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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와 사랑에 빠진 남자




편집자 주 지난 3월 26일 내셔널지오그래픽코리아의 주최로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악어 전문가 브래디 바 박사의 특강이 열렸다. 기자가 그와 만나 악어와 함께 한 인생역정을 들었다.

“아이쿠. 15년 전 처음 만났던 악어처럼, 마지막으로 찾은 악어도 내 손을 깨무는구나. 그래도 난 네가 귀엽다, 악어야.”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의 파충류 전문가 브래디 바 박사(44)는 필리핀 악어를 손에 들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필리핀 루손섬의 야생 숲에서 일주일 밤낮을 헤맨 끝에 23번째 종인 필리핀 악어를 찾아냈다. 현존하는 23종의 악어를 모두 포획한 세계 최초의 파충류 전문가가 된 순간이었다.




바 박사는 사람 몸집만 한 사나운 악어를 수없이 만났는데 그때마다 맨몸으로 맞섰다. 악어는 마취주사를 맞으면 죽어버리므로 생포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바 박사는 브라질에서 왕뱀에 얼굴을 물리고, 성난 악어에 끌려다니는 위기를 여러 번 넘겼다. 그래도 “맨손으로 악어와 몸싸움 할 때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며 “이 호르몬에 중독됐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영락없는 ‘악어 박사’다. 악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뜨겁게 타오른다.

그는 1994년 대학 재학 시절 미국 악어 새끼를 잡으며 악어와 인연을 맺었다. 원래 공룡에 관심이 많았던 바 박사는 중생대 공룡의 혈통을 이어받은 파충류 중 악어에 자연스레 흥미를 가졌다. 그는 1992년 생물 교사를 그만두고 악어를 찾아 세계 각지로 떠났다. 그렇게 다닌 나라가 벌써 50곳이 넘었다. 스스로 ‘악어의 대변인’이라고 말하는 브래디 바 박사를 따라 생생한 악어 연구 현장으로 가보자.


스크린 속 사진은 브래디 바 박사가 23번째로 발견한 필리핀 악어를 감동에 젖어 바라보는 장면.
세계의 악어 분포
악어는 주둥이 모양에 따라 크로커다일, 앨리게이터, 가비알로 구분한다. 카이만과 무거는 크로커다일과에 속한다.






세계의 악어분포

1. 미국 앨리게이터 2. 양쯔강 앨리게이터
3. 안경 카이만 4. 넓은입 카이만
5. 자까레 카이만 6. 검정 카이만
7. 난장이 카이만 8. 매끈이 카이만
9. 미국 크로커다일 10. 좁은입 크로커다일
11. 오리노코 크로커다일 12. 존스톤 크로커다일
13. 필리핀 크로커다일 14. 모릴렛 크로커다일
15. 나일 크로커다일 16. 뉴기니 크로커다일
17. 인도 무거 18. 인도 크로커다일
19. 쿠바 크로커다일 20. 샴 크로커다일
21. 아프리카 난쟁이 22. 말레이 가비알
크로커다일
23. 인도 가비알






악어의 턱
턱 힘 최강자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야생에서 멸종됐다고 알려진 샴 악어가 눈앞에 있어서일까. 2002년 여름, 브래디 바 박사는 금방이라도 다가가 악어를 잡고 싶은 맘을 꾹 참고 악어 등 뒤로 천천히 몸을 옮겼다. 그리고 샴 악어의 등에 재빨리 올라탔다. 악어가 온 몸을 S자로 비틀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악어의 등을 꽉 잡은 채 눈을 테이프로 막고 주둥이를 끈으로 묶었다. 그는 절대로 정면에서 악어를 포획하지 않는다.




악어와 정면대결을 하는 것은 죽기를 자초하는 것과 같다. 악어가 주둥이로 먹이를 무는 힘은 대단하다. 바 박사는 송곳니로 깨무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는 도구를 개발해 여러 종류의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 결과 브라질에 서식하는 나일 악어가 주둥이를 다무는 힘이 약 1133뉴턴(N)으로 제일 컸다. 사람이 송곳니로 꽉 깨무는 힘의 약 20배, 사냥개가 깨무는 힘의 10배 정도다. 사람 뼈에 이 정도의 힘을 주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형체가 남지 않는다. 악어의 길쭉한 주둥이에 걸려들면 뼈도 못 추리는 셈이다.

