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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의 함정






평생을 홀로 산 쇼펜하우어는 “유부남은 존재의 무게를 모두 지고 있고 독신자는 그 반만 지고 있다. 뮤즈에 헌신하는 자는 누구나 독신이 돼야 한다. 철학자란 자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면서 나름의 독신예찬론을 펼쳤다. 독일 작가인 카프카는 결혼을 동경했지만 소설을 쓰는데만 집중하기 위해 독신을 고집했다.

19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예술가와 학자 중에는 유난히 독신이 많았다.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창작활동을 했고, 결혼은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는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 지난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수는 317만1000가구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다섯 집 건너 한집은 혼자 사는 ‘나홀로가구’인 셈.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을 ‘싱글족’이라고 할 때 21세기의 싱글족은 19세기의 독신주의자 못지않은 자신감과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전세계적으로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싱글족이 늘고 있고 특히 20~30대 독신여성이 문화와 소비의 새로운 주체로 떠올랐다”며 ‘싱글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열쇳말을 제시했다. 그러나 겉보기에 화려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싱글족에게도 그림자는 있다.




결혼하면 오래 산다?
미국 UCLA 연구팀은 1989년 국립보건설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가족사항을 조사했다. 그 당시 참가자의 절반 정도가 결혼한 상태였고 10%는 사별, 12%는 이혼, 3%는 별거 중이었다. 혼자 사는 독신자는 20%를 차지했다. 8년 뒤인 1997년 설문에 응했던 사람들의 사망 여부를 추적했더니 혼자 사는 독신자의 사망률이 결혼한 사람보다 58%나 높게 나타났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는 사망률이 40% 더 높았고, 이혼이나 별거 중인 사람은 27% 높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지난 6월 의학전문지 ‘역학-공중보건 저널’에 실렸다.

결혼을 한번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지낸 사람은 결혼의 경험이 있는 사람보다 결과적으로 오래 살지 못한 셈이다. 연구팀은 “건강하지 못해서 결혼을 못한 것인지 결혼을 안 해서 건강이 나빠진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문제지만 일단 결혼을 하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혼자 사는 젊은 싱글족과 기러기아빠는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있을까.


혼자 사는 싱글족은 단순한 식단 때문에 영양불균형에 시달리기 쉽다.
혼자 밥 먹는 남자, 그마저도 안 먹는 여자








서울 여의도에 있는 피데스투자자문사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는 정성한 대리(29). 서울에서 투자자문가로 일하며 ‘나홀로’ 생활을 시작한지는 3년째. 직업상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지라 퇴근 뒤 술자리가 잦다.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자칭 ‘눈부신’ 싱글족 생활을 이어온 기자(26)는 평소 외부활동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마감이 임박해오면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인 채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기 일쑤. 운동은 ‘숨쉬기’가 전부이며 귀찮아서 밥을 거를 때가 많다.

지난 7월 한국영양학회의 도움으로 이들 싱글족 2명의 1주일치 식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 씨는 하루 평균 2500kcal의 열량을 섭취해 영양섭취기준을 충족시켰다. 반면 기자는 하루 평균 1086kcal의 열량을 섭취했다. 이는 체중과 활동량에 따른 에너지 필요추정량인 2100kcal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영양학회 장영애 박사는 “싱글족의 식사 패턴을 분석하면 챙겨줄 사람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온갖 건강식품을 과다복용하는 ‘건강염려’ 타입과 혼자 먹는 것이 귀찮아 군것질로 대충 때우는 ‘귀차니즘’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염려’ 타입인 정 씨는 여러 종류의 영양제를 복용하지만 폭음을 하거나 고열량의 중국음식을 먹는 횟수가 잦았고, ‘귀차니즘’ 타입인 기자는 식사를 자주 거르는데다 식단이 지나치게 단순한 점이 문제였다.

기자는 비타민 섭취가 많이 부족했는데,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잘 먹지 못해 나타난 결과였다.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강희철 교수는 “종합비타민제와 오렌지에서 얻을 수 있는 비타민의 양이 같더라도 오렌지에는 식이섬유나 아연, 셀레늄 같은 영양소가 더 들어있다”며 “건강식품을 종류별로 챙겨먹는 것보다 자연식품을 섭취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소금과 카페인에 노출된 일상
실험에 참여한 두 사람 모두 나트륨의 하루 섭취량이 WHO(세계보건기구) 권고량인 2000mg을 훨씬 초과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자주 사먹거나 인스턴트식품을 먹어 나타난 결과였다. 예를 들어 5일째 되던 날 정 씨가 섭취한 나트륨 양은 6700mg으로 기준치의 3배가 넘었다. 무심코 먹은 라면 한 개의 나트륨 양은 2000mg을 웃돌았고 칼국수 한 그릇에도 2900mg이나 들어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성욱 교수는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상승하면 삼투압 때문에 몸의 체액이 증가하고 항상성이 깨진다”며 “결과적으로 고혈압과 심장병의 위험도 커진다”고 말했다.

