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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로 측정 한계 극복하다 - 물리학상_글라우버·홀·헨쉬

글 | 윤태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ㆍthyoon@korea.ac.kr
“올해 한국인 20대 남자의 표준 키는 173.2 cm로 25년 전보다 6 cm 가까이 커졌습니다.” 2004년 11월 30일 TV 뉴스에 나온 이야기다. ‘자메이카의 신예 스프린터 포웰이 9.77 초의 질주로 육상 남자 100 m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2005년 5월 15일 신문기사 내용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같이 측정결과를 흔히 접하지만 어떤 원리로 측정되고, 측정에 사용된 자나 시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지 못하고 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우리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보는 빛의 성질을 규명하고, 빛을 초정밀 측정에 응용한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빛을 이용하면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물리량, 예를 들면 빛의 속도나 주파수, 길이, 시간 등을 상상할 수 없는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다. 키를 잴 때 쓰는 자나 육상경기에 사용하는 전자시계도 물리학 원리를 이용해 교정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로이 글라우버(80) 교수는 빛의 입자성에 기초한 검출 원리를 양자역학으로 설명해 노벨물리학상을 차지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콜로라도대의 존 홀(71)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뮌헨대의 테오도어 헨쉬(64) 교수가 레이저를 이용한 정밀 측정방법을 개발한 공로로 글라우버 교수와 공동수상했다. 상금 1000만 크로나(13억5000만 원)는 글라우버 교수가 500만, 홀과 헨쉬 교수가 각각 250만 크로나씩 나눠받는다.




빛의 입자성으로 측정 기반 확립
서로 다른 빛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를 들어 촛불이나 전구에서 나오는 빛과 CD플레이어의 레이저는 무엇이 다를까?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로 인해 우리는 금속에서 발생하는 전자의 수를 측정하면 빛다발 내에 존재하는 빛 입자(광자)의 수를 알 수 있게 됐다. 이후에 개발된 거의 모든 빛 검출기는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만약 빛이 단일 파장으로 구성돼 있다면 광자가 일사불란하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결맞음’(coherence) 성질을 갖고, 일반적으로 상쇄간섭이 일어났을 때 빛의 최소 세기는 0이 된다. 그러나 전구에서 나오는 빛의 파동은 여러 진동수와 파장을 갖고 있어 같은 시간에 위상과 진행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

글라우버 교수는 전구 같은 열복사 광원의 특성을 파동보다는 무작위로 분포한 광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했다. 1963년 그는 빛의 결맞음 상태를 수학적으로 정의하고 공간에 따른 광자분포 함수를 도입해 빛의 간섭현상을 양자역학으로 풀었다. 글라우버 교수가 만든 양자광학 이론의 핵심은 빛이 검출될 때 광자는 흡수되고 광자의 양자역학적 상태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후 여러 빛 검출기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이 진행됐으며, 모두 글라우버 교수의 이론으로 실험결과를 설명할 수 있었다.

이는 ‘양자광학’의 탄생을 의미한다. 빛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면 양자역학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빛의 성질을 규명한 하버드대 글라우버 교수.

그러나 양자역학을 이용한 측정의 경우 양자 잡음 때문에 불확정성이 생기는데, 광자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빛을 이용해 정밀한 측정을 할 때는 비록 작지만 양자 잡음 때문에 정확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또다른 2명, 홀과 헨쉬 교수가 주도한 고분해 주파수 측정이나 광주파수 표준기 연구가 바로 양자잡음 한계까지 빛의 세기를 측정한 성공사례다.



레이저로 탄생한 초정밀 분광학
홀과 헨쉬 교수는 레이저를 이용해 빛의 주파수를 마치 빗살처럼 아주 짧은 간격으로 나눠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광주파수 빗’(optical frequency comb)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원자의 에너지 구조를 연구하는 원자분광학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가시광선 영역에 있는 원자의 공명 주파수를 정확히 측정하면 원자의 미세구조와 성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파장을 가진 빛들이 거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모드잠김 현상으로 모든 빛의 위상이 일정해진 결과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100조분의 1 초 폭을 갖는 펄스열을 만들어낸다. 이 펄스열이 만드는 광주파수 빛 성분들을 안정시켜 100조분의 1 이하의 정확도로 빛의 주파수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초정밀 레이저 분광학은 길이나 시간과 같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물리량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측정 표준을 확립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국제도량형위원회는 1960년 1 미터 표준기로 사용되던 순수한 물질로 된 표준자 대신 새로운 미터 정의를 채택했다. 즉 빛의 파장을 이용해 변하지 않는 원자의 고유 주파수를 측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미터를 정의한 것이다. 1 미터는 크립톤원자 특정 분광선 파장의 1 650 763.73 배로 정의됐다.

1967년에 세슘원자 공명 주파수의 9 192 631 770주기 지속시간으로 1 초가 정의됐다. 이때부터 세슘원자시계가 시간과 주파수 측정 표준기가 됐다.

홀 교수는 길이와 시간의 새로운 정의에 근거해 빛의 속도를 빛의 파장과 주파수의 곱으로 측정하려고 했다. 그러다 그는 당시 1 미터를 정의하는 표준기 자체의 정확도가 빛의 속도 측정에서 정확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1983년 빛의 속도가 당시까지 측정된 가장 정확한 값인 299 792 458 m/s로 정의됐다. 결국 빛이 진공에서 1/299 792 458 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가 시간표준과 연계된 새로운 미터 정의로 탄생했다.




