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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이 두려워하는 메가번개


매일 지구에는 눈 깜박할 사이에 6개월간 한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만한 에너지를 내뿜는 번개가 800만번이나 친다. 90% 이상의 번개가 구름 속에서 치지만 매우 많은 전하를 가진 폭풍은 전기를 폭포처럼 쏟아내며 번개를 지상으로 내리꽂는다. 그런데 이런 번개보다 규모가 1000배나 더 큰 번개가 있다. 바로 ‘메가번개’(Megalightning)다.

메가번개는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번개다. ‘구름 위에는 번개가 존재할 수 없다’는 기존 교과서의 지식을 뒤집기 때문이다. 보통 번개는 구름 아래로 치는 반면, 메가번개는 구름 훨씬 위에서 발생하고 고도 90km까지 치고 올라간다.

번개속 비행정

사실 메가번개에 대한 목격담은 100년 전부터 전해져 왔다. 지난 수십년 동안 비행기 조종사들은 구름 위에서 춤추는 빨간 불덩이, 분수처럼 솟는 파란 불기둥 같은 낯선 불빛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종사가 환각상태에서 헛것을 본 것이라며 목격담을 믿지 않았다.

일부 조종사는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당할까 봐 메가번개를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렇지만 조종사는 메가번개를 무시하면 안된다. 메가번개는 여객기가 견딜 수 있는 설계 한계보다 6배나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로 남겨진 많은 공중 참사의 원인이 메가번개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메가번개는 조종사의 경계대상 1호가 됐다. 조종사가 두려워하는 메가번개를 파헤쳐보자.




전설에서 과학으로
18년 전인 1989년 7월 6일 하늘이 깨끗한 밤 미국 미네소타평원. 미네소타대 로버트 프란츠라는 젊은 과학자가 어두운 곳에서 찍을 수 있는 TV카메라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250km 떨어져 있는 뇌운(번개, 천둥을 동반하는 구름) 위의 하늘을 찍었다. 나중에 촬영테이프를 틀어보다가 구름 위에서 예상치 못한 눈부신 불빛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그 정체를 몰랐지만 메가번개의 일종인 ‘스프라이트’를 최초로 촬영했던 것이다.

이 촬영결과는 꼭 1년 뒤인 다음해 7월 6일 ‘사이언스’에 실렸다. 프란츠 박사팀은 이 논문에서 뇌운으로부터 ‘솟아오른 번개 섬광’, 즉 고도 14km의 구름 정상에서 위로 20km 이상 솟아오른 쌍둥이 빛기둥을 기록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이 정도로 거대한 방전현상(스프라이트)은 높이 나는 비행기와 로켓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스프라이트는 미국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의 데이비스 센트만 박사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The Tempest)에 등장하는 공기의 요정 ‘아리엘’을 생각하며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요정을 영어로 ‘스프라이트’(sprite)라고 한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폭풍(템페스트)이 중요하게 나오는 희곡 속의 요정을 떠올리면 폭풍 위에서 발견된 신비한 불덩이에 스프라이트란 이름은 잘 어울린다.

고층 메가번개의 하나인 ‘스프라이트’를 처음 컬러로 찍은 사진. 미국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연구진이 1994년 7월 4일 ‘붉은 스프라이트’를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미네소타대의 성과 덕분에 전설 속의 은밀한 이야기는 과학의 수면으로 올라왔다. 메가번개에 대한 연구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미국 대평원에 거대한 폭풍이 피어오른 밤이면 과학자들은 로키산맥 위에 올라가 폭풍 위쪽 하늘을 향해 고감도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또 우주왕복선을 타고 올라가 지구 궤도상에서 메가번개를 촬영하기도 했다.

먼저 1989~1991년에 우주로 향한 여러 우주왕복선에서 지구 상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으로 스프라이트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영상에서 스프라이트 현상을 17개나 찾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지상에서 200km가 넘게 떨어진 고도에서 찍은 영상이라 분석하기는 어려웠다.

