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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해부한 영화 ‘괴물’

시선 #1_ ‘네시’보다 과학적인 포식성 파충류
생물학자라는 직업을 속일 수는 없나 보다. 영화 ‘괴물’을 보는 동안 필자의 머릿속에는 정체불명의 괴생물체를 생물학적으로 정의하기 위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괴물’ 같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의 첫 장면. 미군이 무단 방류한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년 뒤, 한강의 낚시꾼 두 명은 머리가 둘 달린 이상한 물고기(?)를 발견한다. 다시 4년 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에 사는 어떤 생명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괴물’을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포름알데히드는 화학적으로 불에 잘 타는 성질을 가진 무색 기체다. 독성이 매우 강해 인체에 조금만 노출돼도 인두염이나 기관지염을 일으키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페인트 등에 많이 쓰여 ‘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물질이기도 하다.





돌연변이는 DNA의 구조가 변하거나 염색체에 이상이 생긴 경우를 말한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X선, 자외선, α선, β선과 같은 물리적인 원인이나 과산화수소, 콜히친(cholchicine), 머스터드가스(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사용한 독가스) 같은 화학적인 원인으로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있다.

반면 포름알데히드는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떤 돌연변이를 유발하는지 그리고 이런 영향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포름알데히드가 돌연변이의 직접적인 원인이 돼 ‘괴물’이 나올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뜻이다.

한편 영화에서 ‘괴물’의 옆구리에 붕어가 머리를 박고 기생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생물학적으로 해석하면 괴물은 숙주이고, 붕어는 괴물에 기생하는 기생동물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기생관계가 포름알데히드 같은 오염물질에 의해 새로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고 상상할 수는 있다.

일단 ‘괴물’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정체는 뭘까. 미국의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는 괴물을 ‘돌연변이 올챙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괴물’은 물과 땅에서 활동한다. 그렇다면 어류, 양서류, 파충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한강에서 잠수하고 헤엄치며 마른 콘크리트 공간에서 잠을 자는 ‘괴물’의 습성을 고려하면 어류와 양서류에서 ‘괴물’의 원형을 찾기는 어렵다. 특히 다리 한 쌍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기형다리 1개, 뒷다리가 되다가 중단된 돌기, 길고 날렵한 꼬리 같은 생김새를 보면 파충류와 가장 닮았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봐서는 포식성이다.

이를 종합하면 ‘괴물’은 포식성 파충류에 가깝다. 물론 악어 같은 대형 파충류는 한강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에 한강에서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파충류보다는 사람이 한강에 옮긴 뒤 방치한 사나운 파충류라고 보는 편이 그럴듯하다.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에 있는 거대한 호수인 ‘네스호’에 살고 있다는 괴물 ‘네시’(Nessie)보다는 ‘괴물’이 과학적으로 훨씬 그럴듯하다. 네시는 멸종된 파충류인 중생대 공룡 ‘펠리시오사우루스’로 여겨지는데, 이런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영국 BBC 방송도 2003년 음파탐지기와 GPS 등의 첨단 장비로 호수를 샅샅이 뒤진 끝에 ‘괴물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괴물’에서 굳이 옥의 티를 찾으라면 한강을 ‘괴물’의 서식지로 설정한 점이다. 크기가 버스만한 거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먹이를 먹어야 하고, 잠자고 생식할 공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강과 주변의 크고 작은 하천들은 도로와 하수처리장 등 종합개발사업에 따라 시멘트로 복개 또는 반복개 공사를 한 상황이다. 인공 시멘트 구조물로 가득한 한강에서 거대한 생물체가 생존한다는 사실은 비현실적이다. 생물의 발생과 습성, 서식처 등 관련 지식을 전문가에게 고증 받았더라면 영화의 사실감이 증폭되지 않았을까.




