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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철도

친환경, 초고속, 대량수송수단으로 재조명
철도의역사는 산업혁명이 무르익을 무렵 영국 탄광지역에서 시작된다. 선로는 이미 중세 후기부터 광산갱도에 이용돼 왔지만 그 위를 움직이는 화차는 말이 직접 끌었다. 문제는 그 말의 사료비였다.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계산에 따르면 말 한 마리를 먹이는 데는 8명의 노동자가 소비하는 식품을 사는 것과 같은 비용이 들었다. 선로 위에서 화차를 끌 기관차가 발명된 것은 말을 먹이는 사료 값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산업혁명의 기반, 열강의 검은 손

철도가 등장한 핵심적인 이유는 산업혁명 시기에 대량수송을 위해 혁신적 운송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825년 9월 영국의 스톡턴~다링턴의 40km 구간에 석탄과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됐다. 소와 말을 이용한 운송은 대량수송이 가능한 철도에 밀려났고, 철도는 빠르게 전파돼 구미 국가들은 대부분 1830년대까지 철도 개통을 마쳤다.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축소시켰다. 1745년에는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가는데 2주일이 걸렸지만 1836년에는 이틀도 채 안 되는 45시간 30분으로 단축됐다.

1849년에는 오전 7시에 영국에서 발행된 신문이 오후 1시 30분이면 파리에 급행 배달됐다. 철도개통 이전 미국 동부 연안에서 서부 연안까지는 걸어서 2년, 역마차로 4개월이 걸렸지만 1910년에는 4일이면 충분했다.

쥘 베른의 1872년 작품 ‘80일간의 세계일주’도 세계를 거미줄처럼 엮고 있던 철도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간과 공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며 세계는 산업사회로 진입했다.

산업혁명 이후 철도는 새 수송수단으로 부각됐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물자와 인구가 철도를 따라 대규모로 이동하면서 도시를 발전시켰고, 나아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했지만 서구 문명의 정복수단이 되기도 했다.




107년 전 이 땅에 철마 태어나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미국인 기업가 모스(Morse)가 1896년 3월 29일 획득한 서울 ~인천의 철도부설 특허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모스가 획득한 경인철도 부설권은 우여곡절 끝에 일본이 넘겨받아 다음 해인 3월 22일 인천 우각리에서 기공식을 거행했다.

당시의 철도는 궤도 간격이 4척 8촌 반(1435mm)에 선로의 최대 경사가 1/50로 설계됐다. 나중에 경인철도합자회사에서는 경사도를 1/100로 변경하고 레일의 무게와 침목의 두께, 폭, 길이를 다시 조정해 1마일(약 1.6km) 당 침목 2600개의 비율로 부설했다.









마침내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역에서 부분 개통식을 갖고 인천~노량진의 영업을 시작했다. 9월 18일 ‘철도의 날’은 이를 기념해 지정한 것이다.

그 뒤 궤도 간격은 표준궤에서 러시아의 간섭에 따라 러시아에서 쓰는 1524mm 광궤로, 다시 일본의 압력을 받아 좁은 협궤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원래의 1435mm 표준궤로 정착됐다. 광궤는 일본의 반대 때문에, 협궤는 화물수송에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미국공사 알렌(Allen)은 경인철도 개통식 축사에서 ‘열차는 귀족이라 할지라도 시간에 늦은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양반의 하인이 요청을 해도 늑장을 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차는 조선인에게 평등 의식을 심어주며 출생과 신분의 벽을 허물었다. 또한 정시에 출발하는 운행 스케줄은 농경민적 시간감각을 근대적 인식으로 바꿨다.





일제의 대륙침략 수단이었던 철도는 광복 이후 크게 달라졌다. 1960년대 경제개발에 따라 산업용 철도를 추가로 건설했고, 1972년에는 컨테이너 화물을 수송하며 수출에도 기여했다. 고속도로망이 미비했던 시절 철도는 ‘산업의 대동맥’이었다. 1970년대 초 철도는 화물수송 분담률 57%를 기록해 국가 기간수송망의 기능을 다했다.

하지만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면서 철도는 조금씩 쇠퇴했다. 정부가 자동차를 더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여기고 집중 투자하면서 철도는 예산 부족과 낡은 시설, 이에 따른 이용자들의 불편이 수송 분담률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철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교통 혼잡과 대기오염을 일으키며 에너지 효율이 낮은 자동차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환경친화적 고효율 교통수단
먼저 철도는 대량수송수단이란 점에서 독보적이다. KTX의 경우 1회 935명까지 탑승할 수 있고, 화물의 경우 제한이 없어 차량을 길게 편성할수록 더 큰 수송력을 갖추게 된다.

철도는 환경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1명을 1km 수송할 때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이 영업용 자동차의 1/341, 자가용 승용차의 1/195에 불과하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자동차 평균치의 1/30이다. 미래의 철도는 KTX처럼 전기를 이용하거나 자기부상열차처럼 자력을 이용하도록 개발되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지구온난화를 막기엔 철도만한 교통수단이 없다.





특히 철도는 에너지 효율이 높다. 1명을 1km 수송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영업용 자동차가 철도의 2.5배, 승용차가 철도의 5배다. 안전성은 자동차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 영업용 자동차의 교통사고율은 철도의 750배나 되고, 자가용 승용차는 1500배나 된다.

그 밖에 정시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고, 단위 면적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송효율을 실현하는 교통수단이란 점도 사회적으로 큰 이익이다.

나아가 토목, 건축, 차량, 통신, 신호, 제어 등 여러 부문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종합시스템 산업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철도의 발전은 곧 국가산업 전체의 발전이나 다름없다.

철도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철도 재도약의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이른바 ‘철도 르네상스’가 다시 찾아온다는 전망이다. 그 일등공신은 속도기술의 혁신이다.




속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고속철도는 이미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2004년 4월 개통한 KTX는 2년 만에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6000여만 명을 수송하며 국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제 ‘금요일에 귀가해 월요일에 출근한다’는 일본 신칸센의 금귀월래(金歸月來)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금요일 저녁 고속철을 타고 교외의 집에 돌아와 월요일 아침 직장에 나가는 생활패턴이다.

실제로 서울~대전 구간도 월요일 출근시간과 금요일 퇴근시간에는 다른 요일에 비해 이용객이 2배 정도 증가했다.




동북아 물류는 한국철도로 통한다




철도는 속도 혁신과 높은 운송효율, 저공해란 이점을 안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많은 국가들이 철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근래 철도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조금 늦은 느낌마저 있다.

하지만 한국철도는 비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남북철도의 연결과 대륙철도와의 연계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으로 양측이 철도 연결에 합의한 이래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공사가 끝나 한국철도는 세계로 뻗어 가는데 필요한 기반을 갖췄다.

러시아, 중국, 몽골 등 대륙 국가들과 협력하면 고립된 철도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 물류 허브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운송비용을 절약하는 한편 내륙 아시아의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궤도 간격, 신호체계 등 나라마다 다른 철도 시스템을 연결하고, 남북간 철도 운행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는 등 여전히 문제도 많이 남아있다. 한일 양국을 철도로 잇는 한일해저터널 공사처럼 정치경제적 문제가 얽혀 진전이 없는 프로젝트도 있다.

경제협력의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철도는 각국을 빠르고 안전하게 연결하는 최적의 선택이자 통합의 상징이 될 것이다. 한국철도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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