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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은 ‘페트’로 통한다


‘옥수수 수염차’ ‘블랙빈 테라티’ ‘17차’.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웰빙 혼합차가 한창 인기다. 길을 가는 여성들의 손은 테이크 아웃 커피 대신 혼합차병을 들고 있다. 이런 유행이 가능한 데에는 갖고 다니기 쉬운 용기, 즉 페트병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만일 유리병이나 캔에 담겼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혼합차 페트병은 생수병과 좀 다르다. 훨씬 단단하고, 뚜껑이 있는 주둥이 부분이 투명하지 않고 하얀 색이다. 혼합차 성분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다.
생수를 시작으로 탄산음료, 과즙음료, 맥주, 혼합차까지 페트병이 담을 수 있는 음료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능성을 갖는 페트병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모양은 멋 아닌 기능
페트(PET)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alate)의 약자다. 플라스틱으로 통칭하는 합성수지는 고분자로 그 구성성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칫솔, 볼펜, 파이프 같은 플라스틱제 생활용품은 주로 폴리에틸렌(Polyethylene, PE)이나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 PP)으로 만든다. 가볍고 싸고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병은 거의 100% 페트재질이다. 병이 갖춰야할 요건을 갖춘 플라스틱으로 페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가 투명도다. 유리에 버금가는 페트의 투명함은 PE나 PP가 따라갈 수 없다. 기체 투과도도 중요한 요소다. 내용물이 물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탄산음료나 주스가 되면 병의 자격조건이 까다로워진다. 병속의 이산화탄소가 빠져 나가도 안 되고 바깥의 공기 중 산소가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가 생긴다. 페트는 PE나 PP에 비해 기체 차단성이 50배나 더 높다.

강도도 고려 대상이다. 같은 두께일 경우 페트재질이 더 단단하다. 비슷한 강도를 지닌 병을 만들 경우 그만큼 재료를 아낄 수 있다. 단열성도 뛰어나서 영하 160℃까지 내려가는 국제우주정거장 표면에는 페트재질의 단열층이 붙어있다.


생수병에 탄산음료를 넣고(왼쪽) 시뮬레이션을 하면 힘을 많이 받는 병 밑 가운데가 불룩 튀어나온다(오른쪽).

페트병은 내용물에 따라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페트재질 자체도 조금씩 다르다. 경제성과 기능성을 고려해 목적에 맞는 최적의 조건을 찾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수병과 콜라병을 놓고 보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꽤 다르다. 같은 용량일 경우 생수병이 더 가볍다. 즉 두께가 더 얇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밑 부분이다. 생수병은 편평한데 비해 콜라병은 굴곡이 있다. 자세히 보면 밑이 반구처럼 볼록한 병을 세우기 위해 둘레로 대여섯 개의 지지대, 즉 발이 있는 형태다. 톡 쏘는 탄산음료를 담고 있으니까 병모양도 튀게 만든 것일까?

“탄산음료는 바깥에서 이산화탄소를 주입한 상태로 병 내부의 압력이 2.5~3.5기압이나 됩니다. 따라서 생수병 모양이라면 밑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불룩하게 튀어나오죠.”
국내 최대 규모의 페트병 생산업체인 효성의 생산기술연구소 김정곤 박사의 설명이다. 탄산음료 페트병 뚜껑을 열면 “치~”하는 소리가 나는데, 병속에 꽉 차있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면서 내는 소리다. 따라서 제조된 날부터 소비자가 마실 때까지 고압의 내용물을 담고 있으려면 내부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내용물의 성질이나 보관조건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페트병을 디자인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생수병에 탄산음료를 넣고 시뮬레이션해보면 힘을 많이 받는 병 밑 가운데 부분이 불룩 튀어나오는 장면이 전개된다.




