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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바이러스 - 유전자 운반해서 암 치료한다


조류 인플루엔자(AI), 에이즈(AIDS), 간염, 홍역, 소아마비, 광견병. 모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해마다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가는 원흉이자 라틴어로 ‘독(毒)’(virus)을 뜻하는 바이러스는 늘 부정적 이미지로만 각인돼 왔다.

그러나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고, 바이러스도 잘만 이용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최근 바이러스로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바이러스는 ‘달갑잖은 불청객’이란 과거의 악명을 조금씩 벗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암 잡는 바이러스
유전자와 단백질 껍질뿐인 바이러스엔 자신을 복제하는데 필요한 효소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람 같은 숙주 세포 안으로 뚫고 들어가 증식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 때문에 바이러스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키며 성공적으로 살아남았다.

최근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치료에 이용하는 ‘바이러스 치료’(viral therapy)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는 아데노바이러스 유전자를 조작해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아데노바이러스는 결막염이나 감기를 일으킨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독감 바이러스의 독성을 없애 인체에 투여하면 나중에 들어오는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몸 안에 들어간 바이러스는 면역 자극 물질을 만들어 낸다. 이 물질은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붙잡도록 도와준다. 결국 바이러스와 면역세포의 협동 공격을 받은 바이러스는 죽고 만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가 만드는 면역 자극 물질은 세포 내에서 세포독성 T림프구 등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알아채도록 만들어 공격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넣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2004년 중국 연구팀이 암세포를 죽이는 p53 항암 유전자를 아데노바이러스의 유전자에 끼워 넣어 몸 안에 주입했더니 실제로 암세포가 사멸했다.

이미 비슷한 원리로 치료에 적용한 사례가 있다. 1997년 영국 글래스고대 브라운 교수팀은 악성 뇌종양으로 4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의 뇌에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집어넣어 성공적으로 완치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허피스 단순포진 바이러스(HSV)라고 하며 입술 주위에 물집을 일으킨다.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종양 세포만 공격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바이러스였다.



인체 내 면역세포의 일종인 킬러세포(NK)의 모습. 유전자를 변형한 바이러스가 만드는 자극 물질은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암세포를 죽이도록 면역기능을 높이는 유전자를 주입해 암을 치료하는 바이러스를 ‘암 백신’이라고 한다. 바이러스의 끈질긴 증식 능력 덕분에 암 백신은 암이 재발하더라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머크(Merck)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의 감염을 억제하는 백신 개발에 성공해 현재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유전자 조작 없이 자연 상태에서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바이러스도 발견됐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치명적인 뇌종양인 아교모세포종(glioblastoma)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발견해 지난해 5월 ‘바이러스학 저널’에 발표했다. 수포성구내염바이러스(VSV)라는 이 RNA 바이러스는 가축에서 전염병을 일으키며 복제 능력이 우수해 많은 수의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직접 질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치료를 위해 유전자를 몸 안으로 실어나르는 운반체로 쓸 수도 있다. DNA나 짧은 RNA 조각 같은 유전물질을 몸 안으로 집어넣어 신체 기능 이상을 고치거나 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유전자 치료’라고 한다. 이때 유전자를 몸 안으로 운반하는 운반체 역할을 바이러스가 대신하는 것이다.

인제대 의생명공대 김연수 교수는 “바이러스 운반체를 사용하면 유전자 치료 효율이 좋다”며 “에이즈 바이러스(HIV)와 유사한 렌티바이러스가 최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같은 유전성·퇴행성 질환 치료를 위해 연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렌티바이러스는 분열하지 않는 세포를 감염시켜 숙주 염색체에 자신의 유전자를 끼워 넣기 때문에 신경세포 등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특히 꾸준히 치료해야 효과가 있는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서울대 김선영 교수도 레트로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운반체 개발에 성공해 현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레트로바이러스는 RNA 유전정보를 DNA로 바꾸는 역전사효소를 갖고 있는 바이러스로 에이즈 바이러스도 여기에 속한다.

1996년 국내 최초로 학내 벤처기업 ‘바이로메드’를 세운 김 교수는 혈관이 막혀 다리에 통증과 궤양이 생기는 허혈성 족부질환 치료제를 개발해 현재 임상실험 중이며 2007년 시판할 예정이다.

바이러스의 우수한 감염력은 생물학 연구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인 ‘RNA 간섭’(RNAi)이다. 기능을 알고 싶은 유전자의 RNA 조각을 합성해 세포 속에 집어넣으면 RNA 조각이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하는데, 이때 세포에서 나타나지 않는 기능이 원래 알고 싶었던 유전자의 기능이다.

