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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중매쟁이 촉매 개발 - 화학상_쇼뱅·그럽스·슈록

글 | 장석복·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교수ㆍsbchang@kaist.ac.kr
“아니, 이럴 수가! 분자의 한 부분이 마치 가위로 자른 것처럼 없어지고 다른 분자와 실로 꿰맨 듯이 연결돼다니!”
1956년 미국 석유화학회사 듀퐁의 연구원 허버트 엘류테리오는 고분자 중합반응에서 얻은 생성물의 조성을 분석하고 나서 기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얻어 어리둥절했다. 물론 당시 엘류테리오는 그가 얻은 결과가 50년 후 다른 과학자들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줄 만큼 매우 중요한 화학반응 방법의 단초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파트너 바꾸는 분자커플 무도회
200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프랑스 페트롤연구소 명예연구소장 이브 쇼뱅 박사(74),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화학과 로버트 그럽스 교수(63),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과 리처드 슈록 교수(60)로 결정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탄소원자들 사이에서 화학결합이 어떻게 붕괴되고 형성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상호교환 화학반응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유기화합물을 실용화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한 공헌을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이 반응을 통해 의약품 제조와 첨단 플라스틱 소재 개발 등 화학산업의 거대한 상업적 잠재력을 실용화시켰다”고 덧붙였다.

즉 수상자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얻기 어려웠던 화합물을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 3명의 화학자는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메달과 함께 1000만크로네(약 13억5000만원)의 상금을 나눠받는다.

분자의 일부분이 자리를 바꿔 새로운 화합물이 생기는 반응 메커니즘을 밝힌 프랑스 페트롤연구소 쇼뱅 박사.

올해 노벨화학상의 핵심은 ‘메타시시스’(metathesis, 복분해) 반응이다. 메타시시스는 그리스어로 ‘사이’를 뜻하는 ‘meta’와 ‘위치시키다’란 뜻인 ‘tithemi’의 합성어로서,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 사이의 자리를 상호 교환한다는 의미다. 이번 수상자들은 분자의 일부분이 자리를 바꿔 새로운 형태의 분자를 얻는 반응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X-a=c와 Y-b=c라는 두 분자가 있다. X, Y, a, b, c는 단일원자 또는 원자 여러 개가 모여 있는 원자군을 의미한다. 단일선은 원자 사이의 단일결합을, 이중선은 이중결합을 뜻한다. 여기에 M=c(M은 금속)라는 촉매를 넣어 반응시키면 X-a=b-Y처럼 새로운 구조의 화합물을 얻을 수 있다. 촉매는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의 반응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분자커플 무도회에 등장한 중매쟁이 촉매. 자리교환 반응을 설명한 그림이다. 파트너가 바뀐 분자커플이 바로 새로운 화합물이다.

특히 원자군이 탄소(C)와 수소(H)로 이뤄진 경우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탄화수소화합물(올레핀) 사이의 상호 자리교환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가 큰 화합물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반응은 분자세계의 무도회에 비유할 수 있다. 두 분자커플이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데, 어느 순간 촉매가 상대 커플의 파트너를 가로챈다. 파트너를 빼앗긴 분자는 할 수 없이 다른 분자와 손을 잡는다. 이렇게 해서 파트너가 바뀐 새로운 두 커플이 생기게 되는 것.

쇼뱅 박사는 이렇게 분자 간 커플교환이 이뤄지는 상세한 과정을 최초로 정확히 묘사했으며, 슈록과 그럽스 교수는 이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 있는 ‘중매쟁이’ 촉매를 개발했다.



블랙박스에서 꺼낸 보물
사실 이 자리교환 반응은 이미 1950년대 이래 석유화학 산업의 발달과 함께 중요한 공업공정으로 생각돼 왔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대량으로 얻어지는 다양한 종류의 저렴한 탄화수소화합물을 좀더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화합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산업계를 중심으로 이 반응을 효율적으로 실행시킬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1967년에는 타이어 제조로 유명한 다국적기업 굿이어의 연구원들이 이 반응에 메타시시스라는 이름을 붙여 논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반응경로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원하는 수준의 촉매를 얻을 수 없었다.

1971년 프랑스 석유연구소에 근무하던 쇼뱅 박사는 독일의 과학잡지에 자리교환 반응의 경로를 제시하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단지 반응경로를 추정하는 수준의 제안으로 여겨졌고, 이에 대한 반향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실제로 발표 후 4년 동안 이 논문은 단 2번만 인용됐다!

