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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가 녹고 있다


지난 2005년 여름에는 북극의 해빙이 알래스카 면적만큼 줄었다. 해빙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북극곰은 가혹한 처지로 내몰렸다. 덩치를 줄이고 새끼를 덜 낳으며 적응해보려 하지만 북극곰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적도의 작은 섬 투발루에서는 해마다 바닷물 높이가 올라간다. 목 밑까지 차오른 물과 싸우다 지친 주민들은 미래가 없는 조국을 등지고 있다. 극지에서 적도로 이어지는 지구온난화의 나비효과 속 어딘가에 당신이 있다. 온실기체를 펑펑 내뿜으며 지구를 데우는 데 한몫하는 당신, 그래도 모른 척 할 텐가. 당신의 무관심이 지구의 미래를 녹이는 주범인데 말이다.

북극의 원주민인 이누이트는 달력을 보지 않고도 봄이 언제 오는지 알 수 있다. 북 극의 봄이 시작되는 4월 무렵에는 날이 풀리면서 북극오리와 기러기떼가 찾아오 고, 빙하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든다. 겨우내 북극을 떠났던 과학자도 장비를 점검하러 돌아온다. 그러나 요즘은 봄의 전령사를 믿기 어려워졌다. 겨울인데도 그 다지 춥지 않고 봄은 예전보다 일찍 찾아온다.

IPCC 4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지구 대기의 평균온도는 10년마다 0.13℃씩 올라갔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되자 극지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혜로운 원주민의 판단을 흐려놓는 데는 과학자도 한 몫 한다. 지구온난화의 열 기가 뜨거워지면서 봄이 되면 찾아오던 과학자들의 발길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 기 때문이다. 2007~2008년이‘국제극지의 해’(IPY)이기도 하고, 유엔 산하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이하 IPCC)가 연초부터 기후변화보고서를 차례로 발표 하며 남극과 북극을 주목한 탓도 있다.

1979년부터 2006년까지 북극의 해빙(海氷) 면적은 꾸준히 감소했다. 특히 해빙 면적이 최대로 줄어드는 9월에는 10년마다 8.6%의 비율로 얼음이 녹았다. 매년 한 반도의 절반 정도 면적인 10만km2의 해빙이 사라진 셈이다. 특히 2005년 9월에는 알래스카의 크기(170만km2)만큼 해빙 면적이 줄어들었다.

남극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는 남극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논문이 실렸다.




기후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
영국 남극연구소 자연환경연구팀의 존 터너 박사는 지난 30년간 겨울철 남극의 대류권 기온이 10년마다 0.5~0.7℃씩 올라갔으며 성층권의 기온은 오히려 떨어졌 다고 말했다. 터너 박사는“남극 상공의 온실기체가 지구의 복사에너지를 흡수하 면 대류권의 기온은 올라가지만 성층권은 냉각된다”며 남극도 온실기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남극과 북극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극 지연구소 극지환경연구부 김성중 박사는 눈과 얼음을 주범으로 꼽았다. 그는“눈 이나 얼음은 빛을 대부분 반사해 극지의 기온을 낮게 유지해준다”며“지구의 기온 이 올라가면서 얼음이 녹으면 반사하는 태양에너지가 줄어들며 결과적으로 극지 의 온도가 올라가고 환경이 급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남극과 북극 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남극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에서도 해마다 지구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극지의 빙하가 녹으면 가장 먼저 해수면 상승이란 가시적 효과가 나타난다. 극 지연구소 극지환경연구부 홍성민 박사는“남극 세종기지 앞 빙벽이 해마다 눈에 띄게 후퇴하고 있다”며“남극과 그린란드의 빙상과 북극의 해빙이 녹으면 해발고 도가 낮은 투발루 같은 나라는 50년 안에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닷물의 열팽창도 해수면 상승에 중요한 요인이다. 열 팽창은 온도가 올라가면 유체의 부피가 커지는 현상으로 물은 온도가 1℃ 올라가 면 부피가 0.01% 정도 팽창한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노의근 교수는“바다는 대륙 으로 막혀있기 때문에 열팽창이 일어나면 고스란히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바닷물의 깊이를 4000m라고 했을 때 수온이 1℃만 올라가도 해수면이 40cm 높 아진다”고 설명했다.

대기와 얼음, 해양 사이에 열교환이 일어나면 지구온난화에도 가속도 가 붙는다. 길고 무더워진 여름, 극지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태양과 정면 으로 마주친 바다는 열을 많이 흡수하며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당연 히 겨울이 되도 얼음이 어는 속도는 더디다. 예전보다 두께가 얇아진 얼 음은 날이 풀리며 빠르게 녹는다. 바다는 더 뜨거워지고 이 열이 대기 로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지구의 기온은 더 올라간다.


북극의 여름,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지속되며 해빙이 급속히 녹는다.

극지의 얼음이 녹으면 해류의 움직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대양 대순환은 뜨거운 적도의 열을 차가운 극지로 전달하며 지구의 열을 고르게 분배해 일명‘해양 컨베이어벨트’라고도 부른다. 빙하가 녹 으면 바닷물의 염분이 낮아지면서 대양대순환 자체가 약해지거나아 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당장 유럽에는 한파가 몰려올 수 도 있다.

극지의 생물은 모진 변화에 직면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 대륙 에서는 강설량이 늘며 얼음 면적이 증가했지만 남극반도처럼 바 다와 접해있는 곳에서는 온도가 오르며 빙붕이 떨어져나갔다. 마른 땅에만 둥지를 만드는 아델리펭귄은 눈이 다 녹을 때까 지 기다려 알을 낳는다. 크릴이 한창 풍부한 시기를 지나 세상에 나온 새끼는 굶주림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어미 펭귄은 해빙이 줄어든 바다를 헤엄치며 힘겹게 먹이 사 냥을해야한다. 결국남극반도에서아델리펭귄의개체수는1970 년대 이후 70%나 줄었다.


2004년 여름 미국 뉴욕주의 검찰총장 엘리엇 스피처(현 뉴욕주지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몇몇 기업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죽거나 혹은 적응하거나
북극에서도 기온이 오르며 북극오리, 바다코끼리, 고래가 떠나고 대신 대구가 찾아오 고 있다. 북극곰은 이미 체격을 줄이고 새끼를덜낳는 방식으로 숨가쁜 적응을 시작했다. 해빙이 줄어들며 사냥의 기회가 줄었고 새끼 곰의 생존율도 뚝 떨어졌다. 북극곰은 지난 해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정한 멸종위기종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극지연구소 극지응용연구부 강성호 박사는“빙하에 의존해 살던 생물은 개체수가 줄 어들거나 서식지를 북쪽으로 옮기는 반면 일부 조류나 포유류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번 성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종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셈이다. 문제는 일부 생물 에게만 호의적인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해빙이 녹으며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은 앞으로 동물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2100년경이면 더 이상 북극에서 해빙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얼음에 기 대어 살아온 수많은 생명들도 이번 세기 안에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했다. 북극곰이 떠나 며 이누이트는 꿈과 미래를 잃었다. 적도의 작은 섬 투발루는 해마다 섬을 집어삼킬 듯 높아지는 바닷물과 싸우며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극지의 빙하에서 적도의 해수면에 이르는 거대한 기후의 나비효과 속에서 지구의 미 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한바탕 눈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남극의 펭귄마을. 이곳의 생물들도 모진 변화에 직면했다.


















| 글 | 신방실 기자 ㆍweezer@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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