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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淸溪川)


온도 측정 전문가 김택진씨는 요즘 들어 청계천이 달라진 차이를 부쩍 실감한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열화상 측정장비로 청계천을 찍고 있다. 김씨가 사용하는 장비명은 일명 ‘열추적기’. 6500만원을 호가하는 캠코더를 닮은 이 장비는 주변의 민감한 열변화를 정교하게 짚어낸다.

“카메라에 담긴 화면을 보면 차갑게 보이는 부분이 확실히 늘어났어요. 하천을 따라 흐르는 물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이 장비를 이용해 청계천 복원 전후의 온도차를 측정해왔다. 마침 이날은 청계천에 물을 흘리는 날이라서 네 번째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특히 통수가 되는 날에는 온도 변화가 눈에 띈다.



레코드 마니아로 20년 넘게 청계천을 들락거린 양희섭씨도 변화를 실감한다. 시원하게 뚫린 하늘도 그렇거니와 자주 살랑대는 바람에 청량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청계고가가 있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느낌인지 실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광교에서 중랑천까지 훤히 뚫린 모습만 봐도 시원합니다.”

징검다리가 놓인 하류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물이 많이 들 때면 중랑천에서 올라온 붕어, 가재가 잡힌다는 소리도 들린다. 가을비에 촉촉이 젖은 벌개미취와 돌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옥잠화가 운치를 한껏 북돋운다.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이 되자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천변으로 산책을 나온다. 은은하고 신비감을 주는 오색 조명이 뿜어 나오는 산책로를 거니는 연인들의 수도 부쩍 늘었다. 2005년 9월의 어느 오후 청계천은 그렇게 서울 시민의 품속으로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치수(治水)와 요수(樂水)의 2중주
길이 13.7km인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 물길은 원래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에서 나온 모든 물이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진 뒤 한강으로 빠진다. 발원지에서 중랑천과 합류 지점까지의 길이는 13.7km, 광통교에서 오간수문에 이르는 본류의 하폭은 10~30m였다. 이런 청계천이 역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411년(태종 11년) 개천 사업 때다.
하지만 600여년간 청계천은 여러 차례 모습을 바꿨다. 2003년 7월 청계 고가도로의 철거가 시작된 뒤 2년3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청계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서울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는 철거됐고 하천을 덮었던 콘크리트 더미가 걷혔다. 하수 처리를 대신할 새로운 하수관들이 천변을 따라 매설됐으며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22개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계천의 시발점인 통수로에 자리한 청계 광장과 야광벽화,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분수 등 새로운 명물도 함께 들어섰다.
 
하천의 구조는 토지 매입과 여러 가지 여건상 다양한 모습으로 설계됐다. 청계천복원추진본부 홍보관계자는 “상류쪽은 도심형 하천인 콘크리트 직강형 구조로, 하류쪽은 수변 공간에 녹지와 경사면이 있는 생태하천 구조로 나눠 개발했다”고 말한다. 양재천과 같은 생태하천의 모습을 만끽하려면 하류쪽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림설명) ‘가을은 청계천에서 시작된다.’ 가을향이 물씬 풍기는 어느 오후 청계천변에 들꽃이 한가롭게 피어있다.



무엇보다 이번 복원의 핵심은 상류에 어떻게 물을 공급하느냐에 있었다. 상수원 고갈 문제도 있지만 청계천은 원래 여름 한철만 지나면 하천 바닥이 드러나는 건천(乾川)에 속한다.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 늘 말라 있다.

그러나 청계천이 생태하천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하루 최소 12만t의 물이 필요하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매일 청계천에는 잠실대교 부근 자양취수장에서 퍼올린 9만8000t의 한강물과 도심부 지하철역에서 쏟아지는 지하수 2만2000t이 공급된다. 자양취수장에서 퍼올린 한강물은 6km의 관로를 따라 뚝섬 정수장으로 흘러간 다음 정수 과정을 거쳐 물고기가 살 수 있는 2급수로 바뀐다. 정수된 물은 다시 11km의 관로를 따라 청계광장, 삼각동, 동대문, 성북천 하류 등 4개 지점으로 흘러들어 폭포, 분수, 터널을 통해 청계천에 유입된다.

이렇게 들어온 물이 흐르는 양을 조절하기 위해 청계천 곳곳에 여울과 소가 설치돼 있다. 청계천의 평소 유속은 시속 0.9km정도. 너무 많은 물이 흘러가버리지 않으면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유속이라는 게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수 기능을 대체한 만큼 청계천에는 독특한 수방 대책도 마련돼 있다. 현재 청계천 양안에는 편도 2차로 정도의 기존 복개구조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 평상시에는 그 아래 하수로로 주택가 하수가 흐른다. 만일 장마철 폭우로 하수로에 빗물이 가득 차면 한강물이나 지하수 등 인공적으로 끌어들인 물은 차단되고 복개구조물과 청계천을 가로막고 있는 석벽의 수문이 열리면서 청계천으로 흘러든다.

