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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속살’ 맨틀을 파고드는 지큐호


지난 9월 21일 해양시추선 ‘지큐’호가 일본 오사카 남동쪽 신구항을 떠나 난카이 해구로 향했다. 유력한 지진 발원지 중 하나로 추측되는 ‘메가스플레이’(megasplay) 단층에 지진관측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지큐호는 57일 동안 바다 위에 머물며 6개 지점에 해저 바닥에서 2~4km깊이로 구멍(시추공)을 10개 정도 뚫어 지진파를 측정하는 각종 계측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지구(地球)의 일본 발음인 지큐호는 일본이 1000억원을 들여 건조한 해양시추선으로 길이가 210m, 높이가 130m, 총 배수량이 5만8000톤에 이르는 거대한 배다. 축구장 두배의 길이에 30층 건물 높이다. 해저 바닥에서 2km 정도만 시추할 수 있었던 기존의 시추선과 달리 치큐호는 7~10km까지 시추할 수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자원연구부 이영주 박사는 “얇은 해양 지각의 두께는 6km 정도”라며 “세계 최초로 맨틀까지 뚫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큐호가 난카이 해구를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이곳이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의 진원지이기 때문. 난카이 해구에서는 일본 남쪽, 필리핀 동쪽에 위치한 필리핀해판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이루는 유라시아판 아래로 밀려들어간다. 필리핀해판의 이동속도는 일년에 4~10cm 정도, 빠를 때는 15cm에 이르기 때문에 판이 4cm 미만으로 움직이는 다른 해구에 비해 지진 발생이 잦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을 감시한다


01 02 지큐호에 있는 거대한 기중기는 라이저시스템의 파이프나 드릴의 길이를 연장할 때 사용한다.

지큐호의 첫 탐사인 이번 출항은 병명을 알기 전에 환자에게 청진기를 대보는 진찰에 가깝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은 해저에서 약 3km 이상 들어가야 있지만 지큐호는 2km 정도만 시추해 지진파 속도 계측기, 감마선 검출기, 지층 구조 분석기를 설치한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에 이르는 구간에 마그마나 단단한 관입암이 있는지를 파악해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최적의 시추 경로를 찾기 위해서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에 각종 계측기를 직접 설치해 실시간으로 지진을 감시하는 작업은 총 3단계로 진행돼 2012년쯤 마무리된다. 이번 탐사는 1단계에 해당되며 2단계에서 3~3.5km, 3단계에서 5.5~6km를 시추하게 된다. 지큐호는 마지막 단계에서 메가스플레이 단층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모니터링 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충남대 지구환경과학과 장찬동 교수는 “단층이 변화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지진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히고 지진과 해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진 예측 외에도 지질학자들이 지큐호에 바라는 점이 많다. 최대 7km까지 시추가 가능한 지큐호는 두께가 6km 정도인 해양지각을 뚫고 맨틀에 도달할 수 있다.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던 맨틀이 열리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맨틀을 탐사하면 ‘플룸구조론’처럼 가설로 남아있는 많은 이론들이 증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플룸구조론은 판이 이동하는 원인이 맨틀의 대류가 아니라 해구에서 침강하는 해양지각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해구로 들어간 해양지각이 계속 쌓이면 그 무게로 인해 맨틀 아래로 가라앉는데 이때 해구 밖의 해양지각을 끌어당기게 된다. 맨틀의 대류 때문이라면 새로운 지각이 올라오는 해령에 미는 힘으로 인해 생기는 역단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탐사 결과 당기는 힘으로 인해 생기는 정단층이 발견돼 플룸구조론이 제기됐다.

사실 지질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맨틀에 관심을 가졌다. 1957년 지각과 맨틀의 경계인 모호로비치치불연속면을 탐사하는 모홀계획을 세웠고, 이는 심해저굴착계획, 심해저시추계획을 거쳐 2004년 국제공동해양시추사업(IODP) 설립으로 연결됐다. 지큐호 이전에도 미국의 ‘조이데스레절루션’호나 유럽 연합의 ‘미션스페시픽’호 같은 시추선이 있었지만 이들은 최대 3km 정도밖에 시추하지 못했다.




진흙으로 시추공 붕괴 막아
지큐호가 기존의 해양시추선과 달리 7km까지 시추할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은 ‘라이저시스템’(riser system)이다. 라이저시스템은 석유시추선이 사용하던 장비로 시추할 때 발생하는 폭발사고로부터 시추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시추공이 무너져 드릴이 매몰되지 않게 막는 장비다.

라이저시스템에는 시추공의 입구를 막으면서 드릴은 전용 파이프를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는 폭발방지장치(BOP)가 있다. 기존 시추선은 드릴이 가스전을 뚫으면 가스가 시추선까지 올라와 배 전체가 폭발할 위험이 컸다. 하지만 BOP가 있으면 가스가 시추공 입구에서 차단돼 시추공 안에서만 폭발이 일어난다. 시추장비는 못쓰게 되지만 인명 피해는 없다.


