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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에 숨어있는 ‘훔쳐보기’와 ‘노출하기’


(편집자주 기사에 등장한 이 씨와 김 양은 기사의 이해를 도우려고 가상으로 설정한 인물입니다.)

한 달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대학생 이 씨.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이 씨는 여자친구를 잊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이 씨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그녀의 미니홈피를 매일 훔쳐보는 것. 만나지 않고도 그녀의 사생활을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씨의 시린 가슴은 그나마 위로를 받는 듯 했다. 어젯밤에도 이 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그런데 사진첩을 클릭한 순간, 이 씨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새 남자친구와 환하게 웃는 그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너를 훔쳐보고 싶어
인터넷에서 ‘싸이 스토킹’ ‘싸이 훔쳐보기’ ‘블로그 훔쳐보기’로 검색하면 이 씨처럼 ‘훔쳐보기’를 해본 사람들의 경험담이 쏟아진다. 실제로 리서치 전문회사 디지털랩이 2005년 네티즌 4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24.9%가 헤어진 연인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중 92.3%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방문한다고 답해 소위 ‘훔쳐보기’가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가 2006년 발표한 8개의 인터넷 중독 신조어에는 ‘구글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다. 구글 스토킹은 인터넷에서 옛 친구나 동료, 첫사랑의 현재 모습을 엿보는 행위로 실제로 구글 사이트에서 상대방이 자주 쓰는 아이디로 검색을 해보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쉽게 추적할 수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남을 훔쳐보는데 왜 이토록 집착할까?





훔쳐보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의원 ‘마음클럽’의 이규환 원장은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하기 때문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쾌감을 한번 느끼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자꾸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단어는 훔쳐보기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의 영주인 레오프릭 3세는 세금을 과도하게 거둬들였다. 남편의 폭정을 보다 못한 영주의 부인 고디바는 세금을 낮춰달라고 부탁했다. 난처해진 영주는 고디바가 실천하지 못할 제안을 한다. 바로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돌면 세금을 면하겠다는 것. 모욕적인 제안이었지만 고디바는 수락했고 마을 사람들은 창문을 닫고 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마을의 재단사 톰이 말썽이었다. 훔쳐보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몰래 창문을 열고 알몸을 훔쳐본 것이다. 그때부터 훔쳐보는 사람을 피핑 톰이라고 부른다.






톰이 고디바의 알몸을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창문을 열었듯이 이 씨도 여자친구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미니홈피를 클릭했다. 하지만 본성만이 그 이유일까?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남이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민감한 집단주의적인 심리도 훔쳐보기에 한 몫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을 자아의 주요 기능으로 본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참견하기’ ‘비교하기’ 심리가 미니홈피를 훔쳐보게 만든다는 말이다.

훔쳐보고 싶은 본성은 이성의 사생활만 훔쳐보고 싶게 하지만 집단주의적 심리는 이성뿐만 아니라 모두의 사생활을 훔쳐보게 만든다. 모이면 남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인터넷 세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나를 보여주고 싶어
김 양의 취미는 ‘블로깅’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잊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때로는 인테리어가 좋거나, 가격이 비싼 가게를 가기도 한다. 블로그에 일기도 열심히 쓴다. 한 달 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블로그에 일기를 써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블로그에 올리는 내용은 다양하다. 가족 소개, 친구들과 영화 본 이야기, 새로 읽은 책 등. 며칠 전에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김 양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블로그에 생중계한다. 김 양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퍼블리즌*’이라고 한다. 퍼블리즌은 나이, 직업, 주소, 가족 관계는 물론이고 손톱의 매니큐어가 무슨 색이라는 소소하기 그지없는 일상생활까지 모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다. 김 양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공개된 공간에 올리고 싶은 심리는 무엇일까?

