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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쿨한 알파우먼 5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 Girls, be ambitious!
“스타워즈, 스타트렉 같은 SF를 즐겼는데, 우주선이 드넓은 우주를 어떻게 맘대로 다닐까 궁금했어요. 가만 보니 우주선을 조종하는 핵심에는 컴퓨터가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컴퓨터의 매력에 푹 빠졌죠.”

수학과 과학을 무척 좋아하며 수업시간에 유독 질문이 많았던 여자아이는 이렇게 컴퓨터의 매력에 끌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 들어갔다. 졸업할 땐 자연대 수석을 차지했고 1986년 세계적인 컴퓨터과학자를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4년 삼성SDS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장연아(45) 삼성SDS 상무. 장 상무는 항상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하며 카멜레온처럼 새롭게 변신하는 걸 즐겼다. 미국 MIT에서는 인공지능을 연구했으며, 심장질환자의 진단을 도와주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참여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컴퓨터과학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하면서 IT기술을 활용해 생활을 편리하게 바꾸는 비즈니스 분야로 옮겨갔다. 이때부터 그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비즈니스 리더가 되리라는 야망을 품었다.


장연아 삼성S D S 상무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AT&T, 시티그룹, PSEG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카드관리시스템, 인터넷뱅킹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이끌며 최고기술책임자(CTO)에 해당하는 자리까지 올랐는가 하면, 쌍방향 교육 솔루션을 공급하는 ISAC소프트 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물론 리더로서 어려움도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현지인도 아니고 동양인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 물었죠. 팀원들과 많은 토론을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도록 이끌자 고객을 향한 비전이 보이더군요.” 그는 미국에서 배운 노하우를, 한국의 IT산업을 도약시키는데 활용하고 싶어한다. 현재 삼성SDS에선 사람이 일할 때 필요한 시스템과 지식을 제공하는 IT환경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식 경영’을 한 차원 더 높이려는 노력이라고 한다.

삼성SDS를 글로벌 IT기업으로 만들려는 게 현재 그의 목표다. “꿈이 뭔가를 늘 고민해야 합니다. 꿈을 꿀 시간이 없다거나 꿈이 뭔지 모른다고 포기하지 않으면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칸딘스키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을 배경으로 진홍색 노트북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에서 글로벌 리더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P r o f i l e
1985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1992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 MBA 1993 미국 MIT 컴퓨터공학 박사 1994~1996 AT&T 벨연구소 연구원 1998~2000 시티그룹 상무 1996~1998, 2001~2003 퍼블릭서비스 엔터프라이즈 그룹(PSEG) CTO 2003~2004 ISAC소프트 사 전무, 공동창립자 2004~현재 삼성SDS 상무, CIO 겸 CAO(CEO Advisory Officer)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품은 철의 여인 '오지은'
그녀의 리더십은 필수 ‘Must Have’ Her leadership

포스코 광양제철소. 여의도 면적의 1.7배에 이르는 광활한 땅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뛰고 있는 철의 심장. 심장이 펌프질하는 것은 뜨거운 피가 아니라 차가운 철이다. 연간 1700만톤의 강철이 광양제철소에서 생산돼 세계 곳곳을 누빈다. 특히 자동차강판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억센 강철의 얼굴에 곱게 아연을 입히고 빛나는 광택을 지닌 자동차강판으로 만들려면 섬세한 손길은 필수. 그래서일까. 지난 1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최초의 여성 공장장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바로 오지은(40) 공장장.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입사 초기, 중요한 업무가 남자 동기에게만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며 회의가 밀려왔다. 워낙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의 분위기 탓도 컸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어디 가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직접 생산한 자동차강판을 들고 자동차회사를 찾아다니며 고객이 원하는 점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들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시작해 화학과 금속 분야에서 두 개의 석사학위를 땄다. 꾸준히 준비한 그는 결국 입사한지 17년만에 광양제철소 도금부 1도금공장의 책임자가 됐다. 철강 분석실과 제품 품질 관리 업무를 두루 거치며 능력과 경력을 인정받은 것.



