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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에게서 사람의 향기를 느끼다 - 침팬지 게놈 완전 해독의 의미


지난 9월 생명과학계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 주목의 대상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침팬지. 과학전문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동시에 침팬지 유전자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발표했다.

가장 큰 뉴스는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등에서 23개 기관, 67명이 참여한 ‘침팬지 염기서열분석 컨소시엄’이 ‘네이처’에 실은 침팬지 유전자 분석 결과다. 이들은 ‘클린트’(Clint)라는 이름의 한 서아프리카 침팬지(Pan troglodytes verus)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발표에 따르면 사람과 침팬지의 염기 서열은 약 3.9% 달랐다. 이는 유전 정보가 들어있지 않은 DNA(정크DNA)를 합친 전체 게놈(genome)의 차이다.

두 종의 염기서열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이 갖는 네 가지 염기(A, T, G, C)의 수는 30억 개로 서로 비슷하다. 유전정보를 가진 DNA만 놓고 볼 때 서로 다르게 나타난 염기 서열은 전체의 1.23%에 해당하는 3500만개, 유전자 일부가 삽입되거나 빠진 부분은 500만개로 나타났다. 이 차이는 사람 간 유전적 거리의 10배, 사람과 생쥐 간 거리의 약 1/10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이 500만개의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갖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전체 30억 개의 염기 서열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두 종의 단백질도 서로 비슷했다. 사람과 침팬지는 단백질 1개당 평균 아미노산 2개 정도의 차이를 보였을 뿐이며 29%의 단백질은 완전히 똑같았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를 비교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침팬지는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종이다. 진화생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제3의 침팬지”라고 비유했을 정도다. 두 종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600만 년 전. 그 뒤로 각자 독립적인 진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돌연변이가 누적됐다. 유전자 분석은 이 시간 궤적을 추적하고 서로 다른 점을 비교해 사람과 침팬지의 차이점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침팬지의 염기서열을 이해하면 사람의 진화과정을 추리해 낼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정자 전쟁이 Y염색체 퇴화 불렀다
이번 게놈 분석에 따르면 사람과 침팬지 염색체의 가장 큰 차이는 남성의 특징을 결정하는 Y염색체다. Y염색체는 두 종이 갈라진 뒤 각 염색체가 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조사한 결과 가장 높은 1.9%의 차이를 보였다. 반대로 가장 변화가 적었던 염색체는 0.94%의 X염색체였다.

상동염색체와 X염색체는 세포 내에서 2개씩 쌍을 이뤄 존재하지만 Y염색체는 부계를 통해 1개만 유전된다. 따라서 Y염색체는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도 수정에 참고할 원본이 없어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유전자를 잃고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1000만년 안에 사람 Y염색체는 유전자를 모두 잃어버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러나 미국 MIT 데이비드 페이지 교수팀의 분석 결과 인간 남성은 600만 년 전 침팬지와 갈라진 뒤 Y염색체에서 16개 유전자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침팬지는 5개의 유전자를 잃어버렸다. 페이지 교수는 “이 속도로 볼 때 사람 Y염색체가 소멸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추측했다.

침팬지 Y염색체는 암컷 침팬지들을 둘러싼 수컷끼리의 경쟁이 거듭되며 정자 형성에 관련된 유전자를 제외하고는 진화과정에서 조금씩 유전자를 잃어버렸다.

그럼 침팬지 Y염색체의 유전자만 줄어든 이유는 뭘까. 연구팀은 “침팬지 수컷 간의 정자 생산 경쟁 때문”이라고 말한다. 침팬지는 힘센 수컷이 경쟁자를 누르고 암컷들을 차지하지만, 암컷은 여러 수컷과 돌아가며 교미한다. 따라서 정자를 많이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일수록 자손을 남길 확률이 크므로 Y염색체는 정자를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급속히 진화했다.