혼합차, 커피도 페트병에
최근에는 웰빙 음료가 붐을 이루면서 내용물을 온전하게 담을 수 있는 기능성 페트병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웰빙 음료용 페트병이 뭐 그리 까다로울까 생각되지만 고려해야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웰빙 음료는 대체로 미생물에 취약하다. 생수는 영양분이 없고 탄산음료는 산성이라 미생물이 자라기 어렵다. 그런데 웰빙 음료는 보통 중성이고 영양분이 있어 미생물이 자라는데도 ‘웰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90℃ 정도의 고온에서 병에 내용물을 넣는다. 만약 일반 페트병에 90℃의 내용물을 넣으면 흐물흐물해진다. 일반 페트의 유리전이온도, 즉 단단한 플라스틱이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하는 온도가 75℃ 부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이온도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공정이 필요하다. 특히 주입하는 액체가 처음 닿는 병목 부분은 조금만 변형이 생겨도 뚜껑이 꼭 닫히지 않으므로 더 확실해야 한다. 따라서 병목 부분은 따로 적외선을 쬐여 온도를 높여준 뒤 서서히 식혀주는 결정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분자들이 더욱 촘촘하게 배열된 고분자가 얻어지고 겉모습은 불투명한 흰색이 된다.

최근 효성은 국내 처음으로 무균 충전 시스템을 가동했다. 무균 충전 시스템이란 상온에서도 감염의 위험 없이 내용물을 용기에 담는 기술이다. 그 결과 고온에서 웰빙 음료의 내용물을 담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맛과 향의 손실을 최대한 줄였고 일반 페트병을 쓸 수 있게 됐다.





기체가 드나드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차단하는 페트병도 나왔다. 2003년 효성은 국내 최초로 다층 페트병을 개발해 1.6리터 하이트 맥주병으로 공급하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일반 페트병과 차이가 없지만 잘라보면 세층으로 분리된다. 안팎 두 층은 페트이고 사이에 기체 차단성이 높은 특수 합성수지 필름이 놓여있다.

맥주 역시 마실 때 톡 쏘는 게 묘미다. 이산화탄소가 날아가면 ‘김빠진’ 맥주가 된다. 그런데 왜 같은 탄산을 함유하고 있는데 탄산음료병보다 맥주병이 더 까다로울까? 탄산의 톡 쏘는 작용으로 사람들이 가장 쾌감을 느끼는 농도는 병속 압력이 2.5기압 정도일 때라고. 외부에서 고압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탄산음료는 처음에는 병속 압력이 3.5기압 정도다. 유통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일부 빠져나가더라도 탄산의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반면 맥주는 자연발효 과정에서 탄산이 생성되는데 2.5기압 정도밖에 안 된다. 따라서 유통과정에서 이 수준을 지켜야만 맛을 유지할 수 있다. 또 맥주는 산화되기 쉬운 영양성분도 많으므로 공기 중의 산소 유입도 철저히 막아야 한다. 다층 페트병이나 차단성이 큰 첨가물이 포함된 페트병이 필요한 이유다.




한사람이 일년에 50병 넘게 써
세계적으로 페트병 수요가 급증하면서 환경문제도 부상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년에 나오는 페트병은 150만톤에 이른다. 병 하나당 페트 30g이 들어간다면 500억병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매년 25억병을 만든다. 국민 1인당 50병이 넘게 돌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페트병이 비교적 재활용이 쉽다는 것. 플라스틱병은 거의 전부가 페트 재질이므로 분리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재활용율은 70%가 넘어 꽤 높은 편이다. 분리 수거된 페트병은 녹여서 섬유를 만드는데 겨울옷 속에 채우는 솜이나 충진제로 쓰인다. 나머지는 소각해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페트병의 무게를 더 줄이는 연구도 한창이다. 500ml 생수병 하나를 만드는데 우리나라는 18g의 페트를 쓴다. 유럽의 일부 제품은 10g까지 줄인 병이 나오고 있다. 김정곤 박사는 “얇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으면서 줄이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대형매장에서 생수병을 서너 단으로 쌓아놓는데 이 무게를 못 견디고 병이 찌그러지면 낭패이기 때문. 따라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외부로부터 받는 힘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페트병 구조를 탐색하고 있다.

무겁고 깨지는 유리, 속이 안 보이고 한 번 따면 다 먹어야 하는 알루미늄 캔. 페트병에 익숙해질수록 이런 불편함이 더 거슬린다. 게다가 이제는 담지 못하는 내용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능성 페트병이 나오고 있다. 이제 모든 병은 페트로 통하는 게 아닐까.

| 글 | 강석기 기자·ㆍsukki@donga.com |

맥주 페트병은 세층으로 이뤄져 있다. 안팎 두층이 페트이고 사이에 기체 차단성이 큰 특수 합성수지 필름이 놓여있어 내부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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