2006년 8월 덴마크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이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르후스 시게후스 대학병원 연구팀은 덴마크 동부도시인 오르후스에 거주하는 30~69세 사이의 싱글족 13만8000명을 대상으로 3년간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급성심근경색을 앓고 있거나 이 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646명에 이르렀다. 이는 결혼한 사람의 급성심근경색 발병률보다 2~3배 더 높은 수치. 연구책임자인 키르스텐 니엘슨 박사는 “식사를 부실하게 하거나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는 싱글족의 식습관이 심장질환의 위험을 높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화 김상균 교수는 “기자의 경우 밥 대신 커피를 마시는 빈도가 잦은데, 열량이 높을 뿐만 아니라 뼈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스웨덴 국립식품국(NFA)은 40~76세 사이의 여성 3만1527명을 대상으로 1988년부터 10년간 카페인 섭취량과 골다공증 발병률의 관계를 분석했다. 조사기간 동안 3279명의 여성이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을 경험했는데, 하루에 커피를 4잔(600ml, 카페인 330mg) 이상 마시는 사람은 1잔(150ml, 카페인 80mg) 이하로 마시는 사람보다 골절의 위험이 1.2배나 높았다. 특히 매일 섭취하는 칼슘의 양이 700mg보다 적을 경우 골다공증의 발병률이 더 높았다. 이 결과는 지난해 7월 ‘국제골다공증저널’에 실렸다. 김 교수는 자신도 싱글족이라고 밝히며 “철저한 건강관리 없이는 화려한 싱글생활도 없다는 원칙을 싱글족 스스로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러기아빠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심!


얼마 전 한 이동통신사는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낸 남편, 즉 기러기아빠의 얼굴마저 잊어버린다는 내용의 광고를 제작했다.

40대들이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즐거운 인생’. 절반이 넘게 벗겨진 머리에 털털한 웃음을 짓는 혁수(김상호 분)는 가족을 캐나다로 보내고 혼자 지내는 기러기아빠다.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매일 밤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며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젊은 싱글족이 대개 자발적으로 싱글의 삶을 선택한 것과 달리 기러기아빠는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다. 앞만 보며 달려왔고 일 말고는 별다른 취미도 없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갑자기 사라지면 정서적 공허함을 느끼기 쉽다.

‘기러기아빠’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양숙 박사는 “기러기가족이란 개념 속에는 ‘어머니 홀로 자녀를 충분히 교육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며 “아버지가 돈 버는 존재였을 뿐,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거나 자녀 교육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사회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김원 교수는 “남성은 경쟁적 관계를 맺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결혼을 한 뒤 여성의 도움으로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다”며 “기러기아빠가 되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기분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영국 런던대 연구팀은 1만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했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비참함부터 행복함까지 7단계로 나눠 체크하고, 일명 행복지수를 올리기 위해서 연간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쓰도록 했다. 동시에 특정한 경험이 행복지수를 어느 정도 높였는지도 조사했다. 그 결과 결혼은 연간 5만4000파운드(약 1억원)의 돈을 벌어줬고 이웃과 나누는 정기적인 대화만으로 4만파운드(약 7500만원)의 행복상승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배우자와 사별하면 20만파운드(약 3억7000만원), 이혼하면 2만4500파운드(약 4500만원) 만큼 행복지수가 떨어졌다.

연구를 진행한 나타부드 포드사비 박사는 “행복의 가장 큰 요건은 사랑이나 우정처럼 다른 사람과 만들어가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최 박사 역시 “기러기아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족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라고 강조하며 “전화나 화상채팅으로 늘 연락을 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자녀의 유학을 중단시키거나 부부가 함께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 ‘즐거운 인생’의 혁수가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듯 이 시대의 기러기아빠들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기러기아빠 정서진단표
□ 별다른 일이 없어 술을 먹는 횟수가 일주일에 2번 이상이다.
□ 주말이 별로 반갑지 않다.
□ 가족과 연락하는 횟수가 점점 줄고 있다.
□ 혼자 밥 먹는 게 지겨워 대충 때우거나 건너뛸 때가 많다.
□ 밤에 잠이 안 와 힘들 때가 있다.
□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귀찮다.
□ 혼자 시간을 보낼만한 취미나 관심거리가 없다.
□ 가끔은 내가 돈 버는 기계라는 생각이 든다.
□ 마음을 터놓을 대화상대가 없다.
□ 자녀와 대화할 때 거리감을 느낀다.



▶정서 진단표
‘그렇다’고 답한 항목
2개 이하: 기러기 아빠로서 느끼는 당연한 외로움이다.
3~5개: 마음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으니 주변에서 대화 상대를 찾아야 한다.
6~8개: 우울증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9개 이상: 심한 우울증이 있으므로 가능한 빨리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정서 처방전
1. 가족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자주 연락하자.
2. 동호회나 취미활동을 하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자.
3.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거나 조깅, 수영 같은 운동을 하며 건강을 관리하자.
4. 회사 승진이나 영어완전정복, 마라톤완주 같은 뚜렷한 목표를 세우자.
(도움말: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김원 교수)


| 글 | 신방실 기자 ㆍweezer@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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