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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는 디지털 블.랙.홀.

‘슬림폰’은 사이보그 되기 위한 디자인
1877년 뉴욕의 성 요한 교회 포스터에는 특이한 일요 강좌 소개가 실렸다. ‘벨 교수가 말하고 노래하는 전화기 시범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벨 교수’는 1876년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었다.

당시 벨의 후원자는 그의 장인인 가디너 허바드와 벨이 교수로 있던 보스턴대의 학부모인 토머스 샌더스 둘 뿐이었다. 그해 세 사람은 ‘벨 전화회사’(Bell Telephone Company)를 세웠다. 그리고 사무실과 집을 연결하는 전화기 한 쌍을 세트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30년이 흘렀다. 요즘 휴대전화는 ‘더 작게, 더 얇게’ 진화하고 있다.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이나 타원형 디자인을 벗어나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가로본능폰’처럼 가로로 긴 화면이나 독특한 곡선을 가미해 한손에 쏙 잡히는 인간공학 디자인의 휴대전화가 눈에 띄게 늘었다. 최근에는 두께가 6.9mm인 ‘울트라 슬림폰’도 등장했다. 휴대전화 디자인의 끝은 어디일까.




요즘도 쓰는 ‘유니버설 500’
벨 전화회사가 처음에 내 놓은 전화기는 아이들이 실로 연결한 종이컵을 귀와 입에 대고 이야기하는 수준에서 고작 몇 발자국 벗어난 것이었다. 디자인도 투박했다. 본체는 길쭉한 나무상자 형태였고, 이 위에 착신을 알리는 황동 종 2개가 붙었으며, 송화기는 두 종 사이에, 수화기는 본체 측면에 귀처럼 걸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벽에 걸고 사용했다.

여기에는 정서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 대고 말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자 그때까지 대화 원칙을 벗어난 일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것에 정서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그나마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는 것보다는 벽을 보고 말하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벨 전화회사는 전화기를 벽에 붙이고 송화기는 본체에, 수화기는 따로 떼어 귀에 대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던 것이다.

1880년대 벨은 화상 전화기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벨은 비밀리에 그 전화기에 ‘포토폰’(photopho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요즘으로 치자면 ‘고속영상이동전화’(HSDPA) 쯤 된다고 할까.





1930년대 벨연구소는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에게 전화기 디자인 자문을 구했다. 그때 드레이퍼스는 시각적으로 일관되게 통일할 것을 강조했다. 당시 기술 발전으로 전화기 내부 부품의 크기를 줄일 수 있게 되자 송화기와 수화기를 하나로 묶은 ‘302’가 탄생했다. ‘302’는 1954년까지 2500만대가 생산되면서 최초의 표준형 전화기가 됐다.

‘302’에 이어 등장한 전화기가 ‘유니버설 500’(Universal Model 500)이었다. 드레이퍼스의 디자인팀은 8년간 2000여명의 얼굴을 측정하고 점토와 석고로 모형을 만들어 실험했다. 이때 디자인팀이 그린 도면만 2500장에 달했다. 이들은 평범하지만 안전하고, 편안하면서도 효율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드레이퍼스는 전화기를 디자인하는데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우선 간략한 형태여야 했다. 또 둥글면 각을 세우는 것을 고려하고 사각이면 둥글게 처리할 것을 고려하는 양면적인 접근법을 사용했다. 너무 움푹하거나 튀어나오는 형태를 지양하고 드레이퍼스 특유의 청교도적인 신조로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형태도 피했다.

이렇게 탄생한 ‘유니버설 500’의 수화기는 요즘에도 사용한다. 카드식 공중전화기에 달린 둥근 사각 단면 손잡이의 수화기(G1)가 그것이다. 이 수화기는 아직까지도 가장 쥐고 다루기 편한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0년 ‘유니버설 500’은 처음으로 8만6000대가 생산됐다. 이후 탁상용으로 1965년까지 약 720만대가 생산됐고, 1982년까지 모두 9300만대 가량이 생산됐다. 벽걸이형과 버튼 방식까지 합하면 약 30년 동안 1억6000만여대가 생산됐다. ‘유니버설 500’은 이름처럼 진정한 의미의 ‘유니버설(범용) 디자인’이었던 셈이다.




‘유니버설 500’을 비롯해 유선전화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유선통신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이때 두 지점은 고정돼 있다. 대부분 유선전화기가 광택이 없는 차분한 검은색이나 베이지색을 띠고 책상 위에서 한결 같은 위치에 버티고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1980년대 말 ‘카폰’이 등장하면서 유선통신의 상징성은 흐려지는 듯했다. 움직이는 자동차에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니. 카폰은 최초의 이동통신 단말기였다. 하지만 카폰은 운전석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멋진 가죽 케이스에 넣어 허리에 차고 다니던 최초의 휴대전화 역시 ‘잘 터지는지’가 제일 큰 관심사였다. 카폰이나 초기 휴대전화에 검은색이 많았던 것은 여전히 성능과 권위를 따지던 당시의 풍토를 보여준다.