훔쳐보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노출하고 싶은 욕구도 본성이다. 계명대 심리학과 이재호 교수는 “바바리맨이 자신의 몸을 노출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네티즌들도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면서 쾌감을 충족시킨다”며 “노출증은 쾌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곽 교수는 “관료주의와 인간 소외를 부추긴 사회가 노출하고 싶은 욕구를 더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조직사회가 생겨나면서 개인은 자신의 특성보다는 집단 특성에 묻혀 버렸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감으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노출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졌다. 또 사회 속에서 겪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알아주는 불특정 다수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어졌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알린다는 말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만 올릴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세계에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더 확대해 ‘현실의 나’와 ‘조금 다른 나’ 더 나아가 ‘이상화된 나’를 보여줄 수 있다. 실제로는 일에 찌든 모습일지라도 멋진 모습만 찍어 올리면 남들이 보기에는 근사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이상화된 나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하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노출하고픈 심리 요
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인터넷에서 자신을 노출하는 풍조는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하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 판단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면적으로 어떻게 보이는가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또한 노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노출 성향이 자극적이고 엽기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크다.






사이버 범죄 부르는 훔쳐보기와 노출하기
만약 이 씨가 마음먹은 대로 하면 정보통신보호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2004년 제주도에 사는 김모씨(25)가 애인의 e메일을 몰래 훔쳐보고 싶은 나머지 10만원을 주고 해커를 고용해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해커가 알아낸 애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e메일을 훔쳐본 김모씨는 결국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덜미가 잡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마음클럽 이 원장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집착이 생기고 더 나아가 소유욕도 생긴다면 김모씨와 같은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를 악용한 사업도 생겼다. 남의 행적을 뒤쫓듯 인터넷 상의 행적을 추적해주는 ‘사이버 흥신소’가 그것이다. 한 사이버 흥신소의 홈페이지에는 ‘해킹을 통해 e메일을 가로채고 개인의 신상정보를 빼내는 것이 가능합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고 고객 문의 게시판에는 애인의 e메일을 해킹해달라거나 자녀의 사이버 사생활을 감시해 달라는 요청이 빼곡하다.

인터넷 공간에서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욕구가 기존의 심부름센터 기능과 맞물려 사이버 흥신소가 생겨난 것이다. 작년 9월에는 국제 해킹대회에서 입상경력이 있는 전문 해커가 개인신상정보를 불법으로 해킹해주는 사이버 흥신소를 운영하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2010년의 훔쳐보기
과연 미래에는 훔쳐보기가 어떻게 진화할까?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훔쳐보기는 본성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며 “다만 훔쳐보는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점점 발전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희사이버대 사이버NGO학과 민경배 교수도 “남을 훔쳐보고 싶은 온갖 욕구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 교수는 “2010년쯤이면 책상 위의 볼펜, 컵은 물론 넥타이나 냉장고에도 IP주소가 할당될 것”이라며 “마음만 먹으면 옆집 냉장고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옆집 사람이 내일 저녁에 뭘 먹을까? 옷장에 무슨 색 넥타이가 있지?’라는 온갖 소소한 호기심이 생겨난다. 이런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이미 사람들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훔쳐보기도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다. 습관적으로 굳어지면 알코올 중독자처럼 안하면 불안해지는 금단현상이 나타나 훔쳐보기 중독이 생길 수도 있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훔쳐보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을 발전시키는 기술. 사이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자 미래의 모습이다.

이 씨는 그녀가 새로운 남자를 사귄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더불어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싶어졌다. 미니홈피에서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에 ‘전체공개’된 자료가 ‘일촌공개’로 바뀌었다. 결국 이 씨는 해커를 고용해 그녀의 e메일과 미니홈피를 훔쳐보기로 결심했다.






악플러의 심리
인터넷에 악플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행동은 자신의 상태나 욕구를 알리려는 과시욕과 사람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관음증의 발현이다.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고 싶은 욕망은 익명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더욱 활개를 친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사라 키슬러는 인터넷에서 실명과 익명으로 글을 쓸 때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익명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집단이 실명으로 의사소통했던 집단에 비해 악의적인 글을 6배 이상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익명성은 사회적 인습과 금지의 제약까지도 벗어나게 한다. 사람들은 익명성의 환상에 젖어 자신이 한 행동이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실 세계에서처럼 격식을 차릴 필요없이 내적 욕구를 표출한다. 관심받고자 하는 욕구도 숨어있다. 악플에 대한 조회수와 댓글 등 온라인 상의 반응을 사람들의 관심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악플에 대한 사회적 심각성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유명 탤런트가 악플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연예인 기사에는 악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 7월부터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기로 해 악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강력한 법과 함께 성숙한 온라인 토론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악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 김맑아 기자·maki@donga.com ㆍmak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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