Y염색체의 다른 유전자는 퇴화되더라도 번식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았기에 진화과정에서 조금씩 사라졌고, 마침내 정자 생산에 관련된 기능만 비대하게 커졌다. 실제로 침팬지의 고환은 신체 비율을 고려하면 인간에 비해 10배나 크다. ‘정자 전쟁’의 저자인 영국 맨체스터대의 로빈 베이커 교수는 “침팬지는 다른 수컷의 정자를 물리치기 위해 많은 양의 정자를 생산하도록 고환이 진화했다”고 쓰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스반테 파보 박사팀이 5명의 사람과 6마리의 침팬지에서 염기서열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인간과 침팬지 염기서열은 고환에서 32%가 달라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결과는 지난 1일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이에 대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침팬지연구센터 박홍석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에 따르면 두 종은 게놈 구조뿐 아니라 ‘선택적 이어맞추기’(alternative splicing)를 통해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만들었다. 선택적 삽입이란 같은 DNA의 일부분을 서로 다르게 조합해 원래의 mRNA와 다른 mRNA가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같은 유전자를 이용해 전혀 다른 mRNA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침팬지 염기서열 분석 컨소시엄’을 이끈 미국 워싱턴대의 로버트 워터스톤 교수. 그는 지난 2003년 완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사람과 침팬지, 염색체 수 다른 이유
사람과 침팬지의 염색체 수는 각각 23쌍과 24쌍으로 1쌍만 다르다. 이번 연구 결과에서 두 종의 염색체 숫자가 다른 이유가 밝혀졌다. 사람의 2번 염색체는 두 종의 공통 조상이 가졌던 2개의 염색체가 융합돼 생겼고, 침팬지는 2A, 2B 염색체(지금까지는 12, 13번으로 불렀음)로 분리된 채 남아 진화한 것이다. 이밖에도 염색체 가운데의 잘록한 부분인 중심체(centromere)와 함께 염색체 일부의 순서가 뒤바뀌어 연결된 경우도 진화과정에서 9번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총 53개의 인간 유전자가 침팬지에게 전부(36개) 또는 부분적(17개)으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침팬지는 면역·염증반응을 매개하는 유전자 3개(IL1F7, IL1F8, ICEBERG)가 없다. 수면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의 하나인 ‘트리파소노마 브루세이’(Trypanosoma brucei)에 저항성을 가지는 유전자(APOL1)도 침팬지에겐 없다. 사람, 고릴라 등은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이 종류의 수면병에는 걸리지 않는다. 대신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항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SHC box)의 기능을 진화과정에서 상실했다. 박홍석 박사는 “사람과 침팬지 어느 한쪽에서 사라졌거나 기능이 없어진 유전자들을 밝혀낸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침팬지가 진화과정에서 사람과 다른 유전자를 갖게 된 경우도 새롭게 알려졌다. ‘레트로바이러스성 요소’(retroviral elements)는 진화 과정에서 숙주 유전자의 일부분으로 결합돼 자손에게 전달되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말한다.


정상인의 뇌(왼쪽)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심하게 쭈그러든 환자의 뇌(오른쪽). 사람은 이 병에 대항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의 기능을 진화과정에서 상실했다.

침팬지 게놈에는 사람에겐 없는 PtERV1과 PtER2라는 2개의 레트로바이러스성 요소가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들 바이러스가 침팬지의 생식세포를 감염시켜 그 유전자가 자손에게 전해진 것이다.

두 종의 게놈을 비교하면 진화의 속도를 알 수 있다. 면역계, 외부 침입의 방어, 생식, 후각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가장 빨리 진화하는 것들로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인 유전자인 ‘1q21’은 피부에 딱딱한 각질층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표피분화복합체’ 단백질을 만든다.




인간은 왜 침팬지보다 똑똑할까
침팬지 게놈 분석 결과는 인간의 지적 능력이 발달해 온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간의 뇌는 침팬지보다 3배 가까이 크다. 미국 워싱턴대의 워터스톤 교수팀은 언어 능력의 진화와 관련이 깊은 FOXP2라는 유전자가 사람의 진화과정에서 크게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힐 교수와 크리스토퍼 월쉬 교수는 이번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간의 두뇌가 침팬지보다 크고 복잡한 것은 인간만의 새로운 유전자가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존의 유전자가 각각의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DNA 때문에 사람의 뇌가 침팬지의 뇌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뇌 유전자의 15%는 침팬지보다 인간에서 더 활발하게 발현된다. 특히 사람 두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들은 심장, 간 등 다른 장기들과 달리 지난 25만년 동안 급격한 진화를 거듭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인의 뇌(왼쪽)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심하게 쭈그러든 환자의 뇌(오른쪽). 사람은 이 병에 대항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의 기능을 진화과정에서 상실했다.

가장 빨리 진화한 사람의 단백질은 어떤 것일까. 연구팀이 내놓은 답은 전사인자다. 유전정보인 DNA를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주형인 mRNA로 바꾸는 전사(transcription) 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자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이 가장 빨리 진화했다는 것은 사람만의 독특한 형질이 유전자 발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침팬지 염기서열분석 컨소시엄’의 과학자들은 “사람과 침팬지의 외형적 차이가 염기서열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두 종 사이의 유전적 차이에서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으로 인한 변화는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들은 “오히려 많은 부분이 진화와 무관한 유전자 변동(drift)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겉보기에는 매우 다른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적 거리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쥐 2종 사이의 거리 정도에 불과하다.

한편 미국 워싱턴대의 쳉 쩌 박사팀은 이번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과 침팬지 간의 차이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염색체의 일부분이 중복된 채 복제를 거듭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종간 유전적 거리 어떻게 계산하나
사람과 침팬지, 사람과 생쥐 간의 유전적 거리는 어떻게 계산할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홍석 박사는 “1차적으로 두 종의 유전자가 서로 비슷한 정도(homology)를, 2차적으로 게놈의 구조를 기준으로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염기 서열의 순서나 위치가 바뀌는 돌연변이를 겪기도 한다. 진화 과정에서 이런 돌연변이가 어디서 몇 번 일어났는지 계산하고 해당 부분의 유전자 특성을 고려해 최종적인 유전적 거리를 얻는다.

그 결과 왼쪽의 그림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유전적 계통도를 그릴 수 있다. 이를 ‘분자계통분석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염기서열을 아주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1% 정도 다르다’고 결론짓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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