시선 #2_ 관객 눈 속이는 ‘디지털 배우’
한강 둔치를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괴물’은 긴 꼬리로 교각에 매달린 채 첫 선을 보인다. 사람 하나쯤은 거뜬히 휘감아 날릴 수 있는 긴 꼬리와 미끄덩한 피부, 벌린 입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빨이 영락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컴퓨터 그래픽스(CG) 기술로 탄생한 ‘디지털 배우’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괴물’은 영화에서 조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괴물’처럼 가상의 배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012000여장의 ‘괴물’ 스케치 중 하나.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형태다. 02광대뼈에서 꼬리까지 하나로 연결된 지느러미가 수중생물의 느낌을 낸다. 물의 저항을 줄이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대신한다.

우선 크리처 디자이너(creature designer)가 괴물의 외형을 그림으로 나타낸다. ‘괴물’의 경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고, 돌연변이 사례를 조사해 물고기와 쥐를 합친 형, 새우, 곤충 등 생물체를 약 2000종이나 만들었다고 한다. ‘괴물’은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셈이다.

디자인이 완성되면 이를 3차원으로 만들기 위해 석고나 특수 플라스틱으로 견본 모형을 만든다. 이를 ‘매켓’(maquette)이라고 한다. 매켓을 3D로 스캔해야 ‘괴물’을 디지털로 ‘모델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델링이란 전체 외형을 수천~수만 개의 조각으로 나눠 각 조각의 외형에 해당하는 조각을 프로그램으로 입히는 기술이다. 숙련된 기술자는 모형을 토대로 직접 디지털 모델링을 하기도 한다.

이제 ‘괴물’을 움직여야 한다. 이때 주로 키 애니메이션(key animation)을 이용해 뼈와 관절을 움직인다. 키 애니메이션은 행동이나 대사에 따라 기준이 되는 부분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괴물’이 점프를 한다면 제자리, 공중 상태, 제자리의 세 장면이 키 애니메이션이 된다.





뼈와 관절을 표현했다면 피부와 근육 등 세부적인 요소들을 첨가해 사실감을 더한다. 울퉁불퉁하고 미끌미끌한 질감과 거무스름한 색을 띤 ‘괴물’의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중 텍스처 매핑’(피부 조각에 미리 만들어진 ‘텍스처’라는 피부의 조각 사진을 붙이는 과정)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포효하며 날뛰는 ‘괴물’을 묘사하기 위해서 실사 위에 가상으로 제작한 CG 장면을 합칠 수 있도록 카메라의 3차원 위치를 추적하는 ‘카메라 트래킹 기술’을 쓴다.

CG 기술로만 보면 ‘괴물’은 성공적이다. 전체적인 영상의 질도 뛰어나다. 감독의 연출에 따라 ‘괴물’은 잔인하게 공격하며 난폭한 모습을 보이지만 가끔 심술도 부리고, 엄살을 떨기도 하며 명연기를 펼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괴물’의 CG 작업을 국내가 아닌 미국의 ‘오퍼니지’(Orphanage)가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오퍼니지는 최근 개봉한 ‘캐러비언의 해적 2’ ‘슈퍼맨 리턴즈’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참여한 영상특수효과 제작 스튜디오다. 괴물의 CG 작업이 국내 기술로 완성됐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제작사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기술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CG 기술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하지만 국내 CG 산업은 저가 위주의 가격 경쟁과 부족한 기술 투자가 저품질의 영상을 만들고, 이는 다시 제작비의 하락으로 이어져 다시 저가의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영화에서 ‘괴물’은 조연이다. 해외의 뛰어난 스튜디오에서도 실제 인간과 흡사한 디지털 액터를 제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CG 기술을 보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으로 CG 기술이 점점 발전해 몇 년 뒤에는 ‘괴물’과 싸우는 가족이 모두 디지털 액터로 제작될 수도 있다. 그 때쯤이면 배역을 놓고 배우와 디지털 액터 사이에 치열한 캐스팅 경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시선 #3_ ‘괴물’은 인간 사회의 자화상
'괴물’은 성인 3~4명을 합친 크기의 거대 생명체다. 공룡 같은 파충류를 닮기도 했다. 이런 ‘괴물’의 생김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괴물’의 크기부터 보자. 괴물 영화에는 다양한 생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중에는 실제 동물을 거대하게 부풀린 경우가 많다. ‘킹콩’의 고릴라나 ‘죠스’의 백상아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실제 크기로도 두려움과 혐오감을 일으킨다. 그러니 몸집이 더 커진다면 크기만으로 인간을 위협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괴물’도 마찬가지다.

