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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을 뚫어라


“21세기는 여성의 감성과 꼼꼼함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창의와 감성의 시대다. 우수한 여성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일은 배려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차원에서 필요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인재 제1철학이다.

휴대전화 시장에 뜨거운 열풍을 일으킨 ‘초콜릿 폰’을 디자인한 김진 LG전자 상무, 고기능성 수지 ‘스카이그린’을 개발한 홍윤희 SK케미컬 부장, 은나노 세탁기 개발의 일등공신 양혜순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국내 기업에서 남성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여성 인재들이 늘고 있다. 이 가운데 SK케미컬 홍 부장은 화학 박사고 삼성전자 양 연구원은 환경공학 전문가다. 이공계 여성인력의 약진을 보여주는 사례다.

잘 나가는 이공계 여성인재들이 유리천장을 뚫은 비결은 무엇일까.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여성 인재상은 어떤 모습일까. 21세기에 이공계 여성인력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보자.



기업수익률 올리는 비결
이베이의 멕 휘트먼, 제록스의 앤 멀캐이처럼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CEO 자리를 꿰찬 여성도 있다. 유명한 경영전문가 톰 피터스는 자신의 저서 ‘미래를 경영하라’에서 더 놀라운 사실을 들려준다.

미국에는 여성 소유기업이 1010만개나 있는데, 이들 기업의 총 매출액은 3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이는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또 여성 소유기업은 모두 2750만명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전체가 전세계에서 고용한 인력보다 더 많다고 한다.

여성인력이 활발히 일하는 기업일수록 좋은 성과를 낸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1996~2000년 미국 100대 기업의 주주 총수익률을 분석했을 때 여성 관리직 비율이 높은 상위 10% 기업의 총수익률이 평균보다 10배 이상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하위 10% 기업의 총수익률은 평균의 0.4배에 불과했다.맥킨지는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국가가 여성인력의 경제활동을 높이지 않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미국의 투자사 ‘시티즌스 펀드’가 2004년 시가총액이 750억 달러 이상인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임원이 많은 기업의 연평균 주가수익률은 여성임원이 적은 기업보다 3% 높았다. 펩시, 킴벌리, 존슨앤드존슨 같은 글로벌 기업은 여성임원 비율이 30~50%에 이른다.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은 두껍다. 20개 주요기업의 임원 중 여성은 0.9%에 불과하고, 기초과학연구사업에서 연구책임자 중 여성은 8.8%뿐이다. 사진은 과학계 유리천장을 돌파한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임원으로 살아남은 비율 0.9%
최근 국내기업의 여성인력 비중도 급격하게 느는 추세다. 삼성은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제조업 분야에서 여성 연구개발 인력은 2002년 2095명에서 2005년 4411명으로 110%나 증가했다. 삼성의 여성 연구개발 인력은 기초과학, 디자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초과학 전공자는 34%를 차지한다.

삼성계열사 가운데 특히 삼성SDS는 전체 직원 8100명 중에서 여직원 비율이 20.1%로 상당히 높다. 이 덕분에 2005년에는 ‘남녀고용평등우수기업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요즘 주요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실력대로만 뽑으면 신입사원 중 여직원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세현 동부정보기술 상무(CTO)는 “최근 동부그룹의 정기 공채에서 선발한 신입사원 중 55%가 여성”이라고 말했다. 오 상무는 지난해 동부그룹 창사 37년 만에 탄생한 첫 여성 임원이다.

어떻게 하면 유리천장을 깰 수 있을까. 오 상무는 “사회나 기업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여성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준비하는 대표적인 예가 삼성SDS의 여성리더스클럽이다.


세계적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의 CEO 멕 휘트먼. 2004년에는 포춘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경영자’ 1위에 올랐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라!
정 원장은 “주변에 여성인력 수가 적고 보직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 원장 선출 과정에서 논의됐다”며 “여성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여성과학자를 키우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학기술계에서 여성 리더가 30%가 될 때까지는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초 과학기술부는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여성과학기술인 ‘직급별 승진목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실 여성 과학기술인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사람이다. 1980년대 만해도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여성 박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지만, 2005년에는 300명으로 대폭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 전체 박사 인원(6660명)의 6.3%에 불과하다.

특히 자연계보다 공학계에 여성인력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2005년 현재 이공계대학 여교수 3044명 가운데 공학계 여교수는 22%(681명)다. 그래도 소수의 역할은 중요하다. 2004년 KAIST 기계공학과가 설립 34년 만에 첫 여교수로 박수경 교수를 임용하자 1명도 없던 여학생이 2006년에는 10명까지 늘었다.


조선공학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인 이연승 대우조선해양(주) 선박성능연구소 연구원. 사진은 2004년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에 재직하던 당시 모습.

실제 이공계 여성의 기대와 현실은 많이 다르다. 지난해 여성개발원 신선미 박사가 발표한 보고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분야 여성고급과학기술인력 양성방안’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과정의 여학생 대다수가 ‘힘든’ 기업체 엔지니어보다 ‘안정된’ 대학교수를 선호하고 사회적 네트워크, 보육 지원, 남자 연구자의 인식변화를 희망했다.

하지만 많은 선배 여성과학기술인은 이공계 여성후배들의 인식변화를 촉구했다. 최순자 인하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여자라는 생각에 뒷걸음질치기보다 남자만큼 하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화 테고사이언스 CEO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목표가 중요하다”며 “뭔가를 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하라”고 충고했다. 바이오벤처 테고사이언스는 산업자원부가 ‘2006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중 하나로 선정한 피부세포치료제 ‘칼로덤’를 개발했다.




이공계 여성인력은 생명공학기술(BT), 정보기술(IT) 분야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 이공계 여성이 꼭 BT와 IT 분야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최 교수는 “건축, 화공, 재료, 기계, 선박에 대한 공학 분야도 여성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연승 대우조선해양(주) 선박성능연구소 연구원은 “조선 분야가 거칠고 남성적이라는 것은 선입견”이라며 “선박 설계 분야는 섬세함과 정확성이 요구돼 오히려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조선공학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로 현재 초대형 컨테이너의 선형(船形, 배의 모양)을 개발하고 있다.

미래를 꿈꾸는 여성들이여, 톰 피터스의 저서에 나온 한 기업체 고위경영자의 말을 기억하라. “내 성공의 비밀은 바로 여성을 고용한 것입니다.”










| 글 | 이충환 기자 ㆍcosmo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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