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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독감의 조상, 조류인플루엔자

사망자 1억명, 판데믹은 오는가?
지난해 11월 22일. 전북 익산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이모 씨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경기도 안양에 있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문을 두드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몸은 젖어 있었고, 비닐봉지 안에는 싸늘하게 죽은 닭이 들어있었다. 비닐에 담아온 닭은 자식처럼 귀하게 키운 녀석들이다. 이 씨는 자신의 농장에서 닭 6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찾아왔다.





그로부터 3일 뒤. 전북 익산에는 바이러스 경계령이 내려졌다. 마을 곳곳은 통제됐고, 질병관리본부 방역원들이 가성소다와 포르말린으로 방역을 시작했다. 원인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ighly Pathogenic Avian Influenza, HPAI)로 우리나라 법정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일명 조류독감(AI)으로 닭에게는 치명적이다. 감염되면 바이러스가 소화기관과 폐, 근육, 뇌까지 순식간에 퍼진다. 80% 이상이 호흡곤란으로 폐사하고, 죽은 닭의 폐에는 물이 가득 찬다.

익산시청 축산관리 담당자는 “11월 25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확인했고, 이틀 뒤 2차 발생이 있어 발생지 3km 반경 안의 77만1000마리 닭을 살처분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조류독감이 처음 발생한 때는 2003년이다. 충북 음성군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은 닭 2만6000마리를 죽였고, 전국으로 퍼져 7개 시도의 529만마리 닭과 가축들이 살처분됐다.


1997년 홍콩에서 출현한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가 10년째 유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판데믹을 일으킬 가장 유력한 후보로 H5N1을 꼽는다.

발생지역 근처의 가축을 모두 살처분하는 이유는 인체에 감염될지 모르는 우려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조류독감에 걸려 사망한 사람은 없지만 감염된 경우는 있다. 지난 2003년 조류독감이 퍼졌을 때 가금류 살처분에 참여했던 2109명의 관계자 중에서 9명이 혈청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찾아온 조류독감(H5N1)은 1997년 홍콩에서 이미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6년까지 전세계 260명이 감염됐고 155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에서 발병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없다고 예외일 수는 없다. 무서운 점은 조류인플루엔자가 수천, 수억 명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성 대량학살인 ‘판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 대변이, 인체 감염, 전파

“현재 전세계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이 판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 12월 6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문가인 미국 마운트사이나이의대 피터 팔레스 교수는 서울대 국제백신연구소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판데믹을 경고했다. 특히 지금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H5형보다 먼저 유행했던 H2형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분석도 했다.

독감 바이러스로 생긴 판데믹은 지난 90년 동안 세 차례 있었다. 가장 큰 판데믹은 1918년에 나타난 스페인독감(H1N1)으로 5000~1억명에 달하는 사람이 사망했다. 1957년에 유행한 아시아독감(H2N2)은 100만명이, 1968년 유행한 홍콩독감(H3N1)은 7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바이러스가 판데믹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바이러스가 여러 가지 변종을 일으키고, 인체에 감염돼 치명적이며, 사람에서 사람으로 쉽게 전파되면 판데믹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판데믹을 일으키는 첫 번째 조건은 항원의 변이다. 독감으로 인해 발생한 세 차례의 판데믹은 모두 조류에서 유래한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사람에게는 옮길 수 없다고 믿었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항원이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직접 사람에게 전파돼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고, 사람 바이러스가 유전자 재편성을 통해 조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얻어 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다. H5N1도 처음에는 새에게만 걸릴 뿐 사람에게는 절대 전이될 수 없다고 믿었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국립수의과학연구원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지역에서 새의 배설물을 채취해 발생원인과 전파경로 등을 조사하고 있다.

두 번째 조건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H5N1은 이미 사람에게 감염돼 155명이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사람 사이의 전파가 가장 무서운 조건이다. 현재까지 H5N1은 사람 사이에 전파되지 않고 바이러스에 직접 노출된 경우에만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항원의 변이처럼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다. 판데믹을 막으려면 조류독감이 전파되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동시에 전파 경로와 발생 원인을 찾고, 인플루엔자 분석을 통해 백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철새는 죄가 없나?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은 철새다. 철새는 국경 없이 전세계를 옮겨 다니기 때문에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2005년 5월 중국 칭하이에서 인도기러기가 조류독감으로 집단 폐사한 사례가 있다. 또 철새 이동경로와 감염지역이 일치하는 곳도 있어 일반적으로 철새가 조류독감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철새들이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에 직접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정확히 밝히지는 못했다.

