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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바라본 우주 500년만에 되살리다


“선생께서 제자 이덕홍에게 명해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는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어 별자리를 관찰하게 하셨다.”

퇴계 이황(1501∼1570)의 족적을 담은 ‘퇴계선생언행록’에 나오는 이 대목은 초야에 묻힌 선비들이 천문 현상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주요 기록 가운데 하나다. 1561년 낙향해 줄곧 학문에만 전념하던 퇴계는 왜 별자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1000원권에 등장하는 도산서원에서 보관해 온 퇴계의 ‘혼상(渾象)’이 최근 복원됐다. 혼상이란 둥근 구면에 별자리의 위치를 그려 넣은 천문연구 장치. 시간에 따라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지는 별의 운행을 보여 준다.


1467개 별자리 담은 현대판 천체투영기


간재 이덕홍은 퇴계의 제자 중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거북선도 그가 그린 ‘구갑선도’를 본떠 만든 것이다.




스승의 명을 받자마자 간재는 곧바로 숲에서 소나무와 물푸레나무, 대나무를 구해 왔다. 혼상을 지지할 구조물로 쓸 재료다. 간재는 구해 온 나무들을 지름 49cm의 ‘구’ 형태로 틀을 짰다. 방향을 새겨 넣은 지평환만 있을 뿐 천체의 남중고도를 측정하는 자오환도 없을 정도로 간단한 형태였다.

틀이 완성되자 간재는 조심스럽게 닥종이(한지)에 별자리를 그려 넣었다. 한양에서 입수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별자리를 사용했다.

이 천문도는 조선 태조 때인 1395년 고구려의 돌 천문도의 탁본을 가지고 만든 별자리 그림으로, 별 1467개와 별자리 292개를 담고 있다.

혼상의 별자리는 하늘 밖에서 천체를 바라본 형태다. 땅에서 하늘을 바라본 모습을 그려 넣은 천문도의 별자리와 좌우가 바뀐 모습이다.


천문의 이치를 공부한 종합 교양인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얼마나 높은 천문지식을 갖췄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대다수 유학자는 천문을 깊이 연구하는 것을 ‘소도(小道)’라 해서 무시했다.

그러나 사서삼경의 하나로 선비들의 필독서였던 ‘서경’은 “순임금은 재위하자마자 ‘선기옥형’을 만들어 해와 달, 오행성을 관찰했다”는 식으로 천문 장치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소도’ 역시 선비들이 추구하는 ‘도(道)’ 가운데 하나로 자연의 도를 담고 있다”며 “서경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은 반드시 천문을 공부했다”고 설명한다.






한국국학진흥원 박원재 박물관장도 “당시 종합 교양인이었던 유학자들의 관심사에는 천문학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라며 “‘우주와 하나 되는 것(天人合一)’이 목표였던 유학자에게 별자리 연구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황 외에 서경덕 서기 송시열 홍대용 등 다른 명망 높은 학자들도 제각기 혼상과 혼천의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






3, 4월 일반에 공개

퇴계의 혼상을 복원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 이번 복원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또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제작한 혼상을 직접 재현했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자문역을 맡았던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이용삼 교수는 지난달 19일 서울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열린 소남천문학사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복원 과정을 소개했다.

복원팀은 원형과 똑같이 목재와 대나무로 지평환과 ‘구’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고 한지 위에 별자리를 그려 넣었다. 혼상에 그려 넣은 별자리 역시 당시 사용된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자리를 구면에 투영해 위치를 잡았다.

아쉬운 점은 혼상의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퇴계의 연보를 살펴보면 1559년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말년인 1570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혼상이 1557∼1567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혼상과 혼천의, 선기옥형, 혼의 등 문헌에서 발견되는 명칭들도 혼용되고 있다.

이번 복원 작업을 처음 계획한 안동 문화방송 조현상 PD는 “음력 2월 열리는 퇴계 향사(제사)일에 맞춰 복원한 혼상을 도산서원에 기증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 글 | 박근태 기자ㆍkunt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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