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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는 인류 최초의 요리사?


연말 분위기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요리가 함께 할 때 더욱 흥이 난다. 인류가 창조한 문화의 한 축인 요리가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뇌용량의 급격한 팽창으로 대표되는 현생인류의 탄생에 요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조상들이 먹어온 음식에 따라 지구촌 사람들의 게놈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과연 요리는 어떻게 인류를 빚어낸 걸까.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은 세 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의 말대로 아무리 고상한 사람도 시장기가 돌면 책을 덮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면 끼니 때만 잠깐 먹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순수하게 음식을 씹는 데만 걸리는 시간을 따지면 사람은 하루 평균 1시간 내외인 반면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5시간이나 된다. 사람은 먹기 쉽고 고영양분인 식사를 하지만 침팬지는 주로 과일과 나뭇잎에서 칼로리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과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요리가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현생인류를 있게 한 ‘진화의 원동력’이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요리가 없었다면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가 있기 전에 ‘요리하는 인간’, 즉 호모 코쿠엔스 (Homo coquens)가 등장했던 것이다.


79만년 전 불을 사용한 흔적
그렇다면 최초의 호모 코쿠엔스, 즉 요리를 발명한 인류는 누구일까. ‘네이처’ 10월 18일자는 16만4000년 전 현생인류가 해산물을 요리해 먹던 흔적을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화석과 유전학적 계산에 따르면 현생인류는 15만~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고 추정되므로 이번 발견은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할 때 이미 요리를 할 줄 알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요리흔적이 발견된 시기는 언제일까.





요리를 위해 불을 지핀 자리, 즉 화덕의 증거가 나온 시점은 25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만~50만년 전 헝가리,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유적과 중국의 유적에서 화덕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불에 탄 뼈와 돌, 재와 숯같이 요리를 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발견됐다.









지난 2004년에는 요리의 역사를 30만년 더 앞당길 수 있는 증거가 나왔다. 이스라엘 헤브루대 고고학연구소 나아마 고렌-인바 교수팀은 이스라엘 게셔 베노트 야아쿼브의 79만년 전 아슐기 유적에서 인류가 불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2004년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불에 탄 목재, 식물 씨앗과 함께 부싯돌을 발견했는데 이는 인류가 의도적으로 불을 피웠음을 의미한다. 이 무렵 지구에 퍼져있던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알려진 고(古, archaic) 호모 사피엔스. 고렌-인바 교수는 “불에 탄 나무는 6종으로 그 중 올리브, 야생호밀, 야생포도는 먹을 수 있는 종류”라며 “따라서 이곳에 살던 인류는 본격적으로 불을 이용해 요리를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 인류의 화석은 뼈 한 조각도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이 누구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편 인류가 최초로 불을 사용한 흔적은 15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고지와 케냐의 쿠비 포라에서 불에 탄 석기와 점토가 발굴됐는데 이 지역 모두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출토된 곳이다. 남아메리카의 스와트크란스에서 발굴된 불에 탄 동물 뼈도 150만년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런 화석들이 자연발화의 결과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뇌용적 급팽창한 호모 에렉투스
인류가 침팬지와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시기는 대략 500만~70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대표되는 초기 인류는 두발로 걸을 수 있었지만 현생인류와는 많이 달랐고 뇌용량도 현생인류의 3분의 1인 400cc에 불과했다. 210만~250만년 전 최초로 현생인류와 같은 호모속의 영장류가 출현했으며 ‘직립 인간’ 즉 호모 에렉투스는 약 190만년 전 등장했다.

그런데 두개골을 시기별로 나열해보면 흥미롭게도 두 번에 걸쳐서 뇌용량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가 호모 에렉투스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 배가 넘는 900cc에 가깝다. 다음이 고 호모 사피엔스로 현생 인류보다 조금 작은 1150cc 정도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을까?

유력한 가설은 ‘호모 에렉투스의 1차 팽창은 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서이고 고 호모 사피엔스의 2차 팽창은 요리를 하게 돼서’라는 설명이다. 육식이나 요리가 뇌용량의 크기와 무슨 관계일까?

두개골 속에 얌전히 들어있는 뇌는 다른 기관에 비해 그다지 에너지를 소모할 것 같지 않지만 실상은 무척 탐욕스런 기관이다. 같은 무게일 경우 소비하는 에너지가 쉬고 있는 근육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20배나 된다. 뇌속의 시냅스회로가 늘 분주히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동물은 뇌가 큰 쪽으로 진화할 수가 없다. 이를 ‘비싼 조직 가설’(expensive tissue hypothesis)이라 부른다.

