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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이성보다 감정이 우세?


2007년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의 행보가 한층 바빠졌다.
TV토론회에서, 뉴스에서, 신문에서, 선거광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의 얼굴을 대하다보면 잘 보이지 않는 ‘내면’보다 ‘겉모습’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진다.
후보의 비전과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해주는 ‘검증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정치적 선택을 할 때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면 이성을 깨워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 나도 몰라.” 올해 처음으로 선거권을 갖게 된 만 19세 대학생 나곰곰 씨.
처음에는 대선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본 뒤 누굴 찍을지 결정하려 했지만 점점 귀찮아졌다.
2007년 대선을 한달여 앞둔 지금 그는 매순간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고무줄처럼 변하는 것을 느낀다.
이대로 가다간 12월 19일 투표소에서 도장을 쥔‘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예측불허.
뇌 속에 담긴 생각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다. 하지만 뇌의 ‘소유주’조차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천방지축일 때도 많다.
정치적 선택을 할 때도 마찬가지. 그래서 과학자들이 나섰다.
견고한 비밀의 방에서 들리는 신경세포들의 정치적 대화를 엿듣기 위해
fMRI(기능성 자기공명장치) 같은 도구로 뇌의 활동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인 셈이다.




Science X-file 1_정치적 성향이 자유와 보수로 나뉘는 까닭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국민회의가 소집됐다.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혁명의 중심세력인 공화파가, 오른쪽에는 국왕을 지지하던 왕당파가 앉았다. 공화파가 의회를 장악한 뒤에도 여전히 급진적인 자코뱅파 의원과 보수적인 지롱드파 의원은 좌우를 갈라 앉았다. 여기서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싹텄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적 성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뉴욕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아모디오 교수팀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뇌가 서로 다른 신경인지체계를 갖는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성향은 갈등상황에 반응하는 방식 차이에서 빚어졌다’는 가정 아래 실험참가자들의 뇌파를 분석한 것.

일단 참가자 43명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좌파부터 극우파까지 10단계로 나눈 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혔다. 두 개의 신호 가운데 하나가 화면에 나타나면 그에 맞는 버튼을 0.5초 안에 누르도록 했는데,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전체 시간의 80%는 한 신호만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다 참가자가 같은 버튼을 계속 누르며 익숙해질 만하면 갑자기 다른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이들의 뇌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fMRI 분석 결과 전측대상피질이라고 불리는 뇌의 영역이 자유주의자의 경우 보수주의자보다 2배나 더 활성화됐다. 전측대상피질은 낯선 상황에 처했을 때 예전 행동을 고집할지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갈등처리’ 영역. 결국 자유주의자의 뇌가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면 보수주의자의 뇌는 익숙한 습관을 따르는 경향을 보인 셈이다.
아모디오 교수는 “갈등을 처리하는 신경인지체계의 민감성이 사람마다 다르고 여기에 환경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정치에 대한 다양한 개인차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cience X-file 2_힘센 감정, 이성을 이기다!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을 세달 앞두고 미국 에머리대 심리학과 드루 웨스턴 교수팀은 공화당과 민주당 당원 30명을 대상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fMRI를 찍었다. 일단 참가자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존 케리 후보, 배우 톰 행크스의 연설문을 읽었다.

존 케리 후보의 연설문 하나를 예로 들면 1996년 선거 유세기간 동안 그가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연령을 더 높여 사회보장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말한 내용이 초반에 등장한다. 8년 뒤 이전의 주장을 뒤엎는 존 케리 후보의 모순된 발언이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그를 변명하는 내용인 “사회보장예산이 언제쯤 고갈될지 예측한 결과가 1996년과 2004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다”는 경제학자의 말이 실렸다.

참가자 대부분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된 진술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이때 그들의 뇌에서도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웨스턴 교수는 “뇌의 이성네트워크는 조용했지만 감정네트워크는 불을 밝힌 듯 환하게 켜졌다”고 비유적으로 말했다.


01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반박하는 연설문 02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연설문 03정치인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상태에 이르면 쾌락을 느낄 때 반응하는 복측선조체(vSTR)가 활성화된다.

감정을 조절하는 안와전두피질과 갈등을 해소하는 전측대상피질, 도덕적 판단을 내리거나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활성화되는 후측대상피질이 반응한 것. 마약중독자가 약물주사를 맞고 쾌락을 느낄 때 반응하는 복측선조체도 활성화됐다.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정재승 교수는 “정치인으로부터 권력의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이때 뇌에서는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과 비슷한 반응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반면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배외측전전두피질은 고요했다. 재밌게도 자신이 지지하지 않거나 중립적인 사람의 연설문에는 모두 이성적으로 반응했다.

사람이 선택을 하는 과정은 크게 이성적 판단을 거치는 체계처리와 감정이나 권위의 영향을 받는 간편처리로 나눌 수 있다. 성균관대 심리학과 최훈석 교수는 “뚜렷한 동기가 있을 때는 인지력을 발휘해 체계처리를 하지만 대선후보의 TV토론회조차 집중해서 보기 힘들 정도로 정치에 무관심하다면 간편처리를 하기 쉽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체계처리에 의한 이성적 선택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바뀔 수 있지만 간편처리에 의한 감정적 선택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정치인의 경우 한번 굳어진 이미지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정치에 맹목적으로 빠져든 사람의 뇌에서는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쾌락을 느낄 때와 비슷한 반응이 나타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전략을, 이회창 후보는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과 과감한 언행으로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했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오랜 공직생활로 쌓은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이성적 지지를 받았지만 아들의 병역비리사건이 터지며 인기가 떨어졌다. 체계처리과정에서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며 이전의 정보가 지워진 것.