청계천에 인공적으로 물을 흘려보내는데는 하루 238만원, 연간 8억7000만원이 전기료로 들어간다. 유지·관리 비용으로 전기료와 인건비를 합치면 연간 18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시와 수자원공사는 청계천 물 값을 무료로 사용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청계천변을 따라 이팝나무를 심은데도 나름 사연이 있다. 잿빛 나무껍질에 잔털이 나는 이 나무는 높이 25m, 폭 8m까지 성장하며 생육이 강하고 사후 관리가 쉬워 관상용으로 애용돼 왔다.




나무는 수심이 30~40cm에 불과한 청계천 수질 관리에 도움이 된다. 여름철에 용존산소가 일시적으로 고갈될 수 있는데, 가로수 그늘이 있으면 그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철 도시 열섬 현상을 줄이고, 공기를 정화하며, 소음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가로수는 도시인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서울시측은 이들 가로수가 시야에서 나무나 풀이 보이는 ‘녹시율’(綠視率)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청계천변에 가로수가 있으면 녹시율이 28%까지 올라간다고 밝히고 있다. 녹시율이 30%를 넘으면 사람들은 쾌적감을 느낀다.

청계천은 ‘風’ 맞았다 

최근 청계천을 걸어본 사람들은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다고들 말한다. 그 변화의 흐름은 체감 온도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다. 서울로 불어오는 서풍은 동서로 곧게 이어지는 청계천변을 따라 오염된 공기와 열을 거둬간다.

얼마 전 시정개발연구원은 청계천 일대의 기온이 도심의 인근 지역 평균보다 낮게 조사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월말 통수(通水) 시험 당시 청계8가 숭인빌딩 앞과 약 400m 떨어진 신설동 왕산로 일대의 기온을 측정해 비교한 결과 청계8가 쪽은 평균 3.6℃ 낮게 나온 것.
연구팀은 열화상측정장비로 청계8가와 왕산로 양쪽에서 10개 지점의 기온을 측정했다. 그 결과 청계8가는 평균 32.7℃인데 비해 왕산로는 36.3℃까지 올라갔으며 같은 날 오후 청계8가 측정 지점 10곳 중 물이 흐르는 수면 바로 위 온도는 27.7℃까지 떨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왕산로 중심부(37.3℃)보다 무려 9.6℃나 낮게 나온 수치.

중랑천과 만나는 하류까지 시원하게 뚫린 청계천의 야경. 사진은 시작점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전경.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이 도심의 기온을 떨어뜨리는 ‘냉각수’ 기능을 톡톡히 한 것이다. 이 연구를 총괄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하 시정연) 김운수 청계천지원연구단장은 “청계천이 개통돼 본격적으로 물이 흐르면 열섬현상을 상당히 완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경향은 물이 고여 있을 때보다 흐를 때 더 뚜렷이 나타난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청계천에 물이 흐르게 되면 기온이 평균 5%, 최대 13% 떨어져 청계천 주변 온도가 26∼28.5℃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여름 도심 평균 기온인 30℃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김 단장은 그 원인을 청계천 통수와 자동차 운행 감소, 고가도로 철거에 따른 바람길 형성에서 찾는다. 또 천변에 심은 수생식물과 가로수가 자라나 녹지면적이 늘어나면서 열섬 효과가 떨어진 것도 또 다른 이유라고 덧붙였다.

복원 후 바람이 들고 나는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청계8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저녁때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청계천 복원 후 청계로의 평균 풍속도 지난해 보다 50%가량 빨라졌다. 찬 공기 덩어리는 최대 초속 3m 속도로 밀려들면서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시정연 연구팀이 청계천 복원 공사 착공 전인 2002년 7월 풍속 자료와 복원 후 물이 흐르는 상태에서의 풍속을 비교한 모의실험 결과에서도 평균 풍속은 2.2~7.1%, 최대 풍속은 2.8~1.6%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측정 결과에서도 청계천 인근의 7월 평균 풍속은 2001년과 2002년 초속 0.7m, 2003년과 2004년 0.6m였으나, 올 들어 0.9m로 빨라졌다. 초속 0.9m의 바람은 얼굴에 바람을 약하게 느끼는 정도다. 바람이 느껴진다는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말이 거짓은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물론 서울 전체의 7월 평균 풍속이 초속 2m인 점과 비교하면 느리지만 복원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임은 분명하다는 게 서울시측의 설명이다.

