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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줄기세포 논문의 피와 땀






2005년 11월, 난자 매매 의혹으로 시작한 ‘황우석 사태’는 논문 자체가 가짜라는 충격적인 결말로 사람들을 전율시켰다. 이후 국내 줄기세포 연구 위상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고 많은 연구자가 이 분야를 떠났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은 탄탄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지키고 있는 국내 연구자들의 투지도 만만치 않다. 외국의 편견을 극복하고 재도약하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번 특집에서는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의 최신 동향을 소개한다.





“지난 주 토요일(9월 15일) 논문을 싣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포천중문의대 정형민 교수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정 교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줄기세포연구소인 포천중문의대 부설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 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정 교수팀의 논문을 게재하기로 한 저널은 ‘서큘레이션’(Circulation). 심혈관계 분야의 최고 권위지이지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스러웠다니 다소 의아했다.

“논문을 투고한지 18개월 만에 받아들여진 겁니다. 사연이 있지요….”
정 교수팀 연구의 요지는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분화시켜 얻은 순도 높은 혈관세포를 다리 혈관이 막힌 생쥐에 넣어줘 혈관을 새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줄기세포치료의 부작용인 테라토마(기형종)도 생기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발견은 새로 생긴 혈관을 이루는 세포의 30~40%는 주사한 사람세포가 아니라 생쥐의 세포라는 것. 배아줄기세포에서 막 분화한 싱싱한 혈관세포가 자신 뿐 아니라 주위 세포의 분열까지 촉진한다는 놀라운 결과였다.


한양대
12시간 만에 돌아온 거절 e메일
정 교수팀은 2006년 초 논문을 써서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메디슨’에 투고했다. 그런데 12시간도 안 돼 게재불가 메일을 받았다. 별다른 코멘트도 없었다.
“씁쓸했지만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생명과학 연구자들 전부가 피해를 보고 있는 마당에 줄기세포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었으니까요.”

당시는 ‘사이언스’가 황우석 교수팀 논문 2편의 게재를 철회했던 직후라 국내 줄기세포연구자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CNS 저널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정 교수는 논문을 심혈관계 분야의 권위지인 ‘서큘레이션’에 보냈다. 시간이 흘러도 소식이 없어 기대감과 초조함이 교차했다. 두 달 뒤 마침내 메일이 왔으나 뜻밖에도 ‘게재불가’였다.

“게재불가 사유를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연구 전반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더군요.”
대표적인 예가 실험 재료인 배아줄기세포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내용. 수년에 걸쳐 많은 인력과 돈을 투입해 구축한 배아줄기세포주마저 의심받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래도 연구결과는 흥미로웠던지 다시 투고하고 싶다면 외국의 줄기세포를 가져다 결과를 재현해보라고 써있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군요. 울먹이며 게재를 포기하자던 연구원도 있었습니다.”
정 교수도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이런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기로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한 영원히 이류, 삼류 과학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천중문의대 부설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정형민 교수.



02 배아줄기세포를 떼어내 키운 배상체. 붉은 부분이 나중에 혈관으로 분화한다. 03 배아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혈관세포.

“그래,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
자존심을 접고 미국 줄기세포은행에 요청해 줄기세포를 분양받았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해 연구자들에게 미안했지만 예상대로 동일한 결과가 나왔고 몇 가지 추가 실험 데이터를 보완해 다시 논문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게재불가 답신이었다. 실험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데이터를 다시 제출하라는 것. 이런 식으로 네 번에 걸쳐 논문이 오간 결과 마침내 게재를 통보받았다.
“처음엔 분하고 억울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를 업그레이드한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일류 저널의 편집자들을 상대하면서 논리적 전개에 따라 실험과정을 디자인하는 ‘노하우’를 배웠기 때문이다. 최근 정 교수팀에서는 임상등급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다. 줄기세포를 치료에 실제로 적용하려면 현재의 연구등급이 아닌 임상등급 줄기세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의 차이는 엄청나다. 임상등급을 만들려면 의약품제조설비(GMP)를 갖춰야 하고 줄기세포를 인체에 유해한 약품으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는 지난 2년간 50억 원을 들여 GMP시설을 갖추고 임상등급 인간 배아줄기세포 두 라인을 만들었다.

“현재 줄기세포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임상시험을 의뢰할 예정입니다.”
아직까지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임상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세계 최초의 사례가 된다.