좀더 가까이서 관측할 필요가 있었다. 1993년 7월 6일 미국의 기상학자 월터 리온스 박사가 유카산에 설치된 원격조종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그곳에서 300km쯤 떨어져 있는 캔자스 상공에 으르렁거리던 강력한 폭풍 위쪽 하늘에서 밝은 섬광을 잇달아 촬영했다. 하룻밤 만에 250개의 스프라이트를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로키산맥에서는 1992년 이래 10년 동안 거의 1만개의 스프라이트를 관측했다고 한다.

1994년에는 알래스카대 과학자들이 고감도 컬러카메라를 갖고 비행기에 올라탄 뒤 공중에서 스프라이트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스프라이트의 실제 빛깔이 빨갛다는 점을 처음 확인했다. ‘붉은 스프라이트’의 존재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고도 15km의 구름 위쪽에서 발생하는 고층 메가번개에는 블루 제트, 자이언트 제트, 문어나 당근 모양의 붉은 스프라이트, 거대한 도넛 모양의 엘브스가 있다.
양배추, 문어 닮은 ‘스프라이트’
스프라이트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하자 스프라이트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위로 치는 번개라는 점은 오해임이 밝혀졌다. 초창기 TV카메라는 1초에 60장만 찍을 수 있어 스프라이트의 변화과정을 알아내기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대기물리학자 움란 이난 교수팀이 고속카메라의 영상을 바탕으로 스프라이트가 실제로는 아래로 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실 스프라이트는 눈 깜박할 사이(250ms)보다 더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보통 10~100ms(밀리초, 1ms=1000분의 1초)가량 지속될 뿐이다. 그래서 맨눈으로는 관측하기조차 힘든 스프라이트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고속카메라가 필요하다.


1000분의 1초 간격으로 찍은 영상을 보면 스프라이트는 위에서 아래로 치는 번개임을 알 수 있다.

커다란 스프라이트는 전리층 하부인 고도 90km에서 고도 15km 근처의 뇌운 정상까지 최대 초속 1만km로 내리치기도 한다. 수평 방향으로는 40km 이상 뻗쳐 있다. 가장 밝은 영역은 고도 65~75km에 위치하며 그 아래로는 덩굴손이나 촉수처럼 생기고 지름 100m 이하인 구조가 여럿이 늘어져 있다.

스프라이트의 전체 모습은 양배추나 문어, 또는 당근을 닮았다. 미국 듀크대 스티븐 커머 교수팀은 초당 7000장을 찍을 수 있는 초고속카메라를 동원해 전례없이 자세하게 스프라이트를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커머 교수팀은 2005년 7월과 8월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에서 피어오른 뇌운 위에서 66개의 스프라이트를 찍었다. 가장 잘 찍은 영상을 보면 스프라이트는 밝은 빛 무리에서 촉수가 뻗친 것 같아 전체 모습이 영락없이 바닷속에서 물결치는 대형 해파리를 닮았다.






이 결과는 지난해 2월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에 발표됐다. 흥미롭게도 스프라이트는 뇌운에서 지상 번개가 칠 때 함께 발생한다. 보통 벼락이 떨어지기 전 뇌운에서는 전자가 아래쪽에, 양전하가 위쪽에 쌓이는데, 대부분의 벼락은 뇌운 아래쪽에 쌓여있던 전자가 지상으로 쏟아질 때 친다. 하지만 5분의 1은 지상에 있던 전자가 뇌운 상층으로 치솟아 양전하와 만나면서 방전할 때 나타난다. 이를 ‘구름과 지상 간 양의 방전’이라 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방전이 일어날 때 뇌운 위쪽 대기에서 스프라이트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구름과 지상 사이에서 양의 방전이 일어나면 뇌운은 양전하에 비해 전자가 많은 상태가 된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박일흥 교수는 “이때 대기 상층부에 있던 양전하가 아래쪽으로 이동하면서 수십km 상공의 산소를 때리고 흥분 상태의 산소에서 붉은 빛이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붉은 스프라이트라는 설명이다. 스프라이트는 고도 90km 근처의 대기 상층에서 아래로 치는 메가번개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위로 치는 번개는 없을까. 사실 메가번개에는 스프라이트만 있는 게 아니다.




