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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가 살 것 같은 바다이야기

미크로네시아의 축을 다녀와서
“Ariel, listen to me. The human world, it’s a mess. Life under the sea is better than anything they got up there.”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주제곡 'Under The Sea'




이 섬에 가고 싶다


괌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미크로네시아 연방국은 607개의 섬이 폰페이(Pohnpei), 얍(Yap), 코스레(Kosrae), 축(Chuuk) 4개 주(state)로 이뤄져 있다. 사진은 축의 산호초 주변에 있는 무인도 펜룩의 전경.

무인도에 간다면 바로 이 섬에 가고 싶다. 로빈슨 크루소의 낭만적인(?) 무인도를 상상할 때마다 머리 속에 그리던 바로 그 섬이다. 청량한 단 맛에 마시면 힘이 쑥쑥 날 것 같은 바닷물 색깔을 보라. 그 속을 들여다보면 형형색색의 산호와 해조 사이로 알록달록한 열대어가 춤을 추는 천국의 바다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주제곡 ‘Under The Sea’에서 세바스챤(바닷가재)이 에리얼(인어공주)을 붙잡는 대목이 들리는 것 같다. 좀더 기다리면 인어공주가 나타날 것이다.




열대 바다의 오아시스
열대 바다에서 만나는 무인도는 열대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같다. 축의 무인도는 대부분 산호초와 연결돼 있다. 남태평양 섬은 대부분 고리 모양의 산호초인 환초(環礁)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열대바다는 산호초가 없으면 사막처럼 삭막할 것이다. 저 아래 어디쯤 인어공주가 살고 있을까?







산호초의 형성과정
산호초는 인어가 사는 마법의 성
인어공주는 아마 이런 곳에 살 것이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산호초로 이뤄진 마법의 성 말이다.

산호초의 석회질 덩어리는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많다. 이 구멍 속에 숨어있는 말미잘처럼 생긴 산호(폴립)가 탄산칼슘을 뿜어 산호초를 성장시킨다. ‘초’(礁)는 ‘물 속에 잠겨있는 바위’를 뜻한다. 그러니까 산호초는 산호가 만든 바위다. 세계적으로 산호초를 만드는 산호는 500종 정도 알려져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산호초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산호초가 있는 109개국 가운데 93개 나라에서 산호초가 이미 훼손됐다. 남아있는 산호초 가운데 앞으로 수십년 이내에 절반이 넘는 산호초가 파괴될 것으로 보인다.
산호 숲은 인어공주의 놀이터
바닷속에 자리를 잡고 다양한 품새로 가지를 뻗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산호를 징그러운 히드라나 해파리와 비교한다면, 산호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산호는 히드라, 해파리, 말미잘과 같은 강장동물(腔腸動物)이다. ‘내장이 비어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관으로 뚫려 있다.
산호는 모양이 매우 다양하다. 나뭇가지, 사슴뿔, 버섯, 선인장, 이끼, 주름치마, 탁자, 접시, 주름진 뇌, 부채, 솜사탕, 둥근 공…. 인어공주가 갖고 놀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한국해양연구원은 ‘산호초의 천국’ 축(Chuuk)에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를 설치해 산호초의 생태계를 비롯해 해양생물의 다양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위부터 차례대로 가지산호류, 뿔산호류, 거품돌산호류.
인어공주가 애용하는 바다의 영약들
상어의 간에서 발견한 스쿠알렌, 참치의 눈알에서 추출한 EPA와 DHA 등 바다에서 발굴한 생물자원이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의약품, 건강보조식품, 화장품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최근 들어서는 해면에서 추출된 ARA-A, 바다이끼벌레에서 추출된 브라이오스타틴, 연산호에서 추출된 슈도테로신 같은 성분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인어공주는 아마 이런 해양천연물을 애용했을 것이다.







01_갯민숭달팽이류 02_숨이새우류 03_새치성게류 04_주머니해면류

한국해양연구원 이희승 박사팀은 지난 5월 미크로네시아 바다에서 채취한 30여종의 해양 무척추동물 가운데 히르티오스를 비롯한 해면 4종이 항암에 탁월한 활성을 보이는 것을 발견, 최근 2차 채집에 들어갔으며 앞으로 구조분석과 임상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신희재 박사팀은 미크로네시아 해역의 해면, 해조류, 퇴적토에서 400여종의 해양미생물을 채집, 이 가운데 항암 효과가 탁월한 방선균을 대상으로 항암활성 균주를 분리 배양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의 묵시록
조용하던 인어공주의 나라에 세계 2차대전의 광풍이 불어 닥쳤다. 일본군은 축을 전진기지 삼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미군은 1944년 2월 이틀동안 30차례가 넘는 공습을 감행해 축에 포탄을 우박처럼 쏟아 부었다. 3년 전 진주만에서 당한 분노를 앙갚음한 것이다. 일본군 제 4함대는 60척이 넘는 군함과 전투기를 잃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 풍기는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지 6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축은 아름다운 세계 3대 다이빙 지역의 하나로 유명하다.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볼 수 없는 해저 장관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격침된 일본 함대의 으스스한 잔해 사이에서 아름다운 열대어의 군무를 만끽할 수 있다.