오지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공장장

광양제철소 31명의 공장장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그는 80여명의 남자 직원을 이끌고 철의 항해를 시작했다. 그동안 제철소를 이끄는 공장장이라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철의 탄소 함량이 높을수록 강도는 커지지만 부러지기 쉬운 법. 마찬가지로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현장’에서 ‘나를 따르라’는 식의 꽉 막힌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조직의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가 끝까지 함께 갈 동료라는 유대감을 키우죠. 남자와 차별화된 여자만의 장점을 살려 ‘넘버원’(No. 1)이 아닌 ‘온리원’(only one)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직 공장장이 된지 몇 달 지나지 않았으니 1년쯤 지나면 재밌는 얘깃거리가 더 많아질 거라고 말하는 그. 철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 때문일까. 그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있어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iamhappy’란 그의 메일 주소를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P r o f i l e
1989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1990 포스코 입사
1999 포스텍 화학과 석사
2002 순천대 재료금속공학과 석사
2004 포스코 영보드 위원
2006 포스코 MBB(6시그마 Master Black Belt)
2007 포스코 광양제철소 1도금공장장 고부가가치 물질 만드는 21세기 미다스





고부가가치 물질 만드는 21세기 미다스 '안지환'
끈기, 능력 이상의 능력 patience, more than Ability

“새로 건립한 우리 청정생산공장에 어떻게 폐기물을 원료로 쓸 수 있단 말인가!” 1992년 한 시멘트 회사 앞에서 젊은 여성과학자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제철소의 제강공정에서 나오는 폐석회석을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기 위해 2년 넘게 연구하고 6개월 동안 시험생산까지 마쳤지만, 재활용 자재를 꺼리는 회사 사장에게 ‘No’ 사인을 받았다.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나 싶었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건설현장을 뛰어다니며 ‘시멘트박사’들을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여성과학자의 열정에 하나둘씩 재활용 시멘트를 쓰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건설업계가 ‘무분별하게’ 재활용 시멘트를 사용해 정부가 기술 가이드 라인을 준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성인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자원공학 분야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폐기물을 자원으로 만든 이 여성과학자는 국내 유일의 석회석 전문가 안지환(44)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초 ‘여성도 국가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주저 없이 선택한 공대.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인하대 자원공학과가 설립된지 30년 만에 처음 들어온 여학생이라 주위로부터 끊임없이 눈총을 받아야 했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를 마친 뒤 들어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도 그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안지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공고 나온 반바지 입은 남성 기술자’를 더 원했던 당시 상황에서 연구원은 젊은 여성과학자에게 제대로 된 연구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시기, 질투는 받아도 무시는 당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다른 실험실에서 쓰다 버린 폐황산을 주워다 실험에 사용했으며, 첫 아이를 출산한 다음날 연구원에 나와 승진시험을 보기도 했다.

1990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최연소 책임연구원이 된 그는 남성중심의 자원공학 연구 환경을 바꿔나가며 폐기물 재활용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는 길을 재촉했다. 2006년 우리나라 비금속자원 중 가장 풍부한 석회석을 침강성 탄산칼슘으로 탈바꿈시킨 연구로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받았다. 침강성 탄산칼슘은 플라스틱, 고무, 제지산업부터 식?의약품 산업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원료다.

“시인 서정주님의 표현을 빌자면 제 연구 과정의 8할은 ‘끈기’였죠. 과학자에겐 능력이 중요하지만 인내심은 그보다 더 큰 저력을 발휘합니다.”

P r o f i l e
1986 인하대 자원공학과 졸업
1988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입사
1990~현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1991 연세대 경제학 석사 (자원경제)
1997 인하대 자원공학 박사
2006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






1시간의 행복 좇아 평생을 바치는 수학자 '최영주'
그녀의 H는 열정 Her ‘H’ is heart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면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곳에 다다른 듯한 희열을 느끼죠.”이렇게 ‘수학예찬론’을 펴는 최영주(48) 포스텍(포항공대) 수학과 교수는“시대나 환경에 따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다루는 학문이 수학”이라는 믿음이 수학을 선택하도록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수학을 선택했지만 여성수학자로 사는 일에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러던 중 1981년 이화여대 수학과에 부임한 여자교수는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는 여교수의 당당함과 열정에 매료되면서 불확실한 미래의 안개를 걷어냈다.

