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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남녀로 구분될까

강자는 남아, 약자는 여아 선호
대부분의 동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독립된 성(gender)으로 구분된다. 사람의 성별이 하나나 셋이 아니고 하필이면 둘인 까닭은 생물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수수께끼였다. 가장 그럴 법한 설명은 1992년에 옥스포드 대학의 젊은 진화생물학자인 로렌스 허스트가 발표한 가설이다. 그의 가설은 ‘게놈 내의 분쟁’(intrageno-mic conflict)이라 불리는 새로운 연구주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전자 사회의 이기주의
동물의 세포는 핵, 세포질, 미토콘드리아 등 각종 소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핵 속에는 유전자의 본체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이 들어있다. 정상적인 사람의 모든 세포에는 각각 7만5천개의 유전자가 한쌍씩 들어있다. 유전자는 23쌍의 염색체 위에 놓여있다. 염색체 한 벌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통틀어 게놈이라 한다. 세포질은 다양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용액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호흡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의 발전소다. 세포 핵의 외부에 존재하지만 고유의 DNA를 갖고 있다. 사람의 경우 37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인간의 성생활에서는 생식을 위해 감수분열과 세포융합이라는 두 개의 상보적 과정이 요구된다. 감수분열은 생식세포로 되는 세포가 염색체의 수를 정확하게 절반으로 감소시키는 과정이다. 감수분열의 결과로 정자와 난자가 형성된다. 따라서 사람의 정자와 난자 속에는 각각 23개의 염색체 위에 자리한 7만5천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인간의 경우 정자는 난자와 결합한 후 개체로 발달한다(융합성교). 정자는 세포 소기관을 갖지 않아 난자에 비해 훨씬 작다. 양족 모두 소기관을 가지면 자신의 것을 자손에 남기려고 싸울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한쪽(정자)이 희생했다

생식세포가 서로 만나서 수정이 되면 세포융합이 일어난다. 세포융합의 결과로 새로 탄생한 세포에서 염색체의 수는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23쌍의 염색체와 7만5천쌍의 유전자를 지니게 된다. 이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여 태아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는 마을에 함께 사는 주민에 비유될 수 있다. 마을은 협동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유전자 역시 협동하지 않으면 유전자가 거주하는 신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렇지만 협동이 인간사회의 전부일 수는 없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유전자의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 살아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따라서 다른 유전자를 모두 적으로 만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나타난다. 종래에는 유전자의 사회를 협동 일색의 평화로운 집단으로 보았지만 허스트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득실거리는 경쟁사회로 본 것이다.


인간의 염색체를 3만 5천배 확대한 모습
정자와 난자의 차이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최선의 기회는 성교할 때 찾아온다. 왜냐하면 유전자 사이의 불안정한 협력이 성교의 주요 과정인 감수분열과 동시에 와해되기 때문이다. 쌍을 이룬 유전자가 분리되어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질 때 각각의 유전자는 동료의 희생 속에서 이기적으로 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자 또는 난자를 독점하는 유전자는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동료는 제거된다.

허스트에 따르면, 이기적인 유전자 사이의 분쟁 때문에 성교의 또다른 과정인 세포융합에서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세포가 융합할 때 두 세포의 핵DNA는 한쌍의 염색체 안으로 함께 들어가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두 세포의 소기관은 하나의 세포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토콘드리아끼리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일 소지가 높다. 이러한 유전적 요소 사이의 분쟁으로 세포가 입게 될 피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세포 소기관 사이의 싸움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 세포의 핵DNA는 한 쪽 세포만 소기관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아버지 쪽의 세포 소기관은 자식에게 전달되지 못하지만 어머니 쪽의 세포 소기관은 제대로 전달되게끔 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그 크기와 기능이 서로 다르게 진화된 연유이다.