잡종 번개 ‘자이언트 제트’
1989년 10월 21일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가 호주 상공을 지나가면서 거대한 폭풍을 찍은 비디오에서 ‘로켓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번개’가 발견됐다. 이것은 스프라이트와 달리 파란빛을 띠어 ‘블루 제트’(blue jet)라고 한다. 블루 제트는 뇌운 꼭대기(고도 15km)에서 가느다랗게 솟구치는 메가번개다. 보통 초속 100km로 전리층 바로 아래인 고도 40~50km까지 도달한다. 블루 제트는 0.1~1ms 정도 지속돼 스프라이트보다 빨리 사라지고 스프라이트와 달리 지상 번개와 연관이 없다.


01대만 국립성공대 과학자들이 연속으로 촬영한 영상에서는 고도 90km까지 솟아오른 새로운 메가번개 ‘자이언트 제트’를 볼 수 있다.

블루 제트가 생기는 원인을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에서 찾는 이론도 있다. 박 교수는 “중성미자가 지구를 관통할 때 일부가 타우 경입자로 바뀔 수 있는데, 타우입자는 대기분자와 격렬히 반응하며 방전을 일으켜 블루 제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성층권에 많은 질소가 흥분한 상태에서 파란 빛을 내놓는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는 블루 제트와 스프라이트의 잡종으로 보이는 ‘자이언트 제트’가 발견됐다. 대만 국립성공대 과학자들이 2003년 6월 ‘네이처’에 발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2년 7월 22일 밤 연구팀은 대만 남단의 한 건물 꼭대기에 고감도 디지털카메라를 설치한 뒤 거기서 400km 떨어져 있는 남중국해 상공에 피어오른 거대한 뇌운 위쪽 하늘을 촬영했다.





스프라이트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이언트 제트’ 5개가 뇌운 정상에서 나타나더니 고도 90km까지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연구팀이 찍은 영상은 흑백이었지만, 하층부는 블루 제트, 상층부는 붉은 스프라이트라고 추정됐다. 스프라이트나 블루 제트와는 또 다른 종류도 있다. 고도 100km에 수평으로 나타나는 메가번개다. 1990년 10월 7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가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 상공을 지나갈 때 TV카메라로 대서양해안 북서쪽에 있는 거대한 폭풍을 촬영했는데, 이 비디오에서 ‘대기광 속의 섬광’을 찾아냈다. 이런 형태는 현재 ‘엘브스’(ELVES)라 불린다. 엘브스는 지름 400km의 도넛 모양으로 붉게 빛난다. 고층대기에 나타나는 메가번개는 아직까지 전지구적 규모에서 관측된 적은 없다.


대만 연구팀은 대만에서 남서쪽으로 400km 떨어져 있는 남중국해 상공에 피어오른 거대한 뇌운 위쪽 하늘에서 ‘자이언트 제트’를 발견했다.

‘멤스(MEMS, 초미세 전자기계시스템)우주망원경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박 교수는 인공위성을 띄워 우주에서 메가번개를 1년 이상 관측할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전반기에 메가번개 관측용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이 우주망원경의 핵심은 수천개의 반도체 초미세거울과 2개의 바늘구멍이 결합된 카메라다. 박 교수는 “이 망원경을 이용하면 처음엔 지름 200km의 넓은 영역을 바라보다 특정 위치에서 메가번개가 출현하면 바로 자세히 촬영할 수 있다”며 “초당 10만장을 찍을 수 있어 메가번개의 비밀을 상당부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메가번개는 지구 자체가 생명체처럼 전자기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상 번개에 대한 보상으로 대기의 다른 층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메가번개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지구적인 전자기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가번개는 지구대기에서 오존층 구조를 바꾸거나 구성분자를 변화시켜 전지구적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우주에서 오는 고속입자인 우주선과의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메가번개가 지구대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지구에서 초창기 생명체가 생존하는데 결정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번쩍, 올여름 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보면 시커먼 구름 위에서 칠지 모를 메가번개가 떠오르리라. 조종사가 무서워하는 메가번개의 비밀을 밝힐 우리 연구진의 활약도 기대해보자.







블루 제트가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 때문에 생긴다는 이론에 따르면 중성미자가 지구를 관통할 때 타우 경입자로 바뀌고 타우 입자가 대기분자와 격렬히 반응해 블루 제트를 만든다.

| 글 | 이충환 기자 ㆍcosmo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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