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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 빚어낸 손가락


미켈란젤로가 5년에 걸쳐 그린 ‘천지창조’에는 하나님이 아담의 손가락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천지창조를 묘사한 창세기에는 손가락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람의 코를 통해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언급할 뿐이다. 미켈란젤로는 왜 손가락에 집중했을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일등공신 손가락의 공적을 알게 되면 천지창조의 장면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스벤테 파보 박사는 2만8000년 전까지 구석기인류(네안데르탈인)와 신석기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수천년간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2006년 11월 16일자 ‘네이처’에 발표했다. 만약 구석기인류와 신석기인류가 전쟁을 벌였다면 누가 이겼을까.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박사는 “두 인류의 전쟁에서 손가락이 발달한 신석기인류가 더 많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겼을 것”이라며 “인간 손가락의 진화는 진화론의 가설 중 하나인 ‘자연선택설’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선택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개체의 우수한 형질이 후손에게 전달돼 일어나는 진화의 방법이다. 파보 박사도 “구석기인류와 신석기인류의 전쟁에서 신석기인류가 살아남아 현생인류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손가락이 발달하면 어떤 점이 유리했을까. 먼 거리까지 돌을 던질 때는 손가락의 미세한 조정이 필수다. 언제 손에서 돌을 놓는지, 손가락 끝으로 얼마나 많은 회전을 주는지에 따라 속도와 정확성이 달라진다. 야구에서 정확하고 빠르게 공을 던져 타자와 승부하는 투수는 손가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7 한국프로야구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두산 베어스의 다니엘 리오스 투수는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손가락을 통해 공이 어디로 갈지 느낌이 온다”고 밝혔다.



‘도구의 인간’ 만든 손 근육
가까운 거리에서 맞붙어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잡기만 해도 사용할 수 있는 돌과 달리, 자루가 있는 도끼나 망치는 팔과 비스듬한 각도를 이루게 쥐어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자루가 팔의 길이를 연장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미국 뉴멕시코대 인류학자 웨슬리 니웨너 박사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인류는 손의 골격에 차이가 있다고 2003년 3월 27일자 ‘네이처’에 밝혔다. 니웨너 박사는 컴퓨터 모델링 기술을 이용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손뼈 화석을 3차원으로 재현했다. 두 인류는 모두 엄지와 검지의 마주보기가 가능해 한 손으로 물체를 집어들 수 있었지만, 네안데르탈인은 골격상 비스듬하게 물체를 쥘 수 없었다.

신체담당 뇌 지도 뇌 영역 중 귀와 정수리를 잇는 반원형 부위에서는 신체 각 기관의 감각과 움직임을 담당한다. 손가락을 담당하는 영역(빨간색)은 눈과 코를 담당하는 영역(녹색)보다 넓다.

비스듬하게 물체를 쥐기 위해서는 골격 외에도 네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근육이 필요하다. 사람의 손가락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외재근이 잘 발달해 주먹을 쥔 채 검지와 중지만 펴거나 손가락을 하나씩 꼽을 수 있다. 외재근은 손목 윗부분에서 운동을 조종하는 근육이다. 다른 동물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이 손에만 있거나 손목 아래 수cm 정도까지 있지만, 사람은 각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 5개가 팔꿈치까지 뻗어있다.

굳이 해부하지 않아도 외재근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오른팔 관절에서 손목 쪽으로 3~4cm 떨어진 안쪽 팔뚝에 왼쪽 손가락을 대고 오른손 중지나 약지를 굽혀보면 팔의 근육이 수축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이혜연 교수는 “신체부위를 움직이는 근육이 많을수록 정교한 동작이 가능하다”며 “손가락을 정교하게 사용하기 위해 손가락 각각의 근육이 팔꿈치 부근까지 발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가락에 집중된 감각수용체




인간은 가끔 손가락에게 눈의 기능도 요구한다. 시각장애우가 돌기와 돌기 사이의 간격이 0.5cm에 불과한 점자를 읽을 때는 물론 소파 뒤로 넘어간 물건이나 침대 밑 깊숙이 숨겨놓은 책을 찾을 때도 손가락은 유용하다.

손가락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탐색할 수 있는 이유는 손끝에 감각을 느끼는 수용체가 집중됐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에는 압력을 느끼는 ‘파치니소체’라는 감각수용체가 있는데 몸 전체의 25%가 손에 몰려있다. 특히 손가락에는 1cm2 마다 100개 정도가 몰려있어 작은 자극도 쉽게 느낀다. 손등은 같은 면적에 9개밖에 없다.

손가락을 예민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뇌다. 연세대 의대 신경과 김승민 교수는 “아무리 많은 감각정보를 인지해도 뇌에서 이를 처리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며 “인류는 손가락의 감각과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유난히 발달했다”고 말했다.