새로운 정의에 따라 1 미터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500 THz(테라헤르츠, 1 THz=1012 Hz) 정도 크기의 레이저 주파수를 측정해야 했다. (빛의 속도가 정의돼 있으므로 주파수를 측정해 빛의 파장을 결정한다.) 그러나 주파수표준기인 세슘원자시계의 주파수가 길이표준에 사용되는 광주파수보다 대략 5만배 낮은 진동주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광주파수를 측정하는 것은 물리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1 미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구현하는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빛의 주파수를 간단히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시급히 필요했다.



광주파수 빗, 획기적인 측정용 자
가시광선 영역에서 레이저는 결맞음 성질이 높은 빛을 발생시킨다. 만약 주파수가 일정하게 차이 나는 결맞음 레이저들을 서로 합치면 빛의 간섭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나오는 극초단 펄스를 만들 수 있다. 이를 ‘모드잠김(mode-locking)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현상은 모든 레이저의 위상이 일정한 관계를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참여하는 레이저가 많을수록 더 좁은 펄스를 만들 수 있다. 펨토초 모드잠김 레이저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5 펨토초(10-15초) 폭을 갖는 극초단 레이저 펄스열을 100만 개나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광주파수 빗이다. 즉 일정한 주파수 간격을 가진 100만 대의 레이저를 동시에 만드는 것이다.

(그림설명) 레이저 분광학으로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정밀한 측정을 가능하게 한 콜로라도대 존 홀 교수(맨 왼쪽)와 뮌헨대 테오도어 헨쉬 교수(맨 오른쪽).



1999년 헨쉬 교수는 펨토초 모드잠김 레이저에서 발생하는 광주파수 빗의 모든 주파수를 세슘원자시계로 동시에 간단히 측정할 수 있음을 제안했다. 헨쉬 교수의 방법으로는 광주파수 빗들의 간격뿐만 아니라 시작점에 해당하는 주파수 초기값이 모두 안정된다. 따라서 시간축에서 펄스 간격과 위상차, 주파수축에서 광주파수 빗 간격과 초기 주파수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2000년 홀과 헨쉬 교수는 비슷한 시기에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방법에서는 세슘원자시계와 광주파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광주파수 빗 간격의 정수배로 연결되고, 특정 광주파수 성분은 간단한 수식으로 계산된다. 이렇게 해서 홀과 헨쉬 교수는 한번에 100만 개의 레이저를 세슘원자시계에 동시에 안정시키고 그들의 주파수를 시간표준기로 간단히 측정할 수 있었다.




이제 가시광선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레이저의 광주파수도 광주파수 빗을 이용하면 간단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광주파수 빗이 일종의 측정용 ‘자’ 역할을 하는 셈. 100조분의 1 초까지도 정확히 측정 가능해졌다. 1983년 채택된 시간 표준을 이용한 새로운 미터 표준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광주파수 빗을 안정시키면 시간과 공간에서 펄스들 사이의 위상차도 자동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 이로써 레이저-물질 간 상호작용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일 아토초(10-18초) 펄스도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글라우버 교수는 빛의 입자성을 바탕으로 양자 광 검출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했고, 홀과 헨쉬 교수는 이런 양자 광 검출기를 토대로 빛의 파동성을 대표하는 주파수를 정밀하게 제어해 실시간으로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모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더 정밀하게
새로운 광주파수 빗 기술을 이용하면 현재 가장 정확한 측정 표준기인 세슘원자시계보다 약 100배 더 정확하고 광주파수 영역에서 작동하는 광시계를 개발할 수 있다. 광주파수 빗을 X선 영역으로 확장하면 원자핵시계 개발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분야에 이렇게 극도로 정확한 물리량의 측정이 필요할까?

더 높은 정확도를 가진 주파수표준기는 원자시계를 사용하는 GPS 뿐만 아니라 우주선에 필요한 고도의 항법장치의 신뢰도를 향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중력파 검출용 우주 망원경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데도, 인터넷 통신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파장다중분할 광통신기술을 발전시키는데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레이저를 이용한 정밀 측정 기술의 발달로 육상경기에서 쓰는 시계도 1 초보다 짧은 시간까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정밀 광주파수 측정 기술은 물질과 반물질의 관계를 연구하는 기초 물리학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 수소·반수소 원자 연구가 그 대표적인 예다. 또한 기초 물리상수들이 시간에 대해 정말 변하지 않는지를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다. 현재까지 물리학자들은 물리상수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슘원자시계 수준의 정확도로밖에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광주파수 측정 정확도가 100배 향상되면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좀더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글라우버 교수가 개척한 빛의 양자이론은 1963년 이래로 양자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다. 국내에서도 최근 양자광학 전문가가 증가하고 있고, 아토초 레이저와 빛-물질 상호작용을 비롯한 레이저 분광학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윤태현 교수는
1999년 양자광학으로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0~2001년 미국 질라(JILA)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홀 교수와 함께 광주파수 빗을 이용한 레이저 주파수 측
정과 광시계 연구를 했다. 귀국 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과학기술부 창의사업‘광주파수 제어 연구단’단장으로 광격자시계 연구를 주도했다. 올해 3월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해 양자광학, 원자분광, 광격자시계를 연구하고 있다.

편집자주이번 노벨물리학상은 국제단위계 중 길이와 시간을 정확히 정의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의 숫자와 단위는 국제단위계 규칙을 따라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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