울산대 의대 이기영 교수는 “RNA 간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포 내로 RNA를 전달하는 문제”라며 “바이러스 운반체를 사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는 감염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RNA 조각을 바이러스에 끼워 넣어 감염시키면 RNA가 세포 안으로 쉽게 들어간다.



바이러스의 칼끝을 돌려라
RNA 간섭 기술은 암 치료에도 응용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암세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기능을 가진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해 암의 진행을 늦추거나 암을 일으키는 특정한 유전자의 RNA 조각을 만들어 넣으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은 유전자 치료보다는 수술이 더 효과적이다. 인제대 김연수 교수는 “유전자 치료로 암을 완치하는 것은 어렵고, 주로 다른 방법이 없는 말기 암 환자에게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RNA 간섭은 에이즈 치료에도 사용된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데이비드 볼티모어 교수팀은 RNA 간섭을 이용해 에이즈 바이러스가 번식하는데 필요한 단백질인 CD4와 CCR5을 제거함으로써 에이즈 감염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2000년부터 RNA 간섭을 이용한 치료 연구가 시작돼 현재 미국에만 수십 개의 제약회사에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제약회사 앨나일램(Alnylam)은 C형 간염, 암, 관절염 등을 RNA 간섭으로 치료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으며 동종 업체 시르나(Sirna)에서는 퇴행성 각막질환으로 눈에 혈관이 과다하게 생긴 환자를 치료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시르나는 2004년 9월 ‘RNA로 만든 최초의 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임상실험 허가를 신청해 큰 화제를 모았다.

김연수 교수는 “유전자 전달 개념이 도입된 세포 치료(cell therapy)가 앞으로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 전체 유전자 치료의 약 60%는 이 방법을 쓰고 있고, 유전성·퇴행성 질환에서는 거의 90%가 바이러스 운반체를 이용해 치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의 전자현미경 사진. 컴퓨터로 색을 입혔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역전사효소를 갖고 있는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이다.
바이러스로 바이러스 잡는다
01홍콩대 연구원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바이러스가 담긴 샘플을 운반하고 있다. 홍콩대 연구팀은 사스 환자의 조직에서 이 병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찾아냈다. 02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사진. 내성이 생긴 녹농균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리는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최근엔 바이러스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는 독성을 없앤 독감 바이러스로 독감을 예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먼저 들어온 약한 독감 바이러스에 대항해 만들어진 항체가 나중에 들어오는 ‘진짜’ 독감 바이러스를 내쫓게 하는 방법이다.

경북대 미생물학과 이재열 교수는 “최근 인공 바이러스를 합성하는 연구가 활발한데 이 방법으로 아주 약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면 백신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치료의 기원은 1796년 영국 의사 제너가 개발한 천연두 백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너는 소의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해 몸 속에 항체를 만들어 천연두 바이러스를 예방했다. 서울대 김선영 교수는 “백신은 바이러스 치료의 원조”라며 “최근 각광 받는 유전자 치료도 백신을 유전적으로 변형해 확대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 전담 킬러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만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세균에 기생해 살아가는 바이러스를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고 한다. 세균(bacteria)을 잡아먹는다(phage)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의 막을 뚫고 자신의 유전자를 주입해 세균 안에서 바이러스 유전자와 단백질 껍질을 복제한다. 수많은 개체로 늘어난 박테리오파지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세균을 죽이고 나와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학자들은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내성 세균인 슈퍼박테리아를 없앨 수 있다면 부작용 없는 치료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경북대 이재열 교수는 지난해 11월 펴낸 책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바이러스를 이용해 세균을 없애는 방법에 대한 최근 연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2002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의 일종인 쥐티푸스균을 치사량이 넘게 생쥐에 감염시킨 다음 P22라는 박테리오파지를 넣어줬다. 그 결과 박테리오파지를 투여한 생쥐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생쥐는 모두 죽어버렸다. 박테리오파지가 식중독균을 없앤 것이다.





최근 항생제 내성 세균이 병원을 중심으로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항생제 대신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세균을 처치하자는 주장은 한층 더 힘을 받고 있다. 이 교수는 “병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박테리오파지에 실어 병원성 세균에 넣으면 비병원성 세균으로 바꿀 수도 있다”며 바이러스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단백질을 의학적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2004년 연세대 성백린 교수는 담배 표면에 반점을 만드는 담배식각바이러스(Tobacco Etch Virus)에서 tev라는 단백질분해효소를 분리해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이 효소는 현재까지 알려진 분해효소들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단백질을 자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업적으로 생산하면 고가의 단백질 효소와 의약용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할 수 있어 가치가 크다.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할 단백질도 없어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에서 단백질을 뽑아 쓰는 셈이니 그야말로 ‘벼룩의 간을 내 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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