에서 개발한 로봇 물고기 ‘캘리봇’(Calibot). 머리와 몸통 앞부분은 고정돼 있지만 몸통 뒷부분과 꼬리는 실제 물고기처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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