사실 고릴라는 온순한 채식동물이지만, 유인원 중에서 가장 크고 검은데다가 흥분하면 일어서서 가슴을 쾅쾅 두드려대므로 고릴라를 난폭한 동물이라고 본 것도 이해가 된다. 반면 백상아리는 실제로 위험한 동물이다. 길이 6m쯤 되는 큰 몸집으로 5~6월이면 서해에 나타나 잠수부를 공격하곤 한다.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려면 거대한 괴물도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 ‘쥐라기 공원’은 그 점에서 탁월하다. 공룡 연구자들의 자문을 받아 복원한 공룡들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게다가 과학적인 근거도 댄다. 호박에 든 모기의 뱃속에서 공룡의 피를 빼내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로 공룡을 부활시킨다. 물론 현대 과학자들은 수천만 년 전의 DNA는 이미 다 분해됐다고 보지만 말이다.

‘괴물’이 파충류를 닮은 것은 우연일까.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먼 동물에게 혐오감이나 두려움을 더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호랑이나 사자 같은 포유류는 악어(영화 ‘엘리게이터’)나 뱀(영화 ‘아나콘다’) 같은 파충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느낀다. 절지동물인 거미(영화 ‘아라크네의 비밀’)는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이지만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혐오감을 준다. ‘괴물’이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것은 인간의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하는 데 알맞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 속 괴물은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냉전 시대인 1950~1960년대에는 세계가 핵무기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래서 핵실험이나 방사선의 영향을 받아 괴물이 생겨났다는 설정이 많았다. 1954년 일본의 ‘고지라’는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파충류이며, 그것을 리메이크한 미국의 ‘고질라’도 프랑스 핵실험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다이구아나다.

냉전이 해체되고 환경오염과 유전자 조작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괴물의 형성 근거도 바뀌었다. ‘프릭스’의 거미는 산업 폐기물과 접촉한 뒤, ‘엘리게이터’의 악어는 유전공학 실험실에서 버려진 개 사체를 먹은 뒤 괴물이 됐다. ‘미믹’의 괴물은 흰개미와 사마귀의 DNA를 합성한 신종이며, ‘딥 블루 씨’의 괴물은 유전자가 조작된 상어다. 즉 괴물의 탄생 장면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도를 담기 쉽다.





괴물’에서 미군이 포름알데히드를 무단으로 방류해 돌연변이가 생겼다는 설정은 사회적으로는 환경 문제를, 정치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꼬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괴물 영화 중에는 낯선 외계 생물을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에일리언’이 대표적이다. 에일리언은 초현실주의 그림에나 등장할 법한 기괴함과 폭력성, 징그러움을 고루 갖추고 있다. 대단히 뛰어난 생물이지만 사실 생태적으로 보면 곧 멸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먹이를 모조리 잡아먹는 포식자는 곧 굶어죽기 마련이므로. 사실 포식자는 자신의 먹이보다 약간 우월하기만 하면 된다. 너무 뛰어난 능력을 갖춰봤자 별 쓸모가 없고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비정상적인 능력을 갖춘 생물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인간이다. 생태적으로 보면 인간만한 괴물은 없다. 처음에는 인간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인간에게 역습을 당하는 ‘괴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인간의 약점과 강점을 드러내는 인간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대 인류가 출현한 것은 기껏해야 30만년 전이므로, 이 유별난 생물이 곧 멸종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큰 입을 쫙 벌려 인간을 먹어 치운다. ‘괴물’은 몸집의 크기만으로 인간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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