야생이 돌아온다

이런 바람은 열섬 완화뿐만 아니라 대기오염을 줄이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서울시가 내놓은 청계천 복원 타당성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복원 공사 구간의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차량 운행이 줄어들면서 미세먼지(PM10)와 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s) 같은 대기오염물질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물과 빛’의 예술. 살랑대는 바람과 떨어지는 물소리는 청계천의 밤에 청량감을 더한다.

변화의 조짐은 기온과 바람의 방향에서만 발견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호우로 물이 불어난 청계천에서 잉어 수백 마리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 목격된 것은 이번 복원이 가져온 생태 환경 변화를 잘 설명한다.

최근 청계천에서 목격된 동물은 청둥오리, 백로 같은 조류와 잉어, 미꾸라지, 피라미, 메기 등 수십종에 이른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군자교에서 중랑천의 한강하류 지점까지 4.5km 구간은 매년 가을 쇠오리, 흰뺨검둥오리를 비롯한 40여종의 철새들이 날아든다.  

서울시는 청계천 하류에 모여드는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이곳에 갈대, 억새 같은 수변식물을 심었다. 일반인 출입을 통제해 이 일대를 ‘철새의 낙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청계천 주변은 옥잠화, 좀작살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풀이 자라는 야생의 식물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물에 잠겨도 죽지 않는 갯버들, 갈대, 노랑꽃창포, 달뿌리풀, 물억새 등 수생식물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들 식물군은 작은 동물과 곤충들이 오가는 도시의 생태통로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 인근 남산, 북악산, 북한산 계곡에 조성된 소규모 생태연못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하나당 3~7t 갸량의 물을 담는 인공 연못인 생태연못은 도심속 작은 동물들의 서식처로 활용된다. 학자들은 최근 서울 시내에 조성된 54개 생태연못의 생태환경이 안정되면서 청계천과 연결돼 생태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도심의 실핏줄을 복원하라
한편에선 청계천 복원이 불러온 효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김운수 단장은 “다른 나라에서도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던 복개천을 이처럼 복원한 사례는 아직 없다”면서 “청계천 복원은 향후 도시화 과정에서 복개된 도심 하천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른 지류들 역시 청계천처럼 복원하느냐 그냥 둘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 아스팔트에 갇혀 있거나 말라버린 하천을 다시 살리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재 서울 시내에 흐르는 법정하천은 청계천을 포함해 모두 36개. 각 구청에서 관리하는 소하천 18개를 더하면 54개에 이른다. 서울을 동서로 흐르는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의 중랑천과 홍제천, 남쪽 안양천과 탄천과 연결되는 물길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길이만 합해도 260여km나 된다.

문제는 하천의 상당수가 물이 잘 흐르지 않는 건천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역면적이 5m2 정도면 관리여부에 따라 다시 물이 흐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운수 단장도 “양재천이나 성내천처럼 하천 복원에 성공한 사례가 이미 있다”면서 “여기에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를 더하면 도심 하천 재정비의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재천은 5년간의 복원 사업 끝에 지난 2000년 2급수의 자연하천으로 복원됐다. 성내천 역시 5km 구간이 자연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났다.

실제 서울시는 청계천에 이어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복개된 청계천 주변 하천을 복원하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서울시의 하천정비 계획이 마무리되는 2012년께면 상당수 하천이 자연하천으로 되살아날 전망이다. 1차로 2007년까지 복원하기로 한 성북천, 정릉천, 홍제천 1054m 가운데 성북천 590m, 정릉천 160m, 홍제천 170m는 이미 구간 복원사업이 끝났다.

경제성장의 기치 아래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물길을 잃어버린 도심의 실핏줄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있다.



서울 도심을 흐르는 7백리 물길
“우와, 서울에 이렇게나 많은 하천이 있다니!”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하천의 개수를 알게되면 누구나 대뜸 이런 반응을 보인다. 시와 각 구청이 관리하는 서울을 흐르는 하천, 소하천 수는 모두 54개. 전체 물길의 길이는 260km에 달한다. 이 가운데 25개 하천(총 길이 128.6km)의 56%인 72km가 부분 복개돼 도로와 주차장, 또는 상가와 아파트가 들어선 상태다. 또 동대문구 전농천, 중랑구 면목천, 성북구 월곡천, 은평구 녹번천, 관악구 봉천천 등 11개 하천은 완전 복개돼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이들 하천에는 엄연한 생태계가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청계천 복원이 도심 하천 복원의 시작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양재천이 도심의 생태하천으로 도시인의 안식처로 돌아왔으며 다른 하천들도 복원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 청계천의 8개 지류 중 법정 2급 하천으로 분류된 성북천, 월곡천, 정릉천은 복원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청계천 뿐만 아니라 그 지류인 성북천이 성공적으로 복원되면 나머지 지류들의 복원은 시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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