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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세계에서 다보탑 쌓는 이유


“2006년 10월 현재 미국 인구는 3억 명이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 분자 2억5000만 개로 이뤄진다.”

미국과학교사협의회가 최근 발간한 부교재는 나노의 개념인 ‘10억 분의 1’을 이 같이 비유한다. 그러나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나노 세계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어렵고 심오하다는 선입견 탓에 나노는 과학자들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나노 세계가 꼭 보통 사람의 생각 저편에 있는 건 아니다. 나노 크기의 물질을 ‘벽돌’처럼 쌓아올려 초소형 다보탑을 건축하거나 표면에 수없이 박힌 나노 돌기로 물방울을 밀어내는 얇은 코팅막이 개발되고 있다. 나노 물질을 거푸집으로 활용해 원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도 있다. 정교한 과학원리가 이용되지만 개념 자체는 보통 사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노 세계에 신라의 숨결이
지난해 10월 저명한 과학학술지 ‘네이처 머티어리얼스’는 독특한 사진 하나를 소개했다.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재인 다보탑이었다. 당시 다보탑이 주목받은 건 아주 작은 크기 때문이었다. 높이가 불과 20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에 불과했던 것. 이는 인간의 세포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아주 작은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이 작은 크기에도 탑이 놀랄 만치 정교했다는 점이다. 연구단을 주도했던 양동열 KAIST 교수팀의 임태우 연구원은 “덩어리 형태의 재료를 깎아 만든 게 아니라 나노 크기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아주 작은 크기의 물체를 만드는 방법은 ‘깎아내기’다. 큰 석고를 조각칼로 깎아 얼굴의 형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러나 양 교수팀이 시도한 것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쌓아가기’다. 나노 크기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원하는 물체를 만드는 것이다. 일상에서 탑을 쌓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몸 안을 돌아다니며 암 세포를 잡는 나노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깎아내기’ 방식에 비해 좀 더 손쉽게 작은 구조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노 로봇을 활용하면 피부를 절개해 암 덩어리를 들어내거나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고도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위에서부터)다보탑, 여객기, 로뎅, 하회탈
연꽃잎 위의 세상 재연
자연현상을 베껴 최신 기술 개발의 단초를 모색하는 것도 나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특히 주목 받는 건 연꽃잎이다. 연꽃잎에는 물방울이 묻지 않는데, 이는 표면에 돋아난 나노미터 크기의 돌기 때문이다. 표면장력 때문에 공 모양으로 똘똘 뭉친 물방울을 나노 돌기가 머리에 이듯이 밀어낸다. 돌기들 사이로 스며들지 못한 물방울은 연꽃잎 위를 구르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연꽃잎이 언제나 깔끔한 이유다.

김완두 한국기계연구원 자연모사 바이오기계연구팀장은 연꽃잎 표면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김 팀장은 “현재까지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각각 2.5cm 정도에 이르는, 물이 안 묻는 얇은 코팅막을 만들었다”며 “크기를 좀 더 키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팀은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게 목표다. 크기가 작아 기술적인 어려움이 적은 데다 발수 특성을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이 실용화로 이어지면 비오는 날에 수시로 사이드 미러를 닦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좀 더 연구가 진척돼 전면 유리에 이 코팅막을 붙이게 되면 와이퍼가 필요 없어진다. 현재 국내 유명 자동차 회사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김 팀장은 밝혔다.


연꽃잎
원하는 물질 만들려고 ‘나노 거푸집’ 써
나노 세계엔 거푸집도 있다. 이는 현실의 건축현장에서 영감을 얻어 나노 세상에서 신기술을 발굴한 사례다. 나무 거푸집 대신 ‘실리카’라는 물질이, 시멘트 대신 설탕물이 쓰인다. 원리는 물을 섞은 시멘트를 부어 굳힌 뒤 거푸집을 부수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집짓기 원리와 같다.

나노 거푸집을 만든 주인공은 지난해 ‘국가 과학자’로 선정된 유룡 KAIST 화학과 교수다. 지난 1999년 나노미터 크기 구멍이 숭숭 뚫려 ‘실리카’라는 물질에 탄소를 잔뜩 함유한 설탕물을 부었다. 그리고 열을 가하자 물은 증발하고 설탕에 들어 있던 탄소가 실리카의 형상을 따라 남았다.

남은 문제는 거푸집 역할을 하던 실리카의 제거. 유 교수는 이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염기성 수용액에 약한 실리카를 수산화나트륨에 넣은 것이다. 실리카가 녹아내리면서 유 교수는 원하는 물질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시멘트 기둥이 모습을 드러내듯이 나노 다공성 탄소 물질도 탄생했다. 유 교수는 이 같은 착상으로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연구팀은 이 물질이 연료 전지의 핵심 부품으로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 무수히 많은 나노 구멍 안에 연료 전지의 화학반응을 제어하는 촉매 물질을 입히면 반응 수준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 글 | 이정호 기자ㆍsunris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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