이스라엘 헤브루대 고렌-인바 교수팀이 이스라엘 게셔 베노트 야아쿼브의 79만년 전 유적을 발굴하고 있다.

침팬지의 뇌용량은 400cc로 쉬고 있을 때 에너지 소비량의 8% 정도를 뇌가 차지한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1350cc로 25%나 된다. 침팬지의 식사에서 동물성은 5~7%에 불과하지만 인류가 수렵채취인이었을 때는 동물성이 40~60%였다고 추정된다. 영양분이 적고 거친 음식을 오랜 시간 먹어야하는 침팬지는 사람보다 턱이 잘 발달했고 소화기관도 더 크다.
그런데 최근 요리가 뇌의 1차 팽창, 즉 호모 에렉투스의 등장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햄 교수는 육식만으로는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출토된 불에 탄 야생 올리브 나무(02)와 염소풀 씨앗(03)의 현미경 사진

초기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죽은 고기를 먹거나 사냥을 했는데 뇌용량은 여전히 침팬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고나에서 발굴된 270만년 전 최초의 석기는 이들이 살을 발라먹고 뼈를 깨 골수까지 먹어치웠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이 호모 에렉투스에 비해 사냥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육식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의문점은 호모 에렉투스의 턱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작다는 사실이다. 육식의 비율이 늘어난 것만 생각하면 오히려 더 커졌어야 한다. 결국 이것은 호모 에렉투스가 씹는데 부담을 덜 주는 음식을 먹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랭햄 교수는 “뇌가 팽창한 시기와 불을 사용한 시기가 비슷하다는데 주목해야 한다”며 “요리를 했느냐 여부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운명을 갈랐다”고 말했다. 요리과정의 열은 살코기의 콜라겐 구조체를 젤라틴화시키고 식물의 밀집한 탄수화물을 풀어지게 해 쉽게 흡수되게 하기 때문이다.




식재료 스펙트럼 넓어져
요리를 하게 됨으로써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점도 주목할 변화다. 즉 탄수화물이 풍부하지만 날로 먹기는 어려웠던 식물 뿌리나 덩이줄기 등을 섭취할 수 있게 된 것. ‘네이처 지네틱스’ 10월호에는 이런 변화가 인류 진화에 미친 영향을 밝힌 논문이 게재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진화 인류학자 나다니엘 도미니 교수팀은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인 AMY1을 분석했다. 침팬지처럼 주로 과일이나 잎을 먹을 경우 포도당과 과당의 형태로 탄수화물을 섭취하므로 AMY1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불을 써서 뿌리와 덩이줄기처럼 녹말이 풍부한 것을 먹을 수 있게 된 인류는 녹말을 소화할 효소가 많을수록 소화흡수율이 높았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턱과 이가 작아 요리를 통해 부드러운 음식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큐멘터리 ‘인류 오디세이’의 한 장면. 호모 에렉투스가 사냥한 고기를 불에 구워 먹고 있다.

게놈 분석 결과 침팬지는 AMY1 유전자가 2개 있는데 비해 사람은 5~7개나 존재했다. 이 결과에 대해 미국 미네소타대 생물인류학자 그레고리 라덴 교수는 “녹말이 풍부한 뿌리와 덩이줄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인류를 다른 영장류와 구별짓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요리를 통해 음식의 독성을 없애거나 약화시켜 먹을 수 있게 한 것도 식재료의 목록을 늘이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많은 식물은 벌레나 짐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독성이 있는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것들은 떫거나 쓴 맛으로 경고를 보내므로 한번 맛을 보면 피하게 된다. 음식을 익히는 과정에서 가수분해 반응 등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때 독성 화합물도 반응에 참여해 분해되거나 독성이 없는 분자로 바뀐다. 음식으로 인한 감염이나 배탈도 요리를 함으로써 크게 줄일 수 있다. 음식물에 붙어있는 미생물이나 미생물이 분비한 독소가 요리과정에서 죽거나 파괴되기 때문이다.

요리의 발명으로 식재료의 목록을 대폭 추가한 ‘호모 코쿠엔스’가 오늘날 인류를 못 말리는 잡식성 동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S라인 몸매도 요리 덕분
탄탄한 역삼각형 상체와 S라인의 늘씬한 각선미는 요즘 남녀의 소망이다. 그런데 이런 몸매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요리 덕분이다. 요리와 날씬한 허리가 무슨 관계일까.