한국생태연구소 이기섭 박사는 “현재까지 전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아 철새들이 가축을 집단 폐사시키는 원인이라고도, 원인이 아니라고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는 조류독감이 발생한 지역의 조류 배설물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철새가 닭과 오리를 감염시키는 주범임을 밝히지는 못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주안 루브로스 박사는 “조류독감으로 죽은 야생조류가 발견됐다고 해서 무차별로 죽이는 것은 조류독감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행동을 경고하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철새가 주범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수억 명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판데믹을 막는 일이다. 철새가 주요 병원소라고 모두 살상시킬 수는 없다. 또 아니라고 해서 방관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남아 있는 숙제는 인플루엔자의 실체를 밝히고 백신을 개발하는 일이다.



반갑게 맞이했던 철새들을 이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동시에 철저한 소독과 방역으로 조류인플루엔자가 전파되지 않게 막고 있다.


핵산단백질의 꼬리를 잡아라

과학전문지 네이처 2006년 12월 7일자에는 조류독감의 꼬리를 잡는 논문이 발표됐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핵산단백질(Nucleoprotein)에 들어있는 꼬리고리(Tail loop)가 증식을 일으키는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논문을 발표한 미국 라이스대 타오 이지 교수는 “꼬리고리는 대부분 A형 독감 바이러스에 들어있어 이를 표적으로 항바이러스제를 만들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핵산단백질은 작은 고리가 쌓여 원기둥 모양을 한 꼬리고리로 구성된다. A형 독감바이러스는 꼬리고리를 형성하면서 세포를 감염시킨다. 꼬리고리는 30개 정도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하나라도 변이를 일으키면 핵산단백질이 증식하지 못한다.

일본 도쿄대 의과학연구소 가와오카 요시히로 교수도 사람 세포와 쉽게 결합하는 헤마글루티닌 아미노산 변이를 최근에 발견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 외피막에는 두 종류의 단백질이 못처럼 박혀있다. 그중 헤마글루타닌(H)은 숙주세포에 달라붙는 역할을 하고 뉴라미다제(N)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헤마글루타닌이 동물 세포의 표면 수용체와 결합해서 감염이 시작된다. H5N1이 사람에게 쉽게 감염되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의 표면 수용체와 결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요시히로 교수는 태국과 베트남에서 조류독감에 걸린 조류바이러스와 조류에게 감염된 사람바이러스를 비교한 결과 헤마글루티닌의 182번째와 192번째 아미노산이 다른 아미노산으로 교체돼 변이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변이는 사람의 표면 수용체와 결합하는데 관여한다. 결합을 막으면 자연히 사람에게 감염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백신 개발도 한창이다.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아벤터스는 작년에 임상실험을 마쳤고, 노바티스,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같은 대형 제약회사들도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는 코에 뿌리는 살아있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독성이 없는 바이러스를 스프레이 형태로 뿌려 항체를 형성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사용이 간편하고 감염 2~3일 전에도 효과를 볼 수 있어 신속히 백신을 쓸 수 있다. 성 교수는 “식약청 허가를 받으려면 3~4년 이상 걸리겠지만 효과는 자신한다”고 밝혔다.

포항공대 성영철 교수 역시 조류독감 백신을 연구 중이다. 현재 임상실험을 마친 백신들도 하나의 변이 밖에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성 교수는 “복제를 못하는 아데노바이러스에 조류독감 유전자를 발현하도록 만든 재조합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해 다양한 변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안전성 실험은 마친 단계지만 실제 상용화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신종전염병에 대한 대응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한 예가 있다. 방역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을 경우 2개월만에 서울 인구의 30%인 291만명이 감염되고, 6만9105명이 사망한다는 계산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희생자 수와 현재 인구를 추산해 앞으로 다가올 판데믹은 최고 3억6000만 명 이상이 사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찾아온 조류독감은 언젠가 1915년에 일어났던 스페인독감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 글 | 김원섭 기자ㆍsboy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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