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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국어사전

뇌영상으로 드러난 소리글자 비밀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시대를 앞서간 천재 문학가 이상이 쓴 시 ‘오감도 제1호’의 일부다. 이 시는 봉건적 질서와 식민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기존 문법의 하나인 띄어쓰기를 무시했지만, 읽는데 무리가 없다(물론 그 의미는 난해하다). 만일 영어라면 어떨까.

‘Tobeornottobethatisthequestion’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를 붙여 써놓으니 그 정체를 모르겠다. 띄어쓰기를 하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란 햄릿의 대사임을 알 수 있다.

한글이 영어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 하나의 예다. 한국인의 머릿속에 든 ‘국어사전’은 실제 사전과 다른 방식으로 저장돼 있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과 함께 우리 머릿속의 ‘국어사전’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자.




병렬 처리에 유리
영어는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옆으로 늘어 쓰는 반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한데 모아 글자를 하나씩 만들고 이 글자(음절)를 이어 쓴다. 한마디로 늘어 쓰는 영어에 비해 한글은 모아 쓰는 방식을 취한다는 뜻이다.

한글은 글자마다 의미가 있어 띄어쓰기를 안 하더라도 대강 의미를 알 수 있다. 명사 전체의 70%가 한자어이고 명사에 붙는 조사를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우수한민족이다’라고 붙여 써도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또 한글은 영어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 한꺼번에 병렬 처리할 수 있다. 이것도 모아쓰기의 장점이다. 우리 눈의 망막에 초점이 맺히는 곳에서는 보통 6~10글자가 한번에 들어온다. 따라서 똑같은 글자수가 눈에 들어올 때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정보를 준다. ‘한국인은 우수하다’(Koreans are excellent)란 문장을 예로 들면 한글 문장은 전체가, 영어 문장은 앞부분만 한눈에 들어온다.



늘어 쓰는 영어에 비해 한글은 모아쓰기 때문에 한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 한꺼번에 병렬처리하기에 좋다.

한국인은 한글을 음절별로 인식하는데 익숙하다. 뇌의 일부가 망가져 글자를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를 연구하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국어사전’(심성어휘집)이 어떤 형태일지 예측해 볼 수 있다. 글자를 인식할 때는 왼쪽 뇌 뒷부분에 있는 ‘방추이랑’(fusiform gyrus) 일부가 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남기춘 교수는 “방추이랑 일부가 망가진 난독증 환자가 8개월이 지난 뒤 글을 읽으려고 할 때 오른쪽 뇌의 같은 영역이 활성화된다”며 “이 환자는 한글을 읽을 때 한 글자씩 나눠서 발음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책상’이란 단어를 읽는다면 ‘책책…상상…책상!’이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ㅊ…ㅐ…ㄱ…’ 이런 식이 아니란 말이다. 당연한 게 아니냐고? 꼭 그렇지 않다.

영어권의 같은 증상을 보이는 난독증 환자는 다르게 발음한다. 즉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나눠 말한다고 한다. 책상에 해당하는 단어인 ‘desk’를 발음한다면 ‘d…e…s…k…desk!’라는 식이다.




뇌에 3000여 글자 저장
남 교수는 “머릿속의 사전은 왼쪽 뇌에 있고 우리 뇌속의 국어사전은 음절별로 저장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글로 된 글자는 약 1만2000개가 형성될 수 있는데 이들 가운데 3000개 정도가 실제 언어생활에 쓰인다. ‘ㄱㄴㄷ’순으로 분류된 뒤 ‘ㅏㅑㅓㅕ’순으로 나눠진 실제 국어사전과 다른 방식이라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뇌는 실생활에 쓰이는 음절을 기억함으로써 자음과 모음에서 단어를 만들어내는 계산량을 줄이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머릿속의 사전은 4가지 형태로 저장돼 있을 수 있다. 영어의 경우 눈으로 볼 때나 귀로 들을 때 이해하는 사전, 글자로 된 사전, 말소리로 돼 있는 사전 4가지가 모두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 머릿속의 국어사전은 시각적인 철자 모양이 아니라 발음 소리로 저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남 교수팀은 단어를 인식할 때 이웃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연구하다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영어 단어의 이웃은 한 철자만 다르고 나머지 철자가 같은 단어를 말한다. 예를 들어 pile의 이웃은 ‘pike, pine, pole, tile’이다. pile의 이웃 크기는 4가 된다. 한글은 단어의 한 철자가 같은 ‘철자이웃’과 단어에서 한 글자가 발음이 같은 ‘음운(소리)이웃’을 생각할 수 있다. ‘반란’(‘발란’으로 읽음)이란 단어를 예로 들면 반구, 반도, 반대 등이 철자이웃이고 발달, 발표, 발명 등이 음운이웃이다.

남 교수팀은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많은 단어, 철자이웃은 많지만 음운이웃이 적은 단어, 철자이웃은 적지만 음운이웃이 많은 단어,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적은 단어를 각각 17개를 제시하며 단어인지를 판단하게 했다. 사전에 없는 ‘가짜단어’ 64개도 함께 사용했다.



영어가 중요시되는 가운데 한글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활동도 많다. 밀물현대무용단의 단원들이 몸으로 표현하는‘한글 춤’(01)이나 한샘닷컴의 ‘한글 티셔츠 디자인 공모전’(02)이 좋은 예다.
소리이웃 많으면 어휘판단 느려져
실험 결과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적은 경우에 비해 어휘 판단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심리학과 권유안 박사과정생은 “머릿속의 국어사전이 음운(소리)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음운이웃이 많으면 그 이웃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판단이 오래 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자이웃이 적은 상황에서 음운이웃이 적은 단어보다 많은 단어를 제시할 때 반응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뇌 영상을 촬영해보면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적은 경우에 비해 왼쪽 뇌의 소리 담당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된다.

또 연구팀은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단어가 뇌에서 음운정보를 바탕으로 처리되는지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했다. 20~23세의 남성 7명과 여성 2명을 대상으로 앞의 실험을 반복하며 뇌 영상을 촬영했다.

실험 결과 측두엽을 비롯해 음운 정보를 처리하는데 관여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됐는데,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적은 경우에 비해 활성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올해 초 ‘실험 및 인지 심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말소리가 중요한 음운글자임이 한국인의 뇌 속에 깊이 박혀있다는 사실이 현대과학으로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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