1995년 영국 런던대 인류학자 레슬리 아이엘로와 리버풀대 피터 휠러가 제안한 ‘비싼 조직 가설’은 인류의 형태학적 진화를 멋지게 설명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싼 조직이란 몸에서 유독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조직이다. 뇌, 심장, 콩팥, 간, 소화기관이 바로 비싼 조직.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몸무게의 7%에 불과하지만 쉬고 있을 때 소모하는 에너지의 60~70%를 잡아먹는다. 왜 그럴까?

뇌는 신경이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면서 이온을 세포 안과 밖으로 이동시켜야하고 아세틸콜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심장은 살아있는 한 뛰지 않으면 안 되고 콩팥은 정수기처럼 체액을 거르는 작업을 멈출 수 없다.

인류가 직립하면서 손이 자유로워졌지만 거기에 맞춰 뇌가 커지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바로 비싼 조직의 한계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즉 뇌가 커지려면 다른 비싼 조직이 작아져야 하는데 그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정제된 영양분인 포도당을 좋아하는 뇌를 위해 간은 끊임없이 글리코겐에서 포도당을 만들어 대줘야하므로 작아질 수가 없다. 심장과 콩팥도 마찬가지. 남은 건 소화기관이다.

비싼 조직의 무게 비율. 인간은 침팬지에 비해 뇌가 커지고 내장기관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걸 가능하게 해준 게 육식과 요리. 영양이 높아 소량만 먹어도 되고 소화가 쉬우므로 소화기관이 클 필요가 없다. 따라서 소화기관이 작아진 만큼 뇌가 커진 셈이다. 사람을 제외한 영장류와 사람의 비싼 조직의 무게 비율을 보면 이런 경향이 분명하다. 사람은 뇌가 커졌고 소화기관이 줄었다. 심장, 콩팥, 간을 합친 영역은 여전히 서로 비슷하다.

사람의 소화기관은 영장류 평균에 비해 60% 수준이다. 따라서 뱃속에 들어 있는 게 적으므로 ‘허리’가 생겼다. 반면 뇌가 작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두발로 걸었지만 여전히 ‘통허리’였다. 화석을 비교해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골반뼈는 현생 인류에 비해 넓적한데 이는 그만큼 허리가 굵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누구나 역삼각형, S라인을 가질 수 있게 태어난 셈이다. 다만 이를 실현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영장류학자 하버드대 리처드 랭햄 교수
요리가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었다는 가설을 제시한 하버드대 인류학과 리처드 랭햄 교수와 관련 분야의 현황과 최근 연구결과에 대해 e메일 인터뷰를 했다.

Q_150만년 전 인류가 최초로 불을 사용한 증거라고 제시한 흔적들은 자연발화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장소마다 연구자들은 다른 종류의 증거를 발견했다. 그 가운데 어느 것도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불 피운 자리가 여러 곳에서 나왔다는 것은 당시 인류가 불을 조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Q_79만년 전 요리 흔적을 남긴 인류가 누구였는지 고렌-인바 교수에게 문의해보니 사람 뼈는 전혀 출토되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 호모 에렉투스가 요리를 위해 불을 이용했다는 증거는 없지 않나?

그렇다. 그런 증거가 있었으면 논쟁은 벌써 끝났을 것이다!

Q_호모 에렉투스의 1차 뇌용량 팽창이 요리 때문이라면 고 호모 사피엔스의 2차 팽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냥 기술이 발달해 이들이 더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2차 팽창을 이끌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버드대

Q_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녹말분해효소 유전자 개수가 더 많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식물을 요리하게 된 것이 고기를 요리한 것만큼이나 호모 에렉투스의 뇌용량 팽창에 중요했음을 지지하는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이 결과는 요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녹말의 중요성을 잘 보여줬다.

Q_요리 가설을 지지하는 최근 연구결과가 있나?

우리 연구팀과 앨라배마대 생명과학과 스테펜 세커 교수팀이 ‘비교생화학·생리학’ 11월호에 실은 실험결과다. 우리는 요리한 고기를 먹을 경우 소화에 드는 에너지가 줄어듦을 보였다. 비단뱀에 날고기와 그냥 익힌 고기, 다져서 익힌 고기를 같은 양 먹일 경우 소화과정에 드는 에너지가 익힌 고기는 12.7%, 다져서 익힌 고기는 23.4%가 덜 들었다.

Q_오늘날 사람들의 식습관은 채식주의부터 주로 고기를 먹는 경우까지 광범위하다. 진화적 관점에서 가장 좋은 음식은 무엇일까?

물론 요리한 음식이다. 고기와 야채를 적절히 배합한….


| 글 | 강석기 기자 ㆍsukk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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