뇌는 영역별로 담당하는 기능이 다른데, 오른쪽 귀에서 정수리를 지나 왼쪽 귀를 잇는 반원형의 부위는 각 신체의 감각과 운동을 담당한다. 이 부위 중 손가락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은 눈과 코를 담당하는 영역보다 넓으며, 엄지, 검지 같은 손가락 각각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세분된다. 각각의 손가락을 1:1로 맡는 ‘전용 뇌’가 있는 셈이다.

혹시 손가락이 인류의 뇌가 진화하도록 촉진한 것은 아닐까.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최재천 교수는 “손가락이 뇌의 진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는 없지만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가설”이라며 “화석으로는 두개골만 남을 뿐 뇌는 남지 않아 부위별 기능을 연구할 수 없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2006년 11월 16일자 네이처는 구석기인류와 신석기인류가 공존했다고, 2003년 3월 27일자는 두 인류의 손 골격에 차이가 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네이처 2006년 11월 16일자의 표지.
신인류는 엄지족?


The Shadow Robot Company

일본의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에는 컴퓨터에 필적한 기억력을 가진 독일 경찰 랑게 경부가 등장하는데 그는 기억을 입력할 때나 떠올릴 때 항상 다섯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만화책에 나온 내용이지만 근거는 있다.
한양대 의대 신경과 김승현 교수는 “손가락은 뇌의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손가락을 자주 사용하면 기억력 증진과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뇌는 손가락을 담당하는 영역이 넓기 때문에 손가락을 통한 자극에 쉽게 활성화된다. 손가락을 이용해 뇌를 활성화할 때 주의할 점은 뇌를 고생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손가락 동작은 쉽게 기억되기 때문에 단순한 반복 동작으로는 뇌가 활발해지지 않는다. 컴퓨터 자판이나 계산기, 휴대전화 버튼을 한번 외우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외워서 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의 특수한 기능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손가락만으로 다룰 수 있는 전자제품이 늘고 있다. 특히 어린이에게도 보급된 휴대전화는 문자메시지를 주로 보내는 ‘엄지족’을 양산하기도 했다. 혹시 미래의 인류는 엄지손가락과 이를 담당하는 뇌만 발달하는 것이 아닐까. 전 박사는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최근 개발된 제품에 적응하기위해 진화할 수는 없다”며 “손가락이 진화하기보다 도구가 손가락에 맞도록 디자인이 바뀌는 편이 훨씬 빠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최근 손가락만으로 간단히 조작할 수 있는 디지털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06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 곳을 동시에 눌러도 동작을 인식하는 차세대 터치스크린 ‘서피스’를 발표했고, 지난 10월에는 다국적 석유회사인 셸이 미국 시카고 주유소에 손가락이 신용카드를 대신해 요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지문인식 결제시스템을 설치했다.

손가락만으로 조작하는 인터페이스 장치가 점점 늘고 있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기기의 진화가 손가락의 진화를 대체하는 셈이다.

미래에 손가락만으로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이 열리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원래 디지털(digital)이란 말의 어원은 손가락(digit)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집중했던 손가락의 공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마주보기
손가락을 움직여 손가락 끝 지문이 있는 부위끼리 맞닿게 하는 동작. 엄지는 다른 네 손가락과 각각 마주보기가 가능하지만 다른 네 손가락끼리는 마주보기가 불가능하다. 엄지 아래에 있는 두툼한 근육인 ‘엄지맞섬근’ 때문에 사람의 엄지는 강한 힘을 내며 크게 회전할 수 있다.



새끼손가락의 해부학 명칭은 귀이개?
해부학 명칭은 대개 라틴어에서 가져오는데, 다섯 손가락 각각의 해부학 이름이 재미있다. 엄지는 ‘폴렉스’(pollex)라고 부르는데, 엄지손가락을 내려 검투사에게 죽음을 명령하던 ‘폴리세 베르소’(pollice verso)에서 유래됐다. ‘데몬스트라토리우스’(demonstratorius)라 불리는 검지는 가리킨다는 뜻이며, 중지는 음탕하다는 뜻의 ‘임푸스디쿠스’(impusdicus)다. 중지의 어원에 대해서는 서양의 욕설에서 유래했다는 등 많은 추측이 있다. 약지의 이름은 ‘안눌라리스’(annularis)로 ‘해마다’(annual) ‘약속’ ‘반지’의 뜻이 있다. 결혼반지를 약지에 끼는 풍습은 고대부터 어어진 셈이다. 새끼손가락은 ‘오리쿨라리스’(auriculaaris)라 불렀는데, 이는 귀를 뜻하는 ‘오리클’(auricle)에서 유래됐다. 새끼손가락은 귀지를 팔 때 흔히 쓰였기 때문이다.


| 글 | 전동혁 기자 ㆍjerme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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