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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계 맏형, 로봇나라의 재담꾼 되다


20세기 초 체코의 작가 차페크는 자신의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에서 로봇을 인간 노동을 대신하는 불행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그렸다. 하지만 불과 100년도 안 돼 로봇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정점에 서있다. 마치 영혼을 머금은 생명처럼 혼자서 능청스레 움직이는 작은 체구의 몸짓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화려한 조명을 한껏 받아온 재담가에게도 마찬가지다.





EBS 인기 프로그램 ‘로봇파워’ 특집 녹화가 있던 날 쌀쌀한 녹화장안을 유쾌한 언변으로 녹이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마치 추임새를 넣듯 그의 말투는 전투로봇의 격돌에 박진감을 더했다. 차디찬 외모와 날카로운 파편음을 내뿜는 로봇들의 전쟁은 점점 열기를 띠어 갔다. 어느새 주술에라도 걸린 듯 관중의 시선은 모두 한 방향으로 집중된다.

‘개그계 맏형’ 이병진. 로봇과 개그맨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은 조합인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로봇 배틀 진행자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어릴 때부터 기계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기에 얼리 어댑터 기질까지 합쳐졌죠.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외국 로봇 배틀 프로그램도 관심 있게 지켜봤죠. 직접 그 제작현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건 제게 행운이었죠.”
 
그렇게 흔쾌히 방송사의 요청에 화답해 시작한 방송은 어느새 15회를 훌쩍 넘겼다. 오랫동안 로봇 문화에 익숙해져온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도 로봇 마니아층이 얇은 편이다. 최근 학생층에 국한됐던 마니아층이 일반인으로 확대되면서 로봇 경연대회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봇은 온갖 기술이 한데 어우러진 탓에 명칭이나 원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씨 역시 처음엔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로봇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었어요. 고만고만했거든요. 녹화 전 전문잡지와 관련 책을 꼬박꼬박 읽으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죠. 지금은 전문가는 아니어도 전문가 중간은 합니다. 컨설팅도 해줄 정도에요.(웃음)” 

방송분이 늘어나면서 실제로 그의 ‘후원’에 이끌려 대회에 참가하는 팀도 늘기 시작했다. 오랜 경험을 십분 발휘해 처음 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끼를 십분 발휘한다. 그의 ‘장난기’ 어린 멘트는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경기에 언제나 활력소로 작용한다. 휴대형 가스레인지 ‘부루스타’를 닮았다든지, ‘깡통로봇’ 같다는 개성 넘치는 표현을 타고 로봇은 한결 친숙한 존재로 시청자들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고물 로봇 배지기가 선사한 감동
로봇파워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사람과 로봇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깊이는 더해만 간다. 11월말 대회에 출전한 한 농민과 그가 만든 로봇은 이 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배지기’라는 이 허름한 로봇이 무대에 등장하자 녹화장 안은 금방 웃음바다로 변했다. 폐차직전의 용달차 부품과 함석판을 잇고 꿰어 만든 배지기의 차림새가 그야말로 고물 중에 고물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씨는 왠지 평생 경운기만 몰아온 농심(農心)이 직접 로봇을 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막상 출전은 했지만 비싼 부품과 수려한 외모를 뽐낸 다른 출품작에 초라함을 느껴 기권하고 돌아선 농부의 뒤를 ?았다.

“출전을 앞두고 2~3주를 고민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힘겹게 만들었지만 막상 심적 부담이 크셨겠죠. 하지만 결국 출전을 결심하셨답니다.”





농부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 씨는 그 자리에서 농부에게 재출전을 권유했고 필요하다면 전문가를 주선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화면에 자주 노출해주겠다는 귀띔까지 곁들였다.

“로봇이 좀 더 인간에게 친숙해지려면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꼭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야말로 우리의 로봇 수준은 한층 성숙시키는 밑거름입니다.” 
 

로봇은 라면이다?

이 씨는 현재의 대회 방식이 마냥 못마땅하다고 말한다. ‘너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길거리 대회를 제안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열어야 합니다. 명동 한복판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길거리에서 시끌벅적하게 치러보면 어떨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할 겁니다.”




이 씨 개인적으로도 ‘뭔가’를 보여줄 계획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자신의 이미지를 로봇전투 홍보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씨는 내년 상반기 중 자신이 직접 만든 로봇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물론 그동안 인맥을 쌓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겠지만 설계는 자신이 직접 할 계획이란다. 요즘은 빈 종이만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설계도를 긁적이는 버릇까지 생겼다. 여기에 개그맨 후배들은 물론 다른 연예계 후배들을 옭아맬 참이다.

이 씨는 로봇을 맛있는 라면에 비유한다. 로봇은 더 이상 어렵고 낯선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끓이고 맛볼 수 있는 라면처럼 소소한 일상사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고 부수는 로봇이 아닌 약자에게 손길을 건네는 따뜻한 로봇의 시대를 꿈꾼다.

추운 녹화장의 한 편에서 로봇의 진정한 ‘파워’를 깨닫고 있다는 그의 열정은 무대 위 조명보다 더욱 화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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