사람 정자의 모습

정자는 애초부터 소기관이 제거되기 때문에 작고 운동성이 뛰어나며 대량으로 생산된다. 그러나 난자는 소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크고 운동성이 없으며 소량이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를 수정시킬 때에는 오로지 한가지, 즉 핵이라는 유전자로 가득찬 봉지만을 난자에게 건네준다. 그러므로 우리 몸 안의 세포 소기관과 그 안의 모든 유전자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없다. 정자가 희생을 치른 반면에 난자가 혜택을 받은 셈이다. 바꾸어 말해서 이익을 본 성과 손해를 본 성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허스트는 성교의 또다른 형태인 접합성교에서는 유전자 간의 분쟁이 없으므로 독립된 성이 불필요했지만 융합성교에서는 반드시 두 종류의 성별이 진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박테리아가 서로 가느다란 관으로 연결해서 몇 개의 유전자를 옮기는 접합성교에서는, 융합성교에서와는 달리 오로지 핵만이 교환되고 세포질의 유전자는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 사이의 싸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피셔의 성비 원리
암수 양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융합성교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설명한 허스트의 가설은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의 매트 리드리는 그의 출세작인 ‘레드 퀸’(The Red Queen, 1993)에서 “성별은 반사회적 습관에 대한 관료주의적인 해결책이다”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있다. 성별은 유전자들의 이기적인 야망을 다스기리 위해 유전자 사회가 궁리해낸 묘안이라는 의미이다.

융합성교하는 생물에서는 수컷과 암컷이 대개 50:50의 비율로 태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처럼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면 성비의 균형이 깨진다. 편향된 성비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 최초의 학자는 영국의 로날드 피셔이다. 그는 1930년에 발표한 ‘피셔의 성비원리’(Fisher’s principle of the sex ratio)라고 불리는 이론에서 50:50의 성비가 진화된 과정을 설명했다. 만일 수컷의 출산이 암컷의 출산보다 적으면, 수컷은 암컷보다 여러 상대와 교미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따라서 수컷을 많이 낳을 수 있는 양친은 더 많은 손자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자기모순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수컷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교미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암컷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성비는 50:50을 향해 수렴된다.





피셔의 성비 원리를 확대 해석하면 성비의 편향이 설명된다. 모든 개체는 양친으로부터 각각 유전물질의 절반을 얻기 때문에 아들과 딸에게 동일하게 투자하는 양친이 자연선택된다.

그러므로 아들과 딸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같다면 아들과 딸이 같은 숫자로 출산될 것이다. 그러나 한 쪽 성의 출산이 다른 쪽의 성보다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면 양친은 그 성의 자손을 보다 적은 비율로 낳으려 할 것이다. 예컨대 아들의 양육비용이 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면 아들과 딸의 성비는 2:1이 된다.

피셔의 성비원리에서는, 부모의 모든 자식들은 같은 성끼리 기본적으로 똑같은 번식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수컷일지라도 강한 수컷이 약한 수컷보다 교미할 기회가 더 많게 마련이다. 요컨대 같은 성의 자식들일지라도 번식 가능성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라이버스와 수학자인 댄 윌라드이다.