기능 보다는 개성
최근 몇 년 사이 휴대전화는 차가운 느낌의 은색에서 화사한 핑크까지 다양한 색상을 갖게 됐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말은 유명무실해졌다. 유선전화가 공동의 재산이었다면 휴대전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구가 됐다. 유선전화가 가정용, 업무용, 산업용이었다면 요즘 휴대전화는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어떤 전자제품보다 휴대전화의 디자인이 다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술 발전이 한 몫 했다. ‘시험 사용’이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버튼을 아무리 여러 번 잘못 눌러도 모터가 타거나 퓨즈가 녹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 and Play) 즉 ‘연결하고(Plug) 즐기라(Play)’는 개념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도, 사용설명서를 정독할 필요도 없다.

특히 최근 휴대전화는 인터넷, 디지털카메라, MP3, 게임기, GPS 그리고 심지어 혈당 체크 같은 의료진단기까지 웬만한 오디오 비디오 기능은 물론 정보 기록, 저장, 오락 등 컴퓨터 기능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다. PDA, 게임기, 카메라 등 휴대전화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제품은 하나같이 휴대전화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가볍다’ ‘작아졌다’며 단순한 성능을 강조하던 휴대전화 광고가 요즘에는 디자인을 선전하고 감성에 호소한다. 사용 자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사라지면서 소비자가 제품의 감촉, 음향 같은 오감(五感)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휴대전화를 통해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예술적인 이미지가 중요해졌음을 뜻한다. 티타늄과 금, 은, 보석 같은 특수 재료부터 고급 가죽 같은 천연 재료가 휴대전화에 쓰이는 것은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색상과 디자인의 휴대전화는 마치 권력을 얻은 뒤에 우아한 자태도 뽐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꽤 오랫동안 자동차가 관능미를 상징했다. 하지만 비싼 자동차를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반면 휴대전화는 누구든 어디나 들고 다니며 필요할 때 꺼내 뽐낼 수 있다. 이제는 자동차 대신 휴대전화가 관능미의 상징이 된 셈이다. 특히 휴대전화의 관능미의 핵심에는 이성을 유혹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요즘 휴대전화 광고를 보라. 하나같이 그 날렵한 기계를 꺼내 들자마자 그 사람이 얼마나 섹시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가.




자유와 평등의 도구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는 카우보이의 허리에 찬 리볼버 권총이 모든 이를 평등하게 만든 ‘평등자’(equalizer)였다. 요즘 ‘카우보이’는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거리를 누빈다. 더 이상 사무실 책상에 앉아 회사의 유선전화기를 지킬 필요도,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의사를 결정할 이유도 없어졌다. 대통령이라도 휴대전화만큼은 비서가 대신 받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이상 모두 평등하다. 누구의 지위가 더 높거나 낮지 않다. 휴대전화가 세계를 평등하게 만든 것이다.

휴대전화만큼 세계화를 잘 보여주는 제품도 없다. 로밍 기술 덕분에 쓰던 휴대전화를 그대로 들고 나가 세계 어디서도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휴대전화 덕분에 물리적인 거리 개념이 사라지고 시공을 초월한 생활이 가능해졌다. 개인의 자유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특정 지역의 문화가 세계에 퍼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수출된 휴대전화가 일으킨 ‘한류’(韓流)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습성이 휴대전화라는 기술을 타고 세계적인 가치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한 것이다. 2005년 삼성전자가 110억 달러 상당의 휴대전화를 판매해 모토로라(109억 달러)를 제치고 세계 2위를 차지한 데에는 이런 영향도 있었으리라.

일각에서는 휴대전화가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것은 자유가 부여한 불안감의 표현이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몰입할 대상이 필요하다. 휴대전화가 ‘디지털 블랙홀’이 된 것은 통화중이 아닐 때도 빠져들 만한 어떤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그냥 갖고 있는 이는 노인뿐이다.



몸의 일부가 될까?
앞으로 휴대전화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감성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조형적인 요소가 풍부하면서도 개인적인 디자인이 각광받을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가 늘어나고 유비쿼터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휴대전화는 일종의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 형태를 띠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웨어러블 컴퓨터가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면 영국 레딩대 케빈 워릭 교수가 자신의 몸속에 실리콘 칩을 이식한 것처럼 휴대전화 일부를 신체에 삽입할 수도 있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한 사이보그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미래 제품에서 ‘중간’이라는 개념은 사라질 것이다. 큰 제품은 더 크게 디자인해 벽에 붙인다. 그래서 TV는 물론 에어컨, 공기청정기, 냉장고, 세탁기는 벽에 붙일 수 있도록 디자인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어딘가에 파묻을 수 있도록 디자인할 것이다.

반면 작은 제품은 더 작게 디자인해 몸에 붙인다. 최근 휴대전화 디자인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슬림폰은 얇게 만들어 몸에 착 달라붙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슬림폰이 더 얇아지고 더 작아진다면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혹시 우리는 지금 사이보그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채승진 교수는 |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한국기술교육대를 거쳐 현재 연세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있으며 산업디자인과 제품디자인, 디자인의 역사를 연구 중이다. 그는“누구나 원하는만큼 유명해질 수는 없지만 유명한 제품을 디자인할 수는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아름다움에 철저히 몰입하라. 그러면 당신보다 유명한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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