마스크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일본 전투기 잔해에 남아 있는 퀭한 표정의 마스크가 슬프다.
태풍의 신이 사는 곳


미크로네시아의 하늘은 티없이 맑다가 한 순간에‘태풍의 신’의 분노에 휩쓸린다.
태풍의 신이 사는 곳
매년 여름마다 한반도 주변을 긴장시키는 태풍은 주로 미크로네시아 주변 바다에서 만들어진다. 지난 7월 한반도 전역을 물난리로 만들었던 3호 태풍 ‘에위니아’(Ewiniar)는 미크로네시아에서 붙인 이름으로 ‘태풍의 신’이라는 뜻이다.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아 간 마녀의 이름 같다.

미크로네시아 주변 해역은 한반도의 기상과 생태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양연구원은 최근 엘니뇨와 라니냐의 특성을 파악하고, 난류성이 증가하고 한류성이 감소하는 한반도 연근해 수산자원의 변화도 관찰하며, 열수분출공 탐사를 통해 해저자원을 개발하는 대형 연구과제를 시작했다.





김웅서 박사팀은 최근 북서태평양 해양환경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포세이돈 프로젝트’에 착수, 서태평양의 표면수온과 수위 변화를 규명하고 웜풀(Warm Pool) 해역의 특성을 파악해 해양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기본정책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또 노재훈·최동한 박사팀은 동식물 플랑크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크로네시아 주변과 대양의 생태계를 비교하고, 태평양의 해양생태환경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태풍의 신’에위니아 위성 사진.
인어공주가 사랑한 왕자의 ‘슬픈 열대’
전설적인 지도자인 소워카차우가 14세기께 아들 소우니라스와 함께 카누를 타고 축에 도착했다. 축은 산(山)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축에서 가장 높은 톤아카우 산에 현무암을 올려 놓고 원주민들을 불러 모아 빵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보존하고 요리하는 방법을 전수했다.

1814년 스페인 선박 산안토니 호가 축에 도착해 야자열매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1899년 독일이 축을 점령해 축을 ‘트룩’(Truk)이라 부르면서, 코코스 야자를 재배하고 열매를 가져갔다.


축의 경제는 주로 과일이나 생선을 파는 1차산업 위주로 이뤄진다. 사진은 열대 과일을 파는 가게 모습.

원주민의 폭동으로 1910년 독일인이 물러간 뒤 일본이 1914년 축을 점령했다. 일본군은 한때 10만명이 넘어 원주민보다 많이 거주하면서 전쟁기지를 건설하는데 집중했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축은 적군의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태평양의 지브롤터’라 불렸다.







‘추키스’(Chuukese)라 불리는 축의 원주민 가족. 가운데 돌무더기 사이로 빵나무 열매를 요리하는 솥이 보인다.

전쟁이 끝난 뒤 축은 주변 섬들과 함께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다가 1978년 폰페이, 얍, 코스레 섬과 함께 미크로네시아 연방국으로 독립했다. 축에는 6만명 가량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철저한 모계사회로 부족장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남양군도에 부는 세계화의 태풍
국제기구 표결에서 한 표라도 더 얻고 새로운 해양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남태평양 섬 국가에도 점화됐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태평양 주변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자원 개발과 경제 지원을 서두르고 있는 것. 미크로네시아 축에서 일본은 항만과 냉장시설 건설을 지원하고, 중국은 공항과 활주로 건설을 원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해양연구원을 통해 2000년 축의 웨노 섬에 한·남태평양연구센터(소장 박흥식)를 설치해 해양 관련 자원과 기술을 확보하고 현지에 이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지에서 발굴한 해양천연물의 경제성이 입증되면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경제성이 높은 조개 양식기술을 개발, 이전해 현지 경제를 지원한다는 것.


태평양의 해양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9월 축에 입항한 해양탐사선 온누리호.

센터는 현지의 흑진주조개가 진주를 속성 생산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조개에 핵을 삽입, 배양해 기술적인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내년부터 산업화를 위한 양식에 착수할 계획이다. 또 트로커스 조개는 고급 단추를 만드는데 적합해, 최근 인공양식을 통해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는데 성공했으며 올해말부터 대량양식에 들어갈 방침이다.

축의 웨슬리 시미나 주지사는 “축은 태평양전쟁에서 한국과의 독특한 인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편이어서 해양 개발에서 한국과 협력을 통해 서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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