조건 나쁜 부모는 딸 선호
그들이 1973년에 발표한 이른바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종에서, 환경의 조건이 좋을 때는 수컷과 암컷이 모두 번식 가능성을 갖지만 특히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은 번식 가능성을 갖게 된다. 암수 모두 배우자를 구하기 쉬운 조건에서 암컷은 일단 수태하면 다른 상대의 새끼를 가질 수 없지만 수컷은 여러 상대를 임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건이 나쁠 때는 정반대가 된다. 수컷과 암컷이 모두 번식 측면에서 고통을 겪지만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암수 모두 배우자를 구하기 어려운 조건일지라도 암컷은 대부분 교미에 성공하지만 수컷의 경우 크고 건강한 수컷이라면 몰라도 작고 약한 수컷은 전혀 교미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생존을 더 잘 할 것으로 판단되면 아들을 낳고 그렇지 않아 보이면 딸을 낳는다. 요컨대 부모들은 자기에게 더 많은 손자녀를 안겨줄 수 있는 성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좋은 조건의 부모는 주로 수컷을 낳지만 나쁜 조건의 부모는 딸을 선호하게 된다는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은 한때 엉터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차츰 지지를 획득했다. 몇몇 동물의 경우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양상태가 좋은 주머니쥐는 그렇지 못한 쥐보다 수컷을 많이 낳는다. 남미산 물쥐는 좋은 조건에서는 주로 수컷을 낳고 나쁜 조건에서는 주로 암컷을 낳는다. 계층사회를 형성하는 거미원숭이의 경우 서열이 가장 낮은 어미의 새끼는 암컷이 많은 반면에 최고위층의 어미는 수컷을 많이 낳는다. 어미의 사회적 지위가 새끼의 성별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성비 파괴는 큰 재앙 불러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을 인류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람이 자손의 성비를 편향시키는 요인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트라이버스-윌라드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딸보다 아들을 선호했다. 특히 중세의 봉건사회에서 영주들은 아들을 아꼈지만 소작농들은 딸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경향을 보였다. 오늘날에도 케냐의 무코고도(Mukogodo) 부족을 비롯해서 몇몇 가난한 사회계층은 딸을 선호한다. 가난한 아들은 장가를 못가 종종 독신으로 늙어죽지만 가난한 딸은 다른 부족의 부자와 결혼하면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코고도 부족의 딸 선호는 일반적인 고정관념과는 달리 아들 선호사상이 인류사회에 반드시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남성선호는 서민대중보다는 사회고위층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태아 성감별 기술이 발달하면서 여자로 판명된 많은 아가들이 사라지고 있다

남성선호는 계층사회가 평등사회로 바뀌면서 급속도로 고위층에서 사회전반으로 번져나간 것으로 보아진다. 대표적인 보기는 중국과 인도이다. 중국 공산당의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중국인들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25만명 이상의 여아를 태어난 즉시 살해했다. 인도에서는 딸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여인의 96%가 인공유산을 했다. 최근에 봄베이의 병원들에서 저질러진 8천건의 낙태수술 중에서 7천9백97건이 여아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누구나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태아 성감별 기술이 악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통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인간사회에는 성비를 편향시키는 자연적 요인이 적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늙은 아비일수록 딸을 낳지만 늙은 어미일수록 아들을 낳는다. 간염이나 정신분열증에 걸린 여자는 아들보다 딸을 더 많이 낳는다. 흡연하거나 음주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유별난 것은 ‘귀향군인 효과’(returning-soldier effect)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사한 남자들을 벌충하려는 듯이 사내아이가 많이 태어나는 현상이다. 전쟁 후 태어난 꼬마들이 당장 전쟁미망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리 만무하지만 남아의 출생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사회의 성비 불균형을 부채질하는 핵심요인은 중국과 인도에서 확인된 것처럼 남아를 선호하는 성차별 의식과 관행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출생시 여아 1백명 당 남아의 수를 나타내는 출생성비를 보면 1985년은 110, 10년 뒤인 1995년에는 115이다. 남아가 갈수록 여아보다 많이 출생함을 보여주는 지수이다. 만일 성비가 이런 속도로 증가된다면 21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의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흑인처녀들을 신부감으로 수입하게 될 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가는 우리 사회의 성비는 자식의 성별을 고르는 일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로 그칠 수 없음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성비 파괴로 초래될 사회적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신부감이 모자라서 처녀의 납치와 가임여성의 인신매매가 횡행할 것이다. 성적으로 불만인 사내들은 포악해져서 강간 등 성범죄와 동성애를 서슴없이 자행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는 성교할 때 오른쪽에 누우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는데, 그 영향력은 대단해서 수세기 뒤에 프랑스 귀족들이 왼쪽 고환을 잘라낼 정도였다. 그는 까마귀가 떨어뜨린 돌에 맞아 죽었다. 혹시 그 까마귀는 고환을 제거하고도 아들을 보지 못한 어느 사내가 앙갚음을 하기 위해 변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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