하지만 그 뒤 점점 많은 연구자들이 자리교환 반응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각도에서의 추가연구를 통해 쇼뱅의 제안이 정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이 반응은 금속촉매가 반응물과 반응해 사각형 고리구조의 불안정한 중간체를 만들고, 이것이 분해돼 새로운 금속화합물이 생성된 후 다른 반응물과의 반응으로 원하는 생성물을 얻는 경로를 거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그럽스 교수. 자리교환 반응에 필요한 획기적인 촉매를 고안했다.

쇼뱅 박사는 분자커플의 파트너를 낚아채 다른 분자커플과 교환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규명하고, 그 결과 나타나는 새로운 분자커플을 예측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반응경로의 정확한 규명을 계기로 자리교환 반응을 효율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하려는 경쟁이 시작됐다. 당시 몇몇 석유회사와 대학 실험실에서 이 반응을 위해 사용한 촉매는 여러 가지 금속을 동시에 넣어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결국 자리교환 반응이 일종의 ‘블랙박스’였던 셈.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박스 안의 반응을 체계적으로 일으키는 촉매를 직접 제조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자리교환 반응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잘 디자인된 촉매를 개발해야만 했다.



선의의 경쟁
촉매 개발 경쟁의 선두주자는 1972년부터 듀퐁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슈록 교수였다. 그는 1974년 오늘날 ‘슈록카벤’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금속촉매를 만들었다. 이들을 바탕으로 자리교환 반응의 촉매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1975년 MIT로 자리를 옮긴 슈록 교수는 계속해서 분자구조와 성질을 다양하게 조절하며 촉매를 고안했다.
그러던 1990년 그는 이전보다 훨씬 자리교환 반응을 잘 일으키는 몰리브덴(Mo)촉매를 개발했다. 하지만 몰리브덴촉매는 그 자체가 공기나 물에 접촉하면 쉽게 불안정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좀더 실용적인 촉매가 필요했다.

1980년대부터 이 분야에서 슈록 교수와 경쟁자이자 동료였던 캘리포니아공대의 그럽스 교수는 1992년 새로운 형태의 루테늄(Ru)촉매를 만들었다. 7년 뒤 그럽스 교수는 외부 환경 변화에도 매우 안정하며 반응도 획기적으로 잘 일으키는 새로운 형태의 루테늄촉매를 내놓았다. 이 촉매는 현재까지도 학계와 산업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자리교환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를 처음 개발한 미국 MIT 슈록 교수.

필자는 1996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캘리포니아공대의 그럽스 교수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바로 이런 촉매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럽스 교수는 연구할 때 자율성과 기본지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슈록과 그럽스 교수의 경쟁과 협력이 이 분야를 오늘날 응용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청정화학 주도한 실용적 반응

그럽스 교수의 수상으로 캘리포니아공대 출신 과학자 가운데 31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화학상 이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도 이 학교의 교수였다. 한편 매사추세츠공대는 슈록 교수를 포함해 61명의 현직 또는 졸업생이 노벨상을 받았다.

자리교환 반응에서는 인체와 환경에 해롭지 않고 분자량이 적은 화합물(c=c)만이 부산물로 생긴다. 또 이 반응의 촉매는 반응시간을 줄여줄 뿐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새롭게 도입된 촉매의 작용으로 새로운 물성과 구조를 갖는 화합물을 환경친화적으로 대량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자리교환 반응은 이미 암, 알츠하이머, 에이즈 같은 여러 가지 질병에 쓰이는 의약품을 만드는 정밀화학, 고분자물질 같은 첨단 신소재를 개발하는 과정,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는 생화학 연구, 각종 생활용품의 재료가 되는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공정 등에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한 회사에서는 이 반응을 이용해 골프공과 야구배트를 생산하고 있다. 콘택트렌즈나 목욕탕 욕조의 소재를 만드는데 이 반응을 적용하기도 한다.

한 가지 화학반응이 이렇게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선례가 없을 정도다. 자리교환 반응과 촉매 개발은 기초연구가 응용으로 연결되면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기초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결과에 대한 인내심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상업적인 응용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맞볼 수 있음을 이번 노벨화학상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학계는 물론 제약, 농약 업계와 고분자물질 제조회사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교환 반응을 이용한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이 반응이 가져올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자리교환 반응은 석유화학 산업이 발달하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시도해왔다. 이번 수상자들이 실제로 자리교환 반응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이다. 지금은 골프공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이나 의약품을 만드는데 이 반응이 쓰이고 있다.
장석복 교수는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촉매반응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6월~1998년 2월까지 그럽스 교수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KAIST 화학과에서 촉매반응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장 교수는“기초과학 연구의 묘미는 새로움을 창조하고 그것을 응용해 인류에 기여하는 것”이라며“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은 젊은 학생들이 목표를 갖고 도전할만한 분야”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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