감정에 치우치려는 유권자를 내실 있는 공약으로 사로잡고 싶다면 체계처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1992년 미국 대선 때 당시 민주당의 후보였던 빌 클린턴은 바로 그 전략을 썼다. 그는 경쟁자였던 조지 부시(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을 겨냥해 “4년 전보다 지금 더 나아졌습니까?”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TV광고를 제작했다.
최 교수는 “미국인들은 이 질문을 통해 과연 현 정부가 제대로 정치를 했는지 곱씹어보며 이성적 판단을 했고 결국 빌 클린턴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되면 산소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때 늘어난 ‘산소공급량’을 단서로 fMRI를 찍으면 뇌의 활동을 알 수 있다.
Science X-file 3_정치인 최고의 관상?


미국 마운트 러시모어에는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테오도어 루즈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얼굴을 새겨놓은 바위가 있다. 이들의 얼굴을 분석하면 정치인 최고의 관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책만큼이나 정치인의 얼굴도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팀은 ‘동안’(童顔)일수록 정치인으로서 불리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00~2004년 동안 미국 상·하원의원 선거에 라이벌로 출마했던 두 후보의 사진을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실험참가자에게 1초간 보여준 뒤 한명을 선택하게 했다. 그러자 실제 선거결과와 70% 정도 일치하는 반응을 얻었다.

재밌게도 나이 들어 보이는 후보와 어려보이는 후보가 맞붙었을 때는 전자가 승리할 확률이 더 컸다. 동안, 즉 둥근 얼굴과 큰 눈, 작은 코, 넓은 이마와 작은 턱은 친밀해보이지만 정치인으로서 전문성은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2005년 6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토도로프 교수는 “일반적으로 아기에 대한 고정관념, 즉 약하고 순진할 것이란 생각이 어려보이는 성인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고 설명했다.


2001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당수였던 윌리엄 헤이그(01)는 듬성듬성 빠진 머리 때문에 ‘양복 입은 아기 같다’는 얘길 들었고 결국 맞수였던 토니 블레어(02)에게 패했다.

스코틀랜드 스털링대 심리학과 앤서니 리틀 교수팀도 후보의 얼굴이 선거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2월 ‘진화와 인간행동’ 저널에 발표했다. 유권자는 후보의 멋진 몸매나 TV토론회에 비친 태도, 패션보다는 얼굴 자체에서 느껴지는 공격성이나 지능, 정직함, 다정함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미국과 뉴질랜드, 영국에서 있었던 여덟 번의 실제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얼굴과 10개 대학 학생들의 평균적인 얼굴을 컴퓨터모핑기술*로 합성했다. 여기엔 물론 2004년 미국 대선후보였던 조지 W. 부시와 존 케리도 있었다. 합성으로 탄생한 얼굴은 원래 누구였는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젊어졌지만, 기본적인 얼굴형과 피부 톤은 남겨뒀다.

놀랍게도 실험참가자 100여명이 선택한 후보는 수백만명의 유권자가 내린 결정과 일치했다. 신문과 TV, 광고의 영향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얼굴만으로 좋아하는 후보를 고른 결과였다. 2차 조사에서는 참가자들이 후보의 얼굴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물었다. 참가자들은 조지 W. 부시의 얼굴은 남성적이고 지배적이라고 반응했고 존 케리의 얼굴은 매력적이고 지적으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만약 전쟁 상황이라면 조지 W. 부시를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74%로 높았다. 실제 유권자들도 경제를 일으키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를 원했는지 조지 W.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2001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당수였던 윌리엄 헤이그(01)는 듬성듬성 빠진 머리 때문에 ‘양복 입은 아기 같다’는 얘길 들었고 결국 맞수였던 토니 블레어(02)에게 패했다.

리틀 교수는 “인간은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정치인을 선택할 때도 얼굴에 집중한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라도 수분 안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수초 안에 간파해낸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보가 부족하거나 아직 누굴 뽑을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일수록 후보자의 얼굴에서 받는 영향이 더 크다.

충북대 심리학과 정우현 교수는 “최근 fMRI 연구로 얼굴을 인식할 때 외측방추회, 후부상측두구 같은 뇌의 여러 영역이 반응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에 얼굴을 보고 호감이나 비호감을 느끼는 정서적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가끔은 얼굴만 보고 선택한 상대에게 배신당하기도 한다. 선거는 한 나라의 지도자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잘못된 선택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란 책에는 미국의 29대 대통령인 워런 하딩의 얘기가 실려 있다. 그는 보는 사람을 한눈에 사로잡을 정도로 멋진 외모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형편없는 연설과 모호한 정책으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다.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 정치인이 홍보하는 ‘표지’에 휘둘리기 전에 ‘내용’을 꼼꼼히 짚어봐야 할 때다.


| 글 | 신방실 기자 ㆍweezer@donga.com |


동안보다는 성숙해 보이는 얼굴이 정치인으로서 신뢰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진은 올봄 프랑스 대선에 출마했던 니콜라 사르코지와 세골렌 루아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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