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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가 ‘관상’을 만든다

얼굴 형태와 표정 인식하는 부위 달라
동양에는 사람의 얼굴에서 동물의 형상을 읽어 관상을 보는 ‘물형관상’(物形觀相)이란 것이 있다. 물형관상으로 따지면 고려를 세운 왕건은 용의 얼굴에 호랑이의 턱을 가져 필시 왕이 될 관상이고, 조선의 1대 임금 이성계는 봉황을 닮아 나라를 세울 관상이라고 한다.

건국 신화에는 이렇게 얼굴만 보고도 앞으로 큰일을 한 인물임을 알아차린 사람들의 일화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런데 얼굴만 보고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관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적과 동지 단숨에 파악
과학적인 표현으로 관상은 인상에 가깝다. 이 사람은 눈이 커서 선해 보이고, 저 사람은 이마가 넓어 후덕해 보이며, 그 사람은 호감 간다는 식이다.

사실 우리가 상대방의 얼굴에 이러쿵저러쿵 평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얼굴 인식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 인식은 누구나 쉽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얼굴 인식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지각 능력이다.





'타인종 효과’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은 우리와 비슷한 중국인, 일본인처럼 동양인의 얼굴은 잘 구별하는 편이지만 백인이나 흑인의 얼굴은 다들 비슷하게 생겨 구별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마찬가지로 서양인은 동양인의 얼굴이 전부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안된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오랫동안 그 속에 섞여 살다보면 다른 인종의 얼굴도 구별하기 쉬워진다.

실제로 태어난 지 9분밖에 안된 아기에게 무늬 없는 도형과 사람 얼굴 무늬의 도형을 보여주면 신기하게도 얼굴 모양 도형에 반응한다. 그래서 인간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세상에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쟤가 양순이, 쟤는 양돌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인간에게 양의 얼굴은 모두 비슷하게 보인다.

미국 미시간대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인간의 얼굴 인식 능력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했다.

우리가 상대방의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사회적인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남의 얼굴을 잘 기억해둬야 그 사람이 나의 동지인지 적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읽고 TV 보는데 얼굴은 몰라본다?
이런 면에서 얼굴실인증(prosopagnosia)을 앓는 사람은 매우 불리하다. 얼굴실인증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으로 1947년 독일 신경학자인 요아킴 보다머가 처음 발견했다.

얼굴실인증 환자는 목소리나 옷차림으로 친숙한 사람을 인식할 수 있지만 얼굴을 알아보는 일만은 하지 못한다.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늙었는지 젊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밥도 먹고 책도 읽고 TV도 보지만 사람의 얼굴은 몰라본다. 왜 그럴까.

65억명(2006년 2월 기준) 세계 인구의 얼굴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의 얼굴을 정확히 인식한다. 양은 5마리만 모여 있어도 어떤 녀석이 ‘순둥이’고 어떤 녀석이 ‘까칠이’인지 헷갈리는데 말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 후반부터 과학자들은 인간의 얼굴 인식은 특별한 능력이고 대뇌에 얼굴 인식을 전담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대뇌에는 사람 얼굴만 인식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 1985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고든 베일리스 교수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측두엽에 위치한 세포 중 일부는 다른 사물과 달리 동료 원숭이의 얼굴을 볼 때 뚜렷한 반응을 보였다.

1992년 영국 옥스퍼드대 심리학과 에드문드 롤스 교수는 측두엽 중에서도 특히 상측두구(Superior Temporal Sulcus)와 하측두회(Inferior Temporal Gyrus)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현재 학자들은 대뇌 피질 아래쪽에 방추상 얼굴 부위(FFA, Fusiform Face Area)가 있는데, 여기가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이상이 생기면 얼굴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2월 영국 런던대 인지신경과학연구소 브래드 두체인 박사는 말, 총, 자동차 등 주변의 모든 물건을 구분하면서 유독 사람얼굴만 구분하지 못하는 환자를 예로 들면서, 이런 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뇌에 얼굴만 인식하는 메커니즘이 따로 있음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미국 스탠퍼드대 칼라닛 그릴스펙터 교수는 방추상 얼굴 부위가 얼굴을 인식하는 부위로 단정짓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뇌의 얼굴 인식 부위 : 얼굴 형태는 방추상 얼굴 부위라고 알려진 외측방추회(01)에서, 얼굴 표정은 후부상측두구(02)에서 인식한다.

그릴스펙터 교수팀은 얼굴실인증 환자들을 모아 사람 얼굴과 자동차, 동물, 조각 등을 보여준 뒤 이때 방추상 얼굴 부위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관찰했다.

그 결과 이 부위가 얼굴 뿐 아니라 다른 물체에도 반응을 나타냈다. 이는 방추상 얼굴 부위가 얼굴 인식만을 관장하는 부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가려내는 부위와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부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01_지난해 7월 유럽우주기구(ESA)의 화성탐사선 마스익스프레스가 촬영한 화성 표면 사진. 암석 모양이 사람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02_피부색과 생김새가 달라도 시간이 지나면 타인종 효과가 사라진다.

외측방추회(lateral Fusiform Gyrus)가 눈, 코, 입의 위치처럼 얼굴에서 변하지 않는 정보를 인식해 얼굴의 형태를 인식한다면 후부상측두구(Posterior Superior Temporal Sulcus)는 눈, 코, 입이 움직여 나타난 표정처럼 얼굴에서 변하는 정보를 처리한다.

얼굴실인증의 이유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얼굴 표면에 곡선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두 눈 사이의 거리를 포함해서 얼굴의 각 부분 사이의 거리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캐리커처의 비밀
얼굴 인식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사진이나 어떤 사람의 얼굴을 정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볼 때보다 그 사람의 얼굴 특징을 과장해서 그린 캐리커처를 볼 때 더 빠르고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아본다는 점이다. 특히 유명인처럼 친숙한 얼굴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이마가 넓은 사람은 실제보다 이마를 더 넓게, 눈이 작은 사람은 실제보다 눈을 더 작게 그릴 때 알아보기 훨씬 쉽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이마 주름을 과장해서 그린다거나 방송인 김제동의 경우 눈을 더 작게 그리곤 한다.

반면 낯선 사람은 얼굴의 세부적인 특징보다는 전체적인 모양으로 얼굴을 판단한다. 얼굴이 계란형이라든지 코가 높다든지 쌍꺼풀이 진하다든지 머리가 길다든지 하는 식이다.

혹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면 상대방의 얼굴 윤곽이나 머리 모양을 신경 써서 봐두면 도움이 된다.

흔히 관상학자는 눈빛이 살아 있으면 못생기고 우락부락해도 좋은 얼굴로 치고, 성형외과의사는 좌우 균형이 잡히고 턱선이 원만하면 아름다운 얼굴로 꼽는다. 비록 과학적으로 좋은 얼굴이 어떤 것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얼굴을 통해서 앞날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마 주름, 방송인 김제동의 작은 눈. 유명인처럼 친숙한 사람은 얼굴 특징을 부각시킨 캐리커처가 알아보기 더 쉽다.

P r o f i l e

정우현 박사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보전자연구소에서 초빙교수를 지낸 뒤 현재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에서 전문연구원으로 있다. 얼굴인식을 비롯해 연령, 한글, 운동, 착시 지각을 연구하고 있다.


| 글 | 정우현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전문연구원ㆍcom4man@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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