라이저시스템에 사용되는 파이프. 드릴과 지큐호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시추공이 깊어질수록 연장해야 하는 파이프가 많다.

라이저시스템의 핵심은 배와 시추공을 순환하며 암석 파편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걸쭉한 진흙이다. 드릴이 암석을 뚫을 때 암석 파편이 생기는데, 깊이 시추할수록 파편이 많이 쌓여 드릴의 회전을 방해한다.
하지만 드릴 안쪽에 있는 관을 통해 시추공의 가장 밑바닥에 진흙을 주입하면 진흙에 밀려 파편이 위로 떠오른다. BOP는 파편과 함께 진흙을 회수해 다시 배로 보내고, 배에서는 파편을 걸러내고 다시 깨끗해진 진흙을 드릴에 주입한다.

진흙은 시추공의 붕괴도 막는다. 땅을 깊이 파다보면 주변의 흙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데, 해저의 시추공도 바닷물이 차거나 빈 공간으로 남으면 주위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다. 하지만 진흙이 가득찬 시추공은 빈 공간을 진흙으로 메운 셈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BOP(폭발방지장치). 시추할 때 드릴이 땅속의 가스전을 건드릴 경우 배까지 가스가 올라오는 것을 막는다.



01 좌우로 360。 회전하는 거대한 스크류가 6개 달린 지큐호는 정확한 시추 지점을 향해 전후좌우로 이동할 수 있다. 02 지큐호에서 채취한 시료는 가장 먼저 CT(컴퓨터단층촬영) 스캐너로 내부 구조가 밝혀진다. 03 X선형광분석기(XRF)로는 시료의 성분을 즉시 알아낼 수 있다.

라이저시스템에 사용하는 진흙이라고 얕잡아보면 안된다. 이 진흙은 전문가의 손길에서만 탄생하는 ‘명품 진흙’이다. 드릴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름이 6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보다 작고 표면이 고운 진흙을 사용하며 점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 박사는 “진흙 제조 기술자는 드릴이 뚫을 암석의 성분을 미리 파악해 진흙과 암석이 결합하지 않도록 화학물질의 성분을 조절한다”며 “진흙 제조 기술자는 세계에서 몇 명 되지 않는 고급 인력”이라고 덧붙였다.

지큐호는 시멘트도 사용한다. 맨틀에 도달하기 위해 뚫어야 하는 깊이는 7km. 아무리 걸쭉한 진흙을 사용해도 7km 땅속의 압력을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큐호는 맨틀에 도달하기 위해 5단계로 나눠 구멍을 뚫는다. 처음에는 지름이 91.44cm인 구멍을 수백m 깊이로 뚫고, 안에 파이프를 넣어 시멘트를 주입한다. 시멘트는 파이프 바깥과 시추공 사이에 채워져 시멘트관을 형성한다. 그다음에는 더 작은 드릴로 지름이 66.04cm인 구멍을 1~1.5km까지 뚫고 다시 시멘트를 채워 외벽을 만든다. 이를 반복하면 시추공의 붕괴를 막으며 점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맨틀에 도달하는 마지막 시추공의 지름은 21.39cm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기반정보연구부 이윤수 박사는 “여지껏 지구 내부에 대한 연구는 지진파나 용암에 의한 간접 측정으로 진행됐다”며 “연구에 필요한 지역의 맨틀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면 20세기에 제기된 가장 큰 이론인 판구조론의 지각 이동 메커니즘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무한경쟁하는 지큐호의 과학자들
지큐호에 탑승한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인 장 교수는 “지큐호는 16명의 과학자가 명예를 걸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공간”이라며 “지큐호에서 내린 뒤 가장 먼저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연구결과를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큐호에는 장 교수 외에 일본, 미국, 유럽연합의 과학자가 각각 5명씩 승선했다.

장 교수는 드릴이 구멍을 뚫을 때 지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연구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과학자마다 각각 연구계획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어떤 연구를 맡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과학자들도 이번 시추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되는 이 분야에 연구자가 몰렸을 것”으로 추측했다.

지큐호에는 IODP 회원국의 과학자만 승선할 수 있다. IODP는 해양 시추를 위해 20여개 나라가 모인 단체다. 매년 1000억원을 투자하는 미국과 일본을 두 축으로, 유럽연합은 200억, 2006년에 가입한 우리나라도 매년 3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IODP 회원국은 자국의 해역을 시추할 수 있는데, 지큐호가 와서 시추를 한다면 3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절약하는 셈이다. 이 박사는 “현재 IODP에 울릉도 근방 해양지각의 메탄하이드레이트 탐사를 위한 시추 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말 난카이 해구의 해저지진이 만든 쓰나미(지진해일)가 아시아 지역을 덮쳐 23만명이 사망했고, 지난 7월 일본 니카타현에 발생한 지진은 2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인류는 아직도 지진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조차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인류가 지구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될 날은 언제일까. 지큐호가 지구의 ‘속살’ 맨틀에 닿는 2012년, 그날을 기다려본다.



| 글 | 전동혁 기자 ㆍjerme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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