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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의 줄기를 잡다 - 세계줄기세포허브, 서울서 문 열어


첫 월급을 탔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고 남은 돈을 일단 은행에 맡긴다. 은행은 고객의 돈을 대신 안전하게 보관할 뿐 아니라 고객이 선택한 예금상품에 따라 이자를 붙여 불려주기도 하고, 큰 돈이 필요한 기업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은행은 자본 흐름의 중심에서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한다. 최근 생명의학 분야에서도 줄기세포 연구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곳이 문을 열었다. 바로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석좌교수가 이끄는 ‘세계줄기세포허브’(WSCH, World Stem Cell Hub)다.



(그림) 10월 19일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현판을 제막한 모습. 왼쪽부터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오명 부총리, 정운찬 서울대총장,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노대통령 내외, 황우석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 윌머트 로슬린연구소 박사.

지난 10월 19일 오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임상연구소 강당에는 세계 최초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언 윌머트 박사, 원숭이 복제 전문가인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 미국 소아당뇨연구재단 로버트 골드스타인 박사, 캘리포니아 재생의학협회 로버트 클라인 박사 등 생명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들었다.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줄기세포 연구의 국제 중심
세계줄기세포허브는 서울대병원 건강검진센터 내에 설치된다. 실험실과 사무실을 통틀어 총 312평. 65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간다. 이 비용은 전액 서울대병원에서 지원한다. 황우석 교수가 허브의 소장을, 서울대 의대 안규리 교수가 임상분야 총책임을, 수의대 강성근 교수가 줄기세포 실험과 보관의 총괄 운영을 각각 맡는다.

줄기세포는 인체를 이루고 있는 200여 가지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줄기세포는 상처 부위를 재생하고 각종 난치병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에 줄기세포 연구 관련 정보나 장비를 공유하면서 연구자들을 하나로 이어줄 중심지 역할을 할 곳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세계 줄기세포 전문가들은 황 교수팀에게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허브 구축을 제안했다. 최근 황 교수팀이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최초로 추출하고 개 복제에 처음 성공하는 등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잇따라 내놓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연구를 하루라도 빨리 실용화하려면 국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황 교수팀은 7월 세계줄기세포허브 설립 계획 초안을 마련했고, 8월 정부에서 최종 승인받았다.

한국 과학의 쌍두마차 서울대 황우석 교수(오른쪽)와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 양‘황’은 지난 9월 열린 특별대담에서“BT와 IT가 만나면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체세포 핵이식 기술 특화
기라성 같은 줄기세포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미국이나 영국을 제치고 한국에 허브가 개설된 결정적인 계기는 황 교수팀이 지난 5월 최초로 난치병 환자 체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난자와 정자가 만난 수정란을 3~5일 동안 키우면 내부에 세포덩어리가 생긴다. 이를 떼어내 배양액이 담긴 용기에 담아 배양하면 배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황 교수팀은 환자의 체세포를 이미 핵을 제거해둔 난자에 이식한 복제배아를 수정란 대신 이용했다. 이 방법이 바로 ‘체세포 핵이식’이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로 얻은 배아줄기세포는 몸에 이식해도 면역거부반응이 생기지 않는다.
이 같은 환자별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기술을 갖고 있는 연구진은 현재 세계에서 황 교수팀이 유일하다. 세계줄기세포허브는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특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록펠러대의 한 연구실. 액체질소 안에 인간배아를 냉동보관하고 있다.

이르면 11월부터 난치병 환자들의 등록이 시작된다. 세계줄기세포허브에 등록된 환자는 자신의 체세포를 채취해 보관할 수 있다. 향후 줄기세포 치료가 실용화되면 이 체세포를 사용해 치료를 받게 되는 것. 먼저 척수 손상이나 파킨슨병처럼 줄기세포 치료를 위한 연구 성과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 신경질환 환자를 중심으로 등록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20여명의 연구원이 세계줄기세포허브에 상주하면서 환자의 체세포를 채취·보관하고,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서울, ‘허브의 허브’로 도약
배아줄기세포를 연구에 이용하려면 다른 세포로 분화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계속 증식하도록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배아줄기세포주’(embryonic stem cell line)라고 한다. 배아줄기세포주는 특수한 환경에 보관하면서 계속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기세포가 오염되거나 죽고 만다. 또한 다른 세포로 분화해버리면 더이상 줄기세포라고 할 수 없다.

배아줄기세포의 관리뿐 아니라 분배도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될 거라고 한다. 증식시킨 배아줄기세포주를 분류해서 황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하기로 한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제공한다는 얘기다.

세계줄기세포허브는 향후 성체줄기세포가 들어있는 탯줄혈액(제대혈)도 관리할 예정이다. 발생 초기에만 얻을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성인의 몸이나 탯줄혈액(제대혈)에서 추출한다. 배아줄기세포가 인체 내 모든 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특정 세포로 분화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8월 기공식을 가진 서울대‘황우석 연구동’의 조감도.

