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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CATS로 본 고양이 생활백서


“눈을 감고 태어났나요?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나요? 혼자 걸을 때도 당당한가요? 폭풍우가 다가올 것 같은 예감에 긴장되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젤리클 고양이~!” 보름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시를 채운다. 쓰레기와 고철더미 사이에서 작은 소곤거림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람과 꼭 닮은 고양이 서른다섯 마리의 합창이 시작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왕은 동물의 말을 ‘통역’해주는 반지를 갖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물들이 쌓아온 지혜와 가르침을 전해들은 덕분일까. 그가 다스리던 세상은 평화로웠고 인간과 동물은 조화를 이뤘다. 어쩌면 뮤지컬 ‘캣츠’를 보는 관객들은 솔로몬의 마법반지를 하나씩 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대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자 거짓말처럼 고양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1년에 한번밖에 없는 젤리클 고양이의 축제날. 사회자인 멍커스트랩의 소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고양이들은 저마다의 인생이야기를 털실뭉치 풀듯 늘어놨다.


젤리클 축제를 위해 모인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다보면 고양이의 복잡미묘한 습성을 파악할 수 있다.
잠꾸러기 고양이 꿈도 꿀까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 고양이는 부드러운 카펫이나 벨벳 소파 위에 누워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생쥐에게 뜨개질을 가르치거나 바퀴벌레를 훈련시킬 때를 빼고는 늘 잠에 빠져있는 제니애니도츠도 마찬가지. 태어난 지 4개월 미만인 새끼 고양이는 하루 20시간 이상을 잔다. 2년 정도 자란 뒤에도 하루의 절반을 잠에 빠져 지내고, 늙은 고양이는 삶 자체가 무료해서인지 잠자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이번 축제의 사회는 리더십 강한 고양이인 멍커스트랩이 맡았다.

고양이는 원래 해질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야행성동물. 밝을 때는 잠을 충분히 자두며 에너지를 보충하는 편이다. 대신 선잠을 자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도 꿈을 꿀까. 수면의 종류에는 뇌파의 움직임이 느리고 평온한 상태인 ‘서파수면’(slow wave sleep)과 뇌파가 활발해지고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렘수면’(rapid eye movement sleep)이 있다.

렘수면 때 주로 꿈을 꾸는데, 고양이의 뇌에 전극을 삽입해 뇌파의 변화를 관찰하면 고양이가 렘수면에 빠지는 순간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인 해마에서 진폭이 큰 뇌파가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렘수면을 취하는 시간은 전체 수면 시간의 8% 정도. 이때 고양이는 쥐를 잡으려다 놓쳤던 기억을 재생하며 점차 노련한 사냥꾼이 돼 가는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하루의 대부분을 졸면서 보내는 까닭은 원래 야행성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못 말리는 호기심은 예민한 감각 탓?
럼 텀 터거는 암고양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매력적인 바람둥이다. 오직 그의 심장을 펌프질하는 것은 불타는 호기심뿐. 서양 속담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양이는 주위 현상에 관심이 많다. 이는 고양이의 타고난 감각과 사냥꾼 본성 때문이다.

고양이의 시각은 밤에 활동하기 적합하게 설계돼 있다. 인간의 망막에는 빨강, 초록, 파랑색을 느끼는 추상세포가 있지만 고양이는 초록과 파랑색을 느끼는 추상세포만 갖는다. 따라서 색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명암을 구분하는 간상세포는 개보다 더 많다.

특히 망막 뒤편의 반사판은 망막을 통과한 빛을 거울처럼 다시 망막으로 반사해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게 해준다. 밤에 고양이의 눈이 빛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민한 수염도 시각을 보완해준다. 고양이는 눈을 가린 채 장애물을 피할 수 있고 좁은 골목길도 잘 빠져나간다. 수염의 뿌리부분에 신경이 모여 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사물의 성질과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다.

고양이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쥐의 소리를 듣고 입맛을 다실 정도로 청력도 좋다. 인간의 가청범위는 20~2만Hz지만 고양이는 6만5000Hz의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양이는 야생본능이 남아있는 탓에 움직임에 유난히 민감하다. 사냥한 쥐가 죽어버리면 곧바로 흥미를 잃고 시들해진다.