미국 템플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할 무렵에는 수학자만이 맛볼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을 경험했다. 평소 정수론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고민해온 그는 실마리가 떠오르자 당시 박사 지도교수였던 마빈 크놉 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크놉 교수는 “누구도 풀지 못한, 나도 20여 년 동안 생각하고 매달린 문제를 풀었다”며 놀라워했다. 최 교수는 ‘수학자는 문제가 풀리는 단 1시간의 행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말을 가슴으로 느꼈다.


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그는 1990년 만삭의 몸으로 포스텍에 부임해 화제를 모았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온갖 관심과 편견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오히려 그를 자극해 연구에 더욱 전념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정수론과 암호론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수학회 사상 여성 최초로 논문상을 수상했고 2005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세계적인 수학자모임에서 초청강연을 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 정수론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열정은 수학을 넘어 후배들에게 이어진다. 그는 WISE(Wome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가 제공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다양한 강연을 하면서 수학자의 길을 꿈꾸는 여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뛰어난 여성수학자를 배출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금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요즘 그는 21세기 수학난제 가운데 정수론과 관련된 ‘L-함수’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있다. “진리는 마치 바닷가에 있는 주인 없는 수많은 진주와 같다. 진리를 볼 수 있는 열정과 집념을 갖은 사람이 바로 주인”이라는 점을 되뇌면서 말이다.

P r o f i l e
1982 이화여대 수학과 졸업
1986 미국 템플대 정수론 박사
1988~1990 미국 메릴랜드대, 콜로라도대 조교수
1990~현재 포스텍 수학과 교수
2004 포스텍 ‘권경환 석좌교수’로 선임
2005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






'톰보이' 벗어던진 신세대 엔지니어 '신현정'
적극적인 게 아름다운 것! active is Beautiful!

여 제자들에게 ‘여성스러움을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공대생이 되라’고 강조하는 KAIST 기계공학과 신현정(34) 교수. 톡톡 튀는 발랄함이 여느 공학자의 모습과 달라 보이는 그는 한국인 최초로 MIT 기계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생체역학 전문가다.

생체역학은 생물학에 기계공학을 접목한 최신 분야다. 그가 여기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석사과정에서 말발굽 게의 정자를 연구하면서부터다. 말발굽 게의 정자 안에는 용수철 같은 조직이 있는데, 수정할 때 이 조직이 풀리며 난자로 돌진하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신 교수는 말발굽 게의 정자가 탄성에너지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메커니즘을 밝혀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위로 언니만 넷인 딸 부잣집 막내로 자란 그가 KAIST 기계공학과 51명의 교수 중 단 2명뿐인 여자 교수 중 한 사람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신현정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현실에 충실했던 것 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좀 약아야죠. 자신의 단점은 솔직히 인정해 빨리 극복하고, 자신의 장점은 충분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이런 ‘인생신조’는 고2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립학교로 유학을 떠나며 빛을 발했다. 서울의 한 명문고에서 전교 1등을 다투던 그였지만 영어의 불리함을 인정하고 한 학년 낮춰 10학년(고1)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수학은 특기로 최대한 살렸다. 12학년(고3) 때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 포모나대에서 대학과정의 수학 강의를 듣고 A학점을 받아냈던 것. 강의를 맡았던 교수에게 대학 입학의 필수인 추천서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런 ‘전략’으로 그는 MIT 기계공학과에 들어갔다.

“공대 여학생으로서 ‘톰보이’(tomboy) 이미지는 싫었어요. 공구함을 들고 다니면서도 ‘너는 공대생 같지 않고 미대생 같아’라는 말을 가장 듣기 좋아했지요.” 신 교수는 기계공학을 공부하면서 여성이라는 점을 큰 장점으로 생각했다. 남자들이 대다수인 분위기에서 조금만 잘하면 더 주목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당당하게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도우면 된다는 게 신 교수의 지론이다. 여성성을 최대한 강조하면서도 누구 못지않은 실력으로 무장한 신 교수야말로 진정한 알파걸이 아닐까.

P r o f i l e
1998 미국 MIT 기계공학과 졸업
2004 미국 MIT 기계공학과 생체역학 박사
2005~현재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 글 | 이충환 기자 ㆍcosmo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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