브래디 바 박사는 악어를 포획할 때 악어의 주둥이 힘을 겁내지 않고 맨몸으로 맞선다.

다리가 짧은 악어가 요동치는 먹이를 꽉 잡으려면 턱을 단련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턱 근육이 유난히 발달했다. 구심점이 되는 턱으로부터 주둥이가 길게 뻗어 있어 입을 다무는 힘이 유독 크다. 바 박사는 “악어는 자신보다 몸집이 큰 영양이나 누 같은 동물도 단번에 쓰러뜨린다”며 “동료가 악어에 물렸는데 그를 악어 주둥이에서 빼내지 못해 결국 사망한 적도 있다”고 씁쓸해했다.

악어가 주둥이로 먹이를 물 때 사람 뼈에 힘을 주면 뼈가 산산조각 난다.
입 속에 새끼 넣어 보호하는 어미


어미악어가 새끼악어를 주둥이 속에 넣어 물가로 옮기고 있다.

브래디 바 박사가 뭍에 서서 “끼욱, 끼욱” 소리를 내자, 어느 덧 강가에서 악어 한 마리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곧 어미는 뭍으로 올라와 앞다리와 머리로 나무더미를 감싼다. 어미의 머리 밑 땅속에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새끼악어가 있다. 새끼에게 위험이 닥쳤을까 걱정했던 어미악어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악어와 자식 사랑. 얼핏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인다. 파충류는 대체로 알을 낳은 뒤 멀리 떠난다. 하지만 악어는 안전한 곳에 알을 낳고 나무더미로 덮는다. 그리고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일단 새끼가 알 밖으로 나올 때가 되면 어미는 입 속에 알을 넣어 살살 돌린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기 쉽도록 마사지를 하는 것이다. 어미는 알을 깨고 나온 새끼가 천적을 피할 수 있도록 직접 새끼를 입에 넣고 강으로 옮겨준다. 악어가 유구한 세월을 거치며 살아남은 이유에 모성애가 한몫했다면 지나칠까.





바 박사는 악어의 모성애를 연구에 십분 이용한다. 악어는 보통 물에 몸을 담근 채 물 위로 눈만 내밀고 있거나 굴을 파고 들어가 진흙에 몸을 묻고 있어 쉽사리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새끼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를 흉내 내면 어미악어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로 새끼악어를 먼저 포획해 어미악어를 유인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새끼악어를 포획할 땐 주변에 어미악어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는 “새끼악어와 어미악어 사이에 서 있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며 “새끼악어가 위험에 처하면 어미는 무조건 공격한다”고 말했다. 포악해 보이는 악어지만 자식을 끔찍이 여기는 동물로는 1등이 아닐까.



악어에 관심과 사랑을…
“과거 악어는 100종류가 넘었다. 그런데 지금 지구에 남은 종은 23종류뿐이다. 2억년 넘게 이어진 악어의 생명줄이 우리 세대에서 끊어진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바 박사는 악어의 멸종위기를 알리는 강연을 할 때마다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악어뿐 아니라 많은 야생동물이 위기에 처해있다. 2005년 국제연합의 밀레니엄생태계평가위원회는 ‘밀레니엄생태계 평가 보고서’에서 현 추세가 유지될 경우 생물 멸종의 속도가 조만간 100배에서 1000배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둥글고 넓적한 주둥이를 가진 중국 양쯔강악어는 현재 150마리 뿐이다. 캄보디아 샴악어는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수가 적다. 바 박사는 멸종위기에 처한 악어 서식지를 직접 찾았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몸길이, 무게, 서식환경 같은 데이터를 정리한다. 악어 사랑은 악어를 제대로 아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내용이 악어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기초 자료로 쓰이고,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악어를 사랑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흔히 악어의 눈물을 ‘위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악어박사 브래비 바가 흘리는 열정의 눈물은 진정으로 악어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 글 | 목정민 기자ㆍ loveeach@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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