우리나라에 줄기세포허브가 설립됐으니 국내 연구자들이 다른 나라의 기관에 줄기세포주를 등록해 지적재산권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황 교수를 비롯해 세계줄기세포허브 설립을 이끈 연구팀은 앞으로 세계 각국에 줄기세포허브를 구축하고 그들과 긴밀한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황 교수팀은 나라마다 줄기세포 연구 관련 법률이나 규제가 다르기 때문에 허브마다 특성을 충분히 살리면서 인력이나 장비를 공동으로 이용하자고 각국 주요 연구팀과 합의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이 서울 다음의 허브 설립지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서울 허브가 각국 줄기세포허브의 국제본부가 되는 셈. 서울 허브는 연구자들에게 세포분화 연구, 세포치료, 재생의학 분야에서 여러 나라 연구진과 협력하는 새로운 장을 제공할 전망이다. 황우석 교수는 “이 허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줄기세포를 이용해 루게릭병, 당뇨병, 녹내장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열린‘2005 서울 바이오메디 심포지엄’에 참가한 생명의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서울대 의대 안규리 교수, 가운데가 황우석 교수.
그래도 남은 과제들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아직 금물이다. 세계줄기세포허브에 등록한다고 해서 환자들이 모두 당장 치료받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자체적으로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등록 환자 가운데 체세포를 채취할 대상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환자 관리 체계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환자의 체세포 자체를 보관할지 아니면 체세포로 배아줄기세포를 미리 만들어 보관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다른 과제는 체세포 핵이식에 필요한 난자를 확보하는 것. 보건복지부 김성수 사무관은 “현재까지는 환자의 가족이 난자를 기증하는 방법과 환자가 여성인 경우 자신의 난자를 이용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며 “난자 기증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앞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줄기세포를 심장질환 임상치료에 적용하고 있는 모습.

세계줄기세포허브에 소속된 연구자들이 줄기세포 관련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을 때 특허권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 기관에 줄기세포주를 등록한 국내 몇몇 연구진들이 연구 성과의 귀속 여부를 놓고 한때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었다.

세계줄기세포허브가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윤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다. 이에 허브는 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 법적,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합의를 도출해나가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세계줄기세포허브의 개소식 다음날 서울시는 오는 2007년 완공될 시립 보라매공원 신축건물에 ‘공공 제대혈 은행 및 성체줄기세포 연구센터’(가칭)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탯줄혈액을 보관하는 민간업체는 이미 있지만 공공기관이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 따라서 성체줄기세포를 임상에 적용하는 연구도 본격적으로 발동이 걸릴 전망이다.

세계줄기세포허브와 성체줄기세포 연구센터가 생명의학계의 진정한 양대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장밋빛 전망보다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1998년 냉동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처음 추출한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교수.
미국과 영국에도 줄기세포은행 있다
미국과 영국에는 이미 줄기세포은행이 설립돼 있다. 세계에서 처음 줄기세포은행을 설립한 나라는 영국. 지난해 5월 허트포드샤이어에 설립된 영국의 줄기세포은행에서는 국립생물표준통제연구소(NIBSC)가 윤리적으로 승인받은 질 좋은 줄기세포주를 연구 목적으로 보관, 분류, 공급한다. 연구자들은 이곳에 배아, 태아, 성체 조직에서 유래한 모든 줄기세포주를 맡길 수 있다. 단 조정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은행에 있는 줄기세포주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재 이 은행은 런던 킹스칼리지와 뉴캐슬 생명센터 연구팀이 만든 줄기세포주를 보관하고 있다.

은행 설립 자금을 댄 생명기술과 생물학 연구회(BBSRC)의 줄리아 굿펠로우 교수는 “줄기세포 치료는 줄기세포가 뇌나 췌장 같은 특정한 세포로 변하는 과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단지 꿈으로만 끝날 것”이라며 “줄기세포은행은 연구자들에게 양질의 줄기세포를 제공해 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고 말했다.


위스콘신대 연구팀의 인간배아 줄기세포가 신경세포(붉은색)와 교세포(초록색)로 분화한 모습. 교세포는 신경세포를 지탱하고 영양을 공급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바로 지난달 위스콘신대 부설 위셀연구소에 국립배아줄기세포은행을 개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위스콘신대는 제임스 톰슨 박사가 불임치료 후 남은 냉동배아에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최초로 추출한 곳이기도 하다. NIH는 앞으로 4년 간 총 1600만달러(약 17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 은행은 연방정부의 허가 대상에 포함된 줄기세포주를 모아 품질을 관리하고 싼 값에 연구자들에게 분배할 계획이다. 현재 위스콘신대와 호주 줄기세포 인터내셔널의 줄기세포를 확보하고 있다.

서울대 수의대 강성근 교수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줄기세포은행은 대부분 냉동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보관·관리하고 있는 것”이라며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다루는 곳은 서울의 세계줄기세포허브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줄기세포허브가 미국과 영국에 곧 개설하겠다고 한 허브는 이들 기존 줄기세포은행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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