럼 텀 터거는 뛰어난 감각과 사냥꾼 본성 덕분에 암고양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단맛 모르는 까다로운 식성
부자고양이 버스토퍼 존스는 12kg의 거구를 이끌고 영국의 선술집을 배회하며 먹고 또 먹는다. 매일 체중이 늘지만 아직은 한창 나이라며 자신만만하다. 사실 고양이의 식성은 몹시 까다롭다. 신선한 생선이나 고기에는 열광하지만 조금 오래된 음식이다 싶으면 냉담하게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고양이에게 ‘천대’를 받는 또 다른 음식은 바로 달콤한 설탕. 2005년 미국 모넬화학감각센터의 시아 리 박사팀은 고양이가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양이와 호랑이, 치타의 침과 혈액샘플을 분석해 이들 고양이과 동물의 혀에는 단맛을 뇌로 실어나르는 미각수용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실제로 개에게 쓴 약을 먹일 때 달콤한 시럽을 섞어주면 잘 먹는 반면 고양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설탕으로 범벅이 된 곡물 사료 때문에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리는 고양이가 늘고 있다.




물을 싫어하는 이유


고양이가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까닭은 고양이의 조상이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살았기 때문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01 02 새하얀 털을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 빅토리아(01)나 매혹적인 샴고양이 카산드라(02)와 달리 도시에 사는 고양이 대부분은 어두운 색깔을 띤다.

제2막이 열리며 극장 고양이 거스가 등장한다. 지금은 늙고 병들었지만 왕년에 유명한 배우였던 그는 ‘그로울타이거의 최후’라는 연극에 출연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악명 높은 해적 그로울타이거는 적의 기습공격을 받고 바다로 몸을 던져 최후를 맞는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해적이 된다면, 게다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물을 싫어한다. 목욕을 시키면 발버둥을 치며 욕조를 탈출하려 애쓰는 모습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혹시 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걸까. 지난 6월 28일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 인터넷판에는 이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그동안 고양이 유전자지도를 만들어온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유럽과 아시아의 집고양이와 야생고양이 979마리를 표본으로 DNA염기서열의 변이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재미있게도 집고양이의 유전자는 1만년 전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에 서식하던 들고양이 집단과 가장 흡사했다. 결국 집고양이의 조상이 메마른 사막지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물을 두려워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 실제로 무게 3kg인 고양이는 하루에 200ml짜리 우유 한팩 정도의 물만 먹고도 살 수 있다. 고양이는 따로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세수’를 하며 청결을 유지한다. 고양이의 침 속에는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 몸의 기름때를 제거하고 혀의 돌기는 이물질을 걸러낸다. 오히려 목욕을 너무 자주 시키면 몸이 건조해지고 고양이끼리 의사소통을 하는 데 필요한 페로몬의 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도둑고양이 털 색깔의 비밀
지난 수십년간 과학자들이 고양이의 털 색깔을 조사한 결과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의 도둑고양이는 공통적으로 짙은 색깔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들은 화려한 옷을 벗고 거무죽죽한 빛깔로 몸을 감췄을까. 먼저 밝은 색보다 짙은 색이 공업화된 도시에서 몸을 숨기기에 유리했을 거라는 보호색이론을 들 수 있다. 또 짙은 색 털의 유전자를 가진 도둑고양이의 경우 몸집도 대부분 작아서 치열한 먹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얼룩덜룩한 도둑고양이 커플 몽고제리와 럼블티저가 유난히 작고 날쌘 몸을 갖고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다행히 축제에 온 젤리클 고양이들은 도시 생활을 즐기는 나름의 여유라도 찾았는지 고유의 색을 잃지 않았다. 온몸이 흰털로 덮여있는 빅토리아, 짧은 털의 샴고양이 카산드라, 윤기 나는 검은 털을 뽐내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까지 ‘삼인삼색’의 개성이 넘쳐난다. 뮤지컬은 ‘메모리’를 열창한 그리자벨라가 고양이들의 천국으로 향하며 막을 내렸다. “고양이는 개가 아니에요”를 외치던 귀여운 악동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관객들은 고양이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은 채 3시간여의 마법에서 깨어났다.


| 글 | 신방실 기자 ㆍweezer@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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