임상등급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한 GMP시설. 감염을 막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우여곡절 겪은 국제 공동연구
“브록스마이어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을 줄이야….”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는 한양대 의대 김계성 교수 역시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의대 할 브록스마이어 교수는 제대혈(탯줄 혈액)이 혈액치료에 유용함을 처음 밝힌 이 분야의 거장. 그가 김 교수를 찾은 것은 증식력이 없어 치료범위가 제한된 제대혈의 대안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생각했기 때문.

배아줄기세포를 키우다보면 염색체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런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줄기세포 기초연구 결과를 해석하는데 오류를 일으킬 수 있고 줄기세포를 치료에 쓸 때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먼저 그 원인을 밝혀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간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데 황우석 교수 사건이 터졌다.

“브록스마이어 교수에게 아무리 연락해도 연결이 되지 않더군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한국 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불똥이 김 교수에게까지 튄 것이다. 억울했지만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조사발표와 검찰발표 등으로 사건이 정리된 뒤 다시 연락을 취했고 마침내 답신이 왔다. 내친김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신이 잘못한 건 아니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배아줄기세포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한양대 의대 김계성 교수.

브록스마이어 교수는 김 교수를 위로하면서도 미국 줄기세포로 다시 실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결국 김 교수는 같이 간 대학원생과 미국에 3개월간 머무르며 재현실험을 했다. 공동연구팀은 배아줄기세포 염색체의 불안정성이 염색체 이상인 세포를 사멸시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은 결과임을 밝혀 심혈관계 분야 권위지인 ‘블러드’(Blood) 5월호에 논문을 실었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를 다룰 때는 염색체 이상 유무를 수시로 조사해야 한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
“제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한국 속담을 얘기했더니 브록스마이어 교수도 같은 맥락의 영어 속담으로 답하더군요.”
현재 두 사람은 다양한 줄기세포에서 마이크로 RNA(miRNA) 발현 패턴을 분석하는 새로운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miRNA는 단백질의 발현을 조절하는 분자로 최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줄기세포의 miRNA 발현 패턴을 비교하면 줄기세포 사이에 분화능과 증식력이 차이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배아줄기세포가 분열하는 장면.
한국 줄기세포은행 있어야
줄기세포의 분화를 연구하고 있는 고려대 생명공학부 김종훈 교수도 지난 2년 간 비슷한 고초를 겪었다. 그 역시 외국 연구자들로부터 “한국 줄기세포는 안 된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이제는 미국 줄기세포은행에서 분양받은 세포를 배양해 쓰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중으로 실험할 수는 없으니까요.”

현재 줄기세포은행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뿐. 이곳에서 줄기세포를 분양받으려면 ‘물질양도각서’(MTA)에 서명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연구를 통해 얻은 이익은 줄기세포은행과 공유해야 한다.

“배아줄기세포주를 만드는 데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세포주만 44개입니다.”
정형민 교수는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내 배아줄기세포 연구자 대부분이 외국에서 줄기세포를 분양받아 쓰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 해결책은 하루빨리 한국 줄기세포은행을 만드는 것. 지난 2년 동안 과기부와 보건복지부가 검토하고 있지만 진전은 없는 상태다.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연구자들의 노력과 함께 국가 차원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는 확립한 배아줄기세포주 12라인을 자체 보관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한국 줄기세포은행 설립이 시급하다.
과감해진 ‘네이처’, 소심해진 ‘사이언스’
“최근 CNS 저널을 보면 거의 매주 줄기세포 논문 한두 편은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저자는 없지요.”

김계성 교수의 지적대로 최근 미국과 일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연구의 굵직한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과 국내 줄기세포 동향 조사 연구진이 선정한 2007년 상반기 줄기세포 관련 주요 논문의 제목만 봐도 최근 줄기세포 분야가 도약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정한 논문 28편을 국가별로 분류하면 미국이 20편으로 압도적이다. 2위는 일본으로 3편. 영국, 캐나다 등 5개국이 1편씩을 냈다. 저널별로 나눠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네이처’가 10편, ‘네이처’ 자매지가 5편을 실은 반면 ‘사이언스’는 3편뿐이다. ‘셀’은 5편, ‘PNAS’ 등 5개 저널에 1편씩이다. ‘네이처’가 줄기세포에 적극적인 반면 ‘사이언스’는 몸을 사리는 형상이다.

2004, 2005년 연거푸 황 교수팀의 논문을 실으면서 줄기세포 이슈를 선점하려던 ‘사이언스’ 역시 ‘황우석 쇼크’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셈이다.


| 글 | 강석기 기자 ㆍsukki@donga.com |

'사이언스'홈페이지에서 황우석 박사팀의 논문을 찾으면 '이 논문은 철회됐음'이라는 붉은 글씨로 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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